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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6화 (16/150)

16화

“여기는 절대 못 찾으실 거라 자신했는데…….”

“나도…….”

내 외침에 렌(15, 남)과 소냐(16, 여)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소냐 언니, 그래도 오래 버텼네! 나는 첫 번째로 잡혔어.”

“실비아, 너는 성녀님 바로 근처에 숨었으니까 그렇지. 나는 텃밭 창고에 숨었는데 찾으셨다니까? 아-. 렌 형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워!”

“카일은 아직 나한텐 안 되지.”

“다들 성녀님께 잡혔으면서 잘난 척은. 대단한 건 성녀님이시라고.”

아이들은 내 왼편에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렸다.

나는 벤치에 앉아 상반신을 푹 숙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요. 이 정도는 가벼운 산책 같은 거죠.”

여유로운 척 웃으며 말하자, 카디얀은 내 허세에 눈을 빛내며 탄복했다.

후후. 산책은 무슨.

‘완전 힘들어. 어디 드러눕고 싶다아아.’

아이들과 숨바꼭질한다고 감각을 풀가동한 결과였다.

두개골이 띵띵 울리고 깨질 듯한 두통이 일었다. 토할 거 같아. 으웩.

“성녀님 괜찮으세요?”

“응. 완전 멀쩡하지.”

실비아(13, 여)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나한테 ‘여긴 왜 오셨냐’라는 심장 덜컹한 질문을 던진 아이였다.

그 질문에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너희들을 보러왔다’라고 했더니,

“폐하께서 우리 소원을 들어주셨어!”

라며 급격히 허물어진 경계심으로 날 둘러싸곤 병아리처럼 삐악거렸다.

“성녀님, 정말로 황제 폐하보다 더 강한 신성력을 갖고 계세요?”

“우리도 신성력이 강해서 선택 받았대요!”

“저는 검에서 섬광을 낼 수 있고요, 실비아는 물을 움직일 수 있고요, 렌 형과 소냐 누나는 다친 동물을 치료할 수 있어요!”

“성녀님께서도 가진 능력이 있으세요?”

아이들은 초롱초롱 눈을 반짝였다.

저 눈망울들을 실망하게 할 수도 없었거니와, 내가 신성력 없음을 밝힐 수도 없었다.

“그, 그럼. 나도 그런 능력 하나쯤은 있지.”

“우와.”

“그럼 보여주세요!”

“으, 응?”

“성녀님 능력이요! 젠달에서 가장 강한 신성력!”

삐약이들은 순수해서 무서웠다.

미디어 속 동경했던 히어로를 실물로 영접한 듯한 이 순수한 동심.

여기서 분장을 벗고 사실 내가 배우였다는 고백은 폐하도 못 할 거다.

“그렇게 내 능력을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

그리곤 신전 결계 내에서 맘대로 숨어보라 했다.

내 신성력이 하도 강해 너희들의 신성력을 감지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며.

그다음엔 다들 알다시피. 청력과 시력에 최대한 집중하며 무진장 뛰었다.

숨어 있는 아이들의 숨소리 하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이지.

‘다 찾았나? 이젠 죽어도 못 해.’

나는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 둘…….

“……아홉?”

“성녀님.”

왜 아홉밖에 없지?

숨바꼭질에 참여한 아이가 9명이었나?

불길한 현실을 외면하려는 내게, 실비아가 말했다.

“노엘이 아직 남았어요.”

“……진짜?”

***

“아, 무리다. 무리.”

아이들이 있던 장소와 멀리 떨어진 별관 근처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사막 속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벤치에 쓰러져 누웠다.

아이들을 맡긴다는 핑계로 카디얀도 두고 왔으니, 멀쩡한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온몸이 두통에 먹혔다. 노엘 찾는 거 무리.

“조금만 쉬자.”

나는 눈을 감았다.

좀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힘들다.

“노엘아아. 어디로 갔니이이.”

노엘은 가장 어린 10살짜리 남자애였다. 낯을 좀 가리고 단정한 얼굴에 눈이 사슴 같은 아이.

내 십 수 년 덕질 경력으로 확신하건대, 좀 더 자라면 대형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센터급 외모가 될 게 분명했다.

“노엘의 신성력이 은신 쪽으로 특화돼 있나…….”

아이들을 찾을 때 본관과 별관 세 채를 내 시청각 레이더망에 두었으니 남은 건 이 별관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일반인이지…….”

곧 수업이 시작한다고 했으니까 뻐기고 있으면 노엘이 제 발로 나타나 주지 않을까.

히어로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니 애들도 이해해 줄지 모른다.

“…….”

반짝반짝한 눈망울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으.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나는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몇 분 감고 있었다고 시야가 좀 선명해졌다.

그러다 별관 꼭대기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성인보다는 확연히 작고, 아이들이 하고 있던 케이프를 걸친.

“찾았다. 마지막.”

***

“…….”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전혀 내 예상에 없었는데 말이지……!

“저, 저기. 노엘. 진정하고 이리로 좀 올래?”

“…….”

노엘은 대리석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래로 떨어져 투신할 아이처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진땀이 났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나만 고통받는 평화로운 숨바꼭질 아니었냐고…….

그나마 다행인 건 노엘이 내 쪽을 보고 있다는 거였다.

“여기는 언제 올라온 거야. 애들이 다음 수업 들어가야 한다고 찾더라. 바람 쐬는 중이니? 거기보단 여기가 그늘이 져서 더 시원하지 않을까?”

“…….”

“아, 맞다. 그리고 나 길을 잃은 거 같은데, 노엘이 같이 가서 길 좀 알려줄 수 있어?”

“…….”

“이거, 이거 줄까? 내가 오늘 목숨보다 소중히 아껴야 하는 거거든! 원래 풀면 안 되는데,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나는 황급히 손목에 묶인 리본을 풀었다.

주절주절 내뱉는 내 아무 말에 노엘의 시선이 분산되길 바라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갔다.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응.”

금세 걸렸다. 시키는 대로 하자.

나는 노엘을 자극하지 않으려 걸음을 멈췄다.

이제 뭐라고 설득하면 좋지.

“어, 음. 노엘. 혹시 떨어질 거니……?”

“…….”

이 멍청이.

하필이면 질문을 던져도 그딴 걸.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노엘의 녹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는, 살아있으면 안 돼요.”

“……어?”

이게 무슨 데뷔 무대에서 ‘저 오늘 은퇴해요.’ 같은 소리란 말인가.

10살짜리 꼬마 애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넌 아직 죽기엔 어려.’ 같이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뻔한 비공감 발언을 하기엔 공중과 가까운 사람은 노엘이었다.

“그, 그래. 노엘. 너도 사정이 있겠지. 내가 네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왜?”

왜. 진심으로 묻는 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저 얼굴.

찬란한 미래가 그려지는 저 외모를 가지고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

거울만 보고 살아도 행복 지수 상위 0.1%에 들 것 같은 저 로또 맞은 미모로, 왜……!

‘아깝다고!’

하지만 이런 본심.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대신 내 바람을 찡그린 미간에 담았다.

죽지 마라.

죽을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제가…….”

노엘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였다.

“제가 부모님을 잡아먹고 자랐으니깐요.”

“뭐?”

“어머니는 절 낳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어요. 제 생일을 축하해주시려 일정을 앞당겼다가 폭풍우를 만나셨거든요.”

“노엘.”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노엘을 불렀지만, 노엘은 속에 썩힌 감정을 모조리 쏟아내려는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생일에 보고 싶다는 소리만 안 했어도……. 그전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그래서 저는 살아 있으면 안 돼요! 저는 부모님의 목숨값으로 살아있는 거라고요!”

노엘의 외침이 처절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어린애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어른의 머리에서 나온 소리를 어린애가 그대로 따라 말하는 것 같이.

“목숨값이니, 뭐니. 누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아무도요.”

노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상냥해요. 앞에서는요. 할아버지도….”

노엘은 울적하게 말했다.

시선을 떨구는 그 모습이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서 가슴이 철렁했다.

“앞에서는?”

“……저택에선 제가 못 듣는 곳에서 그렇게 말해요. 저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오늘도 다들 그럴걸요. 제가 태어난 날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니까…….”

그러니까 나고 자란 저택에서 들어온 기억이 노엘을 지금 이 지경까지 몰고 갔다 이건가?

니세포르엘 신전에 온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그 정도로 삶을 옭아맬 만큼 끔찍한 기억이었나.

……어쩌면 사람들의 말보다 더한 것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노엘의 특기요? 노엘은 다 잘해요. 기억력도 엄청 좋고요.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 일도 기억이 난다고 했어요.”

두통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렌이 말해준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몇 가지를 알게 됐다고 어쭙잖은 공감을 하며 위로를 하기엔 나는 그 아픔을 모른다.

“……좋아, 난 찬성.”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엘의 시선이 날 향했다.

나는 성큼성큼 노엘에게 걸어가며 내 할 말을 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 나는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난 안 말릴게.”

나는 허리 높이의 난간 앞까지 걸어갔다. 우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잠시 노엘의 눈빛이 흔들렸다가 이내 결연하게 바뀌었다.

노엘이 뒤쪽으로 몸을 틀려 할 때, 나는 담담한 척 말했다.

“세이칸 신도 네가 죽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일편단심 폐하교지만. 젠달의 사람들은 지독한 세이칸교였다.

신전의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세이칸 신을 믿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이 장래 유망한 꼬맹이에게 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보다 더 살아야 할 큰 이유를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나는 폭이 세 뼘 정도 되는 난간 위에 올라가 노엘의 어깨를 잡았다.

“세이칸 신한테 물어보자.”

“……세이칸께요?”

“응. 여기서 뛰어내리면 백이면 백. 다 죽을 거야. 근데 살면? 세이칸 신은 네가 살기를 원하는 거지. 그러면 넌 앞으로 부모를 죽였네, 뭐네 소리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좋아요.”

어차피 신께선 절 살려두지 않으실걸요.

노엘이 입속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세이칸 신께 물어보려면 성녀인 내가 함께해야 하거든.”

“……네?”

“같이 뛰어내리자고.”

“시, 싫어요! 성녀님, 죽는다고요!”

노엘은 날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거참, 시끄럽네. 할 말은 다 했으니까 그냥 뛰어내려야지.

나는 노엘의 머리와 허리를 양팔로 감싸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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