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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7화 (17/150)

17화

‘으아아아. 완전 무서워!!’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트럭에 한 번 치여 봤으니 죽을 고비 두 번 당하는 건 쉽겠지. 는 개뿔.

한 번 하기 어려운 건 두 번도 어려운 법이다.

중력은 우리가 허공에 있길 기다렸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잡아당겼다.

아래를 볼 자신이 없어 눈을 꽉 감았다. 나는 이제…….

믿습니다.

“신아리!”

폐하만요.

잔뜩 성이 나도 멋진 폐하의 외침이 들리고 이내 떨어지던 몸이 둔탁한 충격과 함께 멈췄다.

“윽.”

“헉.”

“으…….”

폐하와 나, 노엘의 입에서 연달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을 가라앉히는 사이, 헨켈 대장이 와 내 품에서 정신을 잃은 노엘을 데려갔다.

대장……. 폐하 품에 있는 저는 안 보이시나요……. 헬프 미.

정수리가 따갑다.

나는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슬며시 위를 올려보다 숨을 삼켰다.

“……헙.”

“성녀.”

내가 좀 전에 죽었나. 잘생긴 저승사자가 눈앞에서 웃고 있네.

폐하의 얼굴에 불길한 검은색이 드리운 것은 역광 때문임이 분명했다.

그럼. 그렇다니까.

“지금 뛰어내리신 건물이 6층인 건 아시나요?”

“어……음……. 그게…… 두통이 좀 가시니까 폐하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그래서 그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믿고 뛰었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었다.

예쁘게 휜 눈꼬리에 반해 눈동자가 하나도 웃고 있지 않은걸.

심장이 떨렸다.

화난 폐하가 두려워서인지, 이제야 폐하의 가슴팍에 내가 안겨 있다는 걸 자각해서인지는 모르…….

후자구나. 난 글러 먹었다.

‘이 자세 뭔데. 폐하 팔 내 어깨에 둘린 거 뭔데. 나 지금 폐하 허벅지에 앉아 있는 거야?! 미쳤어. 당장 내려와!’

……되겠냐고.

나는 지금 온몸이 굳었다. 숨 한 번 내쉬기도 엄청나게 조심스러울 만큼. 아, 숨 찬다.

폐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앞머리 살짝 흐트러진 거 실화입니까. 퇴폐미 보이는데요.

“성녀.”

“……?”

주변 기사들을 의식해서인지, 폐하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돌아가는 마차에서 나눌 이야기가 많겠네요.”

허허허. 라울 신관님의 인자한 웃음을 따라 해봐도 내 마음의 평정은 찾아지지 않았다.

난, 큰일 났어. 이제.

***

다행히도 우리가 신전을 떠나기 직전, 노엘이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나는 둘이서만 나눌 얘기가 있다며 혼자 치료실을 방문했다.

“노엘! 잘 됐다. 깨어났구나. 몸은 좀 괜찮아?”

“……성녀님.”

노엘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진료실 침대에 앉아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성녀님께서…….”

이불을 부여잡은 작은 손이 잘게 떨렸다.

나는 거기에 내 손을 포갰다.

그리곤 노엘과 눈을 마주치며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장난스레 웃었다.

“나 상처 하나도 없이 멀쩡한데?”

“하지만…….”

“우리 둘 다 살았네. 뛰어내리기 전에 약속한 거 기억하지?”

노엘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내가 오늘 왜 왔는지 알아?”

“저희를 보러요……?”

“아니, 네 생일을 축하하러.”

노엘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몰랐지? 나도 몰랐다.

노엘에겐 비밀이지만, 실은 나도 안 지 얼마 안 됐다.

“노엘이 매년 생일마다 우울해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생일은 웃는 얼굴로 지냈으면 해서 폐하께 성녀님을 모셔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어른스러운 소냐가 해준 귓속말 덕에 알았지.

“나를?”

“저희가 제일 뵙고 싶었던 사람이 성녀님이시거든요. 모두 성녀님을 뵙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요. 성녀님…… 너무 좋아해요.”

빠르게 지나간 뒷말은 주변 소음에 뭉개져 제대로 못 들었지만, 수줍어하는 소냐의 얼굴이 내 심장을 강타했다.

뒤이어 처음으로 투구를 버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사람처럼 꾸며준 시아나와 하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달까.

그러다 문득 떨어지기 전부터 손에 계속 쥐고 있던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아!’

선물 포장이었냐고요…….

끼 부리신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나한테까지 서프라이즈였던 폐하의 철저함에 눈물을 흘려야 할지.

“아이들은 모두 네가 태어난 날이 기쁘대. 노엘.”

“정말요……?”

“내가 듣고 왔어. 정말로.”

“……그렇지만 형들이랑 누나들이 오늘 제가 한 일을 알고 실망할까 봐 무서워요. 선생님들도, 할아버지도…….”

잠시 기대감이 어렸던 노엘의 목소리가 금세 어두워졌다.

나는 곱게 접은 리본을 노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괜찮아. 다들 사고라고 알고 있거든. 그래도 무서우면, 이걸 줄게. 내가 네 편이라는 증거로.”

“이건 성녀님한테 목숨보다 소중한 거잖아요.”

노엘이 깜짝 놀라 말했다.

그 상황에서 내 아무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용하다.

……가만, 노엘 정도면 사람 얼굴도 잘 기억하려나?

그건 좀 부러운데.

“너한텐 줘도 돼.”

이게 없어도 난 큰일 난 거 같거든.

마차 면담 완전 무서워.

“……감사합니다.”

노엘은 받아든 리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성녀님, 다음에 또 와주실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노엘은 10년을 채우기 전까진 신전 밖으로 못 나가지.

까짓것. 내가 온다.

폐하한테 소원권이라도 한 장 쥐여드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또 올게.”

“정말요?”

“우린 생사를 같이 한 사이잖아?”

앗. 생사는 단어 선택이 별론가.

분위기가 가라앉을세라 나는 잽싸게 노엘의 뺨을 감싸고 웃으며 말했다.

“노엘, 생일 축하해.”

그제야 노엘은 오늘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 녀석, 미모 봐. 우리 폐하만큼은 아니겠지만 커서 사람들 애간장 좀 태우겠네.

젠달의 미래가 밝은 것 같아 아주 흐뭇하다.

***

랑데트 후작이 자택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그는 따뜻한 와인을 가져오라 명하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데르아치 공국엔 무사히 잘 다녀오셨는지요.”

노집사가 안부를 물었다.

그는 후작이 저택을 떠났을 때부터 마음을 졸이던 중이었다.

“대공께서 다음 달에 도이탐으로 보내는 배 한 척을 후원하기로 하셨다. 이번 무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우리 가문의 사업에 꾸준한 후원을 하기로 약조하셨고.”

“잘된 일이군요. 도이탐 건의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집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배를 한 척이나 후원하는 후원자는 드물었다.

더욱이 그 데르아치 대공의 후원이라니.

당장 파티를 열어도 좋을 경사였지만, 랑데트 후작은 기뻐하는 내색이 없었다.

잔뜩 진이 빠진 모양새로 데운 와인이 담긴 잔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데르아치 대공님께선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는지요.”

“바퀴 의자에 앉아계시긴 했지만, 정정하시더군.”

“다행입니다.”

데르아치 대공은 현 황제를 배출해낸 영주였다.

소작농들을 부리며 살던 그는, 알렌드 레오디우스를 니세포르엘 신전에 보낸 공로를 인정받아, 넓은 영지와 백작의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의 세력은 막힌 댐이 터지듯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의 성장이 날개를 단 건 5년 전, 레오디우스가 황제가 된 이듬해였다.

데르아치는 대공작의 칭호를 하사받고 자신의 영토를 공국으로 선언했다.

젠달에서 황제를 배출해낸 영주가 으레 밟는 절차였다.

공국을 얻은 데르아치의 세력은 점점 커졌고, 정점을 찍은 데르아치는 젠달에서 황제 다음가는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던 데르아치 대공은 재작년부터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작저에서 칩거 중이었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랑데트 후작은 손을 까딱였다.

노집사의 말대로 후작은 피곤했다.

데르아치 대공 앞에서 내내 긴장한 탓일까.

그는 품속에서 궐련을 하나 꺼내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별일은 없었나?”

“니세포르엘 신전에서 전갈이 왔었습니다.”

“헤이즐 그자가 또 물건 재촉을 했나 보군. 쯧쯧.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어련히 보내줄 것을.”

“아닙니다. 그게……. 도련님께 사고가 났었다고 하여…….”

“사고라고?”

랑데트 후작이 놀라 불을 댕기던 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후작이 노할까 두려워진 집사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도련님께선 다치신 곳 없이 무사하시답니다. 옆에 성녀님께서 계셨다는군요. 세이칸 신의 은총입니다.”

“아아.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신의 은총이 있어야지.”

안심한 후작은 쓰러지듯 앉아 다시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신탁이 특별한 아이다.

아이의 인생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손주의 주변은 늘 시끄러웠으나 손주만큼은 언제나 멀쩡했다.

“노엘, 그 아이는…….”

랑데트 후작은 집사에게도 말하지 않은 노엘의 비밀을 연기에 섞어 내보냈다.

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때 받은 신탁.

아들 내외가 모두 죽은 이 세상에서, 이제 그 신탁의 내용을 아는 자는 후작뿐이었다.

‘황제가 될 아이다.’

***

“폐하, 소가 황궁 계단을 올라가면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

“소오름.”

진짜 소름이다. 이 분위기.

내 말장난에 폐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재 책상 앞에 선 내게 말했다.

“……아침부터 와서 뭐 하는 거지. 이제 몰래 엿보기는 관뒀나.”

저 하찮게 보는 눈빛 봐.

내가 서 있고 폐하가 앉아 있는데도 깔봐지는 이 느낌.

와씨. 나 여기서 눕는다.

‘아니지. 그게 아니라고.’

나는 눈꺼풀을 찰싹찰싹 때리고 눈을 떴다.

시야가 살짝 흐릿해진 게 아주 좋다.

내가 왜 폐하가 혼자 있는 새벽 시간을 노렸는데.

“폐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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