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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30화 (30/150)

30화

“으악.”

“아, 아팠냐? 미안하다. 내가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너 꽤 야망이 있는 꼬맹이구나?”

윅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도 제 마음 이해하세요?”

“이해하고말고! 나도 어렸을 땐 그렇게 살았거든!”

“그러면 저 멀쩡하게 살아있는 주방장님 뒤통수 한 번만 때릴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돼요?”

윅에게 헬리의 위치를 들은 후, 기회를 봐서 윅의 뒤통수를 단단한 걸로 내리치고 도망간다.

그리고 경비병을 불러서 쿠이제에게 잡혀 있는 헬리를 구출한다.

나름대로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내 탈출 계획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말하지만.

“흐응.”

“아저씨?”

“글쎄, 안 되겠는데.”

현실을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드물다니까.

“왜요?”

“너 여기서 죽을 거거든.”

윅은 턱을 매만지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눈이 하나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날 정말 죽일 생각인 게 분명했다.

“여기서 안 죽는 선택지는요?”

“흐흐. 없지.”

“이 반지를 드리면요?”

나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보여줬다.

반지 낀 손가락이 중지가 아닌 게 아쉽네.

폐하의 반지는 링의 세공과 거기에 박힌 보석만으로도 값어치가 상당히 높았다.

돈 좋아하는 윅도 그걸 알아봤는지 탐욕스러운 눈으로 내 검지를 뚫어져라 봤다.

이런 의뢰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 중에 돈만 보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더 큰 액수를 제시하면 된다고 책에서 봤는데.

“너 죽으면 그것도 내 거가 될 텐데. 내가 왜?”

“와. 겁나 비열해.”

“뭐라고?”

“저 방금 장래 희망 생겼잖아요. 나이 먹어도 님 같은 어른은 안 되기. 인간말종, 쓰레기.”

“이 꼬맹이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휘익-.

나는 몰래 왼손으로 바닥에서 긁어모은 흙과 모래를 윅의 눈을 향해 던졌다.

그리곤 윅이 눈이 따가워 고개를 숙인 사이, 아까 봐둔 튼실한 장작을 주워 윅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으아악!! 이게!”

나는 괴로워하는 윅의 고함을 뒤로 한 채 건물을 빠져나와 무작정 앞으로 달음박질쳤다.

“악! 사람 살려-!!”

***

“으으…….”

헬리는 두통 속에서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니 의자에 몸이 묶여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이 반대편 의자에 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쿠이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쿠이제는 헬리와 동문이었다.

야망은 넘쳤지만,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마지막엔 비겁한 수를 써 손님을 뺏은 것이 들통나 파문을 당한.

“자네가 왜 여기……. 그보다 지금 며칠인가? 몇 시지? 대회, 앙뜨완 디저트 대회는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쿠이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를 고민하던 헬리의 머릿속에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본선에서 시연할 디저트를 연습하던 자신.

그리고 뒤의 기억이 없었다.

“설마 대회가 끝난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됐다.

성녀님께서 개발하신 그 혁명과도 같은 디저트를 세상에 선보이는 중요한 자리인데.

“절박하군. 헬리. 본선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니. 헬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승은 내 것이거든.”

“자네가 우승을? 자네는 그럴 실력이 안 되잖아.”

쿠이제는 히죽 웃었다.

“지금 황도에서 가장 잘나가는 요리사가 누군지 알아? 바로 나야. 그러니 대회의 우승도 당연히 내 몫이었는데, 갑자기 헬리 몽블랑이 대회에 참가한다잖아?”

“…….”

“황궁으로 들어간 네가 다시 황도로 나오면 내가 아주 곤란하지 않겠어? 전설의 요리사면 전설로 남아야지.”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먼.”

“크큭. 헬리. 여유로운 걸 보니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네 조수도 잡아 왔거든. 본선에 너 대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조수……?”

“그 이쁘장하게 생긴 외국인 여자애 말이야. 머리카락이 갈색이던가?”

“……쿠, 쿠이제.”

커다래진 헬리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쿠이제는 그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이제 좀 불안해?”

“그, 그분……아니, 그 여자애를 납치했다고……?”

“그랬지. 동업자한테 네 조수는 죽여 놓으라 말했어. 내가 떠날 때는 잠들어 있었으니, 잠든 사이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너무 걱정은 마. 너도 곧 죽여줄 테니까. 내 우승을 보여준 뒤에.”

“오……. 오오……. 쿠이제,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헬리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급기야는 쿠이제의 이름을 원망스럽게 울부짖다 오열했다.

그를 보며 쿠이제는 단전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인생의 반을 패배 의식 속에서 살았다.

이 헬리 몽블랑. 이 천재 때문에.

하지만 지금 봐라. 누가 승자이고. 누가 목숨줄을 쥐고 있는가.

쿠이제는 승자의 기분에 도취했다.

“네 업적은 내가 그대로 이어받을 테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요즘 사람들이 널 ‘신의 요리사’라고 부르는 건 알아? 성녀님께 요리를 내드린다는 이유로 말이야. 웃기지도 않아서 정말. 성녀님께서도 내 요리를 맛보시면 분명 너보단 날 인정하실 거다.”

“성녀님께서……!”

헬리는 쿠이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다리가 땅에 고정된 의자였기 때문에, 헬리는 차마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는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쿠이제의 오만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헬리의 목소리의 끝이 분노로 떨렸다.

“쿠이제……. 오늘 일을 피눈물 흘리며 후회할 날이 곧 올 걸세.”

***

“아, 진짜! 아저씨, 우리 아까까지는 분위기 좋았잖아요!”

나는 숲속을 달음박질하며 뒤를 향해 소리쳤다.

그놈의 윅은 정신도 빨리 들었다.

“헉, 헉. 무슨 꼬맹이가 이렇게 잽싸.”

“체력 안 되면 그만 포기하세요!”

“그럴 순 없지…!”

“끈기 진짜 대박이다. 그 끈기로 사람 죽이는 일 말고 다른 일 했으면 분명히 성공했을 텐데!”

“시끄럽다!”

무슨 산속에서 스릴러 영화 추격전 찍는 것도 아니고.

으아아아아. 폐하, 칼 든 남자가 저 쫓아와요-!

내가 갇혀있던 곳은 외진 산속의 작은 산장이었다.

누가 비열한 윅 아니랄까 봐.

장소도 인적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는 곳을 골랐다.

그래도 오늘따라 몸이 풀려서 다행이었다.

내가 신성력은 몰라도 네 가지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 있었다.

체력, 시력, 청력, 폐하를 향한 덕력.

애들이랑 숨바꼭질할 때는 감각을 풀가동하느라 두통 때문에 무력했지만, 지금은 뛰기만 하면 된다 이거야.

다리가 날아갈 것 같네. 곧 죽을 거 같지만-!

“으아, 앗.”

헉. 떨어질 뻔.

울창한 수풀 뒤에 절벽이 있었다.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주변의 나무를 붙잡아 관성을 이겨냈다.

순발력 완전 좋았다.

“이제 더 도망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 새도 없이, 윅이 여유를 부리며 나타났다.

얄밉다. 아주.

나는 절벽을 피해 몇 발자국을 되돌아간 뒤, 날 향해 걸어오는 윅을 마주 봤다.

“아저씨. 저 경고 하나만 할게요.”

“경고? 어디 해 봐.”

윅은 가당치 않다는 듯 낄낄거렸다.

“저 죽이면 진짜 화날 사람 있거든요? 그분이 외모만큼이나 능력도 완벽해서, 아저씨 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될 게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생각 잘하시라고요. 아저씨는 남 목숨은 안 아까워도 자기 목숨은 아깝잖아요……!”

우리 폐하가 자기 똘마니 죽인 인간을 가만둘 거 같은가!

내가 지금 개살구 성녀이긴 해도, 폐하가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원할 때 이용당해야 한단 말이에요!”

“너……. 그런 소리를 당당히 말하다니…….”

정말 불쌍한 애구나?

윅은 정말로 안쓰럽다는 듯 말하며 검을 꺼내 들었다.

시퍼런 칼날이 빛을 반사하며 불길하게 빛났다.

불쌍한 애면 봐줘야지, 왜 죽이려 하냐고!

‘죽을 땐 폐하 얼굴 보면서 죽고 싶었는데-!’

그래야 미련이 남아서 영혼으로도 폐하 얼굴 보러 달려가지.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죽기도 싫었고.

폐하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좀 보고 가는 거면 몰라, 이건 너무 이르다.

하지만 윅은 자비가 없었다.

“유감스럽지만, 잘 가라. 꼬맹이.”

나는 차마 내 마지막을 두 눈 뜨고 맞이할 수 없어 양팔에 고개를 묻었다.

퍽.

“……?”

이상하다.

원래 검에 베이면 스걱, 이라든지. 뭐 그런 소리 나지 않나?

이 둔탁한 타격음은 뭐지.

그리고,

‘안 아픈데……?’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윅이 허공에 검을 멈춘 채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너 신성력 보유자냐?”

신성력이라니.

“그딴 게 나한테 어디 있…….”

“하지만 이 윅 님에게 신성력은 문제가 되지 않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윅은 다시 검을 날렸다.

이게 스포츠였으면 윅은 영구퇴장감이야.

휘익. 퍽.

휘익. 퍽. 퍽. 퍽. 퍽.

윅의 검은 계속해서 허공을 때렸다.

1인칭 훈련용 허수아비 시점을 체험할 수 있으면 이런 광경일까.

“……아저씨, 뭐해요?”

“뭐, 뭐하긴. 헉……. 헉……. 널 죽이려고…….”

기진맥진해진 윅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결계 밖으로 나와서 싸워라. 정정당당하게!”

“와. 양심도 없다.”

하지만 윅이 그렇게 씩씩대는 것도 나름대로 이해는 갔다.

날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반구형의 결계가 윅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아마.

‘그냥 다이아몬드일 줄 알았는데 신성석이었어?!’

폐하한테 돌려줘야 할 반지.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하얀빛의 신성력이 결계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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