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13화 (13/114)

13. 사신의 첫 번째 문 (3)

2017.09.15.

사신의 문은 섬뜩한 이름과는 다르게 눈이 부시도록 근사하고 장엄한 것이었다.

문을 타고 흐르는 은은한 빛에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서려 있었고, 문틀에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눈을 떼기 어려웠다.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문이라니, 여간 신비로운 게 아니다.

내궁 후원이라는 은밀한 장소만 아니었다면 모두의 이목을 한 번에 끌 만큼 대단한 모습이었다.

소희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환이 보여주는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이게, 너의 사신의 문이다.”

“저의?”

“하핫-. 귀엽기도 하지. 곧잘 알아듣는구나.”

환은 웃음이 많았다.

소희가 뭐라 대꾸만 하면 으레 웃었던 것이다.

“아니, 그게 뭐가 우습다고…….”

소희가 볼멘소리를 하며 살짝 고개를 돌리자 환이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슬쩍 끌어당겼다.

“우습긴. 어여뻐 그런 것이지. 짐의 비가 여간 총명한 게 아니라 좋아 그런 것이지.”

“자꾸 이리 놀리시면 정말로 화낼 것입니다.”

소희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모양인지 제법 딱 부러지는 목소리를 냈다.

환이 늘 그녀를 희롱하는 일에만 골몰해 도무지 진지해질 수 없었다.

“보통은 그 말을 못 알아듣지. 사실 사신 문이란 건 전부 다르거든.”

“아…… 그렇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게 생기나 봅니다.”

“다르지, 살아온 모습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그 말씀은.”

“문틀의 조각은 망자의 일생을 그려낸 것이니까.”

“아…….”

환이 설명을 하며 긴 손을 들어 뻗자 그의 하얀 도포가 밤바람에 부드럽게 펄럭였다.

너울같이 나부끼는 소맷자락을 따라 마르고 기다란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그 움직임은 마치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문을 어루만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대의 문틀은 참 어여쁘군……. 이 달빛이 아로새겨진…….”

그의 말이 일순 아득해졌다.

발밑이 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가볍게 핑 돌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환을 올려다보자 차게 가라앉은 시선이 맞닿아왔다.

사랑스러운 것을 내려다보듯 한껏 풀어져 아름답게 불타오르고 있던 그의 홍안이 어느 샌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보아선 안 되는 걸 본 것처럼 한껏 커져선 새카만 동공 가득 경악이 들어차 있었다.

“환……?”

심상치 않은 그의 반응에 소희가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환은 미동조차 없었다.

“환?”

그 뒤로도 수차례 더 부르고 기어이 그의 몸에 손을 대 흔들고서야 그의 시선이 옮겨왔다.

“…….”

하지만 마주한 그의 아름다운 홍안은 불길이 꺼져 아득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 남자의 시선이 이렇게 서늘한 것이었나.’

한참을 말없이 소희를 내려다보던 환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역시 싸늘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소희는 제 어깨에 올려진 환의 손이 바윗덩어리같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그대…….”

심장을 긁어내리는 것같이 낮은 목소리엔 옅은 분노가 깔려있었다.

“벽안에 금발을 바랐던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태자에게…….”

환은 말을 잇다 울컥 치미는 뭔가를 가만히 누르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잇새로 내쉬는 숨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분노가 알알이 배여 차게 식어 나와 흩날렸다.

“그에게 돌아가고 싶었나?”

소희는 환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곧 피부를 파고들 것같이 아프게 옥죄여왔다.

견디지 못할 고통에 소희는 옅게 신음을 흘렸다.

“어서 대답해. 그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거였나?”

마치 누군가 그의 눈동자에 싸늘한 불을 지핀 듯 홍안이 난폭하게 일렁이며 사나운 기운을 마구잡이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파……!”

환은 두 손으로 소희의 양어깨를 붙잡아놓고는 으르렁거리듯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

아프다는 말에도 그는 손아귀에 몰린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억세게 잡아 그녀를 기어이 들어 올려 자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어째서 금발에 벽안이냐 물었다. 왜지? 어째서 상천의 지존에게 허락된 색을 바랐느냔 말이다! 알고 있었느냐? 그래서 내게 그런……!”

“무슨 말을! 놔요 이거! 아프다고!”

마치 뼈를 부러뜨리기라도 할 듯 힘을 주어 잡은 그의 손은 일전에 맛봤듯이 그녀와 비교할 수 없이 거대했다.

하긴,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아 올려 뜯을 때도 가벼운 솜뭉치를 들듯 가뿐하게 들고 섰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지금과 같이.

발버둥 치고 있는 두 다리가 볼썽사납다.

소희는 몸부림을 쳐도 꿈적도 않는 환을 보다 맥이 풀리고 말았다.

‘속았구나, 속았어.’

다정하고 능글맞기까지 한 사탕발림에 깜빡 속았구나.

은애하여 주겠노라 속삭이는 음탕한 말에 마음이 동한 죄를 받는 것이다.

이미 끊어진 목숨이라 눈감고 넘겼던 남자의 포악함이 다시 그 위험한 이를 드러내고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홍안을 마주 보고 있던 소희는 문득 제 처지가 우스워졌다.

그래서 발버둥 치던 발을 가만히 늘어뜨리고 그가 흔드는 대로 몸을 맡겼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이런 꼴이라니.’

차라리 먼지가 되어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면 좋을 것을.

제 목덜미에 검붉은 검집을 들이밀고 옅게 웃던 아수라에게 기꺼이 목을 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그때.’

소희는 웃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끝이 험한 제 꼴이 가엽고 기가 막혀 웃었다.

까만 눈이 그 빛을 잃고 탁하게 가라앉았고, 온몸에서는 힘이 빠졌다.

눈앞에서 타오르는 황금빛 홍안은 사납게 일렁이고 있지만,

아름답지도,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경탄을 자아내지 않았다.

소희는 차게 식어내리는 제 마음을 느꼈다.

한순간이나마 이곳에서 그에게 의탁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꿈을 꾸었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십 년 보시를 하고 죽어간 아버지의 뒤를 따랐어야 했는데.

그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뻔뻔스레 표가 공자, 아니 상태자와 혼약을 하고, 혼자 들떠 산길을 올라 목이 뜯겨 죽고 온갖 더러운 꼴을 보고 있는 건지.

‘턱없는 욕심을 부리니 천벌을 받는 게지.’

언젠가 유모가 패가망신해 거지꼴이 된 채 쫓겨나던 이웃을 보며 중얼거렸던 말이 왜 이럴 때 떠오른 건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금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 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왕의 반려이니 별이니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어서, 어서 죽어버렸으면.

모든 것이 어서 끝나버렸으면.

환이 다시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는 것 같긴 했지만 소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잡초만도 못하게 짓이겨버리는 게 귀왕의 비를 대하는 태도라면.

그냥 차라리 지금.

“정신 차려라!”

귓가를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소희는 감고 있던 눈을 귀찮다는 듯 슬쩍 밀어 올렸다.

눈앞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홍안을 한 환이 자신을 절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환의 뒤편으로는 하늘을 빼곡히 메운 붉은 색의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소희는 눈앞에 산개해있는 붉은 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붉은 비처럼 마구 흩날리는.

‘저것은 무슨 꽃일까?’

노곤한 가운데, 익숙한 모양이 눈에 띄었다.

가물거리던 기억 끝에서 소희는 꽃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아, 저승화.’

돌보는 이 없는 강둑 무덤가를 섬뜩할 정도로 붉게 물들이던 저승화.

소희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다.

“정신 차려라! 끌려가면 안 된다!”

그런 소희에게 다시 한번 단호한 목소리가 뒤따르자, 소희는 살짝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상관이람.’

성가심 속에 숨었던 서운함이 가시처럼 돋아 올랐다.

‘차라리 이대로 저 꽃잎처럼 바스러져 흩어져버리고 싶은데.’

소희는 자꾸만 자신을 부르는 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그는 왜 저렇게 절박한 표정이 된 것일까.’

그에게 붙잡혀 공중에 매달려 있었는데,

‘어째서 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일까.’

소희는 자꾸만 들끓는 감정 속에서 지금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려 애썼다.

눈앞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이 주는 안온함에 자꾸만 눈이 감기고 이대로 먼지처럼 흩어지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자신을 유혹했다.

하지만 등 뒤로 둘러진 따스한 환의 손길과, 그의 간절한 표정에 조금씩 맑은 정신이 들었다.

사지에 감각이 돌아오자 얇은 비단신 바닥을 통해 후원 잔디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두 다리로 딛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들자 전신을 지배하던 부유감과 들끓던 감정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단지 눈을 몇 번 깜빡이는 것만으로 시야가 선명해졌다.

눈앞을 붉게 물들이던 저승화도, 분분히 날리던 선연한 꽃비도 모조리 꿈인 듯 사방이 고요했다.

“……소희야.”

여느 때와 같은.

오늘 아침까지 들었던 환의 다정한 울림을 담은 미성이 귀에 닿자 잠시 아찔해 절로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등 뒤로 둘린 환의 듬직한 손은 비틀거리는 소희를 무리 없이 받아내 주었다.

덕분에 볼썽사납게 나뒹굴진 않았지만, 이상하다는 느낌은 한층 더 강해졌다.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잔뜩 쉬고 갈라진 목소리에 한층 더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제 정신이 들어? 내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냔 말이다.”

환은 다정했지만 초조한 기색이 분명한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소희는 자신을 감싸 안고 있는 커다란 손을 내려다보자 문득 무섬증이 도졌다.

저 손으로 무자비하게 자신의 목을 꺾고, 실 끊긴 인형처럼 들어 올려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울컥 넘어오던 뜨거운 핏물이 지금도 입안에 고여 있는 것 같아 갑자기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우욱-.”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누르진 못해 저도 모르게 허릴 꺾고 몇 번인가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산개하던 저승꽃의 붉은 꽃잎.

‘왜 갑자기 떠오른 걸까?’

소희는 자신을 조심스럽게 일으키는 환의 손을 부여잡았다.

뭔가 미묘하게 일그러진 상황이 자꾸만 그녀에게 사실을 확인하라 요구했다.

“이…… 무슨…… 언제…….”

더듬거리는 소희의 말은 잔뜩 바스러져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환은 그런 소희의 말을 용케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래그래.”

안심시키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어하는 소희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안으려 했다.

잔뜩 겁에 질려 자신을 밀어내는 소희의 눈동자를 보기 전까지.

“아아……. 너의 체념과 분노는…… 짐이었느냐.”

아름다운 홍안에 순간 스친 것은 고통이었다.

까맣게 젖은 눈동자에 깃든 의문은 아직도 그를 경계하면서도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환은 소희를 끌어당기던 손을 내리고 자신의 도포를 벗어 잘게 떠는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첫 번째 관문이 열렸단다.”

“……관문.”

평소의 환이라면 작게 되뇌는 소희에게 ‘짐의 비는 참으로 영특하거든-‘라고 키득거렸겠지만, 지금 환은 그저 담담히 미소 지을 뿐 농을 하거나 지분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도포를 벗어 둘러준 후에는 뒤로 한발 물러나며 살짝 소희와 거리를 두기까지 했다.

“사신의 문에는 일곱 관문이 있다. 일곱 날을 지내고 나서야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넌 바로 관문이 열려버렸다.”

“…….”

“첫 관문은 체념과 분노로 귀를 잡는단다. 체념에 붙잡히면 무로 돌아가고 분노에 잡히면 요괴가 되지.”

“……잡힌다니……?”

“그의 일생중 제일…… 혹독하고 잔인한 순간이 조금 더…… 가혹하게 돌아와 사신의 문을 건너는 이의 정신을 갉아먹는단다…….”

“그렇습니까.”

달빛을 받으며 은빛으로 옅게 빛나는 환을 보던 소희가 담담히 대꾸했다.

‘그랬나. 나에겐, 환이 제일 혹독하고 잔인한 순간이었나.’

소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끔찍했다. 하지만 저 서늘한 손에 의지하던 건 자신의 의지였다.

“네게, 나는 그런 의미였나?”

생각지도 못하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그녀에게 던져졌다.

“!”

그녀를 바라보는 환의 붉은 눈이 고통에 짙게 물들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나 화려하게 타오르는 그의 불꽃이 빛바랜 재처럼 죽어버린 모습은 이런 와중에도 소희를 안타깝게 했다.

소희는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랬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렇지도 않다.

눈앞을 가로막던 환상이 걷히고 나자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환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생생히 와닿았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상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신의 목숨을 끊어내고 세상 그 누구보다 가혹하게 군 남자에게 가장 큰 의지와 안온함을 발견해버린 자신을.

무섬증이 가라앉자 서글픈 눈을 하며 자신에게서 떨어져 서 있는 아름다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분명 자책하고 있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는 분명, 그 순간 ‘단죄’하듯 그녀의 목을 꺾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였다.

쉽게 넘길 순 없지만 못 넘길 건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상황이며 다그치듯 애정을 퍼붓는 환의 구애가 마냥 낯설긴 해도 의지할 곳 없던 아기씨일 때보다 좋았다.

평생을 가난하게 비어버린 마음이었다.

기댈 곳 없는 아이의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늘 애정에 허덕였다.

선친의 약속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바란다는 말에 흔들렸다.

이런 나라도, 라는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너라서 반드시라고 말하는 남자의 말에 소희의 마음이 그 벽을 허물었다.

모든 허물을 덮고, 저를 간절히 바란 남자를 소희 역시 바라게 되었다.

이젠 평생을 한 몸같이 따르던 외로움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자신의 비라며 제 옆자리에 있어 주길 절실하게 원해주는 남자가 곁에 있다.

그의 큰 손이 자신을 감싸 안는 느낌이 좋다.

보호받고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모른 채 이제 와 뒤로 물러서려는 환을 보자,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몰려왔다.

이렇게 쉽게 마음을 내준 것은 그의 말대로 자신이 ‘귀문의 별’이라는 운명으로 엮여서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예전의 자신은 죽었고, 이제 자신을 원하는 그의 곁에 머물길 바라고 있다.

사박-

비단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소희의 발이 환에게 한발 내밀어졌다.

사박-

그의 차가운 숨결이 얼굴에 고스란히 떨어지는 거리까지 좁혔다.

“앞으론, 아껴주세요.”

물리도록 어여뻐 해주시어요.

용기를 낸 첫 마음.

소희의 속삭임 같은 말에 환의 가슴이 크게 오르락거렸다.

밤바람에 나부끼는 그의 은빛 머리칼처럼 부드럽고 나긋한 움직임으로,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소희의 어깨를 두르는 게 느껴졌다.

그랬다.

그는 자신의 인세의 명을 꺾어버릴 땔 제외하고는 늘 저렇게 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운 것을 대하듯 했다.

누가 저렇듯 조심스럽고 애정이 담뿍 담긴 손길을 싫어할 수 있으랴.

길들여지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소희는 환의 손이 당기는 대로 가만히 그의 가슴에 머릴 기댔다.

쿵-

쿵-

마른북소리가 들리며 차게 얼어있던 뺨이 그의 앞섶에서 녹아내린다.

마음이 풀어졌다.

“언제부터 사신의 문은…… 어떻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라 소희가 두서없이 말을 꺼내며 그의 품에서 작게 움직이자, 환이 그녀의 어깨에서 늘어져 내리는 자신의 도포를 다시 한번 여며주었다.

그리고 이내 두 팔로 소희를 끌어안고 그녀의 정수리에 자신의 턱을 괬다.

“네 무늬를 막 더듬어 읽던 중이었지. 있을 수 없는 무늬가 함께 새겨져 있기에 혹시 너도 아느냐 물었다만 답이 없었다.”

“아…….”

이제 언제 자신이 그 관문에 들어선 건지 알겠다.

사신의 문을 설명하던 환의 말이 일순 아득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자신도 모르게 관문에 들어선 모양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환의 말은 쉽게 흘려들을 게 아니었다.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 함은……?”

“그대가 원한 금발에 벽안은 무슨 의미였지?”

두근-.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자신을 겁박하며 소리 지르던 환이 묻던 것과 같은 질문이 시작되었다.

#dar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