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8화 (8/114)

8. 푸른 태양의 휘 (2)

2017.08.28.

똑똑-.

조심스러운 소리가 태자의 침전을 울렸다.

‘이번엔 꽤 오래 걸렸어.’

태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짝 미소 지었다.

그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문 앞을 서성이는 인기척을 알고 있었다.

불과 반 시진 전에도,

그리고 2각 전에도.

하나같이 짠 듯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두드리곤 했다.

“태...... 태자전하.”

잔뜩 긴장한 목소리가 가늘게 울렸다.

훌쩍 커버린 그의 모습의 의미하는 바를 모를 선인이 없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미동에 불과했건만,

‘환궁한 태자가 미장부가 되었다더라.’

라는 소식은 반나절 만에 온 상천을 떠들썩하게 했다.

태자가 힘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곧, 상제의 승천을 의미했다.

상제의 좌가 새 주인을 맞을 것이라는 명명백백한 신호가 바로 태자의 성장이었다.

대대로 태자들은 상제의 좌에 오르기 전.

현 옥황상제의 영력이 그 끝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상제’의 힘을 물려받았다.

멈춰있던 성장은 숨 가쁘게 이루어져 단 하루면 그 놀라운 성장을 끝냈다.

상천의 권좌를 의미하는 태양과 하늘을 그대로 담은 황금의 머리칼과 푸른 눈은 그 자체로도 상제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보통은 맨 마지막에서야 눈에 힘이 깃들어, 벽안으로 개안하는 날, 전대의 승천이 이루어지곤 했다.

이제, 곧.

권좌에 오를 예비 상제를 대하려니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태자는 성가시다는 듯 이마를 쓸면서 나른한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냐.”

“아직 저녁을 올리지 못해서.......”

“되었다. 그다지 생각이 없구나.”

이미 거절을 염두에 둔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잔뜩 물려있어, 다정하게 울렸다.

사실 태자는 자신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뻔한 대화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것들이 정녕 새란 말인가.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이것들이?’

태자로 태어나 당연한 떠받듦을 받고 자랐지만, 곧 상제에 즉위할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이십 년 동안 그는 변한 것이 없으나, 다른 이들은 변했다.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굽실거리는 그들의 굴욕적인 태도가 그의 감춰진 잔혹한 일면을 자극했다.

문을 향해 돌아간 그의 머리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달빛을 머금은 백금발이 시린 빛을 머금고 그를 따라 흘렀다.

“허나, 태자 전하. 휘께옵서 무척 염려하시옵니다.”

‘건방진 것. 감히 내게 ’휘‘를 무기 삼아 제멋대로 휘두르려 함인가.’

꺾어진 고개만큼이나 비뚤어진 미소가 상태자의 입매에 걸렸다.

때가 무르익지 못했으니, 그의 분노는 미소로 덮혔다.

위험하게 빛나는 검푸른 눈동자가 요요하기 그지없었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서도록 치미는 성미를 누르며 느른한 미소를 짓는 그는 등 뒤에서 비쳐드는 달빛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미장부였다.

진득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열리고, 한껏 다정한 목소리가 따스하게 울렸다.

“오랜만에 천도를 타고 왔더니 곤하구나. 마음만 받아두마.”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태자에게 강권할 수 없는 노릇이니, 머뭇거리던 인영이 그제야 사라졌다.

“흐응.”

죽인다고 한껏 죽인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지다 드디어 들리지 않게 되고서야 태자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하루 종일 내려다보았던 화원이다.

물릴 법도 한데, 그의 검푸른 눈동자만큼이나 어둑하게 물든 화원을 내려다보는 태자의 표정에 지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감한 표정에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것은 진한 그리움.

“비도 못 지키는 못난 놈이 한가롭게 끼니나 챙긴단 말인가.......”

태자는 빙긋 웃으며 자조적인 말을 읊조렸다.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눈동자가 향한 곳은 하늘에 맺힌 하얀 달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태자는 눈을 내리떴다.

몸에 두르고 있는 기세를 털어내고 영력을 무방비하게 개방하자, 달빛을 따라 전신을 타고 하계의 영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천에 머물고 있음에도 달빛을 타고 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차가운 영력에 소름이 돋아오르고 날숨에 서리가 맺혀 나왔다.

“하아아아.......”

태자가 내뱉는 숨이 새하얗게 얼어 발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태자의 눈에 맺힌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며 몸에 박히는 한기를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태자는 얼어드는 것 같은 숨을 가만히 견디며 월력을 계속해서 받아냈다.

투둑-

투둑-

태자의 숨을 따라 차곡차곡히 얼음조각이 쌓여갔다.

그러기를 일 각.

발밑에는 새하얀 얼음조각이 쌓이고, 얼굴색이 푸르스름해지도록 한기가 차이고 나서야 태자는 자신의 영력을 몸에 둘렀다.

눌러둔 영력을 개방하자 살이 쏘아지듯 재빠르게 터져 나왔다.

전신을 타고 온기가 돌며 구석구석 똬리를 튼 한기를 착실히 몰아내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려버린 손가락 끝까지 혈색이 돌아오자 태자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가만히 움켜쥔 주먹에 제대로 힘이 들 때까지 태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월력이 실로 사납고 차갑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형님의 영기가 어찌 이다지도 흉흉해지셨단 말인가.”

아직도 말끝에 따라붙은 숨에 서리가 맺혀 들었다.

태자는 두 눈을 부드럽게 휘며 쥐어진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심장께까지 얼어 들어가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위험한 만큼 짜릿했고, 제 몸을 담보로 한만큼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의미도 되었다.

“아직 비로 맞아들이지 않으셨구나. 소희야.......”

태자는 하루 내내 참았던 그리운 것을 가만히 불렀다.

녹아들 듯 달콤하고, 상냥한 음색이었다.

‘소희야.’

그렇게나 다급하게 데려가시기에 벌써 비가 되어버린 줄 알았는데.

태자는 아직 희망이 살아있는 것 같아 막막한 가운데서도 가슴이 설렜다.

죽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팔딱 거리며 살아났다.

“소희야.”

“소희야.”

“소희야.”

태자는 달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소희를 불렀다.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간절히 바라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마주보고 서서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던 게 마냥 꿈만 같았다.

이 밤서, 꿈이 되어버린 소희를 그저 부를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내 부르지 않으면, 정말로 멀어져 닿을 수도 없을 것 같아.

부르고 불렀다.

“소희야.”

.

.

.

“어인 일이셔요?"

그를 올려다보는 소희의 눈가가 살풋 달아올라 불그스름하다.

‘저런. 이런 표정이 더욱더 곤란한 것을.’

수줍어하는 소희의 표정에 괜히 짓궂은 마음이 동하고 말았다.

갓 끝을 고쳐 매던 손을 그대로 돌려 뒷짐을 지고 깊게 허릴 숙여 눈을 맞추자, 화들짝 놀란 작은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아아.’

마르고 동그란 어깨를 다정히 보듬고 싶은 마음에 손이 제멋대로 뛰쳐나갈 뻔했다.

뒷짐 져진 손에 하얗게 뼈대가 올라오도록 힘을 주어 참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일이 있어야 뵐 수 있는 것입니까.”

“그건.......”

“날이 좋아 같이 운종가라도 나가시자고 왔답니다."

태자의 눈이 가늘어지며 도망가려는 소희의 시선을 집요하게 따라잡았다.

“남녀가 유별한데 혼인하기도 전에.......”

“이제 달포 뒤면 혼례를 올릴 텐데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날이 좋습니다."

그래도-라며 작게 말을 붙이는 품새가, 가고는 싶으나 망설이는 태가 확연해 태자는 웃고 말았다.

항시 이런 식이었다.

소희는 날 밝은 시절에 나가길 주저했다.

해를 쬐이고 밖을 다니는 걸 부러워만 할 뿐, 막상 청하고 손을 내밀면 한걸음 뒤로 빼는 게 다반사였다.

속 모르는 이는 수줍음 많은 아기씨라며 웃었지만,

실상은 그녀가 귀문의 별이었기에 태양을 자연스레 꺼린다는 걸 몰랐다.

‘아쉽습니다.’

평소라면 습관 같은 말과 함께 점잖게 물러섰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저도 곧 즉위하여 힘을 물려받는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대 어서 태양빛에 적응하세요. 그대는 휘이기도 하잖습니까.’

울컥, 말릴 새도 없이 서운함이 올라왔다.

직분에 발이 묶인 태자의 가슴에 멍울처럼 맺히는 말이었다.

‘고즈넉한 달빛에 너무 물들지 말란 말입니다.’

태자는 작은 심술을 부렸다.

늘 애태우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늘 뒤로 빼는 휘가 미웠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고약한 마음이었다.

“같이 가시지요. 법도도 중요하지만, 부인 되실 분이 이리 내외하시니 멋쩍습니다. 딱한 제 처지도 좀 살펴주세요."

그는 크고 너른 손을 들어 올려 소희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저고리 고름을 쥐고는 머뭇거리며 한참을 애태우던 고운 두 손이 겨우 떨어졌다.

그의 손바닥에 가만가만 올려놓은 하얀 손이 고왔다.

함부로 힘줘 잡지도 못할 만큼 가느다란 손이라, 차마 맞잡지 못하고 가만히 올려진 그대로 바라만 보았다.

“생각이 짧아 심려를 끼쳤습니다."

속삭이듯 흩어지는 작은 목소리에 손에서 시선을 거둬 바라보자, 소희의 피부는 저고리 깃에 가려진 목덜미까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말 마십시오. 장옷 두르실 테지? 다녀오세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괜히 서두르다 다치십니다.”

빙그레, 태양을 받아 웃는 그의 얼굴은 찬란히 빛이 났다.

무심결에 마음이 풀려버린 덕에 그의 영력이 새어나가 버린 탓이었다.

“아.......”

소희는 그에게서 나오는 은은한 빛에 잔뜩 가늘어진 눈을 해서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버렸다.

숙여진 고개를 따라 옷깃사이로 보이는 희고 가는 목덜미가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가늘고 가늘던 목덜미에서, 제 것과 같은 황금빛을 뿌리는 것도 모르고.

수줍어 외로 꼬던 고개가 참 어여뻐서.

내 것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그 날이.

“소희야.......”

그리워서.

태자의 나지막한 음성이 물기에 젖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분명, 그날 휘로 각인한 줄 알았건만.’

화려한 태양을 닮은 영력을 제대로 받은 그녀의 표정이 선명했다.

그의 기세를 받아, 가늘어지던 눈매와.

잠깐이었지만 황금색으로 빛을 뿌리던 그녀의 목덜미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날, 소희는 장옷을 거의 흘러내리다시피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에 닿는 햇살을 너무나 달게도 즐기며 기꺼워했었다.

“아아.......”

그렇게 적응해갈 때마다 목덜미에 새긴 속박의 인이 얼마나 아름답게도 빛을 뿌렸던가.

찬란하고도 아름다워 처연했건만.

어째서 그렇게 단번에 스러질 수 있단 말인가.

속박의 인이 한번은 막아줄 수 있었을 텐데, 형님의 영력이 그다지도 대단하셨다는 것인가.

이것이 권능의 차이인 것인가.

“태자가 만든 진 따위는 무용지물인가?”

태자는 손을 들어 달빛에 비춰보았다.

달빛이 스쳐 지나가는 손끝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긴가민가했던 영력이 근 일 년 새에 이렇게까지 확실해졌다.

지단까지 옥황의 영력이 스미길 시작했으니 길면 일 년,

자신은 곧 재위에 오를 것이다.

매일 매일 한계를 달리해 차오르는 영력이 그것을 자신에게 알려오고 있었다.

아비인 옥황상제의 ‘죽음’은 슬프다, 아니다로 간단히 말하기엔 복잡했다.

대대로 상하천의 두 지존은 육신은 부모에게서,

영체는 마고에게 받는지라 일반적인 부모자식과 같은 유대와는 그 맥락을 달리했다.

그것은 마치 대를 이어가는 동료로서의 의식이 조금 더 강했기 때문에 애틋하다기보다는 시원섭섭함에 더 가까웠다.

오랜 세월 곁을 지키며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주고, 하나하나 차근히 자리를 만들어 주는 그 모습.

그것은 그가 마고에게 돌아간다 해도 계속 생각날 것이다.

고단한 자리를 이천 년 가까이 지켜왔음에 힘든 날은 그의 고충이 떠올라 동지애를 느낄 것이며, 자신의 영력을 물려받은 아이를 길러내면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며 웃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은 ‘신’이 된 그에 대한 옛 추억 정도일 것이다.

어차피 그의 승하는 신이 되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니 슬플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러져가는 선대라 할지라도 이런 날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태자는 평소의 그의 모습을 아는 자라면 놀라 기함할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창틀에 팔을 늘어뜨리고 턱을 괴었다.

백금발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그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천관이 보았다면 놀라 뒷걸음질 쳤을 테지.’

눈을 가늘게 휘며 피식 웃는 그는 웃고 있었음에도 무척 슬퍼 보였다.

‘아아....... 이토록 음울한 영력이라니.......’

웃고 싶지 않았다.

허망하고도 참을 수 없는 지독한 패배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쥘부채를 집어 던지고 울어버리고 싶었다.

어째서 이럴 수 있느냐고 제 앞에 머릴 조아리고 있는 놈들의 목을 다 쳐버리고 싶었다.

손을 내뻗는 대신 부채를 펴느라 손마디마디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지관, 그 영특한 아이는 알 것인가.’

잔뜩 떨려버린 목소리에 담긴 것은 기쁨이 아니라 분노였음을 알고 있을 것인가.

알알이 맺힌 서글픔이었다.

“소희야.......”

‘네가 아직 비가 되지 않았다는 건 내게도 기회가 있다는 뜻인가. 이미 하계로 간 너를 무슨 수로 다시 이곳 내 옆자리로 데려올 수 있을까.’

태양을 닮은 황금빛 촘촘한 속눈썹이 길게 내려앉았다.

검푸른 바다를 닮은 눈동자가 슬쩍 숨어들자 태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차라리 상태자가 아니라 도화원 선인이 더 나을 테지.”

일개 선인이었으나 상하천에 구애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자들.

지금만큼은 태자이긴 하나 상천에 발이 묶인 자신의 처지가 그들보다 하나도 낫다 할 것이 없었다.

현재 그의 영력으로 길을 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가 상하천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상제로 즉위할 때쯤엔 이미 소희가 가례를 올린 후일 터다.

그 힘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힘이었다.

그렇게 고요히 앉아 달빛에 물든 후원을 내려다보던 태자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기 시작한 건 한순간이었다.

“혹시......!”

그의 눈동자에는 달을 닮은 빛으로 은은하게 빛이 났고, 푸른빛이 넘실거렸다.

분명 거기에 깃든 것은 설렘이었다.

태자가 잔뜩 들뜨고 흥분한 기색으로 벌떡 일어나 태자궁을 벗어났다.

긴 다리로 거칠 것 없이 뛰어 상제궁의 후원에 다다른 그가 소매를 크게 펄럭이며 낮은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조’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손 위에 앉았다.

서왕모가 부리는 청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고 왜소했지만 똘망한 두 눈만은 그에 지지 않을 만큼 밝게 빛나고 어여뻤다.

작은 울음소릴 들은 태자가 깊고도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갈무리했다.

“자고 있었느냐? 저런, 단잠 들었던 것이야? 착하기도 하지. 일 하나만 해주렴. 어서 네 주인을 태자궁으로 은밀히 모셔오너라.”

태자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웃는 채였다.

작은 새의 머리를 슬쩍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은은하게 빛무리가 머물렀다 사라졌다.

“자- 가거라.”

태자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청조를 날리자 새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듯 달을 등지고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응시하던 태자가 소매에서 쥘부채를 꺼내 펴들고 키들거리며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웃기는군. 웃기는 일이야.’

상제의 후원을 달빛과 함께 태자의 웃음소리가 가득 메우다 사라졌다.

그리고 태자가 날려 보낸 청조가 주인을 모시고 온 것은 그로부터 이각 후였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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