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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17화 (117/150)

117화

[이번 시련은 네가 진짜 황제를 골라야 해.]

반짝이는 폐하들 사이에서 천국을 만끽하던 중, 칸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폐하를?”

꼭 골라야 하나요.

다섯이서 다 같이 나가면 안 되나!

내가 폐하 다섯 명 평생 놀고먹게 해줄 정도의 재력은 되는데……!

그런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칸은 설명을 덧붙였다.

[진짜 황제를 찾아 이 다리를 건너면 되지. 실패하면 남겨진 진짜 황제도, 네가 데려간 가짜 황제도 이 안개처럼 흩어질 테니 신중히 선택하라고.]

칸이 저 말을 하면서 웃고 있을 거 같은 건 내 억측인가.

어쨌든 하렘은 꿈도 꾸지 말고 폐하 찾아서 나가라 이 말이지?

“…….”

진짜 폐하라.

나는 폐하들을 쭉 관찰했다.

크흡. 키도, 골격도, 얼굴도, 다 똑같아…….

그냥 다 우리 폐하잖아!

나는 선택 못 해. 흑흑.

“저기, 알렌드 씨?”

“……!”

반응 보려고 던져본 말에 폐하들이 일제히 볼을 붉혔다.

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

굳이 미궁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이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강풍 속 흔들리는 갈대처럼 탈출하겠다는 내 의지도 나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내 의지를 완전히 뿌리 뽑을 생각인지, 폐하 2가 내 정수리에 턱을 올리며 존재감을 내세웠다.

“아리.”

“…….”

“다른 놈들은 믿지 마. 내가 진짜다.”

그에 질세라 폐하 1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고.

“내가 사랑하는 건 너뿐이야.”

폐하 3은 내 손등에 키스하며 애원했다.

“제발. 날 골라, 아리. 널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줘.”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날 부르는 폐하5까지.

“신아리. 나가자.”

아아. 나 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칸한테 무슨 기특한 짓을 해서 이런 포상을 받는 거지!

이대로라면 탈출이 문제가 아니라 내 심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여기서 살다가는 심장 쿵쾅거리는 게 내 심장박동 기본 값이 되겠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아찔해지는 정신줄을 겨우 부여잡고 있을 때쯤, 한쪽에서 말없이 앉아있는 폐하 4가 보였다.

“저기, 폐하.”

나는 폐하들을 주렁주렁 달고 폐하4에게 다가갔다.

“…….”

폐하 4는 대답이 없었다.

나를 품에 안은 폐하 2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아리, 이 자는 무시해. 네 연인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는 자다.”

내 오른쪽을 차지한 폐하 3도 말을 거들었다.

“이 선택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하기를 바라. 하지만 이 자는 아닌 것 같아.”

“…….”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폐하 4 앞에 쪼그려 앉았다.

“폐하, 무슨 일 있어요?”

폐하 4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아리, 이 자는 아니야.”

주변 폐하들이 날 설득했다. 이 폐하는 폐하가 아니라고.

“나랑 같이 가.”

“함께 전쟁을 끝내야지.”

“나랑 행복해지기로 했던 거 잊었어?”

으윽. 제가 마음 같아서는 다 같이 가고 싶은데요.

나는 폐하 4를 와락 끌어안고 남은 폐하들에게 외쳤다.

“우리 폐하만 심장이 뛴다고요! 이, ……이 잘생긴 허상들아……!”

흐헝. 내가 이 말은 안 하고 싶었는데.

말해버리면 이 천국이 구운몽처럼 깨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내 발언에 폐하들은 멈칫했다가 다시 번갈아 가며 입을 열었다.

“신아리.”

“그래서 그자를 선택한 건가?”

“아리, 날 두고 간 걸 후회할 거야.”

“허상은 네가 선택한 그자야.”

바닥에 앉은 폐하를 끌어안은 날 향해 남은 폐하들이 얼굴 공격을 가했다.

그 순간.

“으아앗!?”

폐하 4, 그러니까 우리 폐하가 날 번쩍 안아 들고 폐하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꺼져.”

그 남다른 위협에 허상 폐하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폐하는 앞으로 나아갔고, 짙은 안개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우리 둘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 지금 폐하한테 안겨 가고 있는 거 현실인가.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폐하한테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왜 가만히 있으셨어요?”

“다섯은 성녀 심장에 해로울 것 같아서.”

“네?”

“내 얼굴이 심장에 안 좋다며?”

폐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폐하 다섯이 들이대면 내 심장 멈출까 봐 가만히 계셨다는 건가!

후후……. 그런데요, 폐하.

지금 하신 공주님 안기도 허상 폐하 네 명에 버금가거든요.

으으. 내 심장아…….

“그리고요?”

“‘그리고’라니.”

기왕 물어볼 거 다 물어보자는 생각에, 나는 폐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왜 삐치신 건데요?”

“내가……. 삐져?”

폐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런 적 없어.”

“거짓말.”

나는 검지로 폐하 오른쪽 눈썹 윗부분을 살짝 눌러 내렸다.

“미궁에서부터 계속 올라가 있었거든요. 이 눈썹.”

라고 말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는데, 뭐지. 이 고운 찹쌀로 장인이 공들여 반죽한 듯한 촉감은.

이마 피부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뭐 하는 거야.”

“느낌이 너무 좋아서……. 아니, 그게 아니라!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무슨 노력?”

“제가 언제까지 폐하 외모에 으으. 거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미궁에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세요?”

“후회?”

“그때 폐하 얼굴 한 번 더 만져둘걸! 그림의 떡도 아니고 눈앞의 떡이었는데. 아껴뒀다 똥 된 줄 알고 속상했다고요.”

“…….”

“아, 만지는 거 싫으세요?”

“아니.”

폐하는 피식 웃었다.

“원하는 대로 해.”

“……으. 왜 이렇게 잘 생겼지. 내 남친은.”

“칭찬인가? 영광이군.”

그러다 폐하랑 눈이 마주쳤는데.

이번엔 진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시선을 돌려버렸지.

“……성녀는.”

그랬더니 폐하의 입에서 충동적으로 나온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얼굴은 똑바로 못 보면서 그자 얼굴은 잘도 보는군.”

“그자? 아까 허상 폐하들이요?”

“보니아의 기사 말이야. ……일전에 성녀한테 고백했던.”

걸음을 멈춘 폐하의 눈썹이 들썩였다.

이크. 기분 안 좋으셨던 게 델칸 때문이었나.

그보다 고백이라니.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델칸도 새로운 사랑을 찾고도 남을 시간이라고요.

라고 말했다간 불난 집에 기름 붓기일 테니.

나는 입을 다물고 응급조치로 폐하의 눈썹을 꾹꾹 눌렀다.

폐하는 나 하란 대로 놔두려는 듯 눈을 감고 말했다.

“그자 덕분에 네가 살 수 있었던 건 알겠어.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지. 돌아가면 보니아 왕국과 그 기사에게 보답도 할 거야. 그런데.”

폐하의 눈꺼풀이 다시 올라가면서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상처받은 눈동자 같기도, 고요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같기도 했다.

“화가 나. 그 상황이.”

“…….”

“그 자리에 있지 못한 나한테 화가 나고. 나는 왜 보니아의 기사처럼 네가 힘든 순간에 함께 있어 주지 못했나 후회스럽고. 네가 그자와 단둘이 미궁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폐하는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다음 말을 힘겹게 토해냈다.

“미칠 거 같아.”

“…….”

“원래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렇게 유치해지나?”

그러니까 이젠 둘 중 하나다.

내 심장이 파업을 선언하거나, 내 뇌가 파업을 선언하거나.

질투하는 폐하라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어이없지.”

“아니요.”

“황제가 돼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유치하지 않아?”

“그럴 리가요.”

이런 유치함이라면 언제든 환영인데요……!

“내가 어디까지 질투하는지 알면 지금처럼 단언할 수 없을 텐데.”

“알아도 단언할 수 있을-.”

“아까 놈들한테 알렌드라고 불렀지.”

폐하는 고개를 들더니 내 이마에 폐하의 이마를 툭 하고 가볍게 갖다 댔다.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돼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깜짝 놀라 벗어나려고 했는데.

폐하 팔……. 꿈쩍도 안 해.

“다시 불러줘.”

“뭐, 뭘요?”

“이름.”

아까 허상 폐하들한테 “알렌드 씨” 했던 거 말하시는 건가!

그거야 어렵지 않지.

짧은 고민도 없이 입을 뗐는데,

“알…….”

“알?”

“알……ㄹ…….”

폐하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목구멍이 턱하고 막혔다.

“잘 안 들리는데.”

폐하는 짓궂게 웃었다.

“일부로 이러시는 거죠……!”

“신아리.”

“헙.”

나는 숨을 멈췄다.

이렇게 훅 들어오셔도 되나!

되는 건가!

“아리야.”

“……!”

거기 제 관짝 주문 좀 하려고 하는데요.

여기 주소가 폐하시 천국구 꽃길로…….

하여튼 진짜 심장에 안 좋아…….

“저 두 번 죽이려고 작정하신 거죠……!”

“…….”

그 말에 폐하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아. 죽는단 소리. 실언.

“폐하. 농담, 농담인 거 아시죠? 우리 폐하는 웃는 게 예쁜데.”

나는 폐하의 입꼬리 부근을 검지 두 개로 올렸다 내렸다.

눈썹이랑 입가는 체감이 달라 손끝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이렇게 폐하 얼굴에 함부로 손대도 되나……!

손을 뗀 후에도 폐하의 입매는 여전히 굳어있어서, 나는 내 말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쩔쩔맸다.

“아휴, 제가 왜 죽어요. 죽긴. 절대로 안 죽죠. 화나신 건 아니죠? ……나셨어요?”

“…….”

“……소원 들어 드릴까요?”

소원권 그렇게 막 쓰다가 인생 큰일 날지도 모른다며 머릿속 경고등이 울리긴 했지만.

뭐 어때. 내 남친한테 쓰는 건데……!

폐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원요……?”

그래도 막상 소원 들어준다 생각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

경험상, 폐하가 바라는 소원은 평범하지 않아서-.

폐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까 칸에게 방해받아서 하려다 만 거. 해주면 좋겠는데.”

……폐하, 솔직히 말해봐요. 다 연기였죠.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아하니, 이거 죄다 노린 거다.

아, 아, 아까 뭘 하다가 말아요……! 진짜!

하지만 폐하한테 따질 순 없었지.

“해줄 거야?”

“으…….”

난 지금 머릿속까지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거든.

눈까지 감아버리는 이 부끄러움 모르는 분은 누구지.

아무래도 진짜 폐하를 두고 온 거 같은데.

좀 더 성격이 나빠 보였던 폐하 5를 데리고 왔었어야 했나!

“나는 내 연인이 한 번 내뱉은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어.”

“으윽…….”

내가 본능과 종종 싸우긴 하지만, 판 깔아주면 못하는 애가 나라니까.

바로 앞에 폐하의 입술,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

쪽. 하는 소리가 들리고 , 말캉한 느낌이 들자마자 나는 폐하의 품에서 벗어났다.

“돼, 됐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 심장의 한계치는 여기까지였거든!

진짜 더 하면 큰일 나.

나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하고 녹슨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앞장서 걸으려고 했다.

“이제 나가요.”

“아리.”

그런 내 팔을 뒤에서 잡은 폐하만 아니었으면.

폐하는 부드럽게 날 돌려세웠다.

“부족해.”

그리고는 내 입술에 폐하의 입술을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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