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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26화 (26/150)

26화

“오, 오오.”

헬리는 입안에서 터지는 황홀경의 세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디저트란 무엇인가.

식사의 마지막을 알리는 음식. 주요리의 맛을 해하지 않아야 하는 음식.

그렇기에 이 세계의 디저트는 단조롭고 투박했다.

당근과 오이를 겹겹이 쌓아 만든 케이크나, 기름을 바른 딱딱한 빵 조각 같은.

하지만 이건…….

‘놀랍다.’

헬리는 감탄했다.

푸딩. 이토록 완벽한 음식이 이 세상에 존재했던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 입안을 가득 채우는 기분 좋은 단맛.

행복에 고취된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 허공을 부유하는 것 같았다.

그는 허겁지겁 다음 스푼을 뜨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크흠. 흠.”

“어때요? 괜찮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푸딩이라는 것에 제 요리사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입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입에 남은 여운에 헬리의 몸이 부들 떨렸다.

“이 정도면 본선은 갈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헬리는 단언했다.

앙뜨완 빵집이 대회를 연 취지는 분명했다.

‘가게에서 팔 수 있는 새로운 디저트를 찾는다.’

요리의 마지막이 아닌, 단품으로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유발할 수 있는 디저트.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푸딩이 우승 후보가 아니라면 심사위원의 혀는 입이 아닌 엉덩이에 달렸겠지.

게다가 이건 성녀님께서 ‘시험 삼아’ 만들어 보자고 한 디저트.

시험 삼아 꺼낸 레시피가 이리도 완벽한데, 이어질 것들은.

전율한 헬리의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크흐. 역시 맛있는 거 앞에서는 전 우주가 하나라니까.’

한편, 아리는 심장이 뛰었다.

이 세계 사람들이랑은 미각이 다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여기 디저트들이 그냥 맛이 없는 것뿐이었다.

벌써 황제의 흉상 머리카락이 제게 인사하는 듯했다.

‘헬리와 함께라면…….’

‘성녀님과 함께라면…….’

생기가 도는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2년 치 월급 한 방에 모은다.’

‘대회를 기준으로 디저트의 새 시대가 열리겠군.’

확신에 찬 둘의 웃음소리가 보조 주방을 채웠다.

***

델칸 몬드리아는 젠달의 황궁을 거닐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삼 일째.

그의 앞머리가 뒤로 넘어간 지도 삼 일이 흘렀다.

“시종을 붙여줄게.”

그저 샤를이 붙인 감시역이겠거니 생각했던 시종은, 젠달에 도착한 날부터 매일 델칸을 찾아왔다.

“몬드리아 님의 용모를 단장해 드리는 게 제 일입니다.”

갑옷을 입어야 하는 기사들에게 옷 시중은 익숙한 일이었다.

알겠다 했더니, 시종은 어디서 꽃잎으로 우려낸 물 같은 희한한 것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델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꾸민 뒤, 샤를이 준 백마마저 행사를 위한 말처럼 꾸며놓았다.

웬만해선 델칸에게 말을 안 거는 루이드마저 그 꼴은 뭐냐며 빈정거릴 정도였으니.

델칸은 당장이라도 제 모습을 쥐어뜯어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왕녀님께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내리면 젠달로 찾아가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시종의 전언에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젠달에 도착한 그 날, 델칸은 주위 풍경보다 말갈기와 제 구둣발을 더 많이 봤다.

다행인 건 환영 만찬회에 성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성녀한테 그 모습을 보였다면 델칸은 황실 호위 부대의 가면을 쓰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젠달의 황제가 성녀를 숨기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

샤를에겐 모른 척했지만, 델칸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녀에겐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었다.

샤를의 부탁을 받고 황궁 내 성녀의 동태를 살폈을 때.

비록 멀리서 바라보긴 했지만, 델칸은 이상하게도 성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갖고 싶다.’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쾌하고 달콤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게 제 몸에 흐르는 반쪽짜리 보니아의 피 때문이라면, 제2 왕자인 루이드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루이드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샤를을 혼자 보니아에 둔 것이 가장 걸려. 돌아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

“아, 진짜!”

“……?”

델칸은 갑자기 들려온 짜증이 섞인 외침에 걷는 속도를 줄였다.

혼자 생각할 공간이 필요해서 외진 곳을 찾아 들어왔는데,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인 모양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겠네.’

델칸은 발끝의 방향을 틀었다.

“제발 좀 줘라.”

하지만 애원하듯 바뀐 목소리가 델칸의 발을 붙잡았다.

그는 가던 방향으로 몇 발자국 더 움직였다.

젠달의 하녀복을 입은 갈색 머리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나무 앞에 서서 위쪽을 올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황궁의 하녀인가?’

그녀의 시선은 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 한 마리에 멈춰 있었다.

새는 부리에 작은 바구니 하나를 물고 있었는데, 정황상 저 소녀의 것인 듯했다.

‘‘도둑 새’에게 당한 모양이네.’

남부 지역에선 유명한 새였다.

커다란 부리와 날쌘 몸놀림으로 사람들의 소지품을 훔치는.

여기가 보니아 왕궁이었다면 소녀를 도와줬을 테지만…….

젠달의 황궁이니 따로 도와줄 사람이 있겠지.

델칸은 소녀를 그냥 지나치려 했다.

“야, 그거 당장 안 내놔? 너 지금 안 내놓으면 잡아서 통구이로 만들어 버린다?”

“으악. 안 돼! 그거 풀면 안 돼! 그거 먹으면 안 돼!”

“새 님, 제가 잘못했어요! 나 무릎 꿇을게! 꿇는다?! 어?!”

……화내다가, 비명을 지르다가, 급기야는 빌기까지.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델칸은 살짝 한숨을 쉬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샤를이 봤다면 또 오지랖을 부리느냐며 놀릴 테지만, 이럴 때는 그냥 도와주고 마음이 편해지는 게 나았다.

“무슨 일이야?”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이마, 가지런히 자리 잡은 눈썹이 쳐져 울상이 돼 있었다.

이국의 소녀인가? 귀엽게 생긴 미인이다.

“…….”

델칸과 소녀의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잠시 놀란 듯 델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 역시 1열이 최고라니까.”

“……일 열이 뭐야?”

“까악.”

델칸이 당황하는 사이, 소녀는 새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악, 먹지 말라고-! 내 회심의 역작!”

“저기, 도와줄…….”

“깍. 깍.”

“와, 먹었어? 먹었다고? 그래, 네가 나랑 한 번 결판을 보자 이거지?! 내가 너 잡아서 헬리한테…….”

급기야 소녀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려는지 밑동에 한쪽 다리를 걸쳤다.

‘끼어들 틈이 없네.’

델칸은 별수 없이 주변에서 주먹 반만 한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가볍게 돌을 던지자 “휙-.” 하며 매서운 파공음이 짧게 들려왔다.

퍽.

“까……ㄱ.”

돌은 정확히 새의 미간을 맞췄다.

새가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동시에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도 떨어졌다.

다행히 바구니가 땅에 닿는 속도보다 델칸이 낚아채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런, 벌써 꽤 많이 먹은 모양인데.”

포장이 다 풀린 바구니 속에는 작은 구움 과자 몇 개가 볼품없이 굴러다녔다.

델칸은 자신이 다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며 바구니를 소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바구니를 받는 모습이 잔뜩 풀이 죽어 보였다.

혹시 모시는 분에게 가져다줄 물건이었나.

눈앞의 소녀가 혼이 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델칸은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곤란하게 된 거야?”

“…….”

“도둑 새한테 당했다는 증언이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 보니아 왕국 사절단이 머무는 건물에서 ‘델칸 몬드리아’를 찾으면 돼.”

“…….”

“네 이름은?”

한편, 아리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제 앞에 있는 사람은 며칠 전 봤던 보니아 왕국의 화려한 미남.

그날은 너무 화려해 보였는데, 오늘은 단정한 기사복에 깐머리만 한 것이.

‘이래서 스타일링이 중요하다니까.’

아까는 저도 모르게 꺅꺅거릴 뻔했다.

게다가.

얼굴만 친절한 줄 알았더니 행동까지 친절하다.

조금 전, 헬리와 만든 디저트를 알렌드에게 자랑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날아온 날치기 새한테 바구니를 도둑맞았는데, 도와준 게 이 깐머리 미남이었다.

‘크흡. 친해질 수 없는 게 아쉽다.’

초비의 염색약으로 몸에서 검은색이 사라졌다지만 이목구비는 제 것이었고, 목소리도 제 것이었다.

더욱이 이 미남은 보니아 왕국의 사람이고, 또 언젠간 자국으로 돌아갈 사람.

애매하게 친해졌다가 정체가 들통나는 것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편이 낫겠지.

슬프기 짝이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아리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델칸에게 안녕을 고했다.

“……미남이래도 처음 본 사람한테 이름을 알려드리는 건 좀 그런데요.”

그리곤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곤 호다닥 자리를 떴다.

“아, 저기……!”

델칸은 붙잡을 새도 없이 멀어져 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미남이래도.”

자신을 보고 미남이라니.

아무래도 소녀는 외모에 후한 편인 듯했다.

델칸은 민망함에 괜스레 목을 매만졌다. 그런 그의 귀 끝이 붉어졌다.

***

“…….”

평화 최고.

이른 아침, 나는 폐하의 서재에 와 있었다.

새벽에 폐하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오셔서는 차를 한잔하자고-!

왜 요즘 이렇게 기분이 좋으셔서 다정하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건 한철이다.

입대 후 첫 휴가에서 생전 하지도 않던 집안일 하는 자식처럼.

그러니 이 시기의 폐하를 한 번이라도 더 내 각막에 때려 넣어야 한다는 말이지……!

다행히 묘약의 세뇌가 완전히 풀렸는지 커프스단추를 선물했을 때처럼 이상하게 심장이 옥죄는 느낌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심장이 너무 뛰어서 힘들긴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버틸만했다.

나도 이렇게 성장하는 건가.

“역시 인간은 진화의 동물…….”

“뭘 그렇게 뿌듯해하고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봐. 성격 나쁜 거 좀 나오는 거.

폐하, 부디 며칠만 더 기분 좋은 상태로 버텨주세요.

폐하의 원래 성격과 싸우시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아직…….

“성녀.”

헉. 속마음 들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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