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으아아아…….”
반지를 진정시키는 게 늦어버렸다.
미처 막지 못한 노란 광선이 마차 천장에 뿅 하고 손톱만 한 구멍을 냈다.
깔끔하게 뚫린 구멍에서 한줄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퓨우!”
오늘 내내 허리춤에서 인형처럼 얌전히 있던 퓨가 폴짝 뛰어올랐다.
갑작스러운 신성력 공격에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하냐아-!’
겉은 흔한 디자인의 마차지만 속은 고급 자재를 한가득 넣어서 만들었단 말이지…!
저 구멍 난 천장 수리하려면 외제차 수리 비용 뺨 때릴 정도의 견적이 나올지도!
‘연기라도 그만 피어오르게……!’
손으로 두드리면 연기가 좀 죽지 않을까.
당황한 마음에 허둥지둥 일어났는데, 폐하가 막아섰다.
“괜찮아.”
“제가 안 괜찮은데요……!”
“그러다 손도 태우지 말고. ……다치면 곤란하니까.”
“넵.”
다치는 건 내 손인데 왜 폐하가 곤란하실까 싶었지만.
우리 폐하가 곤란한 건 사양이었다.
일단 말을 듣자.
‘크흡. 폐하 마차 기물파손이라니.’
나중에 변상 어떻게 하는지 재상님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폐하는 내가 반지로 공격계 신성력을 사용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네?
호프만 배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수호의 반지는 말 그대로 수호 계열 신성력에 특화돼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내 신성력을…….
‘아실 리는 없고. 수호의 반지에 공격계 신성석도 붙어 있나?’
반지의 원래 모습을 본 지도 오래되긴 했다.
초비가 원단으로 묶어준 뒤로 한 번도 안 풀어봤으니까.
‘워낙 휘황찬란한 반지였으니 작은 신성석 하나 정도 더 붙어 있었을지도……?’
생각에 잠겨 잠시 말이 없었는데, 그게 의기소침해 보인 모양이었다.
폐하가 위로라도 건네듯 입을 열었다.
“반지 사용하는 게 꽤 늘었던데.”
“네?”
“고민 많이 했잖아. 생각대로 잘 안 된다고.”
암요. 생각대로 잘 안 됐죠.
이렇게 마차도 태워 먹었는걸요.
“아까 검 밀어내는 실력이 수준급이더군. 결계 사용하는 건 걱정이 없겠어.”
“그, 그럼요! 걱정 없다니깐요!”
세상에. 나 지금 폐하한테 칭찬 들었냐.
겸손한 척,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싶었는데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간다.
확 불어버릴까? 나 천재인 거 같다고?!
안 불어버리겠지만-!
“이게 다 폐하가 주신 반지 덕분에…… 아, 맞다.”
가방 안에 잊고 있던 물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올리비아의 보석상에서 플렉스를 펼친 날.
단체로 맞춘 브로치와 다른 물건들은 당일 배송이 됐는데.
“신성석이 들어가는 건 제작 주문이라 며칠은 기다리셔야 해요.”
폐하 선물만 나오는 게 오래 걸렸다.
나중에 폐하가 다들 하고 있는 브로치가 뭐냐고 물어보셨을 때도 기다리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 흑흑.
“지난번에 따로 드린다고 했던 거 기억하세요? 오늘 오전에 올리비아 씨한테 받아왔거든요.”
나는 가방 속을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분위기라곤 하나 없는 선물 증정식이었다.
하지만 깜짝 선물은 폐하한테 선물을 준다고 예고한 시점부터 물 건너갔다고.
‘저 봐, 폐하도 기대하지 않으…….’
“흐음.”
“엥?”
윽. 나는 눈부심에 눈을 슬쩍 감았다.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찬란해져도 되는 건가요.
‘폐하가, 폐하가!’
기대하는 눈초리를 하고 계셨다.
다른 사람도 모르고, 폐하도 모를 미묘한 반응이었지만.
저건 분명 폐하가 흥미 있을 때 짓는 표정이란 말이지!
가령, 날 한창 폐하 전용 지니로 굴리셨을 때라든가.
후후. 그리운 지난날.
하여튼.
나는 지금 뜻밖의 상황에 기대감으로 심장이 요동쳤다.
‘기대하고 계셨나……! 설마!’
왜지? 무슨 선물이란 이야기를 안 해서?!
그래서 어떤 선물을 받을까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나!
폐하가……!?
“후후……. 폐하, 제가 드릴 건 말이죠! 바로!”
나는 관객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처럼 자신만만하게 가방 속에서 선물을 꺼냈다.
“신성석이 들어간 브로치!”
보관함을 열어 보이자 벨벳 안감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브로치가 드러났다.
“…….”
“……폐하?”
예상과 달리 폐하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성녀가 최고야!’ 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하는 눈으로 보실 줄이야.
‘으. 역시 브로치 말고 다른 걸 골랐어야 했나.’
폐하는 단체로 돌린 브로치 말고 다른 특별한 걸 기대하셨을지도.
보석상엔 셀 수도 없는 종류의 물건들이 있었지만.
문제는 내 사심이었다.
팔찌도, 반지도, 시계도, 목걸이도, 그 외 등등도.
폐하한테 드린다 생각하니까 죄다 흑심 가득한 선물로 보이더란 말이지……!
이것도 아웃, 저것도 아웃.
흑심이 없어 보이는 선물에 초점을 맞추고 퇴짜를 놓다 보니.
결국 남은 건 브로치뿐이었다.
[이게 웬 브로치냐고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브로치 선물했거든요!]
라는 미래의 변명까지 생각해가며 골랐었지.
다른 사람들 것보단 보석이 더 많고 디자인이 더 화려하긴 하지만.
‘재료도 그냥 브로치랑은 다르다니까.’
브로치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보석이 맑고 푸른 바닷속처럼 일렁였다.
“치료 계열의 신성석인가.”
“네! 폐하가 갖고 계신 신성력에 치료 계열이 없다고 해서요. 일부러 골랐는데…….”
조각상 잔금 치르고 남은 돈에 이번 신메뉴 계약금까지 탈탈 털어 넣었다.
모르긴 해도 이 마차 한 대값은 하지 않을까……!
“마음에…… 안 드세요?”
걱정되는 마음으로 폐하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다행히 폐하는 브로치를 집어 들었다.
“마음에 들어.”
그리곤 옷깃에 슬쩍 얹고 입꼬리를 올려 여유롭게 웃으셨다.
“이렇게 하면 되나?”
으아아, 미쳤다.
올리비아 씨가 브로치 고를 때 너무 화려한 거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지금 당장 가서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쓰레기 같은 고민을 했었다고……!
그래, 다 부질없고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저 외모가 제일 화려한데, 무슨!’
세상에서 화려한 것들을 죄다 갖다 붙여 봐라.
폐하 얼굴밖에 안 보일걸……!
‘으으. 버틸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밝은 빛을 보면 잠시 시력을 잃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나.
아까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폐하에 나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눈꺼풀 위를 마사지하듯 눌렀다.
선물 받고 미소 짓는 폐하라니.
너무 강한 위력이었다.
놀란 내 안구, 진정해.
“고마워. 잘 쓰지.”
“네…….”
그리곤 침묵이 조금 일었다.
내 안구가 안정을 찾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조금 가라앉고.
내 청력이 폐하의 숨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할 때쯤, 폐하가 가만히 물었다.
“……그건 안 주나?”
“그거요……?”
받고 싶으신 게 따로 있으셨나?
그래서 아까 전 반응이 조금 미적지근하셨던 건가……!
“폐, 폐하,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물었다.
우리 폐하가! 갖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는데!
그게 뭐든 구해다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뭐든……! 말만 하시라고요!’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밸런타인 초콜릿.”
폐하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요청에, 나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네에?!”
***
때는 작년 말.
“고대엔 ‘백칸’ 열매를 의식에 사용했습니다.”
수업을 듣던 나는 툭 하고 깃펜을 떨어트렸다.
에본 재상님이 수업 자료로 가져온 그 열매가, 카카오 열매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건 열매가 아니라 금괴였다.
규모가 다른 덕질 자금 냄새에 내 뇌세포는 빠르게 신호를 보내며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오래된 기억 속에서 정보를 끄집어냈다.
중2 여름방학 과제였던 ‘초콜릿 제조과정 조사 보고서’를!
덕자 쌤, 감사합니다. 그때 귀찮은 과제 주셨다고 투덜거렸던 거 반성할게요.
그리고 그 조사대로라면.
‘이 세계에서도 초콜릿을 만들 수 있어……!’
물론 이론과 실전은 달라서, 열매에서 초콜릿까지의 제작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 곁엔 신의 요리사라 칭송받는 헬리가 있었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초콜릿을 만들어내고야 말았지!
그게 데르아치 혼쭐용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지만.
역시 초콜릿. 강하다.
초콜릿 덕분에 앙뜨완 제과점은 이례 없는 호황을 누렸고.
제국민들도 초콜릿에 열광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폐하까지 밸런타인 초콜릿을 알고 계실 줄이야.’
사은품으로 주는 판 초콜릿 안에 있는 폐하의 포토 카드.
그걸 7종 전부 모아서 오면 새롭게 증정하는 게 ‘밸런타인 초콜릿’이었다.
이전 세계에선 초콜릿을 주는 게 상술이란 말이 있었지만.
밸런타인데이같이 연인들을 위한 두근두근한 이벤트를 만들 기회를 놓칠 순 없었지!
게다가 폐하의 포토 카드를 전부 모을 정도면, 같은 덕질러가 아니겠는가-!
동지한테 선물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중복 증정 방지를 위해 포토 카드에 넘버링을 넣고.
7종을 모아오는 사람에게 ‘밸런타인 초콜릿’을 증정한다는 안내문을 넣었다.
‘밸런타인 초콜릿’에 동봉하는 안내문에는 신을 좋아하는 젠달 맞춤형으로,
[밸런타인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보세요. 함께 먹으면 세이칸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라는 홍보 문구를 넣으려고 했지만,
“세이칸 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올리비아가 많이 걱정했다.
“그러면 성녀님이 축복해준다고 하죠. 뭐.”
“리리 님, 그 문구도 저희가 함부로 사용하기엔…….”
후후. 걱정도 팔자다.
성녀가 나고, 내가 성녀인데.
그래서 성녀한테 허락받았다는 의미로 내 머리카락을 한 올 가져왔더니, 안심하고 진행했다.
하여튼.
일의 배경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지금 중요한 건.
폐하가 밸런타인 초콜릿을 받고 싶으시다고 말한 거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초콜릿을!
“……폐하, 그, 밸런타인 초콜릿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계시는 거예요……?”
조심스럽게 물어본 내 말에 폐하는 들어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무슨 의미인 줄 알고 계신다……!
폐하가……!
‘이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말라는 건가?!’
쿠다다당.
쿠다다다다당.
나무 방망이 한 쌍이 내 심장에 대고 격한 다듬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