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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4화 (14/150)

14화

“다치고 싶지 않으시면 조용히 하세요.”

나는 목소리까지 깔며 진심으로 경고했다.

혹시 내가 참지 못하고 폐하의 몸을 덮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만에 하나, 폐하의 수비가 늦어 내가 그 몸을 만지기라도 한다면……!

폐하는 폐하대로 기분 나쁘고 나는 죄책감에 밤잠을 설치겠지.

뒷감당은 또 어쩌고.

[황궁에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니세포르엘 신전으로 가는 길이 왕복이 아니라 편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마차 안이 조용했다.

내 경고를 알아들으신 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하…….”

간간이 폐하의 입에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를 참는 듯한 소리였다.

……참는다고?

“폐하, 지금 웃음 참고 있는 건 아니시죠?”

설마 해서 물어본 건데, 그 질문이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폐하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악. 지금 웃지 마세요!”

너무하다.

목구멍에 이온 음료 백 리터는 때려 넣은 듯한 저 청량한 웃음소리.

오늘만큼 폐하가 야속한 적은 없었다.

나는 지금! 못 보는데!

‘뭐야, 뭔데! 이런 웃음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도대체 이 심각한 상황의 어디가 폐하의 웃음 포인트를 짚었는지.

폐하가 그간 목적이 다분한 웃음을 많이 짓긴 했어도, 이런 의도성 없는 찐 웃음은 처음이었다.

당장이라도 내 시야를 가린 이 눈가리개를 풀어 재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뒤를 감당할 수 있을까…!”

미칠 것 같은 심정에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머리를 싸매며 고뇌했다.

‘그냥 봐버릴까? 내가 참을 수 있을까? 몸이 멋대로 움직이면? 아니, 0.1초 만에 보고 다시 눈을 가려버리는 거야. 그런데 고작 그 정도로 나란 인간이 만족할까? 으으. 내가 나를 못 믿겠다.’

그래, 참지 못할 거 보지 말자.

하지만 끅끅거리는 폐하의 웃음이 내 알량한 각오를 뒤흔들었다.

뱃머리를 암초에 부딪히게 만드는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이런 기분일까. 나는 지금 키를 잡은 선원이다. 홀려 버린 몸이 제멋대로 중얼거렸다.

“0.1초면 충분하지…….”

머리카락처럼 얇은 한 가닥 이성이 “뚝.”하고 끊기기 직전, 누군가 창문을 노크했다.

말에 탄 헨켈 대장이었다.

“이제 황도에 들어섭니다.”

“알겠네.”

폐하는 프로였다.

연기의 천재답게 언제 웃었냐는 듯 평상시의 모습으로 대장과 대화를 나눴다.

잠시 뒤, 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곧 황도라는군. 사람들이 많이 몰릴 테니 답답해도 창문은 열지 않는 편이…… 어디 불편한가?”

“아니요.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신께 기도드리는 중이에요.”

꽈악.

나는 깍지를 껴 봉인한 양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기도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대장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위험했다.

역시 헨켈 레바르튼. 금욕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남자라니까.

“기도? 성녀가?”

“네. 오늘부터 좀 신실해져 볼까 하거든요.”

“허.”

폐하의 입에서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났다.

“그대는 사람을 웃기게 하는 재주가 있어.”

“……또 놀리시는 거죠?”

“칭찬인데.”

“거짓말 마세요.”

“성녀께 제가 어찌 거짓을 말할까요.”

“이익. 그거 조롱이잖아요. 성격 진짜 나빠.”

그 뒤로 짧게 아옹다옹 다툼이 이어지고, 마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침묵은 위험하지. 차라리 잠을 자자.

슬쩍 창틀에 머리를 기대보려 했는데, 폐하가 말을 걸었다.

“성녀는 소환 후 황궁 밖으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겠군.”

“그럴……걸요?”

그랬나?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연회고 행사고 죄다 황궁에서 이뤄졌으니까.

딱히 나갈 이유도 없었고.

최상의 덕질 환경이 황궁 안에 갖춰져 있는데 왜 나가겠어?

영혼만 소환됐어도 폐하 따라다니다가 황궁 지박령 됐을 게 분명했다.

“니세포르엘 신전에 대해선 들은 게 있나?”

폐하는 지금 가는 신전에 대한 정보를 주려는 듯 질문했다.

“라울 신관님한테서 좀 듣긴 했어요. 젠달의 황제 후보들을 육성하는 곳이라면서요?”

“맞아. 젠달은 10년마다 각 지역의 영주들을 통해 신성력이 높은 12세 미만의 아이들을 황도로 모으지. 거기서 다시 신성력의 크기순대로 열 명의 아이를 선출해 신전에서 교육하고.”

최상위권들의 기숙학원 같은 느낌일까.

라울 신관님이 ‘아이들은 10년 동안 신전 밖으로 나올 수도 없다’라고 했을 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번 대의 황제 후보들은 5년째 그곳에 있어.”

“이번 대요?”

“황제 후보는 10년을 주기로 교체되거든.”

“그러면 황제가 될 가능성조차 없는 아이들도 있겠네요?”

10년 감금 생활의 결과가 데뷔할 기회도 없는 계약 종료라니.

‘너무하…….’

“그렇지. 현 황제가 죽어야 다음 황제를 뽑으니까. 왜, 인생을 바친 대가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워?”

그럴 리가.

내 인류애는 최애(몸)를 버리고 실현할 수 있을 만큼 굳건하지 않았다.

우리 폐하, 다음 후계 따위 생각하지도 말고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해 드세요.

그러고 보니 새삼 감탄스럽단 말이야?

실력에 운까지 갖춰야 오를 수 있는 자리가 황제였다니.

정말 폐하는 인간이 아닐지도.

“그렇게 불쌍한 처지는 아니야.”

“네?”

“신전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고위 신관으로 임명되거든. 다른 이들은 빨라야 40대에 이룰 수 있는 업적이지.”

“오오. 취업까지 책임지는 명문 코스.”

고위 신관이면 신전 하나를 맡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젠달은 신성 국가고 모든 제국민이 세이칸 신을 믿으니,

“평생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좋겠다.”

“좋겠다고?”

“그럼요. 자고로 직업은 노후보장까지 되는 게 최고죠.”

“성녀가 그렇게까지 니세포르엘에 흥미를 느낄 줄은 몰랐군.”

“네……?”

“입학을 원한다면, 자리를 마련해보지.”

어쩐지. 대화 후반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라.

언제는 놀고먹게 해준다더니, 갑자기 입학이라뇨.

설마 이번 외출의 진짜 목적이 나를 신전에 두고 오는 거라면…….

‘안 돼. 그럴 순 없어-!’

나는 폐하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태연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폐하랑 같이 공부하셨던 분들도 다 고위 신관이 되셨겠네요?”

“…….”

하지만 폐하는 조용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신전에 가겠다는 말을 해야 했나.

숨죽이고 눈치를 살피던 와중, ‘사락’하고 무언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이어 갑갑한 시야가 환해지고, 빛이 형태를 갖췄다.

나는 눈앞에 등장한 엄청난 미남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곧 상황을 인지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으악! 내 방어막!’

내 유일한 동아줄이던 리본이 폐하의 손에 들려있었다.

“……?!”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폐하가 내 왼손을 끌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나를 죽일 셈인 게 분명했다.

“으아아…….”

괴로운데 행복하다.

행복한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이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찰나가 영원처럼 흘러갔다.

“역시 눈은 안 가리는 게 좋겠어요.”

여기서 다정 모드 말투는 반칙이다.

성대에 양봉장을 차린 듯 저 꿀 떨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폐하가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

다시 마주한 폐하의 얼굴에 나는 황급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왼손 손목에 내 눈가리개가 나비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눈보다는 여기가 낫죠?”

“어……어…….”

나는 ‘어’란 말밖에 못 하는 사람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어, 어디서 배웠어요?! 이런 거!’

좌우대칭마저 완벽한 이 자태.

당장이라도 날개를 펼치고 우아하게 날아갈 것만 같은 이 나비매듭.

누가 우리 폐하께 이런 걸 알려주었나.

저 외모로 이런 능청스러운 끼 부림까지 하기 시작하면.

‘감당…… 감당이 안 돼.’

리본이 묶인 왼팔이 덜덜 떨렸다.

나를 믿을 수 없는 내 미래가 두려웠다.

“성녀는 눈이 아름다우니까.”

여기가 내가 누울 자리인 모양인가 보다.

모르긴 해도 지금 내 얼굴은 잘 익다 못해 터져버린 토마토처럼 빨개져 흐물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풀지 마.”

열이 올라 아득해지려는 정신으로 나는 그냥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풀지 마.’ 이 말만 계속해서 테이프를 돌리듯 귓가에 반복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드르륵. 탁.

‘누가 이 소리 좀 멈춰줘…….’

***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에도 끝은 존재했다.

‘드, 드디어.’

나는 탈출하는 심정으로 문이 열린 문틀을 부여잡았다.

뒤에서 폐하가 내리려는 듯 손을 뻗길래, 얼른 마차에서 뛰어내려 자리를 비켜드렸다.

“…….”

웅장한 건물을 배경으로, 세련되게 정장을 차려입은 노년의 신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니세포르엘 신전의 총 책임을 맡은 헤이즐 로이컨입니다. 이렇게 성녀님을 눈앞에서 뵙게 되다니. 세이칸 신의 은총이 마침내 이곳에도 내려왔군요.”

헤이즐은 우리를 데리고 신전을 돌며 주요 시설들을 소개했다.

2동으로 이뤄진 본 건물 한 채에 별관이 다섯 채.

아이들이 열 명인 걸 고려한다면 건물만으로도 상당한 규모였다.

“한 과목당 둘의 교사를 둡니다. 역사, 예술, 문학, 운동, 예절 등 배우는 과목 수만 해도 열다섯 가지 정도는 되지요.”

헤이즐의 신전 안내가 계속될수록, 내 발걸음은 폐하와 헤이즐, 두 사람과 점점 멀어졌다.

폐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경청하는 다정한 황제의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 호위를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라오는 헨켈 대장의 바로 옆까지 오게 됐다.

대장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장, 이따가 폐하한테 제가 하는 말 좀 전해줄래요?”

“그러겠습니다.”

아치형의 야외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뒷모습.

그게 자꾸 전학 상담을 하는 학교장과 보호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나는 헨켈 대장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부정 입학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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