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05화 (105/150)

105화

에드워드가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지만, 카디얀이 뭐라 귓속말하자 놀란 듯 몸을 굳혔다.

아마 “저분이 폐하시다.”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놀라서 굳어버린 건 나도 마찬가지지.

갑자기 이렇게 안으시면!

숨, 숨 안 쉬어지는데……!

정신없는 나와는 달리, 폐하는 태연한 목소리로 왕녀님에게 물었다.

“여기엔 왜 왔지? 보니아 왕국은 내전 중이라 바쁜 걸로 아는데.”

“힐리스한테 당했어. 군대와 떨어져서 죽다 살아났지.”

“허술하군.”

“그쪽한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반말이 오가는 게, 뭔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들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볼프만을 제외한 우리는 눈치를 살폈다.

샤를 왕녀님이 말했다.

“저 애랑 하는 얘기를 좀 들었는데, 공장. 폭파할 거라며?”

“그래.”

“그거 나한테 맡겨줘.”

그 말에 폐하는 잠시 침묵했다가 날카롭게 물었다.

“어째서지?”

젠달의 일을 왜 보니아의 왕녀가 상관하느냐는 듯한 말투였다.

“갚아줄 게 있어서.”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공장이랑 힐리스만 나한테 넘겨. 데르아치는 그 쪽한테 줄 테니.”

샤를 왕녀님이 아득 이를 갈며 말했다.

“한 방 크게 먹여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거 같으니까.”

***

폐하와 왕녀님은 둘이서 할 얘기가 있다며 자리를 비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돌아왔다.

“공장 폭파와 아이들의 귀환은 샤를 왕녀가 맡기로 했네. 월터, 도와줄 수 있나?”

“네. 문제없어요.”

“하오나……. 고작 두 명으론 인력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월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카디얀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왕녀님은 폐하에게 건네받은 종이 뭉치를 살짝 흔들며 카디얀에게 말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면 소수 인원으로 움직이는 편이 낫죠. 공장의 도면이 있으니 폭파 작업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왕녀 쪽에서 사전작업을 끝내면 황제 군에서도 지원을 들어갈 거네.”

말이 척척 맞는 게, 두 분이서 어디 음악방송 엠씨 맡아도 되겠어.

나랑 가까이 앉아 있던 볼프만이 그 모습을 보다 궁금증을 터트렸다.

“파티쟝, 저 잘생긴 남자는 누구길래 우리 샤를이랑 사이가 좋니?”

“말조심해라, 해적. 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만한 분이 아니시니.”

에드워드가 당당히 말했다.

“누군데에?”

“그건…….”

“황제 폐하요.”

“뭐어~?!”

아까 폐하가 정체를 밝혀도 상관없다고 그래서 말한 거였는데.

볼프만의 반응이 격했다.

볼프만은 벌떡 몸을 일으켜 폐하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

녹스담 해역에서 폐하한테 당한 게 트라우마로 남았나?

하여튼 짧은 소란이 끝나고, 본격적인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딱히 작전에 투입되는 일이 없는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다들 죽는다. 왕녀는 전술을 모르는 모양이군.”

“그쪽이야말로. 신전에서만 살아서 전투 경험이 부족하지 않아? 여기선 내 말을 들어.”

“아니. 동의할 수 없다.”

“진짜 짜증 나게 구네. 이런 식이면 동맹이고 뭐고 없어.”

“계약을 깨자는 소린가? 나쁘지 않지.”

평화롭네.

내가 또 이 조합을 언제 보겠어……!

열심히 각막에 폐하와 왕녀님을 담던 중, 월터가 마실 것을 가져왔다.

“어? 나 주는 거예요?”

“네.”

싹싹해…….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친구 동생이 먹을 거 챙겨주면 이런 기분일까.

기특함에 감동하는데, 월터가 속삭였다.

“리리 님은 성녀님이시죠?”

“헉. 어떻게 알았어요?”

“포인한테 이야기 들었거든요.”

“포인? 양 갈래로 딴 오렌지색 머리카락이 매력적인 그 포인?”

기억나는 포인의 인상착의를 줄줄 읊자,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아까 폐하가 말하던 포인이 그 포인이었다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성녀님의 머리카락을 받고 배에 있던 신관이 치료를 해줬대요.”

다행히 포인은 내 머리카락으로 치료를 잘 받은 모양이었다.

이어진 월터의 얘기는 이랬다.

당시 신관은 외부에 노출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우리 (구)파티원들에게 의구심을 품었고.

감시 겸 그들을 모두 젠달의 신전으로 데리고 갔다 했다.

원래 젠달로 가려던 사람들이었으니 그 부분은 다행이라 여겨도 괜찮으려나.

그리곤 신관은 그 일을 황제 폐하에게 보고했는데.

“제가 대장, 그러니까 폐하의 명령을 받고 포인을 데리러 갔어요.”

“포인을?”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만, 포인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저주받은 아이들은 고열이 주기적으로 오르니까요. 저도 그렇고.”

“그럼 월터도?”

월터는 씩 웃었다.

“폐하가 즉위하시고 다음 해였나, 제가 일반인처럼 위장한 폐하의 주머니를 털다가 잡혔거든요.”

“헉.”

폐하한테 소매치기라니.

그런 무서운 짓을 해놓고 용케도 목이 붙어있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애한테 험한 소리 하면 안 되지, 안 돼.

“놀라셨죠? 그래선 안 되는 거였지만, 그땐 치료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는지 폐하 앞에서 저주 열이 올랐어요.”

저주 열이면 포인이 고생했던 그 열을 말하는 건가?

물어볼까 했는데, 이어진 월터의 말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렇게 폐하께서 절 구해주시고, 이곳에 데려다 놓으셨는데. 어디서 저 같은 애들을 하나씩 데리고 오시더라고요.”

월터는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폐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아니, 지금 우리 폐하 상당히 기분 나쁘시거든…….

저 오른쪽 눈썹 올라가신 것 봐.

내가 눈이 행복해서 모르는 척했지만, 페하……. 왕녀님이랑 냉전 중인 게 분명했다.

오늘은 폐하랑 거리를 좀 유지해야지. 불똥 튈라.

월터는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다 대장한테 목숨이 구해진 아이들이에요.”

월터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대장일 때의 폐하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라, 아주 흥미진진했지.

그러다 월터가 작전회의에 불려 가고, 나는 다들 회의에 집중하는 틈을 타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나갔는데.

‘윽. 볼프만이다.’

노을이 지는 옥상에 볼프만이 서 있었다.

아까 말을 섞긴 했지만, 일대일 대치 상황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이지.

‘이번에야말로 튀자.’

볼프만 위험해.

다시 내려가려고 뒷걸음질을 치던 그때.

“파티쟝!”

으으. 들켰잖아.

볼프만이 반가운 기색을 하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 여기 계셨네요?”

갑자기 복수하겠다고 공격하고 그러진 않겠지……?

머릿속에서 검게 변한 양팔로 갑판을 뜯어버리던 볼프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 보자.

반지는 내 손에 잘 있고, 신성석 주머니는 가방에…….

“으악!”

나는 가방에 손을 넣은 채 놀란 소리를 냈다.

볼프만이 내 가방에 얼굴을 들이밀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와. 간 떨어질 뻔. 진짜 놀랐네.

“여기에 있니?”

“뭐, 뭐가 있어요?”

내 신성석 주머니를 노리는 건가.

역시 약탈을 일삼는 해적이라서 그런지 돈 냄새 하나는 잘 맡…….

“내 상자.”

“엥?”

뭔 상자?

무슨 상자를 말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가방 속 손끝에서 퓨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여객선에서 볼프만이 상자 하나를 훔쳤지.

거기에 들어 있던 게 퓨였고.

그렇다고 볼프만에게 죄다 말해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시치미를 뗐다.

“없는데요?”

“그래~?”

예리한 줄 알았던 볼프만은 그냥 한 번 떠본 거였는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다 조금 강한 바람이 불었는데.

펄럭.

“……어?”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실내에선 로브에 덮여서 몰랐지.

볼프만의 양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게양한 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거~? 보니아 국왕 군 놈들이 잘랐지~”

“자, 잘라요?”

해적은 양팔을 자르기라도 하는 법이라도 있나.

당황해 말을 더듬거리는 사이, 볼프만이 신경질을 냈다.

“그렇다니까~! 그때 잡히지만 않았어도 내 팔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고!”

“더…… 아름다워져요?”

“너, 똑똑하니까 알고 있었겠지? 상자 안에 든 게 뭔지?”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파티쟝, 어둠이라고 들어봤니?”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이상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볼프만은 처음부터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던 듯, 제 말을 이었다.

“어둠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강해진단다. 동족을 먹고 강해지는 거야. 아름답지?”

그 소리에 내 시선은 볼프만의 펄럭이는 옷소매로 향했다.

녹스담 해역에서 벌였던 나와 볼프만과의 사투. 검게 변했던 볼프만의 양팔.

“어둠을 팔에 이식이라도 했어요?”

“너어……. 정말 똑똑하다니까! 파티쟝, 내 밑에 다시 들어오지 않을래애? 이번에는 부선장 자리를 줄 테니깐.”

볼프만은 탐난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엉겁결에 내뱉은 소리가 정답이었을 줄이야.

“아뇨, 전 이제 범죄 저지르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그래애~? 아쉽네. 그런데 말이야. 파티쟝.”

볼프만은 다시 내 가방을 보고 있었다.

설마 눈에도 어둠 이식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투시할 수 있다거나 그런……!

벌벌 떨지도 모를 퓨가 생각나 가방을 뒤로 숨겼는데, 볼프만이 히죽 웃으며 경고하듯 말했다.

“어둠은 조심해야 한단다? 벌레 같은데, 모이면 의지를 갖고 움직이거든.”

***

“……라는 얘기를 볼프만한테 들었는데, 무슨 소리일까요?”

동이 트기 전.

월터, 왕녀님, 볼프만을 데리고 황제군 진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폐하에게 어제 볼프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물어봤다.

“글쎄. 어둠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된다는 소리인가. 루에게 물어봐야겠군.”

“어, 주인님 보실 때 저도 같이 있으면 안 돼요?”

“되긴 하는데…… 왜 루한테 주인님이라고 하는 거지? 지난번부터 계속 그러는 거 같은데.”

“귀여우니까……. 그 귀여움 앞에서 인간은 한낱 집사일 뿐…….”

“이해할 수 없군.”

적당한 속도로 걷고 있는 말 위.

폐하와 나는 앞만 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확히는 내가 경직된 채로 앞만 볼 수밖에 없었지.

왜냐하면, 내 등 뒤엔…….

‘폐하……. 폐하가 내 등 뒤에!’

조금만 척추에 힘을 풀면 등이 굽어지고 등이 굽어지면 폐하의 몸에 닿고!

‘같은 말 타자고 했을 때 좋다고 덥석 물어버린 과거의 나 자신……. 반성해…….’

평정심. 평정심 찾아라, 신아리.

짧게 심호흡하고 고개를 숙였는데, 고삐를 잡은 폐하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크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