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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44화 (144/150)

외전 4화

“…….”

알렌드는 맞은편 빈자리를 보며 앉아있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 아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폐하, 음식이 식었으니 다시 내오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알렌드는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아리가 오늘 만났다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덧 헬리 몽블랑 차례가 다가왔다.

“폐, 폐하. 어떤 일로 여기까지 직접 행차를…….”

“별일은 아닐세. 황후께서 어디로 가셨는지만 알면 되니.”

“제, 제게는 황제 폐하께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나한테?

의아했지만, 헬리가 아리의 행방에 관해 더 아는 것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알렌드는 헬리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오늘 황후께서 자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진 않으셨던가? 고민이라던가.”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만…….”

“알겠네.”

헬리의 대답은 다른 이들이 했던 대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별일은 없었던 모양인데. 정말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가.’

오늘 내내 자신을 피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면 곤란했다.

“내 인생에 첫날밤은 영영 없을지도…….”

라는 말을 했던 걸 생각하면, 영영 자신을 피해 다닐 수도.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런 가정을 현실로 만드는 인물이 아리였다.

‘그건 곤란하지.’

결혼까지 했는데, 아리를 제대로 못 보고 사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주방을 나온 알렌드는 길잡이의 눈을 발동시켰다.

붉은 빛줄기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황제의 궁에 있는 두 사람의 침실이었다.

알렌드는 침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세운 무릎을 감싼 팔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리.

“아리, 왜 바닥에 이러고 있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

차가운 바닥이라는 게 신경 쓰인 알렌드가 아리를 일으키려 손을 뻗었다.

알렌드의 목소리에 아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푸른 눈동자와 맞춘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해쭉 웃음을 지었다.

“아, 폐하다. 오늘도 잘생기셨네요.”

이상했다.

아리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되면 도망치거나, 혹은 주변에 있는 무언가를 얼굴에 뒤집어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리.”

알렌드는 우선 아리를 들어 침대 위에 앉혀놓고 상태를 살폈다.

발그스름한 볼과 호흡에 섞여 은은하게 올라오는 알코올의 향.

“술 마셨어?”

“아뇨?”

아니긴.

알렌드는 피식 웃었다.

시치미 떼는 모습은 귀엽지만…….

‘음?’

침대를 짚은 알렌드의 손에 무언가 굴러와 닿았다.

집어서 확인해보니 초콜릿이었다.

으깨진 초콜릿에서 내용물이 흘러나왔는데, 맛을 본 알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꽤 독한 술이었다.

‘누가 아리에게 이런 걸.’

디저트에 의도적으로 술을 숨겨 아리에게 선물이라도 한 건가.

반황제파 귀족들의 짓인지, 아니면-.

“마신 건 아니고……. 헬리가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했거든요. 술 들어간 초콜릿요. 시식하다가 폐하도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제가 먹어버린 거 있죠. 폐하 초콜릿 좋아하는데.”

딸꾹.

아리는 울상을 지으며 빈 상자를 가리켰다.

술이 술을 부른다고,

한 알, 두 알 먹던 초콜릿에 취해 그만 가져온 것을 거의 다 먹어버렸다.

“잘했네.”

그제야 알렌드는 다시 미소를 머금고 아리의 볼을 쓰다듬었다.

누군가 아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니면 되었다.

술기운이 오른 아리의 볼은 말랑하고 따뜻했다.

기분이 좋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아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폐하는요, 어떻게 그게 괜찮아요?”

“뭐가?”

“평생 못 하는 거요.”

콜록.

순간 당황한 알렌드는 숨을 잘못 삼켜 기침했다.

술 취한 사람은 무섭군. 이렇게 바로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저는 폐하만 보면 불끈불끈한다고요.”

연속으로 나올 줄은 더더욱 몰랐고.

알렌드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귀 끝까지 새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신아리, 너 그거 무슨 소리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당연히 알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멀쩡해 보이지만, 상당히 취해 있는 게 분명했다.

평소의 아리라면 이런 대화를 이렇게 씩씩하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을 테니.

“폐하를 벗기고 제가-.”

알렌드는 황급히 아리의 입을 막았다.

못하는 소리가 없다.

“……자극하지 마. 내일이면 잊을 거잖아.”

“으닌데여(아닌데요).”

이 아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 이성의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게 분명했다.

불끈불끈한다는 말이 제가 이해한 그 뜻이라면, 자신이 아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나.

‘넘어가지 마.’

알렌드는 날아가려는 이성을 붙잡았다.

아리의 술버릇 중 하나가 기억을 잃는 것이란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아리가 이렇게 제정신이 아닐 때 처음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흐지만(하지만)…….”

알렌드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동안에도 아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 상황에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입술의 움직임은 자극이 너무 셌다.

버티지 못하고 손을 떼자, 자유를 얻은 아리가 꼬물거리며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못해요. 저는, 폐하의 몸을 못 보니까. 이제는 얼굴도 못 봐.”

다행히 그냥 자려는 모양이었다.

조금 여유를 찾은 알렌드가 아리를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내 얼굴을 가릴까?”

“……씨이.”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아리는 이불을 눈 아래까지 올린 채 알렌드를 흘겨봤다.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런, 그런 대단한 거…….”

그만 좀 레벨 업 하시라고요. 알렌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아리를 토닥였다.

“천천히 하면 되지.”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제 이성이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리는 그런 알렌드를 바라보다 뾰로통하게 말했다.

“……억울해. 이렇게 예쁜데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 한다니.”

“하하.”

“웃지 마세요. 제가 곧 방법을 찾을 거거든요.”

“기대되네.”

“여유 부리는 것 봐. 얄밉게. ……키스라도 해요.”

그 말에 알렌드는 웃으며 아리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갔다.

***

젠달의 황도.

성녀의 기적으로 검은 땅이 정화된 거리는 이전처럼 평화와 활기를 되찾았다.

카디얀과 에드워드는 그런 거리를 비장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카디얀, 오늘은 허탕 치면 안 되네.”

“알고 있어.”

“갸옹.”

“퓨! 퓨!”

그리고 그 둘과 함께 있는 루와 퓨.

이런 이상한 조합의 탄생 배경을 알아보자면, 일주일 전인 성녀교 월례 회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성녀님께서 보니아 왕국 일부를 정화하시고 황제 폐하와 황궁으로 돌아오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성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에 몇 번이고라도 보니아 왕국과 황궁을 오갈 수 있었겠지만.

“반지의 능력을 남용하면 황후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까.”라는 황제의 반대가 있었다.

‘걸음만으로 땅을 정화하시는 성녀님께 그런 일이 무리가 될 리가.’

‘두 분께서만 계시고 싶어 하시는군.’

‘일 같은 거에 황후 폐하를 빼앗기고 싶지 않으신 거야.’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두 사람의 행복을 망치고 싶지 않아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떠난 황제와 황후를 얌전히 기다린 지도 무려 석 달째.

드디어 두 사람이 젠달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귀환 날짜는 연락이 온 날짜를 기준으로 이 주 뒤.

“바로 성녀님의 탄신 전날입니다.”

단상 위에 선 에드워드의 말에 성녀교 단원들의 얼굴에 결연함이 감돌았다.

작년에는 선물 전달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녀님께 저희의 진심을 보여드릴 기회입니다.”

그렇게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선물을 물색하러 대표단이 선발됐다.

성녀의 호위 기사로 가장 오랜 기간을 보낸 카디얀, 성녀교의 간부인 에드워드.

알렌드의 계략으로 신혼여행에 따라가지 못한 루와 퓨까지.

루는 카디얀의 어깨에 올라타 꼬리를 살랑거렸다.

“성녀에 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루 님보다는 제가 조금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곁에서 모신 세월이 있으니깐요.”

“그리고 카디얀, 자네보다는 내가 성녀님을 더 잘 알걸. 명색이 성녀교 간부잖나.”

…….

셋 사이에 침묵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해보자는 건가.

“퓨.”

한심하다고 말하는 듯한 퓨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셋의 지식 싸움이 시작됐다.

“성녀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해.”

루의 말에 빤하다는 듯 카디얀과 에드워드가 콧방귀를 꼈다.

카디얀이 말했다.

“성녀님께서는 말 타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시죠.”

“카디얀, 그걸 모르는 이도 있나?”

에드워드의 핀잔에 루가 “그걸 모르는 녀석이 어디에 있어?”라고 동조했다.

에드워드가 이번에는 제 차례라는 듯 말했다.

“성녀님의 결혼반지가 두 개인 이유는 황제 폐하와 같은 날 서로에게 청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제국 꼬마 애들도 알아. 에드워드.”

“맞아.”

아는 지식이 비등하니 싸움의 승자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길을 걷는 동안 순서가 세 번 돌았다.

“내 차례네?”

초조해진 루의 눈에 앙뜨완 제과점의 간판이 들어왔다.

“그건 알아? 디저트계의 큰손, 리리 굿페이스가 성녀라는 건?”

“리리 님이 성녀님이시라고요?”

드디어.

몰랐다는 반응에 루의 가슴털이 부풀어 올랐다.

승자는 이 위대한 칼리드라누 님이신가.

“아뇨…….”

한데 어째 패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걸음을 멈춘 채 희게 질린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카디얀과 에드워드.

루는 둘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가 카디얀의 어깨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저, 저 인간 여자는 일전에 봤던 성녀의 사업 동료잖아!’

“제가 지금 들은 게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올리비아 씨.”

올리비아의 물음에 카디얀은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했다.

“하지만 기사님께서는 리리 님의 수행원이시잖아요? 거기, 고양이인 척을 하시는 분은 성녀님의 결혼식 때 신수로 소개된 루 님이시고?”

“…….”

올리비아의 눈이 예리한 사업가처럼 빛났다.

돌아올 성녀(님)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큰일 났다.’

셋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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