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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62화 (62/150)

62화

알렌드는 요즘 아리에게서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천재 기사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물론 좋은 의미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저를 당황하게 하는 재주가 늘고 있단 소리였다.

“그러니까, 기분이 안 좋으실 때 눈썹의 이 지점이 올라가거든요?”

“…….”

“눈빛도 살짝 변하시는데, 그 차이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엄청나다, 이 말이죠.”

“…….”

“이게 인간한테서 나올 수 있는 매력이에요? 눈썹 하나만 가지고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시는데!”

지난 이틀간.

알렌드는 제가 모르는 영역의, 이해할 수도 없는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 넣고 있는 기분이었다.

흘려들으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주제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지 않은가.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눈썹이 어떻고, 손끝이 어떻고, 말투가 어떻고.

제가 머리를 짚을 때의 손 각도마저 짚어내는 아리의 입을 그는 몇 번이고 막고 싶었지만…….

“폐하, 오늘도 좋은 새벽이에요!”

알렌드는 호위 기사인 듄과 함께 서재로 들어오는 아리를 바라봤다.

“오셨군요. 성녀.”

그는 평소와 달리 책상 앞쪽에 서서 아리를 맞이했다.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그대로 그 수업에 당한다.’라는 우려 탓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던 것이었다.

“여기요, 여기가 좋겠어요.”

저건 또 뭔지.

듄은 아리의 지시를 따라 서재 한가운데에 전신 거울을 놓고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알렌드의 오른쪽 눈썹이 들썩였다.

“…….”

이런.

그간 모르고 있었던 것을 인식하고 나니 신경이 쓰인다.

알렌드는 왼손으로 눈썹을 지그시 누르며 아리에게 물었다.

“……오늘도 할 건가?”

“당연하죠! 아직 영업하려면 멀었……아니, 제가 준비한 자료들을 다 보여 드리려면 일주일은 더 필요하거든요! 저희한텐 아침 시간밖에 없으니까.”

일주일이나.

이 끔찍한 짓을 더.

‘안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말이 알렌드의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의욕적이군.”

“그럼요!”

저렇게 신이 난 아리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의 일이 계속 걸렸기 때문이었다.

“난 성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녀의 마음을 거절한 것은 그래야만 하는 일이었다.

“성녀는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해.”

그 말도 진심이었다.

하나 그 후, 알렌드는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볼 때면 이따금 가슴이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그는 그게 성녀의 마음을 거절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병처럼 뿌리내린 그 감정이, 이제는 흉통으로까지 번진 모양이라고 여겼다.

동시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에게 죄책감이란 언제나 그의 불행에 따라오는 감정이었으니.

[폐하 때문에.]

성녀의 목소리마저 제 악몽에 더해진다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바닥이라 여겼던 곳이 깨져 더한 바닥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러한 까닭에 알렌드가 아리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아리는 가져온 전신 거울 옆에 서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제가 생각을 또 해봤는데요.”

“무슨 생각을 또 했는데.”

“폐하는 실물을 직접 볼 수 없으니까 본인의 매력을 실감 못 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거울을 가져오셨다?”

“오오. 역시, 폐하.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니까!”

한때, 유명한 시인이자 작곡가가 아름다운 황제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곡을 상납한 적이 있었다.

누가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간지러운 말과 미사여구를 잔뜩 섞은, 황제를 찬양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알렌드는 태연하게 웃으며 귀빈들이 모인 장소에서 함께 그 노래를 들었다.

후에 그 곡과 작곡가는 영영 황궁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지만.

알렌드는 누가 저를 칭찬하든 말든 무심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성녀는…….

얼마 전까지 하던 보물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그의 소름을 돋게 했다면.

이번엔 제 속을 낱낱이 벗겨 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몇 개는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걸, 저를 거울 앞에 앉혀두고 하겠다고.

“과연.”

알렌드가 생긋 웃었다.

아리는 영문도 모르고 오랜만에 보는 그 미소에 홀려 따라 웃었다.

그러다 알렌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순식간에 몸이 굳었다.

“어?! ……어어……!?”

황제가 저를 끌어안은 것이다.

‘무, 무, 무슨 일인데……!’

이마가 황제의 가슴팍에 닿고 뒤통수와 어깨에 황제의 손이 닿았다.

무방비하게 당한 상황에 아리는 머릿속도 굳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했다.

알렌드는 그런 아리를 품에 안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서재의 문 앞까지 걸어가서야 팔을 풀었다.

그리곤 문을 열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듄에게 아리를 슬쩍 넘겼다.

“성녀께서 몸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군.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

황제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새빨개진 성녀의 얼굴.

거기에 “어, 어…….” 하며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시는 걸 보니 정말 아프신 듯했다.

아까 드신 물약이 속에서 받질 못하셨나?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것을 보니 감기에 걸리신 것일지도 모른다.

듄은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며 황제가 넘기는 대로 성녀를 업었다.

“치료 신관을 프로딘타 궁으로 보내지. 지금은 어떤 소리도 안 들리시는 것 같으니……. 경이 성녀께 며칠 궁에서 요양하시라 전해드리게.”

“알겠습니다.”

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등에 업힌 아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해롱거리고 있었다.

듄이 떠나자, 알렌드는 미련 없이 서재 문을 닫고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다행히 포옹은 아직 효과가 있나 보군.’

호색꾼 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한 뒤부터, 저를 대하는 성녀의 태도도 묘하게 달라졌다.

이전엔 신체가 스치는 정도의 가벼운 접촉에도 호흡이 거칠어졌다면,

지금은 놀란 다람쥐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에 그쳤다.

하긴 성녀의 속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요즘에 휘둘리고 있는 이는 성녀가 아니라 저인 모양인데.

‘그게 나을지도.’

차라리 성녀의 관심이 그런 쪽으로 쏠려 있는 편이 나았다.

“말씀하신 대로 랑데트 후작이 다른 귀족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겠군요.”

곧 잠잠한 수면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들로 크게 요동칠 테니.

알렌드는 가능하다면 아리가 이번 사태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랐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보길 원했고, 그렇게 살아갔으면 했다.

성녀를 지켜주겠다는 자신의 다짐은, 그녀의 평온한 삶을 지켜주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알렌드는 그녀를 니세포르엘 신전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승리가 예견되는 전쟁이고, 장기전으로 갈 생각도 없지만.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터였다.

황궁도 안전하진 않겠지.

일을 마무리 지은 후, 평소와 다름없는 황궁으로 그녀를 데려오고 싶었다.

전쟁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잘 끝났다.

안부를 전하는 듯한 가벼운 말투로 지난날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알렌드가 그리는 미래였다.

“폐하는 좋은 사람이에요!”

목에 힘을 주며 말하던 성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이렇게 제멋대로 일을 꾸미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폐하는 좋은 사람이라고요!”

“…….”

다시 귓가를 맴도는 성녀의 목소리에 알렌드는 피식 웃다가 손으로 입매를 매만졌다.

그런 뒤,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서랍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니세포르엘 신전의 정기 보고서였다.

백지인 마지막 장을 뜯어 신성력을 흘려 넣자, 작은 불씨가 튀었다.

불씨는 종이를 태우며 글자들을 적어가더니,

[랑데트 후작과 샤를 왕녀가 접촉]

순식간에 불이 되어 종이를 집어삼키곤 허공에 작은 연기를 토해냈다.

황제의 싸늘한 시선이 종이가 사라진 허공을 응시했다.

***

“샤를.”

델칸은 방 밖으로 나가려는 샤를을 막아섰다.

“이야기 좀 해.”

샤를은 문고리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델칸을 바라봤다.

델칸이 이렇게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며칠 되지 않았다.

제 앞에선 태연한 척 굴지만, 여전히 혼자 있을 때는 울어대는지 눈두덩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불쌍한 개처럼 보이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방해꾼이지.

샤를은 눈살을 찌푸리며 뻔뻔스레 되물었다.

“무슨 이야기?”

“모르는 척하지 말고. 정말 그 일에 가담할 셈이야?”

랑데트 후작이 찾아온 건 열흘 전의 일이었다.

말도 안되는 제안.

델칸은 당연히 샤를이 거절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열흘 정도면 괜찮으시겠습니까?”

샤를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후작이 보낸 전서구가 샤를의 방을 찾아왔고, 샤를은 새의 다리에 답신을 매달아 다시 후작에게로 날려 보냈다.

[대공과 자리를 마련해줘요. 대답은 거기서 하죠.]

옆에서 과정을 지켜본 델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후작이 내건 조건은 샤를의 흥미를 충분히 자극했겠지만.

샤를은 욕망에 충실한 만큼, 자신이 지금껏 쌓아 올린 것 또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성녀가 탐이 나도.

샤를이라면 믿지도 못하는 외부인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보단, 다른 방법을 찾아봤을 터였다.

위험한 일이다.

“왜 계속 저들과 연락하고 지내는 건데. 그 자리에서 거절해야 했어.”

역모라는 말이 나온 순간, 선을 긋고 후작을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리고 젠달의 황제에게 말했어야 했다.

그래야 보니아가, 젠달이, 그리고 성녀가-.

델칸은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저자들이 하는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렇게 연락했단 게 나중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보니아는-.”

“그놈의 보니아, 보니아.”

홱하고 문고리를 놓은 샤를은 짜증을 내며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곤 소파의 넓은 팔걸이에 몸을 기대앉았다.

“넌 보니아가 그렇게 좋니? 내가 너였으면 이 왕국의 멸망을 빌었을 거야.”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네가 바보같이 착해 빠졌다고.”

샤를의 동공에 문 앞에 서서 저를 보는 델칸의 모습이 담겼다.

덩치 큰 대형견 같던 그는 그동안 살이 많이 빠져 날렵한 사냥개처럼 보였다.

하지만 날카로워진 인상과 달리, 속은 여전히 욕심 없이 순해 빠졌다.

몇 주를 괴로워하며 지내던 델칸은 방을 나와 샤를을 찾아왔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지난번에 했던 말은 잊어줘.”

였다.

성녀를 갖고 싶다는 말까지 해놓고.

홀로 삭히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언제나 그랬지. 델칸의 인생은.

가져본 적이 없으니 포기하는 법밖에 모른다.

“델칸.”

샤를은 델칸을 향해 말했다.

“젠달도 모르는 성녀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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