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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94화 (94/150)

94화

수상하다. 수상해.

뭔가 있는데. 분명.

저 잘생긴 얼굴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뭘까.

이 와중에 옆얼굴 라인 완벽한 것 봐. 솜털 하나까지 버릴 게 없네.

“…….”

결국 의심스러워하는 내 눈초리를 견디지 못한 폐하가 입을 열었다.

“뚫어지겠군.”

“이제 괜찮아지셨으면 말씀해줘 봐요. 왜 신성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

묵비권을 행사하신다, 이거지.

우리는 지금 보물창고에 와 있었다.

젠달의 황제만 대대로 출입할 수 있다는 보물창고.

다친 폐하의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안 된다고 하시고, 내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별수가 있나.

황궁에 있는 신성석을 찾다가 여기까지 와 버렸다.

눈에 보이는 치료계 신성석이란 신성석은 다 쓸어와서 폐하의 상처를 치료했고.

다행히 폐하는 평상시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멀쩡한 상태가 되셨다.

그리고 지금.

나는 폐하가 왜 내게 신성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지, 그것에 의구심을 품고 폐하를 추궁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왜 다치셨는지가 제일 궁금한데 그건 알려줄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

무슨 일이든 그건 폐하의 사생활이니 내가 알려달라 떼를 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신성력을 사용하고 말고는 내가 정할 문제였다.

아무리 폐하의 부탁이라고 해도, 이제는 이유를 알아야겠단 말이야.

“제가 몇 가지 추측을 좀 해봤는데요.”

나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폐하에게 펼친 손을 내밀고, 엄지를 접었다.

“첫 번째, 지금까지처럼 무능력한 성녀가 폐하 맘대로 다루기 좋아서.”

순간 폐하의 고개가 내 쪽을 향했다가 원위치 됐다.

“……그건 아니야.”

침착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난 봤지.

억울해 보이던 그 표정. ……귀여워.

“두 번째, 제 신성력이 폐하보다 강할 거 같으니까 견제하려고.”

“그럴 리가.”

폐하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가벼운 헛웃음이 섞인 걸 보니 이것도 아닌 모양이다.

하긴 이건 나도 아닐 거라 생각했어.

“세 번째, 제 신성력이 양날의 검이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내가 아무런 제약 없이 신성력을 펑펑 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되면 벌써 세계 통일해서 폐하 줬지.

“…….”

폐하는 다시 침묵했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내가 진짜 이건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약지를 접었다.

“네 번째, 폐하가 날 좋아하니까.”

폐하가 날 좋아하는 거랑 내가 신성력을 사용 못 하는 건 무슨 상관이냐고?

모르지. 뭐든 이렇다 할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불리한 질문엔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걸 보면,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저희 오늘 마지막 날인데. 위장 계약.”

“……알아.”

크흡. 폐하 입에서 안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나네. 남은 날짜는 나만 세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헤어지는 기념으로 알려주시면 안 돼요?”

“그런 걸 왜 기념해야 하지?”

내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폐하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런 핑계를 대고서라도 듣고 싶었다 이거죠.”

그랬지만 폐하한테선 아무것도 안 나올 거 같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를 가는…….”

“잠시만 계세요.”

카펫에 앉은 폐하를 두곤, 보물이 그득그득 쌓여있는 창고를 걸었다.

금화 더미를 몇 개 지나자, 바닥에서 커다란 신성석이 박힌 보물을 안고 뒹굴뒹굴하며 뒷발차기를 하는 주인님이 있었다.

폐하와 내가 정신없이 보물창고로 향했을 때 몰래 뒤쫓아 온 듯했다.

“그릉. 그르릉.”

“찾았다.”

“……갸아옹?!”

등허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놀란 주인님이 파바박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나인 걸 확인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몸이 굳었다.

나는 그런 주인님을 품에 안고 폐하에게 돌아갔다.

“…….”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주인님과 폐하가 슬쩍 눈이 마주쳤는데, 폐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디서 동네 고양이가 들어온 모양이군.”

“이 세계엔 날개 달린 검은색 고양이도 있어요?”

“……있겠지. 내가 밖에 풀어두고 올게. 이리 줘.”

“갸옹.”

몸을 일으킨 폐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주인님도 두 앞다리를 폐하한테 쭉 뻗으며 품을 옮겨갈 자세를 취한 그때.

내가 주인님의 앞발을 꾹 잡았다.

으으. 뭐야. 발바닥 젤리 완전 말랑해.

“갸오옹!”

“성녀……?”

둘은 내 돌발 행동에 몸을 굳혔다.

흡사 작당 모의를 들킨 한 패거리 같았다.

나는 폐하를 향해 생긋 웃었다.

“자연스럽게 안기려고 하네요? 폐하가 아는 고양이인가 봐요.”

“아니, 처음 본 고양이다.”

“거짓말.”

나는 끊을 수 없는 촉감에 발바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둘이 사람 말로 대화도 하던데.”

내 말에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폐하의 목울대가 움직였고, 주인님의 귀가 바짝 곤두섰다.

나는 누룽지 냄새가 날 것 같은 검정 뒤통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루? 그리고 폐하랑은 계약관계?”

주인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까 그 음산한 건물에서 들은 게 있단 말이지.

내가 건물 밖 인기척을 확인하러 나갔을 때, 둘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 괜한 짓을 했군.”

[계약자부터 살려야 하니까.]

당시엔 깜짝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

걸어 다니는 검은 달걀귀신이 죽음을 몰고 오는 세계인데, 말하는 고양이 정도는 충분히 있을 만도 하잖아.

“…….”

싸한 정적이 흘렀다.

폐하가 다급히 뭔가를 말하려 입을 움직였지만, 루라고 이름 불린 주인님이 내 손을 빠져나가 폴짝 바닥에 착지한 게 빨랐다.

[답답해서 안 되겠네.]

헉. 말했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에서 이런 말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제대로 듣는 주인님 목소리, 말 잘하는 어린애 같아서 귀여워…….

“루, 쓸데없는 말 하지 마.”

폐하는 주인님을 향해 검지를 들었다가, 나를 보곤 손가락을 접어 내리셨다.

지금 내 눈치 보신 건가……! 왜지! 심장 두근거리게!

이어진 대화는 주인님과 폐하만 아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성녀도 알 필요가 있어.]

“해결 방법을 찾고 알려줘도 될 일이야.”

[인간들 전쟁 때문에 시간도 없는데 언제 방법을 찾아?]

“찾을 거다.”

[사실은 두려운 거지? 성녀가 널 떠날까 봐.]

“…….”

어, 나 안 떠날 건데. 나한텐 폐하 얼굴밖에 없는데……!

그런데 이거 내가 듣고 있어도 되나.

고조되는 이야기에, 나는 슬쩍 금화 더미 옆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명당이네.

대화 내용은 그렇다 치고.

좋은 거랑 좋은 게 붙어있는 이 귀한 광경을 놓칠 수 없…….

[언제까지 성녀한테 죄책감을 느낀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거야?]

“죄책감? 그게 무슨 소리야?”

아, 나도 모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네.

날 올려보는 주인님의 세모난 입매가 움직였다.

[알고 싶어?]

“루, 이만 돌아가.”

폐하가 급히 검지를 다시 들어 올리자, 주인님이 내 옆에 있는 금화 더미로 뛰어 올라갔다.

츠츠츠-ㅅ.

꼭대기에 선 주인님의 그림자가 창고를 집어삼킬 기세로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그러자 폐하가 몸을 휘청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루!”

[방해하지 마. 계약자.]

벽에 비친 꼬리의 거대한 그림자가 살랑거렸다.

[왜 죄책감을 느끼냐고?]

주인님의 그림자는 창고를 밝히는 빛을 따라 일렁였는데, 마치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동그란 금색 눈동자가 나와 눈을 맞췄다.

주인님은 눈웃음을 치는 것처럼 눈매를 가느다랗게 만들며, 내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소환했으니까.]

***

“술식이 잘못됐다는 건가.”

[몇 군데가 틀려. 이런 걸로는 이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아무도 성녀를 소환 못 할 걸?]

초대 성녀 소환 이후, 오디트리아 대륙에 대대로 내려지던 성녀 소환진에 오류가 있었다.

그래서 몇백 년 동안이나 성녀 소환이 없었던 건가.

바버논 왕국이 두 번째 성녀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인가?

“그러면 고쳐야지.”

역사가 어찌 되었든지,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을 보면 될 일이었다.

알렌드는 루의 조언을 토대로 술식을 수정했다.

일반적으로 술식의 수정은 신관 여럿이 며칠 밤낮을 붙어야 할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알렌드는 어렵지 않게 해냈다.

그 과정에서 망설임은 없었다.

제국을 바꾸겠다는 그의 계획에서 성녀는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으니.

이튿날.

술식이 수정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성녀가 소환됐다.

그리고 알렌드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 자가 신의 사자라고?’

신화 속 성녀는 신과 동일시되는 존재였다.

고결하고 만물을 아우르는 자비함으로 인간과 신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성스러운 신의 사자.

모두가 그리 알고 있었고, 알렌드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잖아.’

신의 색을 몸에 지니고 묘한 매력의 외모를 가졌다.

하나 그 외의 것은 보이는 나이대의 여느 소녀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두려움이 어린 순진무구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 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알렌드는 되돌릴 수 없는 죄책감이 제 몸을 감싸는 기분을 느꼈다.

다른 세계의 평범한 소녀.

자신이 소환한 탓에 이 소녀의 삶은 영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폐하는 어떻게 그렇게 잘생기셨어요?”

“폐하! 제가 돈 벌어서 꼭 조각상 하나 해드릴게요!”

“윽……. 그렇게 웃으시는 거 제 심장에 안 좋거든요…….”

죄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해졌다.

자격조차 없으면서 따스함을 느끼고 웃음을 짓고 마는 자신이 혐오스럽기도 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지켜야 한다.’

알렌드는 다짐했다.

그녀가 이 세계에 살아가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내어 지켜주겠노라고.

성녀의 목소리만큼은 제 악몽에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그의 다짐과 달리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흘러갔다.

그 엉망진창을 이제는 성녀도 알게 되었고, 또 알게 될 것이다.

알렌드는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아리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하셨어요……?”

탓하는 것처럼 들리는 어조가 비수가 되어 알렌드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제가 무슨 자격으로 상처를 입는단 말인가.

알렌드는 덤덤하게 말했다.

“성녀의 이름이 필요했어. 이 제국을 바꾸려면 신의 대리인 정도는 돼야 모든 제국민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신성력은요? 왜 사용하면 안 되는데요?”

“……신성력을 사용하면 성녀의 몸에 무리가 가. 몸이 이전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니아의 초대 성녀가 그랬다더군.”

“초대 성녀만 그런 건 아니고요?”

[내가 확인해봤지. 성녀도 아슬아슬해.]

바닥으로 착지한 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성력 계속 사용하면, 죽을걸?]

“아니. 죽지 않아.”

그 말에 아리의 눈이 알렌드에게 향했다.

언제 보아도 신비로운 그녀의 눈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그건 저에게도 마찬가지. 아마 처음부터 저 눈에 홀렸는지도 몰랐다.

알렌드는 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다.”

“……그럼 폐하.”

아리가 찬찬히 입을 열었다.

“더 숨기시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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