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이게 얼마만이야.
오랜만인 주인님의 등장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보드라운 털, 작은 날개, 동그란 눈망울, 앙증맞은 입 모양…….
당연히 내 방으로 올 거라 생각하고 발코니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안 올라올 거야?”
“갸아옹.”
이쪽을 올려보기만 하고 도통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에는 파닥거리는 날개로 잘만 올라왔는데.
‘아, 설마 결계 때문에 못 올라오나?’
나는 아래를 향해 소곤거렸다.
“막혀 있어서 못 오는 거야?”
“갸옹.”
가만히 서서 울고만 있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었다.
“……어쩌지?”
나는 고개를 돌려 닫힌 방문을 바라봤다.
“오늘 야간 호위를 헨켈 대장이요?”
“폐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 문 너머엔 헨켈 대장이 있었다.
오랜만에 온 주인님을 이대로 돌려보내기도 뭣하고.
대장한테 말하고 잠깐 내려갔다가 올까……?
“아.”
헨켈 대장한테 못 보여주지. 참.
날 닮은 검은 털이 문제였다. 신의 색을 몸에 두른 동물.
‘에본 재상님한테 물어봤을 땐 호의적인 반응이 아니었단 말이지.’
“검은 털을 가진 동물이라고 무작정 신수로 볼 수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겠죠.”
“왜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께서 보내주신 것인지 아닌지. 가장 쉬운 예로, 변절자는 몸 전체가 검은색인 존재죠.”
결국 성녀처럼 사람들이 믿고 따르려면, 신의 보증이 필요하단 말이었다.
"이건 안전하니 마음껏 숭배해라” 같은.
그러니 주인님을 본 헨켈 대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
“갸옹, 갸오옹.”
고민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주인님의 울음소리가 보채는 것처럼 빨라졌다.
평상시랑 다르다. 설마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상태만 보고 오자.’
나는 투명해지는 망토를 입고 익숙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어디 다쳤…….”
“갸옹.”
결계 바깥으로 나오자, 주인님이 기다렸다는 듯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리곤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를 가는 거지?
가다가 멈춰 서서 돌아보고.
또 가다가 멈춰 서서 돌아보고.
그러다 내가 꿈쩍 않고 서 있자, 다시 돌아와 내 망토 자락을 툭툭 쳤다.
크흡. 뭐지. 뭔데 귀엽지.
“따라오라고?”
다시 앞서 가는 주인님한테 물었다.
뒤를 돌아본 주인님은 작은 머리통을 끄덕여 울음소리를 냈다.
“갸-옹.”
***
루가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가 가진 신성력은 거대했다.
너무나 거대해서 자주 제가 담긴 그릇의 크기를 만족하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세월이 지나 그릇은 크기가 커지고 견고해졌지만.
이따금 속에서 들끓는 거대한 양의 신성력은, 그를 여전히 힘들게 만들었다.
“갸옹.”
루는 웅크린 채 신음을 흘리는 자신의 계약자를 바라봤다.
[왜 무리를 해선.]
저주받은 아이들의 마을, 쿠카.
그곳의 아이들을 도와준 것부터 문제였다.
서른 명에 달하는 아이의 신성력 안정화를 도와줬으면, 본인도 며칠은 신성력 안정화를 위해 쉬어야 하건만.
변절자들과의 전투에, 검은 땅 정화 작업에, 궁의 결계 작업에.
루의 힘까지 끌어다 쓴 탓에 그릇과 힘의 균형이 어그러졌다.
“으……ㄱ…….”
계약자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가 낫기를 반복했다.
그릇이 깨지고 붙는 현상.
바스러지는 검은 상처 아래 새살이 돋아났다.
연기가 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던 자가 재생도 이제는 속도가 더뎌졌다.
상처를 입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 안 되겠어.]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이러다 계약자의 몸이 완전히 깨져버리면 다시 붙일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혼자서 치유될 수준이 아니야.
루는 괴로워하는 자신의 계약자를 뒤로하고 공간을 빠져나왔다.
[데려올게.]
***
프로딘타 궁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되는데.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주인님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갔다.
이리저리 인적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도착한 곳은.
“어?”
익숙한 장소였다.
지붕이 있는 야외 복도, 철문이 굳게 닫힌 오래된 건물.
내가 지난번에 유령 소리 듣고 기절한 곳이잖아.
그때 문도 화려하게 날아가지 않았나.
다행히 수리가 끝난 건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여긴 왜?”
문 앞에서 주인님은 나를 올려다봤다.
마치 닫힌 문 앞에서 원하는 게 있는 듯한 조르는 이 눈빛.
열어달라는 건가……! 여긴 좀 무서운데……!
“열어줘……?”
“갸옹.”
“…….”
윽. 저 동그란 눈으로 간절하게 보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찮은 인간이 들어 드려야지, 별수 있나.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철의 감촉에 오싹 몸이 움츠러들었다.
야밤에 폐가 들어가는 기분. 긴장돼서 청력이 올라갔는지 주인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조금만 열면 무서우니까 아예 활짝 열어젖히려고 했는데.
“으아아……!”
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신음에 놀라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끼이익 하고 열리던 문이 멈추자, 주인님은 나를 슬쩍 올려다보고 문틈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가야 하나?’
고작 문 열어달라고 날 데리고 온 것은 아닌 거 같고.
뭔가 더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건물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낡은 벽지, 먼지가 쌓인 창틀, 벽에 걸린 초상화들…….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듯한 낡고 작은 별채였다.
“갸아옹.”
멍하니 서서 뭐 하느냐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은 1층과 2층이 연결된 계단 뒤쪽의 복도였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밟으며 복도로 들어가니 가장 끝방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후덥지근하고 묵직한 공기가 살갗에 달라붙었다.
창문이라곤 하나 없는 창고 같은 어두컴컴한 방.
“……으윽…….”
바닥에서 누군가 고통에 차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저 잘생긴 형태는…….
“폐하?”
“…….”
순간 신음이 멎고 침묵이 가라앉았다.
“폐하? 폐하죠?”
“……나가.”
목이 쉬어 거칠어진 목소리. 폐하다.
나는 곧장 방안으로 달려갔다.
힘겹게 숨을 쉬는 폐하 앞에 무릎을 대고 앉아 신성력으로 주위를 밝혔다.
“어, 어…….”
“……나가. 신아리.”
폐하의 몸이 이상했다.
피가 나오는 건 아닌데, 태운 것처럼 새카만 상처가 몸 곳곳에 생기고 있었다.
치료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해 보이는 상태였다.
너무 아파 보여, 차마 몸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내 두 손이 폐하의 몸 위 허공에서 갈팡질팡했다.
“폐하, 어, 어디서 다치신 거예요? 이거, 이거 어떻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주인님을 따라왔다는 것도, 폐하와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폐하의 팔이 있었다.
나는 팔에 난 환부에 손을 가져가 치료계 신성력을 사용했다.
‘아물고 있어.’
다행히 눈에 띄는 속도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셔츠 사이로 보이는 폐하의 몸엔 아직도 상처가 많았다.
시야에 들어온 상처만 봐도 이렇게 심한데, 보이지 않는 곳은…….
걱정된다고 멈춰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음, 다음, 다음.
정신없이 상처를 향해 움직이며 신성력을 사용하던 그때, 폐하의 왼손이 내 양손을 붙잡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하지 마.”
“왜요, 이렇게 괴로워하시면서……!”
“신성력……. 사용하지 않기로 했잖아.”
“지금이 그럴 때예요?! 저한텐 그 약속보다 폐하 낫는 게 우선이라고요!”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직 치료하지 못한 상처들에 시선을 뒀다.
폐하한테 붙잡힌 손을 빼려고 몸부림치는 도중, 코끝에 맺혀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땀방울인 줄 알았는데, 입술에 묻은 액체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신아리.”
폐하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대신 내 몸부림을 막으려고 하셨는지,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바닥에 쓰러진 폐하의 상반신 위에 내 몸이 겹쳤다.
폐하의 어깨에 내 옆얼굴이 닿았고, 내 목덜미 위에 폐하의 얼굴이 있었다.
땀에 젖은 피부와 높은 체온, 가쁜 숨소리.
“지금까지처럼, 능력 없는 성녀로도 좋아.”
깊고 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 음성이 상처 입은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켜줄게.”
“……폐하?”
“그러니까. 신성력은 사용하지 마.”
가슴이 찌릿하고 아파져 왔다.
폐하의 감정이 내게 직접 전달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폐하는 마치 울음소리를 터트리듯 내게 애원했다.
“제발.”
***
보니아 왕국.
샤를이 주최한 만찬 자리에 그녀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모였다.
식탁에 앉은 모두가 요리를 즐기는 와중, 샤를은 물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주받은 아이들이라.’
세이칸 신의 축복인 신성력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몸이 그 축복을 거부하는 아이들.
주기적으로 지독한 열병이 오고, 그때마다 신관에게 신성력 안정화를 받지 못하면 생을 일찍이 마감하게 되는.
끝이 보이는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두고 세이칸 신에게 저주받은 아이들이라 말하곤 했는데.
“신성력이 맞지 않는 게 아니라 몸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신성력을 가진 거다.”
젠달 황제의 말대로라면 저주받은 아이는 신성력 양이 월등히 많은 인재라는 소리였다.
자신이 잡혀있던 마을은 그 인재들의 마을이었고.
남자가 신분을 숨기고 그 마을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안 드네.’
샤를은 머릿속에 떠오른 알렌드의 얼굴에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황제가 그런 인재들을 독점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보니아는 젠달처럼 신성력에 목을 매는 국가가 아니니.
지금 샤를의 울분이 터질 것 같은 건 그 쪼잔한 남자가 제 말을 들어 먹질 않은 탓이었다.
‘변절자를 성녀가 상대해?’
보니아 왕국으로 돌아온 샤를은 그 소식을 듣고 기가 찼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황제에게 성녀의 정보를 흘렸는데.
‘못 믿을 남자야.’
역시 제가 데려와야겠다.
델칸을 찾고, 전쟁을 끝낸 뒤.
그 남자와 헤어지든 말든 성녀를 보니아로 데려올 것이다.
새장이든, 거대한 신전이든. 나갈 수 없는 곳을 만들어 성녀를 둘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일이다.
‘신성력을 계속 사용하면 성녀는…….’
역사책의 기록을 떠올린 샤를이 아랫입술을 남몰래 깨물었다.
‘죽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