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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45화 (45/150)

45화

퍽.

남자의 주먹질에 델칸의 상체가 반으로 접혔다.

“…….”

“이런 주먹도 못 피해서 보니아의 기사라 할 수 있겠나? 델칸 몬드리아. 샤를 전하께 버려졌다고 보니아의 위상마저 떨어트리면 안 되지.”

부하를 훈육하는 듯이 보였지만, 마차에서부터 봐왔던 나는 알고 있었다.

저건 그냥 대충 명목만 그럴듯하게 세우고 애를 패는 거라는 걸……!

속 터지는 나와는 달리, 델칸은 묵묵히 서서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요새 정신을 반쯤 놓고 다닌다던데. 오늘 교육 좀 똑바로 받아야겠어.”

델칸을 둘러싼 남자 세 명.

일반인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보니아 왕국의 기사들인 모양이었다.

우리 애 때릴 작정으로 신분 위장한 건 아니겠지……? 그러면 가만 안 둔다.

왼쪽에 서 있던 기사가 주먹 쥔 손의 관절을 위협적으로 꺾으며 델칸에게 다가갔다.

“우선 그 꼴 보기 싫은 면상부터 어떻게 해볼까.”

으악. 얼굴은 안 된다. 얼굴은……!

골목 입구 모퉁이에 붙어서 안쪽 상황을 살피던 나는 다급히 외쳤다.

“경비병님! 여기요! 여기 여러 명이 한 사람 괴롭히고 있어요!”

“뭐, 뭐라고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쓰레기들인가 봐요!”

같이 숨어있던 카디얀이 내 갑작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카디얀도 한 연기 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박진감 넘치게 된 우리의 거짓말은 보니아 기사들을 낚았다.

“쳇. 누가 본 모양이군.”

“젠달의 병사한테 걸리면 귀찮으니까 가자.”

“운 좋은 줄 알아라.”

말뿐인 기사는 아닌지, 남자들은 가볍게 담벼락을 넘어 막다른 길에서 벗어났다.

“흥. 도망가는 주제에 폼 잡기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와 카디얀은 골목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델칸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어휴, 델칸. 이게 무슨 일이야. 얼굴은……. 다행히 건드리지는 않았네. 저 인간들, 황궁에서 만나기만 해 봐라. 내가 머리채를 뜯어줄-.”

“리리?”

델칸은 분을 터트리고 있는 날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금세 체념한 얼굴을 했다.

“리리가 여기에 있을 리 없지……. 또 환각인가.”

“엥?”

3주 정도 못 본 사이에 델칸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된 것인가.

사람인 나를 어필해 보고자 델칸의 눈앞에 손바닥을 흔들어 봤지만, 델칸은 여전히 다른 차원을 보는 듯한 눈을 했다.

뭐야, 내 친구한테 누가 이랬어.

“델칸, 정신 차려 봐.”

“이번엔 말도 하네…….”

델칸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리리.”

“어?”

“잘생긴 게 좋아?”

얘가 두말하면 입 아플 소리를 하고 있네.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다니.

“어……. 좋은데?”

“나도 잘생기지 않았어?”

와씨.

그 멍멍이 델칸이 미모 공격을 사용할지는 몰랐다.

살이 좀 빠졌는지 살짝 꺾은 턱선이 날렵했고, 지난번보다 더 오뚝해진 콧날은 공기를 벨 듯 날카로웠다.

깊어진 아이홀만큼이나 한층 성숙해진 분위기.

촉촉이 젖은 회색 눈동자가 아련하게 날 바라봤다.

사람 홀리게 생긴 미모에 넋이 나가 쳐다보고 있자니, 델칸이 고개를 떨구며 픽 웃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까 아닌가…….”

델칸은 여전히 제가 미남이라는 현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좀 떨어져 있는 카디얀이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라고 입속말로 중얼거렸는데,

동의합니다. 그 의견.

야, 네가 안 잘생겼으면 세상에 잘생긴 사람은 폐하밖에 없어.

“아냐. 너 잘생겼어.”

“정말……?”

살짝 화색이 감도는 듯했지만, 델칸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혹시 실연이라도 당했니……?

설마 상대방한테 미모가 맘에 안 든다고 차였나.

그래서 얘가 외모 땅굴을 이렇게 파는 건가……!

나는 집 나간 델칸의 외모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델칸, 우는 애한테 네 얼굴 보여주면 바로 울음 그칠걸? 원래 애들이 잘생긴 거 더 잘 알아보는 거 알지? 그리고 또 뭐냐, 지나가는 사람 빤히 쳐다보다가 웃음 한 번 날려주면 그 사람이 바로 같이 차 마시러 가자고 할 걸. 너 잘생겼다니까.”

이래도 계속 우울해하면, 밥이나 먹이러 가야지.

우울할 땐 맛있는 게 최고다.

내가 델칸한테 맛있는 거 사줄 정도는 되지. 후후후.

“나…….”

좋아. 밥 먹으러 가는 거 확정.

델칸은 무거운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지난번에 네가 갑자기 사라지고 계속 고민해봤어.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지. 왜 이렇게 네 걱정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지.”

“응?”

“스스로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친 듯이 널 찾고 있더라.”

……잠시만.

“널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땐, 그냥 좋더라. 그전까지는 그렇게 고통스러웠었는데. 그런데……. 네가 전남편이랑 같이 있었어. 너한테 빚까지 지웠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좋게 보이진 않더라. 그래서 그 사람한테서 널 떼어놓고 싶었는데, 리리, 네가 그 사람이 좋다고 했어. 잘생겼다고.”

나는 설마설마하는 기분으로 마음을 졸이며 델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 흐름, 이 분위기.

내가 생각하는 그거는 아니겠지……!

“……네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내가 끼어들 수가 있을까. 그래서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후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 있잖아, 리리. 나-.”

‘고’로 시작하고 ‘백’으로 끝나는 그거……!

마음의 준비 따위 되어있지 않던 나는 황급히 선수를 치려고 했는데,

“아, 저기. 델칸……. 나 있지……!”

“나 돌아가는 날짜 잡혔어.”

그럴 틈도 없이 델칸이 말을 내뱉었다.

“으, 응?”

“보니아 왕국으로. 사절단 임무가 끝이 났대.”

혹시 지금까지 델칸이 회상하듯 말했던 게, 이별의 아쉬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나……?

그럼 그렇지.

내 설레발이 입 밖으로 안 나와서 다행이다.

민망함에 잠깐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델칸을 바라봤는데,

델칸은 어느새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델칸, 내가 깜짝 놀랄 만한 거 알려줄까?”

“?”

“나 환각 아니다?”

나는 일부러 놀리는 투로 말했다.

델칸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듣기 좋은 톤의 웃음이 짧게 터져 나왔다.

“미안.”

그리곤 변명을 덧붙였다.

“조금 전에 당황하는 얼굴 보니 알겠더라. 진짜 리리구나, 했지.”

“오, 생각보다 늦게 알았는데……?”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대화를 나누니 다시 몇 주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역시 델칸은 내 친구였어…….

델칸이 보니아 왕국으로 떠나는 건 아쉽지만,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다.

내가 황궁 밖으로 나오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델칸 송별회는 내가 쏜다!

“그러면 오늘 저녁은 내가-.”

“리리, 나 너 좋아해.”

훅 들어온 고백에 나는 석상처럼 굳었다.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하는 나를 대신해, 카디얀이 움직였다.

“보, 보니아의 기사는 구해준 은인에게 이런 짓을 합니까?!”

카디얀은 델칸이 불한당이라도 된 것처럼 기겁했다.

이런 카디얀의 민감한 반응이 기분 나쁠 만도 하건만.

폭탄을 던진 델칸의 얼굴은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답 기다릴게.”

“기다리긴 무슨!”

이번에도 카디얀이 대신 외쳤다.

그리곤 굳어버린 날 안아 들고 골목 밖을 향해 뛰었다.

“서, 성녀님을 지켜야……!”

달리는 카디얀의 어깨너머.

흔들리는 내 시야 속에서 멀어지는 델칸이 보였다.

델칸은 미소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델칸이 나를……. 델칸이 나를…….’

***

그렇게 이틀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델칸이……, 델칸이 나를 좋아한다니!

‘어쩌지? 어쩌면 좋지?’

나는 그릇에 담긴 크림수프를 노려보며 고민에 빠졌다.

하필이면 쥐고 있는 스푼 색깔도 델칸의 눈동자 색이랑 닮았다.

“성녀.”

“…….”

“신아리.”

“…….”

툭. 툭.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타격음에 시선을 옮겼다.

식탁을 두드리는 길쭉하고 잘생긴 손가락.

주인은…….

“윽.”

턱을 괴고 내 쪽을 보고 있는 폐하.

으. 눈부셔……!

폐하는 금발로 돌아왔지만 내겐 문제가 있었다.

은발 폐하한테 적응하는 동안, 내가 쌓아왔던 금발 폐하 면역력이 초기화 돼 버렸단 말이지.

그러니까 보고만 있어도 두근거린다 이 소리였다.

더욱이 황궁으로 돌아오고 난 뒤부터는 폐하가 프로딘타 궁을 방문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렇게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고 있는데.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다고……!’

그래도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 좋지. 조금 힘들긴 하지만…!

“불러도 대답이 없던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제 인생에 미남이 찾아온 거 같아서요.”

한숨 섞인 내 진지한 발언에 폐하가 피식 웃었다.

“오늘도 뻔한 소리를…….”

“으아-. 저 어떻게 하죠? 미남한테 이렇게 고백받은 적은 처음인데…!”

“……고백?”

나는 오랜만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저께 델칸에게 고백을 받은 뒤부터 내 머릿속은 고민으로 가득 차 터질 것만 같았다.

보니아 왕국 사절단의 귀환 날짜는 닷새 후.

그때까지 나는 델칸에게 답을 줘야 했다.

어떻게 됐든 델칸은 보니아 왕국으로 돌아가겠지. 나는 폐하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하니 젠달에 남아 있을 거고.

……장거리 연애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냐……!’

나는 바로 내 생각을 반박했다.

델칸은 진심인 거 같은데, 거기에 대고 ‘내가 널 좋아하진 않지만, 얼굴은 좋아서 사귀고 싶어.’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 진심 가지고 장난치면 벌 받는다. 신아리. 그것도 델칸 같이 착한 애를……!

‘그래도 말이지. 내 인생에서 델칸보다 잘생긴 남자랑 이성으로 엮일 일이 있을 거 같아? 장담하건대, 절대 없지.’

그것도 맞는 소리였다.

으으. 가혹하다.

양심의 답은 정해져 있지만, 굴러온 미남을 내 발로 뻥 차버리는 짓은 나한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래서 델칸이 고백하려는 것 같았을 때 선수를 치고 싶었던 건데…….

“역시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죠……?”

“그래서, 지금 나한테 성녀의 연애 상담을 하는 건가?”

폐하의 어투엔 묘하게 불쾌한 느낌이 있었다.

혹시 이런 거 안 좋아하시는데 눈치 없이 혼자 떠들어 버린 건가?

“이런 주제 별로세요?”

“썩 달갑진 않아.”

역시.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폐하에게 말했다.

“으. 죄송해요. 대신 이번엔 제가 멋대로 말했으니까, 폐하도 다음번에 연애 고민 있으시면 털어놓으세요! 저 다른 사람 연애는 상담 좀 잘하거든요.”

다른 사람 연애에 미인이 있어봤자 나한테 굴러온 게 아니거든……!

나는 씨익 웃었다.

“평생 볼 사이인데 각자 연애 상담 정도야!”

“……각자라.”

폐하는 흥미롭다는 듯이 한쪽 입매를 슬쩍 올렸다.

왠지 위험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내 면역력 초기화됐다고.

가만히 있는 폐하도 위험하다 여기는 지금의 내 감을 믿을 수는 없었다.

폐하는 느긋한 칼질로 접시 위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어디 부탁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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