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11화 (11/114)

11. 사신의 첫 번째 문 (1)

2017.09.08.

분명 시간상으로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도 눈을 뜨니 상쾌하고 기운이 넘쳐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귓가를 울리는 작은 새소리며 간밤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작은 시냇물 소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을 흡족케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희는 이불깃을 살그머니 잡아당기며 몸을 돌려 누웠다.

해가 눈 부셔 견딜 수가 없었다.

“!”

몸을 돌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큰 손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끌어당겼다.

침의가 슬쩍 벌어지며 서늘한 피부가 소희의 뺨에 와 닿았다.

‘흐읍-.’

놀란 마음에 들이켠 숨이 한가득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이런.”

그런 소희를 보곤 낮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감싸 안은 큰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가만히 명치께를 눌렀다.

이제는 익숙해진 불꽃같은 홍안이 소희에게 가만히 시선을 맞대왔다.

“환.......”

침의 위로 전해지는 서늘한 감촉이 소름 끼치기보다 상쾌해 소희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놀란 가슴이 빠르게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놀랐나?”

심장을 긁어내리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웃음기를 가득 담고 소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희는 대답하는 대신 자신을 담고 있는 홍안을 가만히 응시했다.

붉은 생명력을 가득 담고 일렁이는 눈동자는 햇살에 따라 그 빛이 달라졌다.

영롱한 그 모습이 보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였다.

“조금요.”

그녀의 목소리 역시 잔뜩 잠겨 속삭이듯이 말소리가 나왔지만, 그는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팔을 괴고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려 소희에게 바짝 다가와 그녀처럼 속삭였다.

“놀란 게 아니라, 부끄러웠군?”

짓궂게 놀리는 목소리를 낸 것과는 다르게 손은 점잖게 거둬들인 지 오래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목덜미에 흩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움직여 걷어내고 있었다.

“언제 오셨어요?”

소희는 민망함에 양손으로 침의를 살짝 움켜쥐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일러 ‘귀문의 별’이라고 부르던 남자였다.

‘귀문의 별을 비로 맞는 것은 귀왕의 임무.’

‘넌, 나의 비이다.’

가볍지 않은 말을 그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선고하듯 나지막이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가 자신의 지아비가 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침의 차림으로 안기다시피 아침에 눈을 뜨자니 민망했다.

귀왕, 아니 환은 하얗게 뻗은 손가락을 소희의 뺨에 살짝 가져다 댔다.

발그레한 뺨이 어여뻤다.

“그대, 알려줄 것이 있어 왔어.”

‘그럼, 깨우시지 않고선? 혼례도 올리지 않았건만 동침이라니. 이 응큼한 남자 같으니.’

소희는 제때에 말을 제대로 삼켰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환은 그보다 더한 능글맞은 대꾸를 해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이 분명했다.

소희는 커다란 눈을 살며시 내리까는 것으로 불만 가득한 시선을 감췄다.

달궈진 뺨을 가릴 사이도 없었다.

지아비가 될 운명의 남자라고는 하나 아직까진 혼례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이렇듯 무례하다니.

귀왕의 별이라든지,

하계의 왕이라든가.

염라대왕이라는.

전혀 현실감 없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시간도 주지 않고 마냥 몰아세우니 끌려가기도 벅차다.

‘또 얼마나 거창한 일이길래.’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자 환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머릴 치우던 손을 들어 작게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 무서워할 일은 아니야.”

듣기 좋은 목소리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지만, 소희는 절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신의 문?”

소희가 환을 올려다보자 그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마주해왔다.

“사신의 문. 인계에서는 49재라고 불린다지? 염라대왕에게 불려가 일곱 날씩 일곱 판결을 받는다고 한다지. 다 맞진 않지만, 사신의 문은 그것과 비슷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야.

짐은 무척 바쁘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진지한 목소리였지만, 빙글거리는 눈웃음이 분위기를 가볍게 띄웠다.

소희는 환의 농담에 용기를 얻어 말문을 열었다.

“49재는 저승길 준비를 하는 거라 들었습니다. 현세를 정리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사신의 문도 그런 것입니까?”

“짐의 비는 영특하기도 하지. 그렇다. 그대 말이 맞아.”

환은 소희의 대꾸에 크게 기꺼워하며 처음으로 소릴 내 환히 웃었다.

“이 정도에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다니, 제가 바보인 줄 아셨나 봅니다.”

환이 너무 기뻐하자 민망해진 소희가 토라진 시늉을 하며 슬쩍 환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빠져나가려 했다.

환이 소희를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환은 한쪽으로 가지런히 치워놓은 머리카락을 피해 대뜸 목덜미에 입술을 진득하게 붙였다.

힘을 줘 누른 입술을 한참만에야 ‘쪼옥’거리는 부끄러운 소릴 내가며 입술을 떼고는 이야기를 이었다.

“비약을 먹고 왔더라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무슨.......”

“귀왕이 내린다 해서, 귀왕의 약이라고도 불리는 비약이다.”

제발.

소희는 환한 아침 햇살 아래서 이렇듯 낯부끄러운 희롱을, 그것도 제정신으로 당하자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단숨에 인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약’이 있었다. 그도 아니면, 사신의 일곱 문을 거쳐 내려왔어야 했었지.”

“그런데.......”

말을 하는 사이마다 습한 소음이 침전을 쉬지 않고 울렸다.

정말 이러다가 얼굴이 익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게 뺨으로 열이 쏠려 소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대는 육신만 벗겨 강제로 하계에 데려왔어.”

하얀 목덜미 사이에서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음습하게 들려 절로 소름이 끼쳐졌다.

“말하자면 편법인 셈이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하계로 온 영은 끝내 그 영력이 흩어져 무(無)가 되던지 요괴가 되고 만다.”

“그럼.......”

목소리만큼이나 소름 돋는 이야기에 소희는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려 되물으려 했지만, 놀란 마음에 입술이 달달 떨려 제대로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런 소희를 반질거리는 홍안에 그대로 비춰든 환이 가볍게 한숨 쉬듯 이야길 이어갔다.

“그래서, 간밤 그대가 잠들고 나서 사신의 일곱 문을 열었어.”

“그럼...... 이제 전 어쩌면 됩니까?”

“사실 그대가 할 건 없어. 아니. 온 힘을 다해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초옥-.

다시, 잠시 멈췄던 서늘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환은 담담한 말투로 이야길 이으며 끊임없이 소희의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마치 온 목을 빙 둘러가듯 입술을 미끄러뜨리며 자잘하게 입맞춤을 남기는 그의 행동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희도 절로 몸을 달뜨게 했다.

귓가를 스치는 숨소리에 몸이 움찔거리며 옴쳐들었다.

저절로 움츠러드는 어깨를 환이 가만히 잡아 누르며 턱밑을 마지막으로 목에서 입술을 떼고 햇살 아래서 소희를 마주 봤다.

다정하게 입맞춤해준 것과는 달리 담담하기 그지없는 시선이었다.

“말 그대로다. 그대. 전력을 다해 사신의 일곱 문이 닫힐 때까지 살아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소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환의 말은 대체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영이니 하계이니 하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건만 일곱 문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영력이나 몸을 빼앗기지 않은 채 지금처럼 온전히 너인 채로 남아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무섭습니다. 잘 모르겠는데 무섭습니다.”

소희는 환이 하는 말이 예사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사신의 일곱 문이 의미하는 바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통과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저렇게나 다짐을 하는 것이리라.

소희는 말을 거르지도 못하고 머리를 스치는 바를 그대로 환에게 물었다.

“......먹잇감이 된다는 그 말입니까?”

느닷없는 말에 멈칫할 법도 하건만 환은 소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의 홍안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아수라! 아수라!! 계시는가.”

수라전에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울려 퍼졌다.

목청에는 영력이 깃들어 먼 곳까지 그의 목소리가 말끔하고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수라전의 모든 시비들이 대번에 누가 찾아온 것인지 알아차렸다.

“아수라님, 풍천대제께서 오셨사옵니다.”

아수라는 제 머리카락을 집어 고운 빗으로 살살 빗어 내리던 시비에게 고운 눈매를 살포시 찡그리며 웃었다.

“안다. 저리 부르는데 못들을 이가 어디 있겠느냐.”

“뫼시오리까? 아마 아수라님을 찾으실 때까지 저리 애타게 부르실 모양입니다.”

매끄러운 아수라의 머리를 얌전히 내려놓으며 시비가 아수라에게 물었다.

고운 빗으로 찰랑이는 머리를 다시 한 번 빗어 누르는 시비의 말에는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아아. 지겨운 인사. 안 그러냐? 저 목소리에 골머리가 울리는 것 같구나.”

“그러지 마시옵소서. 언제는 지음을 나누는 벗이니라 하시더니 이런 말씀 남기신 걸 알면 풍천대제께서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요것 보아라. 상전에게 조목조목 말대답하는 꼴이 아주 제법이구나.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서운해 하는 것이 아니라 심통나 토라질 것이니라.”

“아이구. 저는 못 들었습니다. 토라지다니요. 아이구 못 들었습니다.”

아수라의 농담 어린 말에 시비가 진저리를 치며 손을 내둘렀다.

“아-수라아아아아! 내가 왔다네, 그대 어디이- 계시는고오-!”

아수라가 한담을 나누는 사이 풍천대제의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다.

풍천대제는 곧 영력을 가득 담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 수라전의 용머리가 울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 저, 저. 못된 성질머리 좀 보라지. 귀청이 떨어지겠어.”

“뫼시오리까?

영력이 깃든 외침에 두 손으로 황급히 귀를 막고 서 있던 시비가 누렇게 뜬 얼굴로 간신히 묻자 아수라가 마뜩잖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수라전 어린것들은 풍천대제의 영력이 담긴 후를 두 번은 버티기 어려웠다.

굳이 어린것들의 피를 볼 필요는 없으니 이쯤해서 저 목소리 큰 인사를 부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여간, 요란한 인사 같으니라고.

“아침부터 성가시군. 넌 이 길로 나가 후원으로 차를 한잔 내오너라.”

아수라가 제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아이를 내보내며 도포를 여민 띠를 다시 한 번 힘주어 고쳐맸다.

험한 몸놀림에도 풀어지는 법 없도록.

그리고는 후원으로 나서며 목소리에 영기를 실어 풍천대제를 불렀다.

“후원으로 오시게. 어린것들일랑 그만 괴롭히고.”

크진 않아도 또렷한 말이 수라전을 울렸다.

웃음이 담긴 말과는 달리 아수라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치릉- 허리에 달린 검이 주인의 걸음을 따라 낮게 울었다.

후원에 아수라가 첫발을 딛자 기다렸다는 듯 풍천대제의 후끈한 영력이 등 뒤로 쏘아져 들어왔다.

아수라의 목숨이 담긴 내단을 향해 살기를 담아 묵직하게 쏘아진 공격이었다.

콰드드득-!

힘이 제대로 실린 영기가 쏘아져 나가는 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가볍게 반걸음 비켜서는 것으로 풍천대제의 공격을 단숨에 무위로 돌리며 아수라는 화사하게 웃었다.

빙글 돌아서는 아수라를 따라 검은 머리채가 햇살 아래 반짝이며 흩날렸다.

눈을 가늘게 늘어뜨리며 웃고 있는 아수라의 검은 동공은 어느새 짐승의 것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져있었다.

풍천은 그런 아수라를 보고서 오히려 반가운 듯 다시 한 번 ‘후’를 내질렀다.

“아수라!!!”

지잉-

무거운 울림이 그들이 서 있는 공기를 크게 진동시키며 아수라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쯧-.

“귀머거리도 아니건만-!”

순식간에 미소를 지워내고 차갑게 식은 시선이 풍천을 향했다.

아수라의 손에 들린 묵빛 접선이 성의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툭 털렸다.

스스슷-

그러자 무언가 무섭게 늘어나는 소리와 함께 아수라의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이 단번에 검격을 쳐올리며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었다.

후원 가득 병장기의 날선 마찰음이 들어찼다.

채앵---!

아수라의 검이 풍천대제의 흑수와 부딪히자 병장기가 맞부딪힌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번번이 흉한 소리로 수라전 아이들 귀를 터트리는 고약한 인사 같으니.”

“흥, 누가 할 소린가 모르겠군.”

기기기기기긱-

풍천대제의 오른손에 두른 호신강기가 검붉은 연기를 피워내며 시린 빛을 뿌리는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내 그 더러운 버릇을 고쳐놓을 참이다.”

“드디어 진심으로 할 생각이 든 건가?”

풍천대제의 짙게 물든 눈이 아수라의 말에 즐겁게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능글맞은 늙은이. 에이.”

그러나 아수라는 싱글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김이 샌 듯 돌연 검을 거둬들였다.

출수할 때와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는 놀림이었다.

어느 샌가 어둠 같은 잔상만을 남기며 검집으로 들어간 검을 보며 풍천대제는 입맛을 다셨다.

“거- 성미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풍천대제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언제고 제대로 합을 겨뤄보고 싶었지만, 아수라는 번번이 진심이 되려는 순간을 귀신같이 알아맞히고는 저렇게 뒤로 빼버리곤 했다.

오늘은 제대로 해볼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살수부터 날려 성질을 건드렸는데, 그것도 한 합 만에 끝나버렸다.

아수라는 아쉬워하는 풍천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거 이쯤 하면 한 번쯤은 제대로 해줄 법도 한데.”

“이쯤 하면 포기할 때도 됐을 법한데.”

아수라가 풍천의 투덜거림을 그대로 돌려주며 응수했다.

“설마.”

“미련이 길어지면 주책이 된다고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던가?”

“뭐라?”

“실례, 주책보다는 집착이겠어.”

대번에 풍천이 아수라에게 ‘집착’하는 걸로 분위기가 몰렸다.

“아니야.”

“그런가?”

“아니야.”

“아니라면. 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아수라의 말에 끙-하는 앓는 소리를 내는 풍천의 모습은 가히 볼만했다.

9척의 거인이 뺨을 바르르 떨며 흑의갑옷을 부자연스럽게 매만지는 모습이라니.

“차 올리오리까?”

이미 이들의 그런 모습엔 익숙한 모양인지 멀찌감치 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시비 하나가 그제야 찻물을 올리느냐 물었다.

“그러자꾸나, 풍천대제께 먼저 한잔 올리거라.”

아수라가 눈꼬릴 길게 늘어뜨리며 손을 뻗었다.

길고 곧게 뻗은 그의 손이 가리키는 것은 후원의 정자.

이 아침부터 풍천대제가 자신을 찾아온 연유를 알만했으므로 차뿐 아니라 다과도 필요하리라.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다.

아수라는 저만큼이나 익숙하게 수라전의 전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풍천을 보다 문득 생각난 듯 멀어진 시비에게 당부를 덧붙였다.

“그리고, 가서 풍천어른께서 즐기시는 당과도 좀 내오련.”

“크흠-“

그 와중에 풍천은 당과 소리에 귀가 팔랑였다.

‘저걸 웃어야 할지.’

아수라는 풍천의 그런 모습에 고소를 감추지 못했다.

번번이 너무 티가 나게 좋아하니, 풍천의 취향을 모르려야 몰라줄 수 없어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수라전의 나인이 주인인 ‘아수라’는 도통 즐기지 않는 당과를 만드는데 도가 텄다고 할 정도이니, 풍천의 취향을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말일세. 오늘은 내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이야.”

비식 웃음을 흘리는 아수라를 향해 풍천이 잔뜩 목소릴 낮춰서 속삭였다.

“저런,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당과보다 본론이 먼저 나오는 게야?”

아수라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풍천의 모습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런 내 정신이.”

아수라의 말에 풍천이 정신이 든 듯 중얼거렸다.

쫓겨나더라도 당과는 맛보고.

수라전 숙수의 솜씨가 날로 좋아진단 말일세.

혼잣말인 듯 엉뚱한 소릴 중얼거리던 풍천이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하게 말했다.

“먹고 말하세.”

“하?”

이어지는 풍천의 말에는 살수를 막아내던 순간에도 입꼬리에 매달려있던 미소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수라는 정말이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과 타령을 하는 덩치 큰 시커먼 사내를 바라보았다.

“풍천 자네.”

새소리도 여전하고.

차 향기도 어제와 꼭 같건만.

사신의 첫 번째 문의 둘째 날의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소란스러운 손님 덕에 마냥 같지만은 않을 예정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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