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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34화 (134/150)

134화

‘아니다. 이건 아니다.’

데르아치는 숲 속을 달렸다.

왜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는가.

변절자를 이용한 자신의 계획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황제가 날 따라잡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밖에 도망갈 수 없었다.

지하로 가려고 했으나, 통로가 막혀 불가능했다.

이제 저는 시들어버린 정원에 발도 들일 수 없는 건가요.

‘세이칸 님……!’

어둠인지, 저인지.

데르아치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비명을 속으로 질렀다.

이틀 전.

데르아치는 황금 전차에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전진만 하면 되는 세상의 멸망.

자신이 보고 싶은 건 과정이 아닌 결말이었기에, 따분함을 달래려 눈을 감았다.

얼마 뒤, 눈을 뜨자 언덕을 뛰어 내려와 이쪽으로 달려오는 인간 놈들이 보였다.

“벌레처럼 발악하는구나.”

조소하며 다시 눈을 감는 데르아치의 귓가에, 한 여자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벌레?”

“……웬 놈이냐.”

데르아치는 찬찬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다가, 제 황금 전차를 막은 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성녀?”

“이번에는 '성녀님'이라고 안 하네요?”

검은 긴 생머리의 성녀는, 찬란한 빛 위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데르아치는 미간을 좁히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다가, 황금 전차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차를 끌고 있어야 할 변절자들이 사라진 탓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일궈온 검은 땅이 모조리 정화됐다.

“……!”

데르아치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저기요.”

성녀는 소리치는 그에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뒤통수 한 번만 때릴게요.”

“원래 세계에 돌아갔다고 하더니, 사실은 미쳤던 건가.”

“그게 제 지인 몸이긴 한데, 아픈 건 그쪽일 테니까.”

이상한 바퀴 가방을 끌고 헛소리를 하는 게, 그냥 미친 것 같군.

데르아치는 손을 들어 어둠의 힘을 사용하려고 했다.

퍼억.

“ㅇ……ㄱ.”

성녀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겼다.

잠시 금빛이 보였고, 데르아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인간들의 감옥에 갇힌 뒤였다.

“왜 변절자들을 지휘하지 않았지! 네 힘이라면, 내가 정신을 잃었어도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데르아치는 어둠에게 소리쳤다.

[없었어.]

[변절자가 다 사라졌다니까.]

[난 봤어.]

[성녀가 그랬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 거야?]

어둠들이 분노했다.

“나가자.”

다시 때를 기다리면 된다.

자신은 몸을 바꿔 영생을 살 수 있는 존재니.

데르아치는 어둠의 힘으로 기사들을 살해하고 감옥을 탈출했다.

그리고 다시, 지금.

“퓨, 퓨!”

“…….”

데르아치는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일부가 저를 보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어둠은 자신의 파편들을 모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세이칸에게 사랑받던 첫 번째 아이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저 인형 속에 갇힌 것 또한, 제가 흡수하기 위해 데려온 놈이었다.

멍청하게 생긴 껍데기를 벗길 수 없어 새장에 가둬뒀던 것을.

“네가 가져갔구나. 성녀.”

데르아치는 자신의 일부를 안고 제 앞을 가로막은 성녀에게 말했다.

“퓨는 그쪽이 저한테서 가져갔죠.”

“퓨!”

우습지도 않다.

데르아치와 어둠이 콧방귀를 뀌었다.

“주마. 그렇게 작은 파편 따윈 없어도 그만이니.”

황금 전차 때와는 달랐다.

앞이 막혔으니 옆으로 가면 그만.

데르아치가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세이칸 신께서.”

멈칫.

걸음을 멈춘 데르아치는 부릅뜬 눈으로 성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히 그분의 이름을…….”

성녀의 손에서 오팔의 색 같은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그분의 것과 똑 닮은 신성력.

성녀는 칭찬받은 아이처럼 웃으며 제게 보란 듯 말했다.

“절 축복하신대요.”

“……!”

그 말에 데르아치는 형용할 수 없는 질투에 휩싸였다.

활시위가 당겨진 것처럼 어둠의 힘을 펼치며 성녀에게 달려들었다.

‘성녀부터! 이 세상에서 없앴어야 했어!’

그때였다.

데르아치의 등에 악취 나고 무거운 것이 얹혔다.

“무슨?!”

놀랄 새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온 성녀가 무언가를 휘두르며 자신을 쳤다.

데르아치는 몸이 크게 부딪히는 감각을 느꼈다.

‘이건-.’

쿵. 소리를 내며 성인 남자의 몸 두 개가 바닥에 쓰러졌다.

***

“크. 완벽했어.”

바닥에 쓰러진 허퍼슨과 데르아치의 원래 몸을 보자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 내 손에는 세이칸에게 받은 칸드리얀의 나뭇가지가 들려있었다.

“세 번째 소원은요, 제 지인 두 명이 몸을 되찾는 거예요. 한 명은 변절자의 영혼석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고요. 한 명은 어둠이랑 융합한 데르아치의 영혼이 들어가 있어요.”

“불쌍한 아이들이구나.”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가능하단다.”

그렇게 받은 칸드리얀의 나뭇가지에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영혼이 섞인 몸을 나뭇가지로 치면 몸의 주인이 아닌 영혼이 빠져나올 거라고.

“대신 지상에서 그릇을 잃은 영혼은 곧바로 다른 그릇에 넣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조심해야 한단다. 그 데르아치라는 영혼도 마찬가지고.”

“어둠은요?”

“융합된 영혼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그릇을 찾아 도망칠 테지.”

초비는 쉽게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고.

문제는 허퍼슨의 몸에 들어간 데르아치의 영혼과 어둠이었다.

어쩌지. 초비처럼 인형에 데르아치의 영혼을 옮긴 다음, 그 인형에서 다시 데르아치의 영혼을 꺼내…….

“이건 지상에 있는 칸드리얀의 나뭇가지라 세 번밖에 사용을 못 한단다.”

인생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세 번의 기회를 몽땅 계획에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폐하를 만난 뒤, 상담 끝에 다른 곳에 있는 데르아치의 원래 몸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가져와 영혼을 빼내기로 했다.

데르아치가 도망칠 줄은 몰랐지만.

“폐하, 명령하셨던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급하게 막사를 나오는데, 때마침 데르아치의 원래 몸이 도착했다.

우리는 그 몸을 가지고 퓨의 안내를 받아 데르아치를 쫓았지.

결과는…….

“폐하! 성공한 거 같죠?!”

폐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윽. 눈썹 올라간 것 봐.

안 그러신 척하지만, 내가 미끼가 됐던 상황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폐하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

“제가 데르아치 몸 갖고 뒤에서 접근하는 건 싫다면서요. 그래서 폐하 하시라고 한 건데.”

“……신아리.”

폐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팔을 살포시 잡았다.

“네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 하게 해줄 거지만. 난 네가…….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 말에 ‘하나도 안 위험했다.’ 대답하려다 관뒀다.

내 왼팔을 잡은 폐하의 오른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거든.

하긴. 폐하의 불안이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내가 돌아온 지는 아직 삼 일째고.

“…….”

나는 퓨를 가방 안에 넣고, 폐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 잘했죠.”

폐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으으.’

밤하늘 배경으로 둔 폐하 미모 장난 없다.

나만 봐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 봤으면 못 버티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걸.

솔직히 말하면 나도 현기증 나…….

‘아차.’

그러다 쓰러진 허퍼슨이랑 데르아치가 생각나 뒤를 돌아봤다.

미동도 없는 걸 보니 바로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낭만은 없지만 뭐 어때.

“폐하.”

우리 폐하만 있으면 쓰레기장도 낭만적일 텐데……!

“저 잘한 거 같으면 상이나 주세요.”

“……상?”

나는 발뒤꿈치를 들어 올려 폐하에게 귓속말했다.

“아까 하다 만 거로요.”

***

데르아치는 당황했다.

정신을 차리고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왜?’였다.

젠달의 황도, 그곳에 있는 귀족들의 처형장.

그곳에 자신이 손발이 결박당한 채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형대 아래 모인 수많은 이가 그런 절 보며 수군거렸다.

“정말 데르아치 대공이 반역을 일으켰다니.”

“‘공장’이 검은 땅 난민에게 구호 물품을 제공한 건 위선이었나?”

“그 대단하신 데르아치 나으리도 이제 곧 죽는구먼.”

죽어? 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데르아치 시야에 결박된 두 손이 들어왔다.

주름지고 늙은 손. 어째서.

‘황제.’

그놈 짓인가.

데르아치는 분노했다.

‘그깟 고아 몇 죽인 것 때문에 내게 복수하려고! 내 몸을 뺏고 날 다시 이 죽어가는 몸뚱어리에 가둬!’

황제는 제게 이러면 안 됐다.

황제의 약점은 자신이 쥐고 있거늘.

‘난 보았다.’

보육원 원장을 검으로 찌르기 전, 그 어린놈의 발치에 얕게 깔렸던 검은 기운을.

그때는 몰랐으나 어둠과 융화된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이칸 신이 어둠을 사랑했을 때 선물했다는, 사역마를 소환해 부릴 수 있는 능력.

이제는 변절자들만이 사용하는 저주의 능력.

황제의 능력은 그것이었다.

‘신성 제국의 황제가 저주의 능력을 사용한다니.’

후회하게 할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을.

데르아치는 세월의 흐름 속에 얇아진 성대에 힘을 주며 외쳤다.

“듣거라! 황제는-!”

그때였다.

데르아치의 귓가에 어둠이 조용히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 건.

[깨어났네.]

[자고 있을 때가 편했는데.]

[늙었어.]

[버릴까?]

[세이칸 님도 싫어하실 거야.]

[버리자.]

무릎을 꿇은 데르아치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이어 동공이 풀린 데르아치의 입이 멋대로 고해성사를 펼쳤다.

“나는 내 양부모의 작위를 물려받으려 그들의 친자식을 죽였다.”

“나는…….”

…….

“나는 황제를 니세포르엘 신전에 보내려 보육원을 불태우고 아이들과 원장을 죽였다.”

“나는…….”

…….

그가 일생을 살아오며 지은 수많은 죄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모든 고해성사가 끝나자, 짙어진 그의 그림자를 타고 어둠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정신을 차린 데르아치는 잠시 시간이 멈췄던 사람처럼 제가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

“황제는 변절자들의 저주받은 능력을 사용하는 자다!”

싸아아.

얼음물을 뿌린 것처럼 군중이 싸늘했다.

데르아치는 당황했다.

황제가 사역마를 부린다는데, 이들은 어찌하여 동요하는 기색 하나 없는가.

왜 황제에게 향하길 기대했던 경멸 어린 시선은 모조리 저한테 쏠리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저기서 귀족의 처형을 받을 자격도 없소!”

군중 속에서 건장한 사내가 처형대 위로 올라왔다.

그런 뒤, 데르아치의 멱살을 잡고 처형대 아래로 던졌다.

사형 집행관은 몸이 굳은 사람처럼 뻣뻣이 서서 사내가 하는 짓을 말리지 않았다.

백태가 낀 데르아치의 눈에 방금 저를 던진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남자는 키득 웃으며 입 모양으로 제게 말했다.

[멍청한 데르아치.]

남자의 어깨 위로 검은 기운이 짧게 일렁이다 사라졌다.

데르아치는 커다란 배신감과 절망 속에서 소리쳤다.

“나,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자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가장 높은 곳에……!”

“뭐라는 거야.”

“여기에 당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사람들의 눈이 모두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 내려다보지 마라.”

두렵다.

데르아치는 벌레처럼 흙바닥을 기었다. 도망치자. 이곳에서.

“윽.”

그런 데르아치의 등을 누군가 밟았다.

“개자식.”

양 볼에 눈물 자국이 선명한 여인.

알렌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던 마샤였다.

검은 땅을 피해 황도까지 올라온 그녀는, 방금 데르아치의 고해성사를 들었다.

마샤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네가 애밀리아와 그 아이들을 죽여?”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방법으로 데르아치의 만행을 알게 된 피해자의 가족, 지인, 등등이 인파를 뚫고 데르아치를 에워쌌다.

이내 데르아치의 괴로운 비명이 그 속에서 들려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내가 키득거리며 자리를 떴다.

사내는 인적이 없는 골목길을 걸었다.

그러다 자신의 그림자가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뭐지?]

[뭐야?]

“갸옹.”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제 머리 바로 위, 담장에 날개가 달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루는 군침을 삼키며 사내에게 말했다.

[너, 그때 놓친 어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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