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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20화 (120/150)

120화

아침. 폐하의 서재.

“좋아.”

“네?”

나는 폐하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황궁 밖으로 외출해도 되냐는 물음에 흔쾌히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우리 폐하가 맞나!

적어도 한 번은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폐하는 너무 쿨했다.

“저 정말 나가요?”

“그래.”

“오늘 바로 나갈 거예요.”

“응. 호위 기사 데려가는 거 잊지 말고. 오늘 호위는 카디얀 경이지?”

“…….”

뭐지. 왜 이렇게 산뜻하지.

묘하게 섭섭한 느낌까지 드는데……!

어리둥절해하고 있자니, 폐하는 직접 날 문밖으로 배웅까지 해줬다.

“잘 다녀와.”

저런 상큼한 미소라니.

오늘 아침 비타민 충전한 거 같고 아주 좋은데, 찝찝하단 말이지.

“……넵.”

하지만 찝찝하다 한들 어쩌겠는가.

폐하한테 왜 그러시냐고 시비 걸 듯 물어볼 수도 없고.

일단 외출 허가란 목적은 달성했으니, 프로딘타 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 초비 연구소장님이네요.”

본궁을 나오는데, 왁자지껄한 소리에 카디얀이 반응했다.

오른편을 보니 초비가 하녀들한테 둘러싸여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연구소장님,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저희랑 아침 먹으러 가실래요?”

“내가 이 입으로 밥을 먹겠냐? 어?”

“화내는 거 귀여워~”

“이대로 가방에 넣어서 숙소에 데려가고 싶다.”

황궁의 명물, 움직이는 토끼 인형. 초비 빈후드.

나도 그렇고. 처음에는 다들 초비가 걸어 다니는 인형이 됐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귀여운 외향 때문인지 금세 황궁 아이돌이 돼서 저렇게 사람들을 몰고 다닌단 말이지.

본인은 무척 싫어하는 거 같지만…….

“이것들이, 진짜…….”

앗. 초비 폭발하겠다.

나는 슬쩍 초비 일행에게 다가갔다.

“서, 성녀님!”

“안녕하세요. 초비 데려가도 돼요?”

“그, 그럼요……! 영광입니다!”

뭐가 영광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초비를 빠르게 빼낼 수 있었다.

“이야~ 성녀님 덕분에 살았네요. 황궁 연구소로 가던 길에 잡혔지 뭐예요. 이 인형 다리가 원체 느려서 따돌리지도 못했다니깐요.”

초비도 고충이 많은 모양이었다.

본궁에서 황궁 연구소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고, 초비 혼자 걸어가다간 또 사람들한테 잡힐 것 같아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초비는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 찾았어요?”

나는 품에 안은 초비에게 물었다.

다행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초비의 몸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지상에 머물러 있는 영혼과 육체 사이에 어떠한 상호작용이 있을 거로 추측하고 있다는데, 정확한 건 좀 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했다.

“아직요. 그런데, 성녀님.”

초비는 코 아래의 봉제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방법이 허퍼슨 몸 훔쳐 간 자식이랑 관련 있을 것 같단 말이죠?”

“데르아치랑요?”

“그걸 알아내면 허퍼슨 드만을 구할 수 있는 겁니까?”

허퍼슨이라는 말에 카디얀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그러길 바라고는 있는데-.”

우리 셋은 잠시 침묵했다.

허퍼슨을 떠올리자 마음이 착잡해진 탓이었다.

초비가 “멍청한 사촌 놈. 휴가 갔다가 당하냐…….”라 중얼거리다 푸욱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그, 가져오신 데르아치 몸을 연구해봤거든요. 그 몸도 영혼이 비어있었어요.”

“초비 몸이랑 비슷한 상황인 거예요?”

“맞아요.”

“그러면…….”

카디얀과 나는 동시에 초비의 둥그런 뒤통수를 바라봤다.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은, 초비의 영혼이 인형에 들어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

그건가?

“영……그게 허퍼슨 몸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는 거네요?”

내 말에 초비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러면 영……그걸 허퍼슨의 몸에서 떼어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카디얀의 목소리에 약간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초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게, 변절자의 영혼석이-.”

“으앗.”

초비의 중범죄를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던 카디얀과 내 노력이!

황급히 초비의 입을 막았지만, 발성 기관 없이 말하는 초비한테는 무의미했다.

“몸이랑 융합된 상태면 떼어낼 때 육체가 죽어버릴지도……. 아, 맞다.”

연구자처럼 중얼거리던 초비가 고개를 젖혀 날 바라봤다.

“소문 들으셨어요?”

“무슨 소문요?”

나 소문에 좀 트라우마 있는데.

나는 조금 긴장한 상태로 초비의 말을 기다렸다.

“성녀님, 동상 만들어진다는데요?”

“네?”

……내 동상?

폐하 동상이 아니라?

“아, 황제 폐하께서 직접 계획하신 그 동상이죠?”

“계획요?”

일이 어디까지 진행됐길래 카디얀도 아는 거지?

설명을 바라는 내 되물음에 카디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상에 치료계 신성석을 넣어서 제국 곳곳에 세워 두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요.”

카디얀은 폐하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것도 무려 개인 금고를 열어 진행하신다는데, 역시 성녀님께서 선택하신 분 답습니다.”

“……언제부터 하신대요?”

“전해 듣기론…….”

카디얀은 싱글벙글 웃으며 답했다.

“올해 안에 완성품 하나가 나와 시범적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

‘안 돼.’

이럴 수는 없었다.

코아루한테 의뢰한 내 폐하 조각상이 먼저 세상에 나와야 하는데!

게다가 신성석이라니. 그런 센스있는 거, 난 생각도 못 했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달려 초비를 연구소 앞에 내려준 뒤, 곧장 코아루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고객님? 아직 납품일은 멀었는데 어쩐 일로?”

“올해 안으로……. 가능할까요……?”

내 애절한 눈빛을 마주한 코아루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리입니다. 견적서에 3년이라 명시된 걸 못 보신-.”

나는 금화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득한 주머니의 매듭 사이로 반짝이는 금화들이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추가금입니다.”

“지금 정이랑 망치 잡았습니다. 고객님.”

그렇게 조각상 문제는 해결됐으니.

다음은-.

“신성력을 종류별로?”

나는 <수습> 명찰을 달고 코웃음을 치는 (구)지배인을 바라봤다.

이분 아직 여기에서 일하시나.

“…….”

내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아하니, 이번에도 ‘주제도 모르는 평민’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매장을 한 번 둘러보자, 그때 브로치 상담을 해줬던 수습직원, 비타가 날 향해 꾸벅 인사했다.

“신성석은 너 같은 평민이-.”

“수고하세요.”

나는 (구)지배인을 내버려 두고 비타에게로 걸어갔다.

<정직원> 명찰을 단 비타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리리 님. 사모님 보러 오셨어요? 오, 오늘은 가게로 안 나오셨는데, 연락을 드려볼까요?”

“앗, 아니요. 올리비아 씨는 나중에 찾아뵈려고요.”

여기서 조각상에 넣을 신성석 견적을 받아보고, 앙뜨완 제과점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마침 비타와 나 사이의 유리 진열장 안에 신성석이 하나씩 진열돼 있었다.

‘호신용 신성석도 사둬야 하는데.’

미궁에서 잃어버린 신성석 말고도 시아나가 보관해주고 있던 게 남았지만, 언제 떨어질지 몰랐다.

‘온 김에 사야겠다.’

신성석 구매를 마음먹는 사이, 내 뒤로 딸랑, 하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디얀이나 다른 손님이겠지.

나는 유리 진열장 한쪽을 검지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크흐. 나 드디어 이 대사 해보나!

설레는 기분으로 검지를 쭈욱 옆으로 움직이며 다음 말을-.

“여기까지.”

나 아직 말 안 했는데?

그보다 이 목소리……!

나는 내 검지의 목적지였던 진열장의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리를 짚은 커다랗고 길쭉한 잘생긴 손 하나.

“…….”

손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리자, 날 보며 생긋 미소 짓는 이분은…….

“여기서 다 만나네. 리리.”

윽. 눈부셔.

왜 우리 은발 폐하가 여기에 있지.

지금 폐하 얼굴에 매장 조명 하나도 안 보이는 거 실화냐. 자체 발광 미쳤다.

게다가 리리 라니.

무슨 놀이 중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 심장 진정 좀 시키겠습니다.

“고, 고객님?”

비타가 내 플렉스에 갑자기 끼어든 폐하를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비타의 붉어진 볼, 폐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

‘홀렸구나……!’

비타 뿐만이 아니었다.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 직원 손님 할 것 없이 폐하만 보고 있더라니까.

황궁 밖에 내놓기 무서운 건 내가 아니라 폐하였다.

‘이렇게 잘난 사람이 내 남친…….’

진짜 복 터졌다. 신아리.

내가 전생에 우주라도 구한 게 분명하지. 그 정도 스케일이 아니고서야 이게 말이 되냐고.

폐하는 품에서 백지 수표를 꺼내 비타에게 내밀었다.

“진열장 안에 있는 신성석. 다 구매하도록 하지.”

“죄, 죄송하지만 먼저 오신 손님이 계셔서…….”

비타는 손바닥을 위로 한 손으로 날 가리켰다.

폐하는 아직 진열장 위에 멈춰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네. 내 아내거든.”

오랜만에 이 설정인가!

그보다, 폐하가 말해놓고 이렇게 좋아하는 티 내기 있냐고요.

아내 팔불출 같은 폐하의 환한 미소에 매장 곳곳에서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뭐…….

“…….”

“……리리?”

“고, 고객님. 리리 님께서 정신을 이, 잃으신 거 같은데요.”

빛밖에 안 보이지.

폐하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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