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7화 (7/114)

7. 푸른 태양의 휘 (1)

2017.08.25.

오색이 창연한 화원을 바라보는 태자의 얼굴엔 그저 권태로움만이 가득했다.

태자는 중천에서 올라온 이후 몇 시간째 같은 자세로 화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속눈썹 아래 눈동자가 화원을 향해있었지만, 담아내는 것은 그 너머 무엇인 듯 시선이 아득했다.

감정을 한껏 물고 애틋하게 떨리던 검푸른 눈동자는 화원을 가로질러가는 한 무리의 시비들이 내는 소음에 말갛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태자께서 돌아오셨대.’

‘태자께서?’

‘언제 오셨다니?’

‘아침 해를 타고 오셨다던데?’

‘이십 년 만에 돌아오신 것 아니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태자께서 힘을 물려받으셨다더라.’

잔뜩 숨죽인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짙게 배어났다.

귓가를 울리는 시비 아이의 바르르 떨리는 맥박이 희미하게 울렸다.

“킥-.”

붉은 입술이 심술 맞게 비틀리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태자의 시선에 초점이 잡히며 시비 아이들에게 따라붙었다.

‘설마. 외유 나가실 때만 하더라도 고작 열 살 남짓한 모습이셨는걸.’

‘요것아. 고것이 무슨 상관이야. 힘을 물려받기 시작하면 하루 상관에 성년의 모습이 나오는데. 미장부가 되어 돌아오셨다니 보고 소리나 지르지 마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저들이 생각하기에도 조심스러운 내용인지, 이내 숨소리보다 연약하게 잦아들었다.

“.......”

동그랗게 말아 두 개로 틀어 올린 머리모양새로 보아 궁 안에서 제일 어린 선인이었다.

‘저 어린 것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졌단 말이지.’

아침 첫 햇살을 타고 왔건만.

무리해서 태자 본궁 화원으로 바로 내려섰는데도 소식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것인가.

“이 새들은 잠도 없는 것인가.”

이십 년을 하루같이 지켜보았을 노고를 치하하는 대신, 태자는 제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물어 나르는 ‘새’를 향해 날 선 말투를 감추지 않았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서 가자.’

‘에구머니, 늦었어. 마마님께 혼쭐나겠다.’

귓가를 울리는 시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그의 귀환을 알리는 소곤거림도 은밀하게 입과 입을 통해 착실하게 번지고 있었다.

저들의 이야기 끝에 누가 있는 것인지 알지만,

그리고 소식을 들은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뻔히 보여 성가시지만.

태자는 적어도 겉으로는 무감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태자-.’

벌써부터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고막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하아...... 성가시군.”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백금발을 마치 누구라도 되는 듯 짜증스럽게 한번 걷어내며 태자가 중얼거렸다.

신경질적인 손짓에 빛을 머금은 금발이 사르락거리며 날아오르다 다시 그의 어깨 위로 떨어져내렸다.

천도를 날아오며 중천에서 표 공자의 행색을 벗어던진 그의 모습은 이미 소희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밤하늘 같던 머리는 벌꿀을 머금은 듯한 찬란한 백금발이 되었고, 머리와 같던 까만 눈동자엔 푸른빛이 맴돌았다.

단단한 장부의 이미지였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매끄러운 미공자의 모습을 한 태자는 얼핏 보기엔 중성적인 느낌의 미녀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기 곧은 눈매라든가 오뚝하게 솟은 콧날이 매서워 ‘태자’로서의 이름에 누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흐음.......”

무료하기 그지없다는 소리를 내며 태자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미끄러뜨렸다.

그의 팔을 따라 어깨에 흐드러져 있던 백금발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지관아!”

삼관대제 중 땅의 주인 지관사죄대제를 시비 부르듯 부르자, 그의 첫 음색이 궁을 타고 흩어지기도 전에 지관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벌써 한 시진 째 그의 뒤에 시립해 있었건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지극히 공손했다.

“불러계십니까. 태자 전하.”

“그런 징그러운 말투는 그만두래도.”

“오랜만이니 여유를 즐겨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새소리도 그만하옵니다.”

궁 곳곳에 자신들을 염탐하는 시비들을 일컫는 지관의 말에 태자는 입술을 길게 늘이며 나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징그러운 것을 새라고 불러야 한다니.”

“쉴 새 없이 지저귀는 것이 닮지 않았사옵니까.”

“그것들은 악의가 없느니라.”

“저 아이들도 딱히 의도가 있진 않사옵니다.”

분명 제 말을 알아들었을 텐데도 납죽납죽 대꾸하는 지관을 바라보는 태자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더 이상 거슬린다면 나무를 베어 둥지까지 박살 내버릴 테다.”

“저런, 심화가 가라앉질 않으십니까? 무서운 말씀에 지저귀던 아기 새들이 놀라겠습니다.”

“흥.”

지관의 부드럽게 어르는 말투에 태자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태자전하. 지난 일을 마음에 담아두시면.......”

“시끄럽다.”

“전하.......”

“지관아. 그런 뻔한 소리나 듣자고 널 부른 게 아닌 것임을 알 텐데.”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당장엔 숨을 죽이고 계셔야 합니다.”

은근한 태자의 음색에 지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입안의 혀처럼 나긋하게 굴던 태도를 단숨에 버리고 단호하게 대답을 올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자의 시선이 서릿발처럼 차갑고 매서워진 것을 느꼈지만 지관은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시선을 가만히 받아냈다.

쏟아지는 상태자의 시선이 칼날 같았다.

선뜩하고 따끔거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지만 견뎌야 했다.

이 자리를 피하면 불려올 것은 제 동기였다.

“지관아.”

조아린 목덜미를 날것 그대로의 사나운 음색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지관은 견뎠다.

“안 됩니다. 이날 울분을 견디시라 감히 말씀 올립니다.”

지관은 제 주인의 심사를 모르는 체 야무지게 다짐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상태자의 마음을 다잡는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심성이 여린 천관이나 무뚝뚝하고 요령 없는 수관은 심사가 끓는 상태자를 다루기엔 무리니 자신이 나서는 수밖엔 없었다.

‘죄를 물어 주십시오.’

‘이 죄인의 목을 치시고, 노여움을 푸십시오.’

눈에 빤히 그려지는 동기들의 모습에 흔들리던 마음이 단단히 다잡아졌다.

그 둘을 보냈다간 상태자의 심기만 더 긁고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정말로 덜컥 목이 잘려 전력에 차질이나 안 내면 다행이다.

‘둘 다 바보 같고 우직하기만 해서는.’

이래서는 급할 땐 아무 쓸모가 없다.

지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앞에서 한껏 비틀린 심사로 무모한 궁리를 하는 태자를 흘낏 바라보았다.

무료한 표정과는 달리 두 눈 안에 넘실거리는 것은 선명한 분노였다.

새파란 불꽃이 튀는 듯한 시선이 참으로 거칠었다.

눈앞에서 비를 빼앗긴 상태자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지금은 들풀처럼 한껏 몸을 낮춰야 할 때였다.

상태자는 현재로서 상천의 휘를 되찾을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상태자에게 아뢸 것은 아니지만 지관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서 귀왕께선 이 일에 침묵하시는가.’

상태자가 벌인 일은 단순하지도 작은 일도 아니었다.

무려 염라대왕의 비를 빼돌리려던 천인공노할 일이었다.

비록 그녀가 상계의 휘까지 타고 났다고는 하나, 직분을 얻지 못한 태자는 염라대왕의 비를 ‘휘’라 주장할 수도 없었고, 주장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현재 상계의 휘는 태자의 모후이자 옥황상제의 안곁을 자처하고 계셨으니 말이다.

본디 귀문의 별과 상계의 휘는 선대의 죽음으로 영력을 물려받고 태어나는 게 정설이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태생부터 비틀려버린 상계의 휘와, 그리고 이런 일을 눈감아 주는 귀왕이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이 일이 불거지면 태자는 자칫하면 폐위가 아니라 목숨으로 그 죄를 치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관은 그 때 태자의 억지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고 다시 한 번 후회하며 뱉지 못할 한숨을 삼켰다.

차라리 기약 없어도 마고께 휘를 내려주십사 간청해야 했다.

‘마고께서 상제를 외따로이 두실 리 만무하건만.’

지관은 주인의 조바심에 같이 휘둘린 저를 탓했다.

“그럼 눈뜨고 비를 넘기란 말이냐?”

평소의 지관이라면 태자의 말에 유들유들 웃었을 테였다.

‘이미 넘기셨습니다.’

상전에게 농을 건네는 능글맞은 짓을 태연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태자는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하지 못할 정도로 평정을 잃은 상태였다.

이십 년.

이천년을 사는 자신들에게 그건 찰나일 수도 있지만, 기다림으로 치자면 짧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상태자는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자로 길러지며, 일찍이 결핍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바라는 모든 것을 당연히 가져왔던 상천의 태자가 한낱 인간을 기다린 것이 이십 년이었다.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어째서냐.’

조바심이 가득했던 태자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선명했다.

‘휘로 점지된 아이이다. 내 것이니 데려갈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휘를 끌어내려는 태자를 막아서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불경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린 인간의 몸에 깃든 휘를 기다려야 했다.

섣불리 휘를 끌어내면 육신이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릴 것이고, 그 충격은 여물지 못한 휘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

‘육신의 나이로 이십 년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수고롭지 않게 가져온 태자에게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대단한 의미를 가졌다.

천자를 기다리게 할만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을 테였고.

그건 태자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휘를 얻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태자는 답지 않게 온 인내심을 끌어모아 버텨야 했다.

손닿을 곳에 두고선.

손 하나 대지 못하고.

'소희'라 불렸던 인세의 여아는 상천의 휘 뿐만이 아니라 귀문의 별 또한 타고 났기에 유난히 병약했다.

들끓는 상반된 기운을 ‘인간의 육신’이 버텨내기에는 벅찼다.

귀왕이 인세에 깃든 자신의 별을 찾으러 오기 전 눈에 띄지 말아라 온갖 공을 들였다.

육신이 깨질 것을 염려해 술법을 걸어주고 싶어도 눈에 뜨일 것을 염려해 단지 고단함만을 덜어 주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 했던 이십 년이었다.

속박의 인도 여인으로 자태가 나기 시작하면서 마지못해 걸어주었다.

‘눈에 뜨이지 말라 그렇게 기도했건만.......’

절로 푸념같은 원망이 돋아났다.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줄 알았다면 진즉에 상천의 천도를 먹여버릴 것을. 태자의 애나 덜 끓이게 할 것을.’

돌이켜 본들 후회뿐이었다.

서왕모의 영력이 담긴 천도는 인간이 먹으면 신선이 된다 할 정도로 그 영력이 지고하고 영험했다.

육신의 힘을 키우고 한 몸에 깃든 두 영력을 다독이는 건 문제도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천도를 내줄 수는 없었다.

천도를 먹게 되면 선인이 되어버릴 터,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게 된다.

종종 신열로 소희가 몸져누으면, 사정을 뻔히 아는 태자는 늘 애를 태우곤 했다

그런 소희에게 그가 정말로 보내고 싶었던 건 천도였을 테지만, 번번이 소희에게 보내진 건 ‘의원’으로 분한 천관이었다.

약이라고 입안에 흘려 넣어준 것은 사실 상천의 물.

바스러지는 소희의 육신을 돋우고 돋운 것이 바로 태자의 은덕이었다.

키운 건 그의 아비와 유모였으나 태자가 남몰래 들인 정성 또한 그 못지않았다.

그런 이십 년을 간발의 차이로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태자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십 년의 정리에 눈감으며 다독일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벌인 일은 염라대왕의 비를 강탈하려던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태자의 사정이 고려될 리가 없고, 고려할 수도 없었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지관이 태연한 기색으로 납죽 말을 올렸다.

“이런, 태자 전하. 그런 가슴 아픈 말을 쉽게 하시다니요.”

“나불나불, 또 구렁이 담 타 넘듯 넘을 속셈이라면 관두거라. 오늘은 도저히 못 듣겠다.”

태자는 제 편을 들지 않는 지관이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이내 하얀 손을 들어 귀찮은 것을 내쫓듯 허공에 대고 휘휘 내저었다.

“이만 가보거라.”

“하명하시니 분부 받듭니다.”

늘 손에 붙이고 다니다시피 하는 쥘부채까지 내려놓은 것이 정말로 만사가 귀찮은 모양이라, 지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뒷걸음으로 자리를 피해주었다.

휘장을 내리는 틈사이로 보이는 태자는 다시 팔에 턱을 괴고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눈을 무료히 깜빡이는 모습이었다.

지관은 다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러 삼켰다.

‘차라리 즉위라도 한 연후에 휘를 빼앗겼더라면.......’

부질없는 상상에 아쉬움만 커졌다.

지금으로선 태자에게 휘를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절망적이다.

찬란한 태양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신의 아름다운 주군의 곁이 비게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지관의 가슴이 꿰뚫리는 듯한 격통을 느끼게 했다.

‘방법이 없다면 수를 만들어 낼 것이다.’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움직이는 공손한 몸가짐과는 다르게 지관의 눈빛이 형형하니 새파랗다.

‘이번대의 휘는 삼관대제가 진상하리라. 용왕의 세 아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 반드시 주군께 휘를 진상하리라.’

뒤늦은 후회만큼이나 단단하게 여문 다짐이 돋았다.

‘휘를 안겨드리고 두 분 지존 마마께서 태양빛 아래 환하게 웃으시는 것을 꼭 보고야 말 테다.’

지관은 내려진 휘장 뒤에 서서 천천히 태자에게 사배를 올렸다.

그의 결연한 다짐을 모르는 태자는 미동도 없이 여전히 황금빛을 받아 아름답게 신록이 우거진 화원을 향해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몸을 돌려 태자궁을 벗어나는 그를 붙든 것은 이제야 막 상천에 도착한 그의 아우 수관해액대제, 통칭 수관이었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태자께 문안 올리러 가려는데 함께.......”

“난 막 나오는 길이다. 가 보거라. 울적해 하시니 문안만 올리고 나오는 게 좋겠구나.”

지관은 같이 가주길 바라는 제 아우를 다독이며 자신을 붙든 손을 가볍게 떨쳐냈다.

“아니 어딜 그리 바삐 가시기에 아우도 모르는 척 하십니까.”

수관도 그가 서두르는 기색이 완연하자 마지못해 손을 놓긴 했지만, 전에 없는 지관의 모습에 궁금증이 동한 모양이었다.

지관이라고 하면 성미가 불같기로는 둘째가기 서러운 용왕의 아들 중 제일 느긋한 자였다.

심지어 서왕모께서도 그의 여유로움에 감탄하여 천도를 돌보아 줌이 어떠하냐 농을 건네실 정도였다.

‘그런 형님께서, 무슨 일이신가.’

수관은 처음 보는 지관의 모습이 낯설었다.

“백기전에 가는 길이다.”

“네??”

“백기전에 기도 올리러 가는 길이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천관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관이 나서 기도를 올린다 하는 것을 보니 이번에 보통 사달이 난 게 아니구나 싶어 수관의 낯빛이 까맣게 죽었다.

사정이 이런데 저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 태연자약 했다 싶어져 자괴감이 들어 절로 고개가 떨구어졌다.

지관은 풀이 죽어 돌아서는 수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너무 근심 말거라. 방법이 아주 없진 않을테지.”

“네 형님. 가보겠습니다.”

수관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태자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람하고 커다란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축 처져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을 보자니 지관의 속도 영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우를 다정하게 위로하고 북돋아 주는 것보다 태자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 먼저였다.

‘하루 빨리, 마지막 힘이 깃들어 하루라도 빨리 태자께서 즉위하시길.’

다른 선인들이 들으면 경악할 소망을 빌러 지관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상계와 하계, 두 지존의 자리는 비와 마찬가지로 선대의 죽음으로 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관은 자신이 비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왕인 옥황의 죽음을 빌러 가는 길이었다.

한 피를 나눈 동기인, 천관에게도 부탁하지 못할 무서운 축원을 바라 스스로의 정성으로 '응답'을 원하여 볼 참이다.

‘태자께옵서 어서어서 즉위하시어, 온당한 명분을 받으십사 지관이 목숨으로 청하옵니다.’

걷는 걸음걸음 무거운 그의 소원이 죄가 되어 떨어졌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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