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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49화 (49/150)

49화

폐하의 ‘24시간 호위 기사 붙이기’는 다 좋았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새벽마다 몰래 나오질 못하니, 하루의 일과를 폐하 얼굴로 시작할 수가 없다 이 말이지……!

모닝 폐하가 내 삶의 활력소였던 이전을 떠올리면 지금의 상황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으……. 나 이거 반대. 완전 반대.

호위 기사가 붙은 후로 새벽에 나가길 시도해보긴 했지만.

첫 번째 관문인 내 방 탈출부터 쉽지 않았다.

“성녀님, 아직 새벽입니다만. 외출하십니까?”

“아하하. 아뇨. 잘 계시나 하고요. 밤새시느라 힘드셨죠? 피곤하시면 들어가서 쉬실래요?”

“이렇게 다정하실 수가. 저는 괜찮습니다. 성녀님께선 들어가서 쉬시죠.”

“넵.”

폐하 보러 가는 길에 호위 기사를 대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목격자는 없어야 한다.

내가 그동안 왜 경비병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는데……!

호위 기사가 같이 가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었다.

성녀가 새벽마다 황제 얼굴을 보러 궁 밖을 나가더라.

기사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아주 스토커라고 소문나기 딱 좋았다.

‘성녀 이미지 그날로 끝…….’

예배당 청소부에, 디저트 레시피 개발자 노릇을 하고 있어도.

내 본업은 성녀였다.

폐하한테 폐 안 끼치려면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한단 말이지……!

“야간 호위를 하는 기사가 없었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폐하가 이어 물었다.

“있었죠……?”

오늘 야간 호위는 슬린 경이었다.

허퍼슨처럼 아침형 인간인 슬린 경은 밤샘 호위에 취약했다.

그래서 슬린 경이 꾸벅꾸벅 조는 틈을 타, 3층인 내 방의 발코니로 나와 벽을 타고 내려왔다는 말씀.

“그런데 왜 혼자 왔어.”

“몰래 왔으니깐요……?”

하지만 호기롭던 탈출과는 달리 나는 무진장 폐하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폐하한테 상담할 것도 있고, 슬린 경은 졸고 있고.

잘 됐다 싶어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나만 곤란해지는 게 아니었다.

슬린 경은 잠과의 사투를 벌이던 잘못밖에 없다고……!

“호위 기사는 안 혼내셨으면 좋겠는데요…….”

“글쎄. 우선은 성녀의 호위를 맡은 기사가 누구인지 헨켈에게-.”

“으악. 안 돼요. 대장한테 알아보시지 마세요!”

나는 팔로 엑스자를 그리며 폐하의 말을 막았다.

폐하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호위를 붙여준 건 걱정이 돼서야.”

“걱정요?”

“지난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항상 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호위라도 붙여 놓아야 마음이 조금은 놓이지.”

헐. 항상 붙어 다니는 폐하라니.

나 두근거려서 제 명에 못 산다. 그래도……! 그래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복한 망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 호위 기사는 내가 지킨다.

나는 한껏 반성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말씀이 맞아요. 앞으로는 새벽에 폐하 얼굴이 보고 싶어도 참을게요…….”

폐하는 책상에 앉아있고, 나는 그 앞에 서 있고.

이러니까 교무실에서 혼나는 학생 같네.

내가 소싯적엔 한 반성했지.

어떻게 해야 선생님들 입에서 ‘앞으로 잘하고. 그만 가 봐라.’ 소리가 나올지 몸이 기억한다 이 말씀이야.

목소리 톤, 앞으로 모은 두 손, 푹 숙인 고개, 힐끔거리는 타이밍까지.

아직 죽지 않았다. 내 반성 실력.

침묵이 흐르는 와중, 고개 숙인 내 귓가에 폐하의 짧은 헛웃음이 들렸다.

‘왜 웃으시지?’

내 연기가 안 먹힐 리가 없는데.

“멋대로 나온 건, 제 잘못이니깐요. 그러니 혼나는 건 저만…….”

“그러지.”

“네?”

“슬린한테 책임을 묻지는 않을 테니. 모든 책임은 성녀가 지면 되겠군.”

“헙. 슬린 경인 거 알고 계셨어요?”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드니 폐하는 턱을 괴고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허……. 큰일 났다.

오늘 폐하, 위험한 폐하잖아.

내가 책임지면 되겠다는 폐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럴 땐 뭐다?

나 지금 폐하한테 잘 보여야 한다.

생긋 웃었더니 폐하도 나를 따라 가볍게 미소 짓고는 말했다.

“궁금하네. 연기까지 잘하는 성녀는 어떻게 책임을 질지.”

“하하…….”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폐하는 위험하게, 나는 지금 상황이 두려워서.

등줄기가 차게 식었다.

“성녀, 마지막 소원 말인데요.”

“소, 소, 소원요?”

“무도회에 같이 참석하는 걸로 하죠.”

오랜만에 지나가는군. 폐하의 지니 시절의 내 회상.

무도회는 안 돼. 무도회는.

차라리 똥개훈련이 낫지, 춤은 절대 안 됐다.

‘최근에 무도회 비슷한 거 열린다는 얘기 나온 적 없었지……?’

기억을 더듬는 와중에, 폐하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 서랍은 왜요?”

“얼마 전 니세포르엘 신전에 다녀왔는데.”

“정말요? 저도 데려가 주시지!”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한테 한 번 가겠다고 편지를 보내놓은 터라 기회를 보던 중이었다.

폐하가 가시는 줄 알았으면 따라가는 건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니, 폐하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성녀가 가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언제요?”

나는 눈을 끔뻑였다.

내가 가기 싫다고 했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며칠 전에.”

“정확히……?”

“엿새 전. 프로딘타 궁에서 오찬을 가졌지.”

폐하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는 델칸한테 고백을 받고 한참 고민에 빠져 살던 때라…….

“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에 갈 건데. 가겠나?”

“네?”

“내일 갈 거냐고.”

“아, 아뇨. 저 내일은 약속이 있어서요.”

그때였나?

갑자기 폐하가 어딜 가자고 했는데, 못 간다고 했었다.

그다음 날에 델칸한테 고백의 답을 주기로 했던 탓에…….

으. 맞네. 내가 거절했네.

그사이 폐하는 서랍에서 하얀색 화관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웬 화관이에요?”

꽃과 풀이 하도 싱싱해서 조화인가 했는데, 잎을 만져보니 생화였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이런 이른 새벽에 누가 화관을 만들어서 갖다줬을 리는 없고.

“폐하가 만드셨어요?”

“내가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나?”

“아뇨. 그냥 해본 소린데요.”

폐하가 만드셨을 리는 더더욱 없었지.

“신전에 갔을 때 노엘이 자기가 만든 걸 줬어. 신성력으로 상하지 않게 해뒀더군.”

“신성력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요?”

“가능은 하지. 까다롭지만.”

폐하의 입에서 까다롭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라니.

신전 애들이 입을 모아 “노엘은 다 잘해요.”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던 모양이었다.

화관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지을 정도로 잘 만든 게, 범상치 않은 손재주였다.

탐스럽게 핀 하얀 꽃 여러 개를 포인트로 주고, 잔꽃으로 장식한 뒤, 중간중간 풀을 넣어 과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잡아줬다.

이 정도면 나중엔 화관계 거장도 될 수 있겠어.

하지만 노엘은 미래의 고위 신관이니까, 화관계는 엄청난 인재 하나를 놓친…….

“성녀한테 주려고 했던 모양인데, 오질 않아서 내가 대신 받았지.”

“받으셨다고요……?”

별생각 없이 화관을 보며 감탄하던 나는, 폐하의 말에 몸을 굳히고 시선을 돌렸다.

까다로운 방법으로 신성력까지 쓴 화관이었다.

그걸 그냥 손으로 받고 끝났을 리는 없을 테고.

화관은 그렇잖아, 보통 머리에 쓰고 그러는 거 아닌가!

“받아서…. 머리에 쓰셨어요……?”

“그럼 화관을 어디에 쓰지.”

폐하가 당연하단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헐.”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맙소사. 왜 안 갔냐, 과거의 나……!

아니, 내가 갔으면 이게 폐하 머리 위로 안 갔겠지…!

그럼 나는 화관 쓴 폐하의 모습을 영영 볼 수가 없는 건가!

왜……! 나는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지!

“…….”

후회와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교차했다.

폐하의 얼굴과 화관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홀린 듯 움직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손이 이미 폐하의 금발 위에 화관을 얹은 후였다.

“뭐 하는 거야.”

폐하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화관을 벗지는 않았다.

나는 책상 앞에서 천천히 두 걸음을 물러났다.

세상에. 아프로디테가 남신이었으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니, 폐하가 이긴다.

이건 사랑과 미의 남신이 아니라, 사랑도 미로 몰빵한 남신이거든.

일출하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 앉은키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비율을 짐작하게 만드는 저 완벽한 상반신.

화관을 쓴 얼굴은 또 어떻고.

화려하다고 생각했던 화관은 그보다 더 화려한 폐하의 외모에 묻혀 어울리는 소품1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거기에 책상 위, 폐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알이 폐하 인형인 양 한 컷에 담겼는데.

미쳤다. 진짜. 어떡해.

“귀…….”

“귀?”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려던 말을 깨닫고 놀라 뒷걸음질했다.

“아, 아뇨.”

“성녀, 호흡을 좀 가쁘게 쉬는 거 같은데.”

폐하가 내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이게…….

지금 가까이 오시면……!

“아, 갑자기 덥네요! 그렇죠? 해가 떠서 그런가! 폐하, 저 시아나 오기 전에 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난 줄 몰랐지 뭐예요! 아침 맛있게 드시고, 오늘도 힘내세요!”

나는 뒷걸음질 치며 속사포로 말을 쏟아낸 뒤, 방문을 열고 튀었다.

***

신아리는 후다닥 서재를 나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도망치듯 복도의 모퉁이를 돈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은 채 스르르 주저앉았다.

동그란 그녀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였다.

신아리는 멍한 기색을 띠었다.

과한 호흡,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 벌겋게 달궈진 얼굴.

황제를 대할 때 나오는 그녀의 흔한 반응이었지만…….

신아리는 양 손바닥으로 목 뒤까지 붉어져 후끈거리는 제 얼굴을 눌렀다.

“미쳤나 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쿵. 쿵. 쿵.

청력을 집중한 것도 아니건만,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고스란히 고막을 타고 들려왔다.

조금 전, 화관을 쓴 채 인형을 손에 쥔 알렌드의 모습.

“귀엽다고 말할 뻔…….”

신아리는 제가 중얼거린 말에 다시 한번 아까의 감정을 떠올린 듯 무릎을 꿇었다.

밀려오는 좌절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고개를 떨궜다.

얼굴을 밝히는 본능에 충실한 만큼, 그녀는 제 감정에도 촉이 좋았다.

“일시적인 생각……. 아니, 내 인생 개 망한 거 같…….”

곧바로 부정기에 돌입했지만, 이건 그녀의 무의식이 짐작하는 감정의 전초전이 분명했다.

“아냐. 사람이 너무 놀라면 잠깐 이상해질 수도 있지. 그래, 그 미모를 보고 내가 잠시 놀라서 이상해진 게 분명……. 으아아…….”

신아리는 그렇게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괴로워했다.

후에 알렌드를 찾아가던 헨켈이 복도에서 참회하는 성녀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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