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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73화 (73/150)

73화

젠달 황궁엔 유명한 철벽남이 셋 있었다.

한 명은 헨켈 대장, 또 한 명은 에본 재상님.

다른 한 명은 우리…….

‘알렌드 칸 레오디우스 폐하.’

허퍼슨의 그물 발언에 홀라당 넘어갔던 과거의 내가 이해 가지 않을 정도로, 폐하는 철벽이 장난 아니었다.

오는 사람 막고 가는 사람 막지 않으시더라니까.

그런 폐하가, 나한테 그렇고 그런 의미가 담긴 초콜릿을 받고 싶다고 말씀하시다니-!

이건, 이건.

‘폐하, 너 나 좋아하시냐……!!’

허억. 또 호흡곤란.

나는 손에 쥔 종이봉투를 입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이게 웬 종이봉투냐 하면.

오늘.

폐하가 마차에서 했던 ‘밸런타인 초콜릿’ 발언의 의미를 방에서 혼자 곱씹는 중이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과호흡이 와서 하나 옆에 두고 사용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분명 내가 모르는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니까.’

내 망상에 내가 한두 번 당해보나.

‘이건 백 프로 착각이다.’

후우. 후우.

나는 세뇌하듯 나를 타일렀다.

호흡이 진정되니 내 마음도 진정되는 거 같……긴 무슨.

“후후…….”

종이봉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보니 난 글렀다.

각막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콩깍지가 머리에도 붙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이놈의 콩깍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하지…….’

내가 예전에 폐하에 대한 내 감정이 언젠간 끝나버릴 거라 했던 거, 정정합니다.

아무래도 이건…….

유효기간도 없는 감정인 거 같으니까. 흑흑.

하루하루 좋아하는 감정만 더 커지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냐고…….

하지만 폐하는 날 안 좋아하시잖아? 그래서 남은 생의 연애는 포기하겠다고 결심한 지 몇 주 됐다.

나는……. 다른 사람과 행복한 폐하 멀리서 보면서 살아갈 자신이 있어…… 라며.

그런데 지금 쌍방의 여지가……!

폐하가, 초콜릿을! 내 마음을……!

윽. 또 호흡이.

‘아닐 거라고.’

후우. 후우.

부풀었다가 꺼지길 반복하는 종이봉투처럼, 내 설레발도 밤새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

그리고, 다음날.

역시나 삽질이었다.

“지난번 다과회에서 시식했던 새 디저트가 출시됐다던데요?”

아침 식사 후, 잠시 수다 떨 시간이 생겨 시아나와 다른 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초콜릿! 성녀님, 들으셨어요? 그것 때문에 요즘 황도가 난리더라고요! 초콜릿에 있는 폐하 초상화를 모아가면 밸런타인인가 하는 다른 초콜릿도 준다면서요?”

“저도 들었어요. 그걸 받으면 성녀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던데요? 그런데 성녀님……. 앙뜨완 제과점에서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아, 응. 내가 허가했어.”

“정말요? 어쩐지. 저 본점에 빵 사러 다녀왔는데, 성녀님이 허가하신다고 적으신 편지랑 머리카락을 액자에 넣어서 전시해 놨더라고요.”

윽. 올리비아.

머리카락 전시라뇨…….

하여튼 그렇게 분위기를 탄 대화는 앙뜨완 제과점에서 나온 초콜릿을 주제로 흘러갔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단 말이지.

밸런타인 초콜릿 얘기가 죄다 ‘성녀님의 축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음……. 있잖아. 혹시 밸런타인 초콜릿에 축복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 다른 사람한테 줘야 한다거나.”

하녀 한 명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설마요. 성녀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하겠어요?”

거기에 다른 하녀들도 내 질문에 대답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는지,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종합해보자면 대충 이랬다.

처음엔 앙뜨완 제과점의 상술 문구인 줄 알고 다들 장난으로 넘겼는데.

본점에 전시된 내 머리카락이 신뢰도를 확 높였고.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싹 빠지고 ‘성녀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만 남았다…….

그 결과,

[밸런타인 초콜릿을 먹으면 성녀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는 낭설이 제국에 미신처럼 퍼졌단 말이지.

무슨 버프 아이템도 아니고-!

‘폐하도……!’

폐하도 그 버프 아이템이 탐나셨던 게 분명했다.

“밸런타인 초콜릿의 의미? 들어서 알고 있어.”

‘들어서’라고 말씀하셨으니까.

크흡. 어쩐지 찝찝하더라니!

아닌 거 같더라니!

“후후…….”

나는 혹시 몰라 오늘도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쌍방이라니. 어림도 없었다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니, 옆에 앉은 시아나가 물었다.

“성녀님, 어디 가세요?”

“헬리한테…….”

***

헬리는 점심 준비로 바빴다.

애초에 목적은 빈 보조 주방을 빌리기 위함이었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듄이 오늘 호위인 건 상관이 있었다.

내가 리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황실 근위대에서는 부대장인 카디얀까지였다.

듄은 모른다는 거지.

“헬리한테 받은 레시피를 혼자서 연습해 보고 싶어요. 실패하면 부끄러울 거 같으니 듄 경은 문밖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대신 10분에 한 번씩 생존 신고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듄을 복도로 내쫓은(?) 뒤, 보조 주방에서 폐하에게 줄 초콜릿 만들기에 돌입했다.

“오, 냄새 좋다.”

벅벅벅벅.

나는 절구로 카카오닙스와 설탕, 기타 재료들을 한데 모아 갈듯이 빻는 중이었다.

미리 만들어둔 초콜릿을 중탕해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었지.

예전에 400번 저어 만들었던 달고나보다 중노동이었지만, 나름 할 만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단순 작업을 하니까 생각이 드는 게, 어차피 내 인생 목표는 폐하 얼굴 평생 보고 사는 거였고.

폐하 행복하게 만들기 계획도 현재진행형이고.

연애가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니까.

“폐하가 뭘 갖고 싶다고 말씀하신 건 처음……은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요즘은 뭐 해달라고 얼굴 공격 안 하시네.”

후후. 나도 이제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이전처럼 그냥 당하진 않지만!

……아냐, 당할 거 같긴 하다. 폐하 미간 보는 연습 좀 더 해야겠어.

어쨌든, 오랜만에 폐하가 갖고 싶다고 하신 거였으니.

나는 재료와 노하우를 아낌없이 때려 넣고 폐하한테 줄 초콜릿을 만들었다.

“오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초콜릿의 자태를 보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지.

돌을 조각하던 훈련의 성과가 여기서 나올 줄이야……!

원반 모양의 판 초콜릿에 새긴 폐하의 옆얼굴이 그럴듯했다.

미모를 온전히 담아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이마랑 콧대, 입술 모양과 턱선이 살아있다는 게 어딘가!

기특하다. 내 손.

하지만.

“이대로는 부족해.”

기왕 이렇게 완성한 거, 장식도 제대로 해보자 싶었다.

보조 주방을 뒤져도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다음 생존 신고는 10분 뒤였기에, 멀리 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근처에서 잎이 시든 가지에 핀 주황색 꽃을 발견했다.

‘겨울인데도 꽃이 있네?’

탐스럽게 핀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 세 송이를 따서 돌아왔다.

접시에 조심스럽게 초콜릿을 올려놓고 꽃으로 장식한 다음, 접시 뚜껑을 닫고 리본으로 묶었다.

“이제야 좀 깜짝 선물 같네.”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대로 접시를 가지고 폐하에게로 향했다.

“폐하, 저 드릴 거 있어요!”

주말 오후라 집무실엔 폐하와 헨켈 대장뿐이었다.

나는 오전 시간을 갈아 넣은 뿌듯한 결과물을 폐하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어제 받고 싶으시다고 하신 거요.”

그러자 폐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는데, 나 아무래도 이 순간을 위해서 지금껏 살아온 건 아닐까.

“빨리 열어보세요!”

“그러죠.”

폐하는 접시 뚜껑을 슬쩍 들었다가 다시 닫으셨다.

그런 뒤, 내 뒤쪽의 헨켈 대장과 듄을 향해 손짓했다.

두 사람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고 문을 닫자, 폐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성녀, 확인차 묻는 건데. 이거 의미를 알고 가져온 건가?”

“의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의 의미.

아주 잘 알고 있죠. 성녀의 축복인가 뭔가 그렇다면서요. 흑흑.

“네, 당연히 알고 있죠!”

“…….”

목소리에 힘을 담아 주억거리니, 폐하는 잘못 본 걸 확인하려는 듯 뚜껑을 열었다.

“정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고?”

“그렇다니깐요.”

폐하의 얼굴이 보기 드물 정도로 심각한 얼굴이었다.

무슨 이상이 있나 싶어 같이 초콜릿을 바라봤는데, 멀쩡한데?

접시 위의 초콜릿이랑 주변을 장식한 꽃. 문제 될 건 없어 보이는데.

‘아, 혹시 시판되는 거랑 모양이 달라서 마음에 안 드시나?’

원래 밸런타인 초콜릿이라고 증정하는 건 동글동글한 모양의 초콜릿이었다.

‘동그란 모양이 좋으셨나? 하긴, 버프 아이템으로 먹으려면 하나씩 먹기 좋은 형태가……. 아니, 그런데 ‘성녀의 축복’ 같은 효과는 없는데.’

나는 머리를 핑핑 돌렸다.

그러다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과 달리, 폐하 귀 끝이 평소보다 붉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화가 나신 건…… 아닌 거 같은데?

“……성녀.”

폐하는 접시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멀뚱멀뚱 보고 있었는데, 폐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성녀의 개방성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엥.

“이런 건 좋지 않아.”

폐하가 받고 싶다는 걸 드리고,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나는 왜 무언갈 크게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가.

분명 근심 걱정 가득한 폐하의 저 얼굴 때문이지 않을까……!

무슨 일인데요……!

폐하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이 정도에서 만족했으면 좋겠군.”

“어……어어……!”

그리곤 아무 목적도 없이 날 포옹해주셨단 말이지!

폐하가! 아무 목적도 없이!

이건,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나는 폐하한테 쫓기듯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단단히 부여잡고.

그 길로 보조 주방으로 향했다.

폐하한테 줬던 초콜릿을 그대로 재현해서 헬리에게 가져갔다.

오후 5시경이었다.

“여기에 이상한 점 있는지 좀 봐주세요.”

그러자 헬리는 굉장히 난감한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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