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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43화 (43/150)

43화

“멈춰!”

나는 범인들을 중재하는 경찰처럼 둘 사이에 끼어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힐끔.

‘……기분 안 좋으신 거 맞지?’

제일 먼저 폐하의 얼굴을 살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미남의 무표정이겠지만.

저건 백 프로, 기분 안 좋은 폐하다.

내가 폐하 봐온 세월이 얼마인데 저 정도도 구분 못 하겠는가.

“하하. 너무 열심히들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적당히 따야 소상공인들도 먹고살죠.”

두 사람이 지나온 가게 부스들의 사람들은, 도장 깨기라도 당한 사람들처럼 허망한 얼굴로 상품들을 부대 자루에 쓸어 담고 있었다.

모두 두 사람에게 줄 상품들이었다.

내가 장담하건대, 내일이면 이 거리에 미남 출입 금지 경고문 걸릴걸.

어쨌든 지금은 폐하한테서 델칸을 떨어트리는 게 우선이었다.

“델칸, 우리는 이만 갈게! 다음에 봐!”

나는 폐하의 옷소매를 잡고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버틸 줄 알았던 폐하는 순순히 나를 따라왔는데,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리리.”

델칸이 나를 불렀다.

그렇지, 작별 인사가 좀 일방적이긴 했지……?

나는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우리 서 있는 위치가, 누가 보면 지금 길거리에서 삼자대면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이 경우는 델칸과 승부를 가리고 있던 폐하를 내가 끌고 가는 꼴이니까, 폐하를 사이에 둔 삼자대면인가.

설마하니 델칸과 내가 이런 구도를 만들 줄은 몰랐다.

“이 사람이랑 어떤 사이야?”

“응? 어…….”

폐하와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물으면…….

“채무 관계로 얽힌 사이?”

“…….”

나도 눈치가 있지.

내 발언에 한순간에 분위기가 싸해진 것 정도는 나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황제도 성녀도 아니거니와.

부부 설정도 끝난 지 오래였다.

델칸에게 말할 수 없는 이런저런 관계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빼다 보니 남은 건 반지에 관한 채무뿐이랄까.

남은 게 빚쟁이 인생이라니. 흑흑.

“채무…….”

“……관계?”

어이없다는 폐하의 목소리와, 놀란 델칸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어, 그게. 제가 갚을 게 있잖아요. 그렇죠?”

나는 폐하에게만 보이게 검지를 까딱였다.

손가락의 반지에 눈길을 준 폐하가 콧방귀를 날렸다.

델칸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보다가, 휙 하고 시선을 폐하에게 던졌다.

“설마 돈을 빌미로 이혼 후에도 이렇게 따라다니는 겁니까?”

“앗, 내가 따라다니는 건데?”

델칸이 나를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웠지만, 여기서 폐하와 델칸의 싸움을 더 부추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델칸의 목숨은 중요하니까.

나는 붙들고 있는 폐하의 옷소매를 가리켰다.

“봐봐. 내가 잡고 있잖아.”

“그렇다는데.”

폐하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고, 델칸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혼했는데, 왜……?”

“잘생겨서……?”

“…….”

아, 나 이 눈빛 안다.

내가 얼마 전에 갑판 위에서 쇼웬보던 눈빛이잖아.

크흡. 델칸. 내가 그렇게 쓰레기 같았니…….

지금 내 설정이 뭐더라.

전남편한테 빚진 채무자에다 이혼하고도 전남편의 미모를 못 잊어 따라다니는…….

음.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그래도 델칸, 너도 반박할 수는 없겠지.

우리 폐하가 성격은 몰라도 얼굴은 끝내주잖아.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

분위기가 어색했다.

나는 폐하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델칸에게 등을 돌렸다.

친구가 이런 쓰레기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델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델칸, 우리 친구니. 아직 친구 맞니이.

두어 번 뒤를 돌아보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도 델칸은 주먹을 꾹 쥔 채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아프다. 이런 결말을 바라고 끼어든 건 아니었는데…!

슬픔도 잠시, 우리는 관광지를 연상시키는 인파 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폐하와 델칸 주변에 모였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헤어지자, 거리의 놀 거리와 먹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봐. 전 부인.”

“?”

헨켈 대장이 있는 골목에 다다랐을 때쯤,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폐하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저요?”

“전 부인이 여기 더 있나?”

폐하, 그 설정 덕분에 저 친구한테 방금 쓰레기 취급받았거든요. 흑흑.

“자.”

폐하는 무심한 손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맨 처음 내가 게임 부스에서 노리고 있던 그 은색 털 방울 인형이었다.

“갖고 싶어 했잖아.”

“헐.”

훅 들어온 다정스러움이 의심스러워 인형을 한 번 봤다가, 폐하를 한 번 봤다가를 반복했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위험해.”

이 얼굴이 뇌리에서 쉽게 잊힐 얼굴인가.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여전히 이쪽을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들이 다니지 않는 거리라 해도, 델칸처럼 황궁에 출입하는 누군가가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역시 얼굴을 꽁꽁 싸매는 편이…….”

안 그래도 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의도치 않은 삼자대면 라이브를 벌인 셈이라 더 불안하단 말이야.

나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헨켈 대장에게 맡겼던 바구니를 들고나왔다.

시아나가 나한테 필요할 거라고 챙겨 준 바구니 중 하나였다.

여기에 숄이 들어있었지. 그걸로 폐하 얼굴을 가려버리자.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이걸 왜 생각을 못 했담.

“뭘 하려는 거지.”

“잠시만요.”

바구니 속에서 안에 있는 숄을 꺼낸 그때였다.

데구르르.

숄과 함께 딸려 나온 무언가가 바닥을 굴렀다.

그 정체를 확인한 내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게 왜……?”

***

내가 없어진 것을 아는 사람들의 눈물 젖은 환대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온 지도 어언 2주.

과보호의 끝판왕인 ‘24시간 호위 기사 붙이기’를 받는 것 외에, 내 삶은 달라진 것이 몇 개 있었다.

첫 번째.

내가 벼락부자가 될 징조가 보인다.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냐면,

당연히 참석 못 했을 거라 생각하고 포기했던 디저트 레시피 대회에서 헬리가 우승을 거뒀다.

헬리는 우승상금을 다 나한테 준다고 그랬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노동의 대가는 정당해야 한다.’, ‘나를 그런 양심 없는 양아치로 만들 셈이냐!’

라고 우기고 우겨서 500골드씩 나눠 가졌지.

조각상 다리 한쪽밖에 의뢰 못 할 금액이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계약이요?”

우승 후에 해야 할 레시피 계약을, 헬리가 레시피 저작권은 나한테 있다며 계약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우승자가 계약을 안 한다니.

앙뜨완 빵집 측에서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헬리에게 연락을 취하던 앙뜨완 빵집의 사장, 올리비아는 레시피 주인(나, 리리)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바로 계약서를 보내왔다.

전국 앙뜨완 체인에서 파는 팝콘 수익금의 일부 비율을 넘겨주는 거라는데, 나쁠 것이 없어 보여서 서명을 하고 넘겼더니.

며칠 전에 계약금과 일주일 치 판매대금의 정산이라며 수표가 도착했다.

“헐.”

계약금이 포함된 걸 고려하더라도 손 떨리고 살 떨리는 금액이었다.

무슨 사람들이 팝콘만 먹고 사나.

한때 내 꿈이 마르지 않는 치킨 주머니 하나 차는 거였는데.

이건 무슨 마르지 않는 덕질 자금 주머니 차게 생겼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인생은 역시 플렉스다.

지난번 허퍼슨이 알아봐 준 조각가에게 제작 예약을 잡았다, 이 말이지!

조각상 비용인 3천 골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반인 착수금 정도는 내 재력으로 무난하게 지급할 수 있었다.

방금 나 재력이라고 했냐. 미쳤다. 신아리, 이제 어른이다. 어른. 쇼웬한테 밥 사주는 거 완전 가능.

제작 착수에 들어가기까지는 앞선 주문 때문에 두 달이 남았다고 하니, 나는 그동안 조각상 1호가 될 폐하의 모습을 골라야 했다.

행복한 하루하루지…….

이건 일단 넘어가고.

두 번째.

이건 또 엄청난 건데, 내가 신성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보니아까지 다녀온 내 무용담을 듣던 시아나가 반지에 관해 의문점을 제시한 것이다.

“신성석은 한 계열의 신성력밖에 담을 수 없거든요. 하얀빛은 수호 계열이고 노란빛은 공격 계열의 신성력이니……. 폭발은 반지의 신성석 때문이 아니라 성녀님의 신성력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반지의 힘인 줄 알았던 그게 내 신성력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나한테 신성력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설레발쳤다가 흑역사 만든 일이 한두 번이어야지.

나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노란빛은 반지에서 나왔는데……?”

“신성력 훈련법 중에 신성석을 매개체로 해서 체내의 신성력을 밖으로 내보내는 훈련이 있거든요. ‘수호의 반지’의 신성석 정도면 성녀님의 신성력을 버틸 수 있었을 테니,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답니다.”

“수호의 반지가 뭔데……?”

“황제 폐하께서 성녀님께 주신 반지예요. 젠달에 전해 내려오는 국보죠.”

……이 반지. 무섭다 무섭다 했더니 진짜 무섭다.

장식 보석에, 신성석에, 국보 타이틀까지.

나 돈 평생 모아도 이거 갚을 수 있을까…?

이제 끽해야 조각상 플렉스를 시작한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스케일이었다.

로또 1등인 줄 알았던 내 덕질 주머니가 세계 부자 랭킹 1위 앞에서 기도 못 펴보고 초라해지는 기분이랄까. 흑흑.

어쨌든, 신성력이 있다는 시아나의 말을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예배당의 이드만타 측정기가 아직 수리 중이었다.

신의 광물이라더니 수리도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뭐, 없다고 생각했던 신성력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니 안달 낼 것도 없었다.

이제 나는 먹고살 걱정 없고 황궁에서 쫓겨날 걱정 없으니까!

문제는…….

나는 거실에 우뚝 서서 침대 위를 바라봤다.

방으로 들어온 후, 저걸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린 지도 어언 십여 분.

저 각 티슈 반만 한 나무상자…….

내가 버리고 또 버려도 다시 돌아오는 저 상자…… !

숄을 꺼내다 바구니에서 떨어진 상자를 목격했던 그때처럼,

내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저주받은 상자인 게 분명해.”

마지막 세 번째.

나한테 이상한 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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