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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10화 (10/150)

10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보니아 왕국 사절단이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 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내 인내의 결실을 볼 겸, 또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왕녀님의 미모도 볼 겸.

폐하의 허락을 구해 보니아 왕국 사절단을 배웅하러 나온 나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는 중이었다.

“성녀님께서 다르게 알고 계셨군요. 레오디우스 폐하와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랍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우리 폐하는 아무 사이라 생각하셨던 거 같은데요!

‘폐하가…… 차였어?’

싱그러운 왕녀님의 미소엔 실연의 아픔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젠달에 머무르는 동안 성녀님 덕분에 무척이나 즐거웠답니다.”

외모 버프를 받은 폐하의 연애가 실패로 끝나다니.

왕녀님은 망연자실한 내게 다가와 볼 키스를 했다.

미인과 뺨을 맞대다니. 꿈인가?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이제 꿈으로 착각하는 거라면 지긋지긋하다.

“조만간 또 뵙기를.”

왕녀님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 네. 다음에 봬…….”

“내년에나 볼 수 있겠군. 가는 길 조심히 가시죠.”

폐하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미련이 남으셨구나. 하긴 아직 마음 정리가 되지 않으셨겠지.

훌쩍. 내가 다 눈물이 나네.

“글쎄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뵐 수 있지 않을까요? 보니아 왕국과 젠달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깐요.”

폐하와 왕녀님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외모합 미친다.

서로의 만남을 기약하는 사이면서, 왜 이루어지지 못한 거예요. 두 분.

안타까움에 손수건이라도 물어뜯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자제했다.

왕녀님이 마차에 오르고 보니아 왕국 사절단이 보니아 왕국을 향해 출발했다.

폐하는 마지막 남은 정을 끊어내기라도 하듯 마차가 움직이자마자 바로 몸을 돌렸는데.

아, 폐하랑 눈 마주쳤다.

“…….”

오늘따라 우수에 젖은 것 같기도 하고.

곧 저 벽안에서 툭 하고 눈물이 보석처럼 흘러내릴 거 같기도 하고.

크흡. 나는 욕심 차리기보다 양심을 챙겼다.

희귀한 장면이지만 실연당한 폐하의 얼굴을 감상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돌리니 폐하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심장아, 빨리 뛰지 마. 지금 그 타이밍 아니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성녀가 생각하는 거, 아닙니다.”

“네…….”

“안 믿고 있군. 아니라고.”

폐하의 이런 다급한 모습, 처음이었다.

그만큼 실연의 아픔이 큰 거겠지…….

“폐하.”

“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건넸다.

“곧 좋은 분 생기실 거예요.”

***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황궁에서 본인의 저택으로 돌아온 랑데트 후작은 저녁 식사도 무르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렌츠의 라벨이 붙은 적포도주를 잔에 따랐다.

렌츠 지역에서 생산된 적포도주는 특유의 쓴맛을 가진 독주로도 유명했다.

오늘은 이걸 마셔야 이 갑갑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녀는 먹고 노시게 할 거네.”

오늘 회의에서 황제가 한 말이었다.

“그게 꿈이라 하시는군.”

랑데트 후작은 포도주를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액체가 뜨거웠다. 혀에 남은 독주가 썼다.

황제를 포함한 모두가 겁쟁이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저주가 뭐 그리 두려운 건지.”

바버논 왕국.

그들의 실패는 성녀의 자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은 성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 그 신성력을 사용하면 될 것을.

“보니아 왕국은 머리를 잘 썼지.”

보니아는 성녀를 신과 동격인 존재로 추앙했다.

성녀를 위한 신전을 짓고, 주변국들이 성녀에게 바치는 조공을 받았다.

당시 보니아 왕국은 오디트리아 대륙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성했다.

하지만 성녀는 일평생을 그들이 지은 신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안일해.”

현 황제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안일했다.

선황제 때와 비교해 나빠진 점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없었다.

신성력이 없는 것들의 복지 따위에나 신경을 쓰고 말이지.

에본 하이벤.

그 신성력 없는 애송이가 재상이 된 것만 해도 이가 갈리는데.

“성녀라는 고급인력을 놀고먹게 두다니.”

성녀가 언제까지 이 세계에서 숨이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회를 잡은 지금, 젠달은 커져야 했다.

몸집을 불리는 데 발목을 잡는 오디트리아 맹약 따위는 깨트리고.

오디트리아 대륙의 유일한 군주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 아이가 황제가 되었을 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랑데트 후작이 인상을 썼다.

오늘은 혼자 있을 것이니 절대로 찾지 말라 일렀는데.

시답잖은 일이면 문을 두드린 놈의 손목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랑데트 후작가의 집사였다.

“후작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이런 늦은 시간에 방문이라니.

자신을 우습게 본 것이거나 예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작은 포도주를 잔에 채우며 한 손을 내저었다.

“내보내라. 후작은 자고 있다 하고.”

“하오나…….”

집사는 머뭇거렸다.

그냥 돌려보내기엔 상대가 컸다.

“쯧쯧. 누가 찾아왔길래 뱀 앞의 쥐처럼 벌벌 떨고 있는지.”

후작은 혀를 차며 집사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말해보라는 신호였다.

“데르아치 대공의 대변인입니다.”

“……데르아치 대공?”

랑데트 후작은 눈을 부릅떴다.

알딸딸하게 올라오던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침의로 갈아입지 않아 다행이군.

곧바로 방을 나선 그의 걸음이 급했다.

“응접실에 계십니다.”

“알겠다.”

서둘러 응접실로 가니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곧은 자세로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랑데트 후작님.”

남자는 자신의 소개를 생략했다.

후작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대공 각하께서 뵙기를 원하십니다.”

***

부스럭.

“…….”

또다. 또 발코니에서 들렸다.

‘시아나를 부를까?’

한밤중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 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 정신이 말똥해졌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들었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또다시 발코니에서 들려왔다.

‘진짜 침입자인가?’

이불 속에서 손을 슬금슬금 움직여 설렁줄을 잡았다가 도로 놓았다.

‘아니야. 당겨봤자 시아나는 혼자 올 텐데. 시아나가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부스럭. 부스럭.

‘……이번 침입자는 산만하네.’

밤이라 고요해서인가.

딱히 집중하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고스란히 창을 넘어 내 귀로 들려왔다.

보통 청력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초짜인가.’

이렇게 ‘나 밖에 있소’를 티 내고 다니는 어수룩한 침입자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침대 아래에 숨겨둔 프라이팬을 집었다.

무쇠로 만들어 꽤 묵직한 이건, 헬리의 주방에서 특별히 공수해 온 내 나름의 무기였다.

검은 쓸 줄을 모르니 위험하기만 할 거 같고.

‘이건 방어랑 공격도 가능하고. 적에게 뺏겨도 검만큼 위험하진 않으니까.’

나는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쥐고 발코니를 노려봤다.

수상한 사람이 들어온다면 그대로 머리를 날릴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부스럭. 파바바바박.

‘……뭐지?’

나중에 들린 소리가 묘하게 익숙했다.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땅 파는 시늉을 하면서 내던 소리랑 똑같은 소리.

“갸-오.”

거기에 고양이랑 비슷한 울음소리라니.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와.”

벅. 벅. 벅. 덜컹. 덜컹.

“너, 누구야?”

3개월 정도 된 새끼 고양이만 한 검은 동물이 닫힌 발코니 창을 긁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갸아오.”

울음소리가 애처로웠다.

문을 열어주니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와 엉덩이를 쭉 빼며 기지개를 켰다.

방안으로 늘어진 달빛이 정체불명의 동물을 비췄다.

생김새는 고양이랑 비슷했는데 등에 박쥐 같은 날개가 있었다.

더욱더 놀라운 건.

“그르릉.”

얘가 나한테 와서 내 종아리에 몸통을 비비고 있다는 거지!

와씨. 미쳤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동물한테 사랑받은 역사라곤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내가 곁에 가기만 해도 잇몸까지 보이며 으르릉거렸고.

친구네 고양이는 짜 먹는 간식을 들이미는 내 손에 생채기를 냈다.

원숭이가 던진 바나나 껍질에 얼굴을 맞은 적도 있었고.

하여튼 경험한 걸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너, 뭐야?”

행복한데 낯설었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손바닥을 살며시 코 앞쪽에 내밀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갸옹!”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듯 내 손바닥에 얼굴을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게 간택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집사 간택일까?

크흑. 심장을 누가 쿵 하고 때린 것만 같다.

종아리 뒤쪽이 뻐근해져 왔다.

어정쩡한 자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였다가 이 행복이 다시 밖으로 사라지면 어떻게 해.

……뒤통수 모양 엄청 귀여워.

“그릉. 그르릉.”

“너 내 주인님 할래……?”

***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

알렌드는 잠자리에 들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지만, 알렌드에겐 이 정도 어둠이 적당했다.

“루.”

알렌드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창문이 덜컹거리며 안으로 밀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채웠다.

“조금만 더 늦게 들어왔으면 소환하려 했어.”

알렌드는 한숨을 쉬고 뒤를 돌아봤다.

“어디를 다녀왔지?”

바닥에 깔린 카펫 위, 어둠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렌드의 질문에 뒷발로 귀를 긁으며 딴청을 부리는, 어둠처럼 짙은 그의 사역마였다.

“갸-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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