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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48화 (148/150)

외전 8화

“오, 이것도 맛있는데요? 바삭한 식감이 좋네요.”

아리는 주방 의자에 앉아 헬리의 요리를 시식하며 재잘거렸다.

“껍질을 튀기듯이 구운 게 비법입니다.”

“크. 헬리는 황궁 말고 좀 더 큰 곳에서 실력을 떨쳐야 하는데. 헬리의 요리는 전 세계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먹어봐야 할 맛이라니깐요.”

“그런 말씀 하셔도 안 나갈 겁니다. 황후 폐하와 황제 폐하께서 드실 요리를 만드는 게 제 평생 목표거든요.”

“그러면 저야 좋지만…어?”

“황후.”

아리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다정히 미소 짓고 있는 알렌드였다.

“어? 폐하.”

“뭐 하고 계셨습니까.”

알렌드는 아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밖으로 나온 아리의 모습에 마음 한쪽에 불안함이 일었지만, 제 불안함을 보이는 대신 조심스럽게 아리를 일으키며 달래듯 말했다.

“바람이 찹니다. 방에 들어가죠.”

“좋아요.”

아리는 웃으며 알렌드의 손을 잡았다.

명화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다정한 모습에, 헬리가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헬리, 저는 이만 가볼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시지요.”

“주방장. 황후께서 맛있다고 하신 요리는 저녁에 내주게.”

“그리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주방을 나온 두 사람은 궁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혼자 나온 거야?”

“아뇨. 시아나도 주방까지 같이 왔는데, 숄을 가지러 잠시 다녀온다고 했어요. 아, 저기 보이네요.”

아리가 손을 흔드는 방향에는 저 멀리 숄을 들고 오는 시아나가 있었다.

시아나는 아리가 황제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인 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폐하는 일 다 끝나셨어요?”

“응. 이제 할 일이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요?”

“아리한테 놀아달라고 해야지.”

알렌드는 상체를 숙여 제 이마를 가볍게 아리의 머리에 부딪혔다.

그런 그의 시야에 붉어진 아리의 뺨이 보였다.

아직 제 외모가 아리한테 먹히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알렌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아리에게 물었다.

“주방에 가려고 나왔던 거였어?”

“그건 아니고…….”

아리는 걸음을 멈췄다.

쑥스러운지 주변을 둘러보고는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알렌드의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얹었다.

“아리?”

“쉿.”

그러고는 알렌드까지 조용히 시키며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의 배가 툭, 하고 알렌드의 손바닥을 건드렸다.

아리는 만족한 듯 알렌드의 손을 배에서 떼며 말했다.

“우리 애가 아빠가 보고 싶대요.”

“…….”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리야말로.”

서로를 놀리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의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선을 마주한 알렌드와 아리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린 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모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음, 글쎄요.”

알렌드의 질문에 아리는 손깍지 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저는 우리 애를 실제로 만나면 울 거 같아요. 막 감정이 벅차오를 거 같은데. 폐하는요?”

“나는……. 잘 모르겠어. 행복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부모가 되는 게 두렵기도 해. 나는 부모가 없었으니까.”

“애밀리아 원장님이 들으면 서운해하실 소리를.”

알렌드는 엄지로 아리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원장님은 좋은 분이셨지. 형태는 다르긴 했지만, 내게도 가족이 있었고. 하지만 몇 번을 고민해 봐도 나는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조심스레 털어놓은 알렌드의 속마음에, 아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씩 웃었다.

“그 고민은 제가 잘 알죠.”

“안다고?”

“제가 내린 결론은 ‘미래를 백날 고민해 봤자 소용없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냥 태어난 아이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힘껏 사랑해주면 돼요. 지금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것처럼.”

믿음을 주는 따뜻한 음성이었다.

아리와 맞잡은 알렌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리는 단단해진 그 손을 꽉 잡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폐하, 우리는 좋은 가족이 될 거예요.”

***

닫힌 산실의 문 앞, 복도.

“선택……하라고?”

알렌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른세수하는 그의 얼굴은 설명을 듣는 그 잠시 사이에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치료 신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상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의식을 잃으신 데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고…….”

신관의 말에 시아나가 안색이 창백해져 비틀거렸다.

옆에 서 있던 헨켈이 그런 시아나를 부축했다. 헨켈의 얼굴도 평소보다 더 굳어있었다.

그들뿐인가.

에본, 허퍼슨, 라울, 카디얀, 에드워드…….

많은 사람이 모여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던 복도에 절망이 감돌았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온 초비가 신관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니까 뭐야, 지금 성녀님 목숨이랑 배 속에 있는 아기 목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야? 당신, 유능하다며. 그 잘난 신성력으로 어떻게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돌팔이야, 뭐야!”

“소, 소장님!”

론데이만이 황급히 따라와 초비를 신관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초비는 양어깨를 론데이만에게 붙잡힌 채 씩씩거렸다.

신관이 알렌드에게 다시 말했다.

“너무 오래 품으셨습니다. 예상했던 날짜보다 한 달 가까이…….”

알렌드는 더 듣지 않고 문을 열고 산실로 들어갔다.

“신성력이 듣지 않습니다!”

“출혈을 막아야…!”

“황후 폐하의 의식은!”

치료 신관 다섯이 있었으나, 황후를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느라 황제의 등장을 눈치챈 이가 없었다.

알렌드도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한 군데에 못 박혀 있었다.

넓은 침대의 시트 절반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흘러나온 피.

가림막 너머,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리.

“…….”

알렌드의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후후.”

“즐거운 일이 있어?”

“아직 세이칸 신한테 받은 소원이 하나 남았거든요.”

“소원 생각하면서 웃은 거야?”

“네. 우리 애가 태어나면 사용하려고요. 제가 소원으로…….”

아리, 네가 없으면 나는.

알렌드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아리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치료 신관들이 황제를 발견했다.

황제의 손에 들린 서늘하게 날이 번뜩이는 검도.

신관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리를 감쌌다.

“폐하! 고정하세요! 제발!”

“서, 성녀님이십니다!”

그 비명에 방으로 뛰어 들어온 기사들 또한 황제를 말렸다.

“폐하!”

“안 됩니다!”

“……물러나게.”

하지만 몇 명이 붙는다 한들, 황제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침대 앞까지 온 알렌드는 하얗게 질려 의식을 잃은 아리를 바라보았다.

검이 움직이고, 주변 이들이 차마 일어날 광경을 볼 자신이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스걱.

“……폐, 폐하.”

다시 눈을 뜬 신관 하나가 황제를 불렀다.

그의 검에 잘린 건 황후의 목숨이 아닌,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었다.

알렌드는 아리의 이마에 키스한 뒤, 그녀에게 굳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녀올게.”

***

알렌드가 눈을 뜬 곳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알렌드의 주위에서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이어 들린 건 누군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알렌드는 옆을 돌아봤다.

어느새 나타난 긴 은발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알렌드를 보고 있었다.

“당신이 세이칸이십니까.”

세이칸은 훌쩍 커버린 제 피조물을 향해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내 아이야.”

“아리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신을 만난 감상에 젖을 만큼의 시간은 없었다.

알렌드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눌 새도 주지 않는구나. 이 공간은 네 세계의 시간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급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알렌드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세이칸은 초조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알렌드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가 하고픈 말을 했다.

“그 아이의 소원 중에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있었지.”

세이칸은 당시를 회상했다.

펜을 들고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소원을 요청하던 다른 세계의 아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일 거란다. 무엇을 위해 다시 만나려고?”

“세이칸 님은 따지고 보면 우리 폐하 부모님이잖아요. 나중에 잘 사는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인사나 하려는 거죠. ……혹시 별로 내키지 않으세요?”

“한 번 정도는 괜찮을 듯하구나.”

태어나게 해준 이에게 인사라니. 인간들은 그런 걸 좋아하나.

즐거운 기분이 들어 그러겠노라, 말했다.

그래서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그 아이의 부름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 소원을 네가 사용한 모양이구나. 그 아이의 머리카락과 소환진을 이용해서.”

“……그렇습니다.”

알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나와는 그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할 생각인 듯하네.

저는 안중에도 없는 이 아이가 정녕 그 아이 말처럼 자신의 자식이 맞는 건지.

세이칸은 지하를 떠나기 전보다 훌쩍 커버린 알렌드를 눈에 담았다.

“그 아이와, 네 아이의 목숨을 지켜달라고 하기 위해서?”

“네.”

세이칸은 시선을 돌렸다.

“네 아이는 신성력이 강한 모양이구나. 내가 인간들에게 힘을 나눠주던 시절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지. 태중에서부터 가진 힘이 너무 강해 제 어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태어날 제 아이의 힘이 강해 아리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쿵, 하고 심장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알렌드는 목구멍으로 울컥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삼키며 세이칸에게 물었다.

“아리와 제 아이를 살려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세이칸은 옆에 있는 나무의 가지를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알렌드에게 말했다.

“부탁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지. 내가 그걸 들어주는 조건으로 너를 이곳에서 나갈 수 없게 한다면?”

“다른……대가를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다른 건 안 된단다.”

“…….”

알렌드는 주먹을 쥐었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그가 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마침내 알렌드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살려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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