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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42화 (42/150)

42화

내가 달려듦과 동시에 폐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검이 아니라-.

“리리?”

뒤에서 델칸이 의아한 목소리로 날 불렀지만, 지금 델칸을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하.지.마.요.]

“…….”

[하.지.말.라.고.요.]

“…….”

부인이라고 말하지 마시라고요……!

내가 지금 심장 박동 올라가는 것도 참고 열심히 텔레파시를 보내면 뭣하나.

폐하는 ‘뭘 하는 거냐.’란 눈빛으로만 날 보고 있는데.

뭐든 잘하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폐하는 아직 독심술의 경지까지는 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으. 이대로는 안 돼.

나는 폐하의 입을 막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폐하도 별 저항 없이 보조를 맞춰 걸어줘서 우리는 델칸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아가씨, 안 해? 이쪽 기사분이 대신 할 건가?”

“네! 걔가 대신 할 거예요!”

“저…….”

“자, 하라고! 기사 양반!”

때마침 게임 부스 주인도 날 도왔다.

델칸은 얼결에 고무공을 받았고, 부스와 멀어진 나는 폐하에게 속삭였다.

“그 부ㅇ……. 배에서 하던 설정요, 여기서도 계속하실 거예요?”

“…….”

“쟤한테는 안 돼요. 황궁에서 친해진 애란 말이에요……!”

이 미모가 어떤 미모인가.

나같이 염색약 썼다고 못 알아볼 흔한 인상도 아니고.

지금 눈썹이랑 눈이랑 콧대 반반 보이는데도 장난 아니다.

우리 세계에선 어? 폐하 얼굴로 이렇게 길거리 맘 편히 못 다녔다고요……!

내가 장담하는데, 일반인 게릴라 데이트도 가능할걸.

“방심했어……. 아무도 못 보게 꽁꽁 싸맸어야 했는데.”

“?”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 미모, 이 흘러넘치는 분위기!

어쩔 거야…….

델칸이 황궁에서 금발 폐하를 만난다면 ‘어? 그때 그 사람!’이라고 단박에 알아볼 게 뻔하다.

그러니 여기서 폐하가 부인이라고 말해버린다면.

‘우연히 만난 내 친구의 남편이 사실은 황제 폐하?’

이런 막장 제목을 가진 소설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의도치 않은 헛소문이라도 퍼져봐.

우리 폐하가 사실은 유부남이더라. 밖에서 살림을 차리고 황궁에선 미혼인 척하더라.

“……절대 가만 못 두지.”

우리 폐하 가지고 그런 추문이 도는 꼴은 절대로 못 본다. 나는-!

“…….”

델칸 앞에서 부부 설정을 밀고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아닌지.

폐하는 날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쨌든요. 나중에도 그 설정 놀이하고 싶으시면 여기서는 자제해주세요. 안 그러시면 다음에 데이데른 호 사람들한테 우리 이혼했다 말해버릴 테니까…….”

내가 으름장을 놓아봤자 폐하는 눈 하나 꼼작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폐하에게 먹힐 법한 협박을 한다고 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며칠 동안 놀리는 걸로 봐서 지금 이렇게 놀리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드신 거 같은데.

그 설정 계속 가져가고 싶으시면 이번엔 참으시라. 이거지.

“…….”

“왜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폐하는 조용히 검지를 들어, 내 손등을 두드렸다.

갑자기 훅 들어온 터치에 당황할 새도 없이 겹친 내 두 손이 보였다.

아하. 그러고 보니 내가 계속 폐하 입 막고 있었구나. 그래서 조용하셨군.

하지만 이건 내가 날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란 말이지……!

눈앞에 폐하 얼굴이 있는데 내 손이 눈에 들어올쏘냐.

가까이서 본 폐하의 눈동자는 아름답게 언 얼음같이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으. 인지하니까 떨리고 그런다.

쿵쿵 뛰는 게 내 손목인지 내 심장인지.

손바닥은 안 뛰겠지?

뭐, 폐하한테 내 심장 박동 들키지 않을 걱정을 하기엔 벌써 내 얼굴은 빨개지고 난리가 났을 테지만.

나는 애써 덤덤한 척을 하며 물었다.

“그러면 델칸 앞에서 그 부……라고 말 안 하실 거예요?”

끄덕.

폐하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눈동자는 신뢰할 수밖에 없는 눈동자다.

단박에 믿음이 확 생겨버린 나는 폐하에게 손을 떼고 뒤를 돌아 델칸에게 걸어갔다.

잠깐 사이 고무공 사격 장인이 된 델칸은 사격대 위에 전리품을 한가득 쌓아두고 있었다.

“기사 양반, 이렇게 잘하면 우리 가게는 망해…….”

울상이 된 부스 주인이 텅텅 빈 상품 진열대 주변에 떨어진 고무공들을 줍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델칸의 실력이 어마어마했던 모양이었다.

델칸은 자신을 향해 오는 날 발견하자마자 전리품은 죄다 두고 이쪽으로 뛰듯이 걸어왔다.

“상품은 안 챙겨도 돼?”

“응. 나는 별로……. 리리, 갖고 싶은 거 있었어? 챙겨줄까?”

“아, 아냐.”

챙겼다가 부스 주인 울라.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 은색 털 방울 인형은 땄나?

“그런데 델칸, 여긴 어쩐 일이야?”

황궁에서만 지내는 줄 알았는데, 궁 밖으로도 종종 나오는 모양이었다.

델칸은 내 눈치를 쓱 보며 말했다.

“실은, 네 행방을 찾는 중이었어.”

“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내가 놀라 묻자 델칸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이상한 이유는 아니고, 너 마지막으로 본 게 반지 때문에 고민하던 때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아, 반지 때문에……!”

델칸과 마지막으로 본 게 그 무렵이었나?

요사이 크고 작은 사건이 너무 많이 터져서 잊고 있었다.

그래도 델칸…….

친구라고 나 걱정해서 이렇게 찾으러 다녀도 주고…….

잠시 마음이 찡해졌다.

역시 델칸은 마성의 다정남이 틀림없다니까.

‘앗. 폐하.’

그러고 보니 델칸한테서 폐하 지키려던 게 한때 내 목표였는데!

나는 뒤쪽의 폐하와 델칸을 번갈아 쳐다봤다.

“…….”

“……?”

폐하는 뭘 보냐는 식으로 무표정하게 있었고, 델칸은 내 쪽만 보고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둘 다 말 안 하고 있는데도 반응이 극과 극인 게 볼 맛이 있네.

게다가 델칸은 우리 폐하를 보고도 안중에도 없었다.

……왜지?

저 미모를 처음 마주하고도 어떻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 거지!

나라면 두 다리로 서 있지도 못할 거 같은데…!

델칸도 아쉬울 게 없는 외모의 소유자라서 그런가?

‘연예인을 왜 봐? 잘생긴 사람 보고 싶으면 거울 보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하긴, 델칸은 그런 말 해도 인정이다.

웬만한 미남들 외모론 다 이기는데 나라도 거울 봤지.

하지만 폐하는-! 저 미모는-!

“그래도 다행이야.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돼서. 리리, 그동안 어디 갔었던 거야?”

“으음……. 잠시 여행을 좀…….”

“그랬구나. 여행은 재밌었어?”

델칸은 나랑 대화하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처럼, 입가에 미소를 듬뿍 머금고 말했다.

“황궁으로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

“응. 다시 돌아갈 거야.”

“그렇구나.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역시 사람 좋아하는 인간 댕댕이.

보일 리 없는 꼬리가 델칸의 뒤에서 프로펠러처럼 붕붕 돌아갔다.

솔직히 나도 델칸이 반갑긴 했다.

어디 가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둘이 친한 모양이군.”

결국 내 뒤에 서 있던 폐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얘는요-.”

후딱 인사시키고 헤어지자.

신분 숨기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셋이서 같이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었다.

그래서 폐하에게 델칸이 누군지만 알려주고 후다닥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델칸이 먼저 나서서 본인 소개를 했다.

“델칸 몬드리아입니다. 리리의 절친한 친구고요.”

“절친한?”

“네. 그쪽은 리리랑 사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

폐하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전남편인데.”

***

“…….”

나는 건물 벽에 붙어 서서 자칭 내 전남편과 내 절친을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혼당했거든. 최근에.”

허허허. 라울 신관님의 웃음소리가 그런 건 인생무상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폐하의 거침없는 발언에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기를 관뒀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델칸이 황궁에서 만난 금발 폐하가 내 전남편 사칭범과 똑 닮은 얼굴이라는 걸 알아보는 건 예정된 미래라 이거지.

“대장.”

“네.”

나는 시선은 앞으로 고정한 채 골목 안에 몸을 은신하고 있는 헨켈 대장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황궁으로 간 초비를 제외하고, 동행한 기사들은 여기저기에 몸을 숨긴 채 폐하와 날 호위하는 중이었다.

“제 전남편과 폐하가 쌍둥이라는 설정이 좋을까요?”

“…….”

“아니면 우정을 믿어보는 편이 좋을까요?”

끝까지 설정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털어놓고 델칸에게 비밀 유지를 부탁할 것인가.

후자면 나도 성녀인 걸 밝혀야겠지만.

하지만 나 혼자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게.

“역시 폐하 의견을 듣고 행동하는 편이 좋겠죠?”

“그게 좋을 듯합니다.”

폐하 정체까지 얽혀져 있으니, 이건 내 손을 떠난 국가 수준의 문제였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고 뭐라도 고민하는 척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가판대에서 산 음료를 홀짝거리며 폐하와 델칸을 구경했다.

크흐. 이런 미남 둘이 한 장면에 담겨 있는 걸 내 인생 언제 또 볼 수 있겠냐고.

투샷 최고다. 헨켈 대장도 같이 있으면 난리 났을 텐데.

아니, 지금도 난리지.

저 두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 이목을 잡아끌어서, 지금 이 거리는 어느 번화가보다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폐하와 델칸은 승부에 불이 붙어 거리의 모든 게임을 섭렵할 기세였다.

지금은 고리 넣기 게임 부스 앞에 서서 고리 하나를 둘이 붙들고 서 있었다.

주위에 널린 주인 없는 고리들을 두고 굳이 왜 그걸로 그러고 있는가 했더니,

“이것 좀 놓으시죠.”

“그쪽이야말로.”

“제가 먼저 집었습니다.”

“내가 좀 더 빨랐지.”

둘이서 자존심 싸움을 하는 모양이었다.

내용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가 미친다.

나는 둘의 대화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데 전남편이 여행 가는 것까지 따라가고 그럽니까?”

“재결합 계획 중이라.”

허허허. 재결합 계획 설정까지.

평소에 다정한 황제 폐하 연기하고 계셔서 그런지 저런 디테일에 진심이시라니까.

어쨌든, ‘우리 폐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있던 나는, 이어진 대화에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뗐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남의 가족사에 쓸데없이 관심이 많군.”

“이혼하면 남보다도 못한 게 전남편이라던데요.”

폐하 눈썹이 눈에 띄게 움직였다.

……말릴까?

내 친구 목숨은 지켜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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