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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09화 (109/150)

109화

악취의 근원지는 문 옆에 있는 세 마리의 변절자였다.

알렌드는 변절자들이 있는 우리를 지나쳐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까지 변절자를 가져다 놓은 것을 보면…….

‘이 저택에 더는 미련이 없다는 거군.’

알렌드는 침대의 커튼을 걷어 젖혔다.

스릉.

스산한 소리를 내며 외부로 나온 그의 검이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의 목에 향했다.

“데르아치.”

“…….”

노인은 미약한 숨으로 호흡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알렌드는 차게 식은 눈으로 데르아치를 내려다보았다.

‘곧 죽겠군.’

굳은 알렌드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그가 쥔 검 끝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였다.

“알렌드라 했나. 그 아이, 이번 황제 후보생들 선발 시험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면 하네만.”

17년 전, 데르아치는 알렌드를 눈독 들이며 보육원을 찾아왔다.

보육원의 원장인 애밀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여덟 살짜리 아이를요?”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하지만 내가 봤네. 그 아이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말이야. 애밀리아, 아이를 주면 앞으로 내 평생 이 보육원에 풍족한 후원을 약속하지.”

“…….”

애밀리아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지은 보육원은, 들어오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애밀리아의 사비로 지금껏 꾸려왔다지만, 그것도 이제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데르아치가 제안한 보육원의 후원.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영주님, 알렌드는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보호자인 제가 동의하지 않을 테니깐요.”

선발 과정에서 알렌드가 가진 소환 능력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과거, 고위 신관으로서 신탁을 담당했던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데르아치는 믿을 수 없다고.

어쩌면 후원마저 알렌드를 데려가기 위한 거짓말일 지도 몰랐다.

“……후회할 텐데. 애밀리아.”

“후회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게.”

바로 이틀 뒤, 데르아치는 용병들을 이끌고 보육원을 덮쳤다.

알렌드를 제외한 목격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외부엔 화재 사고라 일을 덮었다.

“얘야, 누군가에게 이 일을 말한다면 나는 네게 소중한 다른 사람들을 똑같이 죽일 거란다. 예를 들면, 채소 가게의 마샤라던가.”

“아, 안 돼요.”

“그렇지. 너 때문에 그 보육원 것들이 죽었는데, 다른 사람들마저 죽게 하면 안 되지.”

데르아치의 것이어야 할 죄책감이 고작 여덟 살이었던 알렌드에게 씌워졌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기억이, 무거운 쇳덩어리가 되어 알렌드를 짓눌렀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도 없었다. 소중해진다면 데르아치가 보육원 때처럼 그 사람을 죽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린 알렌드는 죄책감과 복수심과 두려움만을 속에 남긴 채, 마음의 문을 닫았다.

“데르아치. 살아온 세월에 비해 너무나 평온한 죽음이라 생각하지 않나?”

황제가 된 후, 알렌드는 데르아치의 행적을 모조리 조사했다.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로 적힌 과거였다.

거슬리는 것이라면 그저 없애버리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채 평생을 살아온 이가.

이런 포근한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됐다.

알렌드의 검 끝이 데르아치의 목 가죽을 파고들려던 그때.

“대공님께선 건강을 되찾으셨습니다.”

알렌드의 머릿속에 조금 전 대변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건강이라.

하지만 이 모습은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는데.

“…….”

알렌드는 검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분명 대변인은 알렌드의 몸을 빼앗으려는 듯한 말을 했다.

그리고 대변인의 목숨이 끊어지자, 그 몸속에서 튀어나온 어둠.

‘몸을 빼앗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했지만.

‘어둠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지. 그게 어둠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러고 보니 아리가 데리고 다니는 그 어둠도, 원래는 상자에 들어있던 것이 인형에 들어간 것이었다.

알렌드는 생기 하나 없는 데르아치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건 빈 껍데기인가.’

그래도 죽은 건 아니니, 제 가정이 틀렸을 수도 모른다.

알렌드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공장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

“끄아아아악!”

볼프만은 비명을 지르며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굴러 오는 구 모양의 돌에 쫓기고 있었는데, 조심성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함정 하나를 건드린 탓이었다.

“왕녀! 나 도와줘! 생명의 은인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

“샤를 애팅거~~!”

위층 보안실을 점령한 샤를, 월터, 포인, 렉스는 그 모습을 창 너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인이 샤를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안 도와줘도 돼요?”

“너는 저 인간 해적단 때문에 팔려 갈 뻔했다면서 왜 걱정을 해주고 있어?”

렉스가 툴툴거렸다.

“맞아. 걱정해줄 필요 없단다.”

샤를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허술해 보이지만, 볼프만의 생명력은 다년간 보니아 해군의 골머리를 앓게 할 정도로 끈질겼다.

알아서 잘 살아나오겠지.

그보단 다음 폭파 위치가 중요했다.

세 동 중 하나는 파괴했으니 남은 건 공장 두 동.

샤를은 책상 위에 펼친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아이들에게 다음 폭파 장소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 구역은 건드리면 안 돼. 변절자가 득실거리니까.”

일전에 샤를이 공장에 침입했을 때,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곳이었다.

대형 선박의 화물칸 같은 장소에 변절자를 담은 우리가 빼곡했다.

“잘못 폭파해 변절자라도 나오는 날에는 이 근방 일대가 모조리 변절자들의 땅이 될 거야.”

근방 일대만 그렇게 되면 다행이지.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젠달은 물론, 오디트리아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을 정도의 수였다.

이제 폭발이 시작됐으니 황제 군이 들어오고 있을 터. 그곳은 처리는 그쪽에 맡겨도 되겠지.

“아줌, 아니 왕녀님. 말한 곳 다 부수면 데르아치 잡으러 가도 돼요?”

“렉스.”

“아, 왜. 월터 형. 포인이랑 약속했단 말이야. 잡아서 대장이랑 성녀님한테 주기로-.”

어린애가 떼를 쓰는 것처럼 칭얼거리던 렉스의 눈이 일순간 예리하게 변했다.

시선이 닿은 곳엔 활짝 열린 숙직실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공장장 파크.

아까 덤벼드는 것을 밧줄로 묶어서 숙직실 안에 던져놨는데, 그새 탈출한 모양이었다.

“내 공장……. 공장을……! 네놈들이!”

평생을 데르아치의 발닦개로 살다가 겨우 한 자리 차지한 그의 성이었다.

분노한 파크가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장식장이 옆으로 움직이더니 숨겨졌던 변절자 우리가 나타났다.

“다 같이 죽자!”

파크는 울부짖으며 우리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어……어째서?”

변절자는 우리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월터와 렉스의 신성력이 밧줄처럼 변절자를 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등진 채, 당황하는 파크의 어깨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것이 닿았다.

“끄어어…….”

파크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이 흘러갔고, 한 장면에서 멈췄다.

불에 탄 보육원. 제 검 아래, 울며 두 손을 모아 빌던 아이.

“살려주세요. 아저씨.”

파크는 자신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려ㅈ-.”

그러나 그의 시야는 빠르게 무너져 내려 바닥에 스며들었다.

***

“그릉. 그르릉.”

나는 배를 까고 누워 뒹굴 거리는 주인님을 구경하고 있었다.

폐하한테 받아먹은 게 맛있었는지, 아까부터 저러고 있더라니까.

“뭘 먹었길래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어둠. 작아서 별로일 줄 알았는데 신성력이 농축돼서 풍미가 짙었어.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지?]

주인님은 혀를 할짝댔다.

“퓨우!”

그 말에 놀란 퓨가 펄쩍 뛰어올랐다.

어둠이면 퓨랑은 동족 아닌가……!

애 정서에 안 좋은 소리를 들려줘 버리다니. 나는 서둘러 벌벌 떨고 있는 퓨를 가방 안에 넣었다.

“폐하 모습도 봤어?”

[응.]

“진짜? 어땠어?”

[멀쩡해 보이던데?]

크흡. 주인님 완전 부러워.

아까 틈 열릴 때 폐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웃거렸는데, 주인님 전용 통로여서 그런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내가 폐하의 사역마가 돼야 했는데……!”

[……성녀는 가끔 이상해.]

나는 아쉬운 대로 가방에서 폐하 포토 카드들을 꺼냈다.

내 남친, 개 잘생겼어.

폐하, 그거 알아요?

폐하 때문에 지금 내 마음도 전쟁 났어요. 폐하 진짜 아름다워(war), 귀여워(war), 사랑스러워(war).

“진짜 전쟁은 언제 끝나려나.”

내 마음속 전쟁은 그렇다 쳐도.

바깥은 계속 전쟁 중인데 나 이렇게 꿀 빨고 있어도 되나.

마지막에 등장하기로 했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지니 조별 과제 무임승차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단 말이지.

[곧 끝나지 않겠어?]

주인님은 식곤증이 몰려오는지 눈물까지 달고 하품을 크게 했다.

[내 계약자는 강하니까.]

“그건 그래.”

우리 폐하 실력이면 시간문제지, 뭐.

[상황이 정 궁금하면 출구에 얼굴만 내밀었다가-.]

주인님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한 곳을 주시하던 주인님의 동그란 눈이 점점 맹수의 눈처럼 매섭게 변하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왜 그래?”

[……내 땅에 다른 놈이 침입했어.]

“놈?”

뭔가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검은 인영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끄어…….”

“헐.”

변절자가 왜 여기에 있지.

지상에서 봤던 거랑 다른 점이 있다면, 언제나 몰고 오던 검은 땅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주인님, 변절자는 지하층 주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

[다른 땅의 저주받은 생명체가 감히 허락도 없이 내 영역을 어지럽히다니.]

크르르릉-.

노여움에 찬 커다란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내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 주인님은, 본모습으로 돌아가 변절자에게 달려들었다.

변절자는 주인님의 발톱에 찢겼다 붙기를 반복했다. 도중에 변절자가 몇 번 공격을 한 것도 같은데, 솜방망이로 때린 것처럼 주인님한테 타격을 하나도 주지 못했다.

문제는…….

콰과과과광.

[이 위대한 칼리드라누의 영토를-!]

……그 위대하신 분 땅, 위대하신 분이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퓨, 주인님 화 많이 난 거 같으니까 좀 멀리 떨어져 있자.”

“퓨우.”

괜히 화난 고래 옆에 있다가 새우 등 터질라.

내 목숨 절대 지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허공에서 틈 하나가 생기더니 낯익은 인물이 그 속에서 등장했다.

“서, 성녀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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