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새신부 (6)
2017.08.21.
“만월은 힘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진, 그댄, 달밤에 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
환은 아수라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거둬 소희를 내려다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길고 부드럽게 뻗은 은빛 속눈썹 사이로 홍안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문득 환의 서늘한 날숨이 자신에게 닿는다 생각을 했을 때 그의 입술이 소희의 목덜미를 힘 있게 내리눌렀다.
“!”
맞닿은 것은 굉장히 적었지만, 그곳이 그의 입술과 그녀 자신의 목덜미라는 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저...... 저기.......”
순식간에 전신을 감싸는 부끄러움에 소희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움츠렸다.
얼굴로 열이 쏠려 볼이 홧홧했다.
그러나 환은 그런 소희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짐의 비가 될 텐데......?”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두 뺨이 창백한 달빛 아래서도 선연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냐는 듯한 환의 당당한 태도에 소희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제 목덜미에 잔잔히 입을 맞추는 환의 입술을 참아야 했다.
“으음, 흠.”
참기 힘든 간지러움에 헛기침을 해본들 소용이 있을 리 만무했다.
환의 가슴께에 놓인 손이 절로 주먹 쥐어지고 잔뜩 힘을 들어갔다.
가볍고 습한 소음.
쉬지 않고 그것이 소희의 귓가를 울렸다.
부드럽고 서늘한 감각.
목을 둘러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가슴을 달뜨게 했다.
그것은 부끄러움만큼이나 기분이 좋아 소희를 무척이나 견디게 힘들게 했다.
아니, 애초에 그곳에 다른 이의 입술이 닿은 적이 있기나 했던가.
다분히 내밀한 그의 행동에 이상하게도 가슴 깊은 곳이 간질거렸다.
한참을 지분거리던 환은 목을 한 바퀴 둘러 입을 맞춘 후에야 그녀를 놔주었다.
“피곤할 테니 그대 처소까지 모셔다드리지. 또다시 달빛에 취해 비 되실 분이 내궁 후원을 헤맨다 소문이 나면 곤란할 테니 말이야.”
짓궂은 말과는 달리 환은 소희의 한 손을 가볍게 받쳐 들며 매우 정중한 태도로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그와 함께 걷는 후원은 아까와 달리 달빛이 그렇게 요요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았다.
절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전과는 다르게 그림을 보는 듯 차분하게 ‘감상’할 수준의 것이 되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서늘하고 큰 손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 전의 소동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석구석 하얗게 빛을 뿌리는 후원을 지나 침전으로 돌아오자 아쉬움에 한숨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소란을 피운 뒤라 소희는 아무 말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으면 궁녀들을 따라 내게 오겠어? 조반을 함께 받고 싶군.”
소희는 다시 머리가 몽롱해졌다
언뜻 눈에 닿인 그의 눈동자가 황금빛에 물들어 있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고운 색이다.
소희는 생긋 미소 지어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달밤 산책일랑 그만두어. 앞으론 달이 뜨기 전에 침소에 드시는 것이야. 난 아침을 이르게 시작하니.”
부드럽고 잔잔히 퍼져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들자, 홀린 듯 환을 올려다보던 소희가 이번에도 역시나 그러마 하고 답을 올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작게 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소희는 그대로 까무룩 잠들었다.
소희의 까만 눈이 은회색으로 반투명하게 물들다 결국 감겨드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환은 소희의 곁을 떠났다.
염휘는 침상의 휘장을 손수 걷어 내리고 가볍게 손을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휘장을 가로질러 은색의 띠가 생겨 마치 침상을 묶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것은 환이 쳐둔 진이었다.
앞으로 달빛이 비치는 시간엔 그가 쳐놓은 진이 늘 발동할 것이니, 소희가 오늘과 같이 달빛에 취해 후원을 내달리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암시’를 걸어 지배하고 혹시 몰라 그녀의 잠자리에도 진을 쳐두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엔, 속박의 인을 따라 자신의 영기를 잔뜩 묻혀놓았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혹시 홍월과 맞닥뜨릴 경우 눈속임은 될 것이다.
소희를 내궁 침전으로 데려다주고 나오는 환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
.
‘전하. 달이 차오르면 이지러져야 하는 법입니다. 그리해야 새로운 달을 맞이할 수 있는 법이지요.’
머리를 조아리고 그에게 간언을 올리던 신하의 말이 떠올랐다.
‘허나 어찌 된 영문인지 월력이 나날이 거세어지기만 하니, 이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걱정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신하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그에게 들어찼다.
‘이것은 내궁마마께서 부재로 일어나는 일이니 하루 속히 비를 맞아들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디 달은 내궁마마의 권속입지요.’
.
.
“하아아-.”
숨기지 못한 환의 깊은 한숨이 하얀 입김이 되어 흩어졌다.
하계의 불은 염라가, 하계의 빛은 염라의 비가 주관하는 것이다.
이는 대를 이어 해오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명예로운 책무였으며, 지엄한 권능이었다.
그래서 혼례를 올리고 정식으로 비가 되면, 그녀들을 일러 ‘달 마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선대 비께서 승하하시고 그녀의 영력이 옅어지다 결국엔 향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만월의 날이 찾아오면 통제가 안 되는 달빛에 사고가 왕왕 일어났다.
귀력을 돋아주는 달빛이 사그라들 줄을 모르고 커지기만 하니, 만월의 밤이면 귀기에 취한 어린 요괴나 저급한 귀들이 금기를 어기고 제멋대로 굴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내는 것이다.
조금 전 소희처럼.
자신도 모르게 몸이 달뜨고 힘이 넘쳐나기만 하는 사정을 환이 모를 리 없었고, 그들을 살피는 자들이 이해하지 못함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받아 줄 수만도 없어 골치를 앓고 있던 때였다.
소희가 내궁에 발을 디딘 것은.
소희가 돌아와 내궁에 머물러 주기만 하더라도 월력을 흡수하리라 생각했다.
아직 마흔 아홉 번의 달을 품지 못해 잉태는 못 한다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월력은 거둬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환은 사납게 구겨진 눈매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석같이 아름답게 일렁이는 홍안에는 이미 황금빛으로 은은히 빛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내궁 안 화원에 서 있건만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폭풍우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사납게 휘날렸다
콰득-.
환의 발이 딛고 있던 바닥의 장식돌이 가루가 나며 깨져 나갔다.
소희는 갓 태어난 요괴만도 못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장식 돌처럼 그저 달빛을 쬐기만 할 뿐 빨아들이지를 못했다.
저주받은 요괴처럼 들숨 날숨에 미미하게 월력을 얻기만 할뿐,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당연하게 써야 하는 달빛을 끌어다 쓰질 못했다.
넘치는 월력에 매료되어 날뛰듯 달리는 소희를 보았을 때의 참담함이라니.
‘내궁의 비가. 달 마마께서. 달을 다루어야 할 지고한 하계의 비께서 월력에 휘둘리는 망극한 모습이라니.’
환은 기가 막혔다.
그보다 더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궁의 호위를 맡은 아수라가 홍월의 권능에 매료되어 비의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했다.
“흐음.”
답답함에 치미는 한숨이 절로 터졌다.
투명한 은사 같은 환의 머리카락은 이미 한 올도 남김없이 거칠게 나부끼고 있었다.
날카로운 콧대 아래 붉은 입술이 사납게 비틀렸다.
환은 도도하고 아름다운 사내였다.
마고께서 그리 만드시었다.
냉엄하고 아름다운 하계의 지배자.
그의 권능은 선대의 염라 중 내로라할 만큼 뛰어났다.
염라는 대대로 달빛의 정기를 타고난 덕에, 태어나길 원래가 미형이었다.
하지만, 환은 마고께서 보기 드물 정도로 공들였노라 말하는 이가 있을 만큼 아름답고 늠름한 사내였다.
하물며 상천의 옥황조차 그를 보고 넋을 놓아 종종 말을 되묻곤 했었으니, 금번 대의 염라의 미태야 따로 일러 무엇하랴.
그런 염라의 자존심이란 건 하늘을 찌르고 땅을 가를 정도였다.
안곁을 비우고 이십 년을 기다려준 이유도 그의 꺾지 못할 도도함 때문이었다.
눈물로 사정하는 하찮은 인간에게, 잠시나마 그 마음이 동했던 까닭에.
호기롭게 영혼의 맹약을 했던 자신을 벌하듯 버텨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귀문의 별을 가만히 참아냈다.
‘내궁이 주인을 잃고 비어버린 지가 언제이온데, 아니 데리고 오십니까?’
‘그 잠시를 못 참아 이 난리인 것이냐.’
비의 부재 따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는 차마 숨기지 못한 도도한 자존심.
‘전하 월력이 실로 사납습니다. 요괴들이 귀문 앞으로 모여들어 어린 영들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이제 옹알이하는 어린 것을 데려다 놓으면 해결이 될 문제이냐?’
‘그래도 달 마마께오서 계셔주시기라도 하면.......’
‘그 어린 것을 데려다 놓으면 요괴가 없어진다더냐? 아니면 네 무능력함을 달 마마께 떠넘기려 함이더냐?’
핏덩이 인계의 아기를 데려다 내궁에 앉힐 수 없다는 칼 같은 오만함.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 눈물겨운 ‘부정’에 흔들린 어느 날 밤의 자신의 변덕 때문이었다.
재물을 내어주고 곧 끊어질 명을 잠시 더 붙들어 준.
단순한 변덕.
‘이 아이 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습니다. 가엽고 어린 것 목숨이나마 부지하도록 어진 유모라도 붙여주게 미천한 것에게 시간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체면도, 염치도 모조리 밀어두고 허연 수염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를 흙바닥에 대고 읍소했다.
‘제발, 가엽고 딱하게 여겨 주십시오. 어린 것을 품어낸 내자가 채 눈을 감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다 갔나이다.’
구구절절한 말에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토록 애달픈 ‘부정’에 흥미가 동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건만.
으드득-.
채 가시지 않은 분노에 이가 갈렸다.
그랬건만.
오만하고 드높은 자존심이 한낱 인간인 소희 부친의 배신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하나밖에 없는 비가 상천의 애송이의 손을 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환은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었다.
말로는 소희의 목에 박혀진 속박의 인을 끊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했지만, 반쯤은 분풀이였다.
그의 영력이라면 목을 굳이 손으로 부숴 찢어내지 않아도 깨끗하게 귀문의 별만 떼어낼 수 있었지만, 환은 그러지 않았다.
공포와 절망에 물든 소희의 두 눈을 기꺼이 즐겼다.
그녀의 입술에서 솟구치던 핏물을,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던 뜨거움을 충분히 만끽했다.
차가운 분노를 그녀의 피로 씻었다.
그녀의 핏속에 흐르던 아비의 죄를 속죄시켰다.
여봐란듯이 꺾어버린 그녀의 명줄을 쥐고 사납게 기세를 흘려보냈다.
상태자를 찾아내 가루를 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은 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니라.’
태자는 그길로 상천으로 돌아가고 인계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그러니 영력으로 부숴버린 목줄기에 더 이상 남은 술법이나 진도 남아 있을 리 없건만.
‘어째서 소희의 목에 속박의 인 따위가 남은 것인가.’
그의 의문은 하계로 소희를 데려오고 나서야 풀렸다.
영에 묻어있는 희미한 자국이라 생각했던 건 살아있는 상태자의 영력이었다.
기함할 사실에 환은 또다시 오만을 부린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상태자를 그대로 상천으로 돌아가게 두어선 안 됐었다.
이까짓 것이라고 거만하게 코웃음 쳐서는 안 됐었다.
살아있는 태자의 영력은 영혼에까지 새겨져 소희의 명을 거두어도,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 소희의 목덜미를 타고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내궁.
염라대왕이 머무는 염마본궁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비를 위한 궁이다.
내궁은 비만이 기거할 수 있으며, 귀왕만을 수호하는 아수라가 유일하게 귀왕이 아닌 이의 호위를 맡는 궁이다.
잉태와 출산을 감당하는 비를 위해 내궁은 본디 귀왕의 영력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말은 염라 본궁 안의 모든 것은 귀왕의 지배 아래 있다는 의미이다.
‘귀왕의 영력 아래에 있는 홍월이 울다니.’
걸음을 옮기는 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수라는 제가 홍월의 권능을 통제하지 못했다며 죽음을 자처해왔지만, 홍월은 소희의 목에 남아있는 상태자의 영기에 잔뜩 달아올라 아수라가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애초에 아수라는 곧 즉위하게 될 상태자와 견줄 수 없었다.
영력이 비견될 수 없으니 상태자의 영력에 반응하는 홍월을 통제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환이 늦지 않게 소희를 홍월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머릿속을 파고드는 높고도 긴 홍월의 귀곡성 때문이었다.
귀왕의 영력 속에서도 상태자의 영기가 죽지 않고 미미하게나마 살아 흐른다는 건 생각보다 소희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감히......!”
황금빛이 넘실거리는 환의 홍안이 천천히 소희를 찾아 움직였다.
무섭게 휘날리는 은발이 시야를 어지럽히지만, 환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소희가 잠들어 있을 방향을 지그시 응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저 멀리 시야에 잡힌 내궁의 벽이 투명해지고 장지문 안쪽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궁 안 침전 위에 하얗게 빛을 발하는 자신의 이름자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환의 홍안은 그 어디에서도 인연의 고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인연의 고리가 주는 능력이었다.
소희도 49일을 보내고 완벽히 인계의 연을 벗고 나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인연의 고리를 찾아내낼 수 있게 되겠지만 그건 아직 먼 이야기였다.
환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그녀 자신의 이름자를 보려면 아직 거쳐야 할 것이 많았다.
그중 제일 시급한 것은 그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상태자의 기세.
아수라가 모르는 오늘 일의 전말이었다.
소희가 내궁 안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월의 월력이 꺾이지 않는 건 아마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소희의 가슴팍 안에서 은은한 빛무리를 뿌리고 있는 자신의 이름자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환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의 곁에 머물며 달 아이를 잉태하고 낳아줄 염라의 비는 내궁에서 잠든 채였다.
앞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다.
내궁에서.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힘을 이어받은 아이도 점지 받아 낳으실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직도 거칠게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들끓던 기세를 천천히 갈무리하자 휘몰아치던 은발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 나풀거리며 그의 등 뒤로 가지런히 내려앉았다.
불꽃같은 홍안을 달구던 황금빛으로 물든 영력도 잦아들었다.
환의 발아래 가루가 된 장식돌만 아니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고요한 모습이었다.
“성가시게 됐군.”
성가시다는 말과는 달리 붉은 입술은 길게 늘어져 삐뚜름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49일이 되기 전, 환은 소희의 목덜미에서 상태자의 기세를 걷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소희를 죽여 그 목숨을 멸할 것이다.
달을 다루지 못하는 귀문의 별은, 염라의 비는 존재해서는 안 됐다.
달을 다루지 못하는 염라의 비는 잉태를 할 수 없으니, 결국엔 하계의 모든 이의 죽음을 예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가 살아 숨 쉬면 마고께선 새로운 별을 내려주지 않으실 것이다.
비를 살해한 죗값을 치르더라도,
설령 자신의 목숨으로 셈을 치른다 하더라도 환은 기꺼이 소희의 목숨을 거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더라도 후사를 이어 태어날 염라대왕은 마고가 만들 것이니 전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귀왕과 별 하나의 목숨과 하계 전체를 맞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일이 그러하게 된다면 환은 소희의 목숨만이 아닌 상태자, 다음 대의 옥황의 목숨도 같이 거둘 작정이었다.
감히 하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음험한 자를 상계의 천으로 올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의 죗값은 직접 단죄하리라.
앞날을 점칠 수 없는 암흑의 49일, 그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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