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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58화 (58/150)

58화

니세포르엘 신전에 다녀온 다음 날.

나는 책상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내 옆 침대에는 곤히 잠든 주인님과 퓨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주인님이 갑자기 찾아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

퓨랑은 앙숙처럼 지내는 거 같더니, 이제는 저렇게 옆자리를 내 줄 정도로 친해졌다.

어쨌든.

“후후…….”

나는 퀭한 얼굴로 깃펜을 내려놓았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밤새 완성한 계획서를 보니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행복한 폐하 인생 응원 계획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계획, 내가 반드시 성공시킨다……!

“아, 맞다.”

결의에 차 있다가 깜빡한 내용이 있어서 급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 제목 아래에 감정을 실어 글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부제. 데르아치 망해라.]

***

나는 황궁 연구소 지하 실험실 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데르아치란 이름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우연히 데르아치 어쩌고 하는 폐하와 에본 재상님의 대화를 들었고.

잠시 숨어 있으려고 들어간 지하 감옥의 바닥 아래에서 “데르아치 님…….”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그 뒤로도 몇 번.

그런 우연이 반복되다 보니 ‘데르아치는 뭐 하는 사람이야?’라는 의문만 품고 있었는데.

어제 헤이즐과의 대화에서 느낌이 왔단 말이지.

다행히 내 감은 틀리지 않아서, 나는 헤이즐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데르아치’라는 사람은 공국의 왕으로, 폐하에게 대공작의 작위를 하사받았다.

두 번째, 젠달에서 황궁을 제외하곤 그 사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폐하의 눈치를 보고 있는 귀족파들도, 데르아치가 힘을 실어준다는 약조만 하면 활개를 치고 다닐 정도라 했다.

세 번째, 그 망할 데르아치가 젠달을 손에 쥐려고 역모를 꾀하고 있다.

‘폐하의 적은 내 적. 그러니까 데르아치란 인간도 내 적이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데르아치에게 투지를 불태웠다.

지금 누가 자신이 데르아치라고 말하면서 나타난다면 힘껏 쏘아볼 의사 백 프로다.

그다음에 머리끄덩이를 잡을지 말지는 폐하가 곤란해지시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리고 이건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마지막.

폐하는…….

“그럼 성녀님, 잘 부탁드립니다. 황제께서 그런 쪽으론 워낙 인연이 없으시다 보니.”

“네?”

방음 결계를 해제하기 직전, 헤이즐은 폐하와의 연애를 응원한다며 그렇게 말했다.

연애 응원이야, 나이 드신 어르신의 흔한 농담이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폐하가 그런 쪽에 인연이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물 얘기를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시는 거 있지.

눈물까지 흘리시는 모습엔 나도 헨켈 대장도 당황했었다.

“……해서 제가 알기론 황제 폐하께선 연애해보신 적이 없습니다.”

“총장님께서 모르는 곳에서 그러셨을 가능성은요? 황제가 되시고 주변에서 가만히 두질 않았을 거 같은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 난잡한 삶을 살고 계셨다면 제 귀에 한 건쯤은 들어왔을 텐데…….”

헤이즐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아도 본인께서 마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워낙에 철옹성 같은 분이신지라.”

그래서 마지막 정보.

폐하는……. 모태 솔로였다.

그 외모로! 그 능력으로!

연애 한 번 못해보셨다니!

‘너무 좋아…….’

내 마음은 생각보다 대인배가 아니었는지, 폐하의 진중한 연애관을 쌍수 들고 환영했다.

얕고 넓은 연애관도 좋았지만, 역시 사랑은 원앤온리지-!

그러니까 나는……. 나는……!

어쩌지……!!

‘허억. 또 호흡곤란 온다.’

아직 이 주제는 나한테 멀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감당이 안 된다니까.

일단 그 문제는 머릿속 한구석에 쑤셔 넣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나무상자에서 헤이즐한테 받은 물건들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신성력 입문서 한 권, 작은 화분 다섯 개, 각각 색이 다른 씨앗 다섯 개.

“퓨우?”

퓨가 이게 뭐냐고 묻는 듯한 소리를 냈다.

“궁금해? 이게 뭐냐면…….”

일명, 신성력 초보자를 위한 ‘초심자 3종 세트’!-라고 내가 이름 붙였다.

대충 헤이즐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 세계의 신성력은 크게 다섯 계열이 있는데.

처음 신성력이 발현한 아이들은 이 초심자 세트로 본인의 계열을 확인한다고 했다.

“신성력을 주입한 씨앗들을 각각의 화분에 심습니다. 색이 다른 이유는, 씨앗마다 감지할 수 있는 계열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 뒤에 싹이 트는 화분을 가지고 계열을 찾는다고.

보통은 한 계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두 계열의 신성력을 다룬다고 했다.

우리 폐하는…….

“제가 알기엔 세 가지군요. 공격계, 정신계, 수호계.”

“……대단한 거죠?”

“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죠. 황제께서 나오시고 그자들이 고생을 좀 했답니다. 한데, 성녀님께서 보시기엔 우스울 수도 있겠군요. 고작 이런 걸로 감탄하는 게.”

“하하…….”

마지막 말은 안 들었어도 좋을 뻔했다.

‘총장님도 내가 신성력이 엄청난 성녀라고 아시니까…….’

늘어나는 인맥만큼 늘어나는 내 불안감.

그렇지만 마냥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지.

머릿속 꽃밭에서 ‘폐하 얼굴이 내 인생 최대 복지’라고 외치며 뛰어다닐 수만은 없단 소리였다.

“전쟁이라니.”

그래도 내가 명색이 성녀였다.

전쟁이 시작되면 궁 안에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텐데.

그때가 돼서 걸리적거리는 짐짝처럼 끌려다니는 건 사절이란 말이지……!

폐하한테 내 뒤치다꺼리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제 밤새도록 고안한 폐하 인생 응원 계획!

“퓨, 첫 번째 계획은 내가 강해지는 거야.”

“퓨?”

“그래야 폐하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테니까!”

초비한테 빌린 지하 실험실은 아무것도 없는 훈련장처럼 넓고 휑했다.

전투용이나 폭발 위험성이 있는 발명품을 실험하는 장소라 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전적이 있으니 조심해야지.’

나는 여전히 내 검지에 있는 반지를 힐끔 바라봤다.

볼프만의 배를 난파선으로 만든 반지의 위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무 장소에서 신성력 연습을 했다가 황궁을 부숴 먹으면 곤란하니.

‘근데 이 반지 평생 안 빠질 것 같은데, 폐하한테 얼만지 물어보기라도 할까…….’

내겐 마르지 않는 덕질 통장이 있지만, 반지값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라도 해놔야……!

지잉.

“앗, 아니야.”

나는 서둘러 노란빛을 띠는 반지를 달랬다.

내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지는 아직 컨트롤이 어려웠다.

어르고 달래야 진정을 한단 말이지.

폐하는 그냥 발동하지 말라는 생각만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이래서 천재는……!

‘완전 멋있어.’

나중에 하찮다는 눈빛으로 ‘이런 것도 못 해?’ 같은 소리 해주시면 좋겠는데……!

크흡. 상상만 해도 나 앓는다아…….

하여튼.

헤이즐은 초심자 세트를 건네면서, 시아나가 예전에 했던 소리와 비슷한 말을 했다.

“신성력을 사용하시기 힘드시면 그 반지를 이용해보시지요. 반지의 신성석이 신성력 운용을 도울 겁니다.”

그래서 어제 신성력 입문서에 적힌 훈련법을 틈틈이 해봤는데.

잠들기 직전, 반지 위로 오팔처럼 빛나는 신성력이 살짝 일렁였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내 신성력.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이제 신성력 있는 성녀……!’

감격스러워서 눈물 날 뻔.

이드만타 측정기는 아직 수리가 안 돼서 측정은 불가능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신성력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결코 내 신성력 수치가 낮을 거 같아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럼…….”

나는 입문서를 펼친 후, 씨앗을 집어 들어 반지 위에 올렸다.

책에 적힌 대로 다섯 개의 씨앗에 신성력을 주입하고 각각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잠시 뒤.

“……헐.”

“퓨! 퓨우, 퓨!”

평소와 달리 퓨가 잔뜩 흥분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통통 뛰었다.

나는 떨리는 동공으로 화분들을 바라봤다.

“밸런스 무엇…….”

***

“소, 소장님!”

황궁 연구소의 연구원, 론데이만은 소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겁이 났지만 달리 소식을 전할 사람이 없었다.

연구소장에게 ‘눈에 띄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은 건 이제 저뿐이었으니.

“뭐야.”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연구소장실 중앙.

연이은 밤샘 연구 후에 쓰러져 자던 초비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소장님, 그게 말입니다……!”

“왜 시끄럽게 굴고 난리야. 내가 니들 연구랑 내 연구랑 각자 하면서 살자고 했지?”

초비는 잔뜩 인상을 쓰며 그에게 걸어갔다.

론데이만의 머릿속에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배정받은-커헙.”

일 년 전, 그의 황궁 연구소 입사 첫날.

론데이만은 출근 인사 도중에 의자에 앉혀 선배들에게 둘러싸였다.

위압감을 조성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신입 교육’이 시작됐다.

“첫 번째.”

론데이만의 사수가 입을 열었다.

“잠자는 연구소장님을 건드리지 말 것.”

“왜죠……?”

론데이만은 갓 태어난 사슴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그’ 황궁 연구소에 취직했다고 취업 축하연회를 연 게 엊그제였다.

엘리트들의 집합소라 알려졌던 황궁 연구소가,

이런 무섭고 음침한 곳인 줄은 몰랐다.

누군가 “젊은 놈이 안 됐네. 쯧쯧.”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수는 그의 미래를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날이 네 마지막 날이거든.”

그 외에도 ‘연구소장님 눈을 3초 이상 마주치지 말아라.’ 같은 주의사항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 끔찍했던 기억에 그간 쥐 죽은 듯 지내며 잘 피해 다녔건만.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연구소장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는 날이.

초비의 짙은 눈 그늘을 보며 론데이만은 오늘이 제 제삿날이라는 걸 직감했다.

“쓸데없는 일이면 가만 안 둔다. 이 햇병아리 자식아.”

초비가 론데이만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30cm 이상 차이 나는 키 때문에, 론데이만의 가슴팍 앞에 초비의 얼굴이 위치했다.

하지만 덩치와 상관없이 그는 연구소장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10자 이내로 말해.”

가능하겠는가.

론데이만은 속으로 오열했다.

그는 손가락을 펼쳐 글자 수를 셀 준비를 하고 입을 열었다.

“지하, 실-.”

그때였다.

지진이라도 난 듯, 연구실 건물이 흔들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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