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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70화 (70/150)

70화

“정말 리리 님은 은인이세요.”

앙뜨완 제과점 본점 귀빈실.

올리비아는 창문 밖을 보며 크게 감탄했다.

“빵을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하면 사은품으로 다음 달에 출시하려던 디저트를 주는 거죠!”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다들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였지만.

-‘그 귀한 걸 왜 그냥 주지?’ 같은 반응이 대다수였다.-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도, 본점은 벌써 한 분기 매출을 달성했다고 했다.

공장의 빵집에 파리가 날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어요? 리리 님은 사업 쪽으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신가 봐요.”

후후, 그야 저 살던 세계에선 그런 마케팅이 널리고 널렸었으니깐요.

수많은 사례를 이전부터 봐온 덕분에 나는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폐하의 초상화.

솔직히 그건 포토 카드를 갖고 싶은 내 사심 채우기용으로 제작한 판화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오늘은 길에서 직거래 교환하는 것까지 목격했다니까-!

이것 봐. 다들 몰랐는데 폐하 좋아하지…….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죠? 리리 님껜 뭐든 다 해드릴 수 있어요.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

“에이, 사업 동료인데 이 정도야…….”

이후로도 올리비아의 입에서 나오는 끝없는 감탄과 칭찬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속을 달랜다고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봤는데,

“……어?”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제과점 앞에 끝없이 늘어선 줄, 그리고 그 근처에서 움직이는…….

내가 허둥지둥 외투를 집어 들자, 카디얀도 잽싸게 나갈 준비를 했다.

“오, 올리비아 씨! 저 이만 돌아가 볼게요!”

“벌써요?”

올리비아는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나는 작별의 슬픔을 오래 나눌 여유가 없었다.

방금 본 게 착각이 아니라면.

저 익숙한 은발은…….

‘미쳤다.’

놓치면 안 돼-!

***

실화인가.

내가 살아생전 다시 볼 수 있을까 했던 은발의 폐하가, 내 시야에 있었다.

왜, 왜 혼자서 이 거리를 돌아다니시는지는 몰라도-!

‘이건 놓쳐선 안 된다.’

나는 외투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폐하를 미행했다.

혹시나 일하는 중이시면 짧은 눈 호강으로 만족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냥 걷기만 하시는 거 같단 말이지?

그럼 쫓아가도 되지 않을까!

왜 아는 척을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래야 심장에 큰 무리 없이 오랫동안 폐하를 볼 수 있거든!

은발 폐하 최고…….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기회가 왔을 때 많이 봐둬야 한다고.

“……성녀님.”

“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폐하를 쫓는 내게, 카디얀이 말을 걸었다.

카디얀도 나처럼 외투를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겉으로 봐선 누구인지 모를 정도였다.

“저자가 누구인데 기척을 숨기시면서까지 따라가시는 겁니까?”

“네?”

카디얀의 물음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카디얀은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누구신지 모르세요?”

카디얀은 앞서 가는 폐하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카디얀 경, 황실 근위대 부대장…… 맞죠?”

“그렇습니다만…….”

뻘쭘한 분위기의 정적이 흘렀다.

흐음. 카디얀은 눈썰미가 안 좋은 편인듯했다.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카디얀에게 저분이 폐하시다, 했다가 놀란 소리라도 내면 곤란하니.

“그러면 이따가 알려 드릴게요.”

나중에 말해주기로 하고 우리는 폐하를 계속 쫓았다.

골목골목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폐하는 막다른 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여기까지 잘도 왔군.”

폐하의 입에서 중저음의 단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팔의 털이 곤두서는 이 감각.

폐하의 살기가 분명했다.

뭐야, 여기서 누구랑 싸우시는 건가!

좋아. 여차하면 나도 몰래 지원 들어간다.

나는 반지 낀 오른손 검지를 꾹 쥐며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

언제 나오지. 적.

뜨거운 물 넣고 기다렸으면 컵라면 면발쯤은 가뿐히 익었을 듯한 시간이 흐른 거 같은데.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우리 폐하, 담벼락 앞에 서 있는 것뿐인데 이렇게 패션 화보 촬영장 같을 일인가.

눈감고 발가락으로 셔터 눌러도 죄다 A컷만 나오겠다.

‘얼굴이 다했지……! 젠달 문화재 장관 누구지! 당장 만나서 폐하 미모 문화재로 지정시키자고 건의를……!’

감격스러운 미모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폐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찾은 폐하는,

“……어.”

골목 모퉁이 벽에 붙어 숨어있던 내 목 아래에서, 날카로운 검날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 카디얀이 눈 깜짝할 속도로 움직여 폐하에게 검을 겨눴고.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헨켈 대장이 그런 카디얀의 등을 향해 검을 겨눴다.

……이 쓸데없는 구도 뭔데.

“…….”

나는 보호 결계를 두른 손가락으로 폐하의 검을 슬쩍 밀었다.

수호 계열의 신성력은 반지 핑계를 댈 수 있었기에 종종 대놓고 사용하곤 했지.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적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는지, 폐하의 경계가 짙어졌다.

“어디서 보냈지.”

“……길을 잃었어요.”

“그런 변명이 통할 거라고…….”

멈칫.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라는 걸 떠올리셨는지, 폐하는 입을 다물고 나를 주시했다.

평소보다 낮은 톤의 목소리라서 더 듣고 싶었는데, 역시 눈치가 빠르시다니까.

“폐하한테 가는 길요.”

나는 천천히 외투의 모자를 내렸다.

“후후. 폐하, 전데요.”

“성녀?”

“황제 폐하?!”

“…….”

마치 합이라도 맞춘 듯 세 사람의 검이 빠르게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성녀, 저인 줄 알고 쫓아오신 겁니까?”

헐.

갑자기 훅 들어온 존댓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구나. 헨켈 대장이랑 카디얀이 함께 있어서 이런 특전이……!

장난 아니다. 들키길 완전 잘했다.

‘으. 내 심장 소리밖에 안 들려. 위험하니까 폐하랑 눈 마주치지 말자.’

여기서 더 반했다간 답도 없으니까……! 얼굴은 보지 말자.

……그래도 얼굴은 봐야 하지 않을까……? 은발인데! 폐하인데!

‘안 된다고……!’

그렇게 내 욕망과 싸우던 중, 폐하의 질문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폐하이신 줄 알고 쫓아왔는데요……?”

“어떻게 저인 걸 아셨습니까?”

이렇게까지 물어보실 일인가.

그냥 딱 보면 폐하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완전 폐하이신데요?”

“……아니신데요?”

옆에 있던 카디얀이 반박했다.

“제 눈에는 전혀 다른 분처럼 보이십니다.”

……카디얀은 진짜 눈썰미가 없는 게 분명했다.

폐하를 앞에 두고 어떻게 폐하인 줄을 몰라보는 건지!

고작 머리카락색이 바뀌었다고 폐하를 몰라보시나!

나는 내가 성녀라는 것도 손으로 카디얀이 놓치고 있는 걸 하나씩 짚어줬다.

“하지만 이 이목구비 위치, 제복에 꽉 들어찬 근육 생김새, 빗에 걸리는 거 하나 없을 것 같은 머릿결, 인간의 비율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다리 길이……!”

갑자기 턱. 하고 커다랗고 따듯한 물체가 내 입을 덮었다.

어디서 들어온 방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스세안 부무까디 뜨아져 버면 폐으하(세세한 부분까지 따져보면 폐하)……으으읍……!?”

카디얀만 보고 말하느라 뒤늦게 눈치채버렸는데…….

왜 지금 내 입 폐하 손바닥이 덮고 있는 거지-!!

버, 벗어나야 해.

폐하 손바닥에 내가 입김을-!

‘안 된다. 안 돼!’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버둥거렸다.

“진정해.”

으악.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시면 제가 진정하게 생겼냐고요……!

“성녀님……?”

카디얀이 조마조마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폐하는 카디얀 앞에서 내 이미지를 지켜주실 참이었는지,

“성녀께서 외출에 들뜨신 것 같군. 거리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시니 좀 더 돌아보다 가지. 눈에 띄지 않게 경들은 뒤쪽에서 따로 움직이는 게 좋겠군.”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카디얀이 이상함을 눈치채기 전에 날 번쩍 안아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으아아…….”

***

뱃사람에게 중요한 건 의리라 했던가.

쇼웬은 그 의리에 배신당한 기분을 처절하게 느끼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1 코퍼 동전 하나 없는 빈털터리 신세.

이게 다 데이데른 호의 선장인, 의리 없는 제 아버지 때문이다.

며칠 전, 데이데른 호는 젠달의 항구 도시에 정박했다.

“아침까지 배에 못 탄 놈은 두고 간다!”

출항 전날 밤.

여느 때처럼 선원들은 주점에서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한 선장, 데른은 저런 소릴 했다.

술김에 하는 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진담이었을 줄이야.

출항 당일 아침, 주점에서 홀로 눈을 뜬 쇼웬은 훤히 밝은 창밖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허겁지겁 달려 항구에 도착했지만, 이미 데이데른 호는 주먹만큼 작아져 수평선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게 어제.

“젠장. 배고파.”

꾸르륵.

쇼웬은 속에서 천둥이 치는 배를 부여잡았다.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고, 묵을 곳도 없고.

데이데른 호가 다시 젠달로 오는 건 예정대로라면 한 달 후였다.

당장 항구에서 죽치고 있어봤자 그와 함께해주는 건 갈매기들밖에 없었다.

객사하기 딱 좋겠군.

그래서 젠달에 사는 먼 친척 집에 사정을 말하고 신세를 질 수 있을까 해서 황도로 올라왔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름만 알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친척의 이름으로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무리였다.

젠달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넓었나.

제국은 제국이다.

수도마저 이렇게 넓다니.

계절은 겨울이지만, 젠달의 황도는 그렇게 추운 곳이 아니었다.

낮에는 기온이 꽤 올라갔기에,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쇼웬의 구릿빛 피부가 열을 받아 붉어졌다.

목마르다.

“어.”

갈증에 고통받던 쇼웬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젠달에 제가 아는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리리다.’

몇 달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쇼웬은 아는 척하려 손을 들었다가,

옆에 있는 남자를 보고 급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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