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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6화 (6/150)

6화

신성 제국 젠달은 특이한 국가였다.

신성력이 있으면 많은 것이 허용되는 국가.

걸맞은 신성력이 있다면 평민에서 귀족으로 가는 것쯤이야, 이 제국에선 흔한 일이었다.

황제의 선출마저 혈통을 따지지 않고 신성력이 강한 아이들을 뽑아 그중에서 이뤄질 정도이니.

혈통을 중요시하는 보니아 왕국에선 용납할 수 없는 방식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이 세계는 세이칸 신의 축복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변절자들의 땅을 제외한 모든 땅이 신의 축복을 받아 생명체를 품었다.

특히나 전 세계 면적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대륙, 오디트리아.

세이칸 신은 이 대륙을 사랑했다.

그 증거로 오디트리아 대륙 곳곳에는 축복을 넘어선 신의 힘, 신성력이 발현되곤 했다.

신성력이 땅에 깃들면 그 땅은 어느 해나 풍족한 농작물을 낼 수 있었고.

건물에 깃들면 그 건물은 어떤 자연재해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을.

사람에게 깃들면 그 사람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특수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때문에 오디트리아 대륙에선 신성력이 군사력과 크게 연관되어 있었다.

보니아 왕국보다 작은 나라였던 젠달이 이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제국이 된 것도 신성력을 가진 인력 덕분.

젠달에는 유달리 신성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다른 국가보다 많았다.

그러니 신성력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이고, 신의 애정을 받는 나라란 말을 듣는 거지만.

‘성녀 소환까지 성공할 줄이야.’

오래된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나라가 성녀를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환에 성공한다면 성녀의 막강한 신성력과 더불어 세이칸 신에게 선택받은 나라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한 나라가 부흥하는 방법에 있어 성녀 소환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다.

“성녀님은 젠달에 잘 적응하고 계시나요?”

3악장에 들어가면서 곡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었다.

알렌드의 눈가가 살짝 좁혀졌지만, 찰나였다.

샤를은 눈치채지 못하고 황제의 답을 기다렸다.

“더할 나위 없이.”

샤를과 알렌드가 마주 잡은 손이 옆으로 뻗어지자 두 사람의 팔이 우아한 선을 그렸다.

발도 자연스럽게 손이 향한 방향으로 옮겨졌다.

성녀인 아리였다면 벌써 알렌드의 발을 한 번 밟았을 터였다.

“아주 잘 계시죠.”

“다행이네요.”

황제의 말에 샤를이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마주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넘어가지 않는 자가 없다는 그 눈웃음이었다.

“혹여나 보니아 왕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초대 성녀님의 자료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되는 정보가 아닙니까?”

성녀 소환에 성공한 것은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보니아 왕국에서.

두 번째는 바버논 왕국에서.

세 번째가 젠달의 성녀였다.

소환된 시대는 다르나, 성녀들은 모두 세이칸 신의 상징인 검은색을 머리카락과 눈에 지닌 채 나타났다.

초대 성녀를 소환한 보니아 왕국은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크게 번영했다.

비극은 바버논 왕국이 성녀를 소환한 시대에서 일어났다.

약 480년 전, 바버논 왕국은 성녀를 변절자들의 땅을 정화하는 데에 사용하려고 했다.

바다 건너 세이칸 신의 저주를 받고 죽음의 땅이 된 대륙이었다.

바버논 왕국은 정화된 땅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성녀는 소환된 날부터 신성력을 쓰도록 강요받았고, 도구처럼 쓰이다 한 달 만에 한계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바버논 왕국 몰락의 시작이었다.

세이칸 신은 즉시 바버논 왕국의 영토에 깃든 축복을 거두어들였다.

땅은 어둠에 잠식당하고 생명을 앗아갔다.

살아남은 생명체는 저주를 받았다.

그들의 발자국이 닿는 곳마다 죽음이 드리웠으니, 바버논 왕국은 그렇게 흔적도 남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버논 왕국이 기록했던 성녀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현시점에서 소환된 성녀의 기록을 가진 건 보니아 왕국뿐이었다.

“성녀님께 도움이 된다면 저희 왕께서도 허락해주실 거예요. 다만.”

알렌드는 다음 스텝을 밟으며 샤를의 말을 기다렸다.

춤을 추며 나누는 대화임에도, 두 사람의 호흡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초대 성녀님의 기록은 보니아 왕가 중에서도 극소수만 열람할 수 있는 극비 자료라 외부로 갖고 나오기엔 부담이 크죠.”

“자료를 원하면 직접 보니아 왕국에 오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더욱이 왕가의 극소수라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왕녀는 젠달에서도 그에 걸맞은 신분을 보내길 원하고 있었다.

가령,

‘성녀라든가.’

보니아의 왕녀가 성녀에게 화관을 얹어줬을 때부터, 알렌드는 샤를이 묘하게 거슬렸다.

‘이제야 이유를 알겠군.’

왕녀는 침범자였다.

군침을 삼키고 제 것을 탐내는.

‘확실히 위협적이지.’

알렌드의 벽안이 샤를을 살폈다.

무척이나 단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수많은 미인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알렌드지만, 샤를의 외모는 달랐다.

분명 영향을 강하게 줄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성녀에게.

“악. 잘생겼어. 악. 이뻐.”

오늘도 저와 왕녀를 보고 눈이 멀 것 같다느니, 지금 죽어도 황궁 유령이 되어 지켜보겠다느니 하는 소리가 고스란히 자신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는가.

재미는 있었으나 그 요란스러움의 대상에 왕녀가 껴 있는 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젠달이 성녀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바버논 왕국 사건 이후, 위기감을 느낀 대륙의 국가들은 ‘오디트리아 맹약’을 맺었다.

그리고 맹약의 제 1조.

[소환된 성녀의 신변에 관한 모든 것은 성녀의 결정에 따른다.]

성녀가 강력한 의사로 다른 나라로 갈 것을 주장하면 젠달로서는 막을 방도가 없었다.

신과 인간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성녀.

신관들마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지금, 성녀는 가장 신과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제 나라에 모시려 하는 하이에나들이 우글거리는 건 당연한 소리.

샤를은 신앙심 깊은 왕녀의 낯을 하고 말했다.

“성녀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열람하실 수 있도록 돕겠어요. 한낱 피조물인 저희는 결국엔 성녀님의 뜻을 존중해야 할 테니깐요.”

피조물. 결국엔. 존중.

왕족과 귀족들의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치곤 꽤 속이 들여다보이는 말이었다.

“샤를 애팅거 왕녀.”

알렌드의 스텝이 멈췄다.

샤를도 딱히 춤을 더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기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알렌드는 샤를의 손을 놓고는 장갑을 벗었다.

이제 그녀와 다시 손을 잡을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절 자극하고 싶으신 모양인가 본데.”

두 사람의 춤이 끝난 것을 본 악장이 지휘봉을 옆으로 길게 늘어트렸다.

연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와 비슷한 속도로 황제가 상체를 숙였다.

왕녀의 얼굴 옆에 황제의 얼굴이 자리하자 주위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무슨.’

샤를의 뺨이 찌릿하고 울리고, 무방비하게 드러난 피부의 감각이 곤두섰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두피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샤를은 몸이 굳은 채 눈을 굴려 황제를 바라봤다.

항상 다정해 보이던 그의 눈이 차게 식어있었다.

황제의 얼굴이 점점 샤를의 뺨에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기 직전, 멈춰선 황제의 목소리가 샤를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렇게 탐을 내도 성녀는 못 넘겨줘.”

***

나, 는.

봤다아아!!

‘헐. 미쳤다. 미쳤어.’

역시 외국인들 아니랄까 봐! 진도가 아주 팍팍 나간다.

‘폐하가 지금 왕녀님 볼에 키스한 거지? 에본 재상님이 젠달엔 볼키스 같은 문화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남은 건 무엇이냐.

우리 폐하가 왕녀님한테 호감이 있다는 거지! 이성적으로!

세상에. 짚신도 다 짝은 있다더니!

폐하는 짚신이 아니긴 하지만!

‘폐하가 왕녀님한테 춤 신청을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원래부터 호감이 있던 사이였나? 시아나! 이거 봐, 이거!’

저 얼굴들에, 저 신분들이면.

이거 완전 세기의 스캔들 아니냐고!

나는 지금 흥분상태였다.

헨켈 대장에게 호들갑을 떨며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얌전히 관상용 성녀가 되겠다고 발언해 버린 뒤였다.

입이 방정이다.

이런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으면 방정을 좀 떨겠다고 말해두는 것을-!

나는 밖에서 봤을 때 티가 나지 않게 드레스 자락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떡해. 어떡해.’

아, 옆에 시아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 무도회에 참석할 거라던 시아나는 어디로 갔는지 오후 내내 보이지 않았다.

‘귀 좀 열어둘걸!’

그나마 있는 능력은 정작 중요할 때 쓸모가 없었다.

보니아 왕국 사람들이 추는 춤에 신경이 다 쏠려서,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하나도 못 들었지 뭐야.

줄어드는 연주 소리에 폐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폐하가 왕녀님의 볼에 키스한 뒤였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지? 폐하가 왕녀님께 고백했나? 이제 곧 두 분이 약혼하는 건가?

‘2세 미쳤다!’

벌써 내 머릿속에선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폐하를 닮은 딸에 왕녀님을 닮은 아들.

그 반대여도! 둘 다 반반씩 닮아도-!

뭐가 어찌 됐든 장담한다. 저 두 사람의 유전자를 어떻게 섞든, 결과는 천상계 미모일 것이라고.

‘환생해서 그 집 반려견이라도 되고 싶다.’

세이칸 신님, 저 이세계물 말고 환생물로 장르 변경 부탁드립니다.

마침 폐하가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 번 멎었던 음악은 다시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 빠른 템포의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하는 대화는 음악에 묻혀 홀에 들리지 않을 테니, 나는 폐하가 황좌에 앉으려 팔걸이를 손으로 짚을 때를 노려 다급히 말했다.

“폐하, 폐하! 저 왕녀님 닮은 첫째 태어나면 대모 시켜줘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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