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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37화 (137/150)

137화

황궁으로 돌아오고.

나를 볼 면목이 없다며 피해 다니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허퍼슨이었다.

“제 몸에 데르아치의 영혼이……?”

허퍼슨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깨어난 후 주위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충격적이던 모양이었다.

변절자 군대와 검은 땅으로 변한 오디트리아 대륙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더니.

얼마 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며 본인의 앞날을 맹세했다.

“평생 신께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오지 중의 오지인 바리카 지역.

설산 꼭대기에 있는 신전이었다.

크나큰 죄를 지은 이들이 세이칸 신에게 용서를 빌러 들어간다는, 일명.

“살아있는 무덤요.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못 나오거든요. 아오, 이 미친 사촌 자식이.”

모두가 허퍼슨을 말렸다.

폐하는 피해자인 허퍼슨에게 데르아치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데르아치는 얼마 전 처형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든 죄를 자백하고 죽었으니까.

허퍼슨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도 말리려고 했는데, 나한테는 도통 모습을 보여 주지 않더란 말이지.

“왜 너 혼자 삽질이냐고.”

초비가 옆에 선 허퍼슨에게 툴툴거렸다.

나도 그 말에 속으로 동의했다.

평생을 신에게 봉사해봤자, 나무 안에 잠들어 있는 세이칸이 보상해 줄 리도 없고.

‘휴가 갔다가 데르아치한테 당한 걸로 신전에서 썩기엔 허퍼슨의 인생이 아까운데.’

안절부절못하는 허퍼슨을 두고 고민하던 중, 초비와 눈이 마주쳤다.

“연구소장이 성녀님께서 세이칸 신의 이름으로 용서를 해주신다면 얼굴을 들겠다고…….”

그러고 보니 좋은 방법이 있었잖아?

나는 씩 웃으며 허퍼슨을 향해 말했다.

“세이칸 신의 이름으로 허퍼슨을-.”

“서, 성녀님!”

허퍼슨이 황급히 내 말을 잘랐지만-.

“……용서합니다.”

그렇다고 입이 막힌 건 아니라 무시하고 뒷말을 이었지.

“왜, 저를……?”

“허퍼슨은 죄가 없으니깐요. 그리고 라울 신관님이 전해 달라던데요. 저도 없고 허퍼슨도 없어서 예배당 청소하기 빡세, 아니, 힘드니까 땡땡이 그만 치고 돌아오기나 하라고.”

허퍼슨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감동해서인지, 아니면 이렇게 쉽게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해서인지.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성녀님은 용서하실 분이시란 걸…….”

“허퍼슨.”

나는 허퍼슨의 앞에 쪼그려 앉아, 허퍼슨의 어깨를 토닥였다.

“성녀님…….”

“감동은 나중에 하고요.”

“……?”

그리고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허퍼슨의 손에 반입 허가증을 쥐여 주었다.

“이것 좀 부탁드려요.”

허퍼슨 일 해결 됐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나는 지금 급하단 말이야……!

눈앞에 아른거리는 폐하 조각상에 나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으로 허퍼슨에게 말했다.

“당일 특급으로요.”

***

“폐하.”

묵묵히 황제의 곁을 지키던 헨켈은 결국 알렌드를 불렀다.

황제의 손에 들린 카드와 꽃이 영 신경 쓰인 탓이었다.

“지금 보시는 건…….”

“궁금한가?”

황제는 마치 자랑거리라도 되듯 헨켈에게 카드를 뒤집어 보여줬다.

발신인도 없는 카드.

황궁 연구소 연못 근처. 오늘 저녁 7시

라는, 중앙에 적힌 글귀가 다였다.

‘역시…….’

헨켈의 눈빛이 가라앉고 흉흉하게 빛났다.

“폐하, 혹 누가 보낸 것인지, 짚이는 자가 있으십니까?”

“글쎄.”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헨켈은 검집을 세게 쥐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화가 가라앉을 듯했다.

‘감히, 누가.’

황제의 손에 들린 새하얀 백합.

기나긴 역사를 가진, ‘결투를 신청한다.’라는 그 꽃말을 모르는 이는 이 세계에 없을 테니.

황제를 향한 명백한 적의에 헨켈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경이?”

“네.”

황제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

“경이 대신 나간다고…….”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약 사건이 있었지.”하고 혼잣말하며 눈썹을 들썩였다.

“미안하네. 이건 내 것이라서.”

황제는 헨켈에게 더 보여 줄 수 없다는 듯 카드를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생긋 웃었다.

“오늘은 호위가 더 필요하지 않으니 경은 이만 돌아가 보게.”

“폐하, 혹시 그 결투장에 적힌 장소로 가시려는 건…….”

“아니.”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따라오지 말게.”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이토록 단호히 거절하시다니.

도대체 어떤 결투이길래.

‘폐하께서는 진심이시다.’

헨켈의 마음가짐까지 비장해졌다.

어쩌면 오늘 황궁의 절반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헨켈은 황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황궁 경비를 강화해야겠군.’

***

으아아아아.

‘무진장 떨려…….’

황궁 연구소 근처.

혼자 남은 나는 연못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그런 내 옆에는 흰 천에 싸인 폐하의 조각상이 있었고, 주머니에는 반지 한 쌍이 든 케이스가 있었다.

배송 완벽, 반지 완벽.

이제 남은 건…….

‘내 청혼 멘트인데!’

폐하를 제일 오래 봐왔다는 주인님을 연습 상대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썩 그럴듯한 대사가 나오지 않았다.

“폐하는 새예요. 내 피앙새.”

[…….]

“폐하는 왜 늘 혼자예요? 제 약혼자라서 그런가?”

[…….]

“폐하, 신고할게요. 저랑 혼인신고.”

[……성녀, 차이는 게 목적이야?]

……크흡. 집어치우자.

진심은 먹힌다고 했으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담담하게 청혼하는 거지.

‘연습이나 해볼까?’

나는 천으로 덮인 폐하 조각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폐하, 저랑 겨, 겨…….”

“겨?”

“겨울에 여행 가실래요……가 아니라! 으아앗!”

깜짝 놀랐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폐하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는데,

“윽.”

폐하가 내가 보낸 백합을 들고 웃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외모 공격을 하시면……!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손가락 틈으로도 빛이 새어 들어온다.

캐리어에 선글라스도 하나 담아올걸…….

“오, 오셨어요?”

“응. 뭐 하고 있었어?”

“아……. 그게…….”

“같이 보낸 이 꽃은 뭐야?”

“아, 그거요.”

꽃 말이죠? 꽃…….

“폐하인데요.”

순간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나도 모를 일이라니까. 분명 프러포즈 분위기 잡아보겠다고 백합을 보낸 거 같은데 왜 꽃이 사람이 돼서 나타났지.

“…….”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눈을 가린 채 잠자코 있자, 폐하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나 청혼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이 폐하가 너무 눈부셔…….

“으. 아니요. ……폐하, 저 보여 드릴 게 있어요.”

나는 폐하한테 등을 보이고 조각상 앞에 서서야 눈을 가린 손을 뗐다.

‘할 수 있어.’

1. 조각상 보여 주고 2. 청혼한다!

두 단계만 성공적으로 해내면 폐하를 가질 수 있거든!

힘껏 조각상의 천을 내리자,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영롱한 조각상의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봐도 미쳤다.’

나는 기대감을 안고 폐하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았다.

이 정도면 폐하도 감동할…….

“……어라?”

“아리야.”

폐하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폐하한테 하려던 내 두 번째 단계인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폐하가 말을 이었다.

“나는 십수 년을 죄책감과 복수심을 갖고 살았어.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지.”

“…….”

“하지만 네가 나타나고부터 내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어. 그걸 자각했을 때는 내 모든 것이 널 위해 돌고 있더군.”

나는 떨려 죽겠는데, 말하는 사람인 폐하는 올곧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폐하의 진심을 내게 오롯이 전하려는 듯이.

“이제 내 삶의 목적은 너야. 나는 확신할 수 있어. 평생 너만을 사랑할 거라고.”

폐하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케이스를 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반지 한 쌍이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내게 인사했다.

“네가 나와 함께 하는 미래를 선택해준다면, 나는 널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내 모든 걸 바칠 거야.”

폐하는 떨림이 묻어나오는 음성으로 물었다.

“……나랑 결혼해줄래?”

“…….”

나는 얄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폐하의 앞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으……. 알고 계셨죠?”

“뭘?”

“……오늘 제가 폐하한테 청혼할 계획이었단 걸요.”

목덜미까지 열이 오른 듯 후끈거렸다.

시치미를 떼며 되물은 폐하도 그런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대답, 안 해줄 거야?”

“…….”

나는 폐하의 뻔뻔하고 수줍은 물음에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반지 케이스를 꺼내 지금 폐하가 하는 것처럼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 속에는 마찬가지로 반지 한 쌍이 노을빛을 받아 빛을 내고 있었다.

“폐하……. 저랑 결혼하실래요……?”

으으. 폐하는 잘만 말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떨리냐아…….

그러다 폐하랑 눈이 마주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반지를 보이며 결혼해달라 하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저는 폐하랑 결혼할 건데요.”

“다행이군. 나도 아리 말고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거든.”

폐하와 나는 능청스럽게 대화했다.

그런 우리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 두 개가 나란히 끼워져 있었다.

“어떻게 하죠? 저희 결혼반지 두 개라서. 절대 못 헤어지겠다. 그쵸.”

“그래.”

폐하가 내 눈가에 키스하고 나도 폐하의 볼에 키스했다.

키득거리며 입맞춤도 했다가, 자연스레 키스도 하려고 했는데-.

“……훌쩍.”

“두 분……. 잘 어울리십니다.”

“젠달의 미래는 밝아…….”

주변의 나무 뒤로 숨어서 훌쩍이는 기사들 때문에 깜짝 놀라 폐하와 몸을 떨어트렸다.

나중에 카디얀에게 듣자 하니 그 주변의 경비를 강화하라는 헨켈 대장의 명령 때문에 모여있었다나.

뭐, 어쨌든.

“폐하, 사랑해요.”

나는 폐하에게 귓속말했다. 그러자 폐하가 환히 웃으며 날 껴안고 들어 올렸다.

“나도 사랑해. 영원히.”

아아, 세이칸. 어떻게 이런 창조물을 만들어낸 거죠…….

나는 오랜만에 폐하의 미모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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