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성녀인 내가 신전에 있지 않고 황궁의 온실 속 꽃처럼 지내고 있는 이유는 다 그놈의 신성력 때문이었다.
소환된 다음 날, 나는 이곳으로 왔었다.
동행은 폐하와 헨켈 대장과 에본 재상님.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라울 신관님 한 명뿐이었다.
라울 신관님은 모든 창문의 덮개를 닫고 입구를 잠근 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결계를 쳤다.
당시 머리가 꽃밭이었던 나조차도, 일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세이칸 신께서 인간계에 하사하신 광물, ‘이드만타’로 만든 신성력 측정기입니다. 신성력에 반응하는 이드만타를 저희 젠달의 기술로 제련하고 신성력의 양을 측정하게끔 만든 것이지요.”
라울 신관님은 제단 위의 큐브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네모난 크리스털 같은데, 이게 측정기라니.
크기가 작고 내부에 레이저 조각만 되어있으면 딱 관광지에서 파는 기념품이었다.
떨떠름한 눈빛으로 측정기란 걸 보고 있자니, 라울 신관님이 폐하에게 시범을 요청했다.
그리고 측정한 폐하의 신성력은.
[측정 결과 : 100/100]
백 점 만점에 백 점!
라울 신관님은 분류의 편의를 위해 100을 최고점으로 뒀지만, 점수에 한계를 두지 않았더라면 그 이상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또한, 이런 수치가 나오는 사람은 오디트리아 대륙을 통틀어 폐하 한 분밖에 없을 거라며 극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제 곧 두 분이 되시겠군요.”
라울 신관님은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녀님이시니까 당연히 저 정도는 나와주시겠죠?’ 하는 바람이 내포된 말이었다.
나도 그 말이 맞으리라 생각했고, 주위의 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측정기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잠시 뒤, 모두의 기대 속에 나온 결과는 처참했다.
“숫자가 안 뜨네요? 이건 무슨 뜻이에요?”
“…….”
다들 조용히 내 눈치만 살피는 와중에, 폐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측정할 신성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녀.”
성녀로 소환됐는데 신성력이 없다니.
‘어차피 꿈인데 뭐 어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젠달의 네 사람은 초유의 비상사태에 그 자리에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큰 파장이 생길 겁니다. 지금쯤 소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한 주변 국가들이 젠달을 경계하고 있을 텐데. 이 상황에서 성녀님께 신성력이 없다는 게 알려지면.”
“젠달이 온 대륙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군. 에본, 자네 말은.”
“맞네. 헨켈.”
“……젠달뿐만 아니라 성녀께서 표적이 될 수도 있겠지.”
폐하가 덧붙인 말에 세 사람과 뒤쪽의 라울 신관님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와, 미남들!’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회의를 이어갔다.
“오디트리아 대륙 전체가 세이칸 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녀는 세이칸 신의 대리인. 그 상징성은 오디트리아 맹약을 깰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죠.”
“종국에는 성녀님께서 대륙의 패권의 열쇠가 될 걸세. 성녀님을 모시고 있는 나라가 대륙의 중심이 되겠지.”
“그렇다면 역시…….”
노리기 쉬운 보물은 도적질의 표적이 된다.
그런 연유로 나는 신성력이 없다는 것을 숨기고 황궁 내 별궁을 하나 배정받아 그곳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내가 무늬만 성녀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외부에 노출되는 일은 최대한 자제.
가끔 폐하랑 나가는 국가 행사에서도 ‘제가 젠달에 소환된 성녀입니다.’를 어필한 뒤엔, 낯선 이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삼갔다.
‘하지만 이제 나도 평범하지 않은 능력이 좀 생겼다고!’
젠달에 온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이제는 시력도 좋고 청력도 좋다. 몸도 튼튼하고 체력도 좋지.
닫혔던 성장판이 열린 것처럼, 내 몸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신성력도……!’
그렇다면 떳떳한 성녀로 폐하 앞에서 할 말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를 잔뜩 품은 눈빛으로 검은색이 깜빡이는 측정기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이상이 생겨 측정이 잘못될까 봐 숨도 못 쉬었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
깜빡이던 측정기가 멈추고, 다시 흰색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측정기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와.”
물론 기대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했지만!
“……어떻게 발전이 하나도 없지?”
[측정 결과 : - ]
0이었다. 제로.
즉, 이전에 폐하가 말해줬던 것 같이 너님에겐 신성력이 없음.
이 허탈감은,
갓 성인이 된 내가 ‘복권만 사면 바로 당첨이지.’ 하고 오만 원권을 몰빵했다가 1원도 못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근거 없는 희망에 혼자 부풀어 올랐다가 현실을 마주하고 파사삭 꺼져버리는.
결론은, 헛물켰다.
아무래도 내 신성력은 모조리 낙첨인 모양이다.
“잠입까지 했는데…….”
검은색으로 웅웅거리는 측정기가 야속했다.
고장 날까 봐 때리지도 못하겠고.
“에휴, 가서 잠이나 자자.”
***
이른 아침.
개운한 기분으로 예배당의 문을 연 허퍼슨은 청소를 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게 왜?”
이드만타 측정기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제 퇴근하기 전에 분명 투명한 색인 걸 확인했는데.
이상함을 느낀 허퍼슨이 신관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라울을 불렀다.
“라울 신관님!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주십시오!”
“허퍼슨. 내가 아침에는 머리가 울리니 말을 좀 살살하라고 누누이 일렀지 않은가.”
라울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허퍼슨에게 걸어갔다.
“측정기가 켜져 있구먼. 자네가 발동시켰나?”
“아닙니다.”
“그런가? 내버려 두면 꺼지겠지.”
“하지만 라울 신관님, 측정기가 켜져 있다는 건 누군가 들어왔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자물쇠가 잠겨있긴 했으나 침입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경비병에게…….”
라울은 고막을 찌르는 허퍼슨의 쫑알거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가 들었어도 저혈압의 아침은 여전히 괴롭다.
“그럼 폐하께서 오셨다 가셨을 수도 있고.”
“폐하께서요?”
“그래. 열쇠는 폐하께서도 가지고 계시지 않는가. 지난번 폐하께옵서 측정기를 사용하셨을 때도 한동안 꺼지지 않았고. 폐하께서 다녀가신 모양이네.”
빠르게 결론을 내린 라울은 두 손으로 자신의 민머리를 감싸 쥐고는 허퍼슨에게서 멀어졌다.
“이상한데…….”
홀로 남은 허퍼슨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라울의 말대로 황제가 측정기를 사용했다면 지금 일은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신성력이 강한 이들이 측정기를 사용했을 때, 측정기가 바로 꺼지지 않고 한동안 켜진 상태를 유지하는 일도 간혹 있었으니.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밤에 들어오셔서 신성력을 측정할 일이 있으신가?’
허퍼슨이 황실 예배당에 배정받은 지난 8년간,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말인즉슨.
현 황제가 즉위한 지 올해로 6년이 되었으니, 레오디우스 황제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의례적인 일이란 소리였다.
‘몇 달 전 측정 결과에 의문을 품으셨나? 그러고 보니 당시에 측정을 도우셨던 라울 신관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으셨지. 그때가 아마 성녀님께서 소환된…….’
“허퍼슨, 여기 두었던 내 깃펜 보지 못했나?”
“아, 그거 제가 압니다.”
허퍼슨의 머릿속에 무언가 단서가 잡힐 듯했지만, 라울의 목소리에 그의 생각은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허퍼슨은 측정기를 힐끔 바라보고는 라울의 깃펜을 찾아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
“성녀님. 정말 식사 안 하세요?”
“응……. 나는 그렇게 맛있는 거 먹을 가치도 없어.”
시아나가 가져온 음식들이 내 방 거실의 식탁 위를 가득 채웠지만,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성녀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먹고 싸는 기계였다니.
제가 원래 땅굴은 잘 안 파는데요, 오늘은 좀 파고 싶네요.
밥값도 못 하는 거 감자 한두 알 정도만 삶아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녀님께 가치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시아나의 어조가 무섭다.
적갈색 올림머리가 그녀의 단아한 얼굴과 잘 어울렸다.
“누가 성녀님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던가요?”
시아나 프라단.
그녀는 본인의 희망으로 내 전담 시녀가 된 프라단 후작가의 영애였다.
신분이 높은 영애가 왜 황족도 아닌 나의 전담 시녀를 자처했는가.
그게 궁금해서 처음 만난 날 물어보니,
“젠달은 신분에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랍니다. 혈통보다는 신성력이 우선인 나라죠. 고귀하신 성녀님을 모시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스럽습니다.”
크흡. 시아나, 난 사기꾼이야.
신성력 따윈 하나도 없는 평범한 여고생이라고.
“시아나, 나는…….”
속 시원히 털어놓고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 신성력을 측정했던 날, 폐하가 내린 함구령이 있었다.
내 신성력 없음을 그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마라.
능력이 없으면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암.
“아니면 어디서 일을 벌이고 오셨어요? 자초지종은 나중에 들을 테니까 우선 한 입만이라도 드셔보세요. 장작에 구운 칠면조 다리도 있어요. 좋아하시잖아요?”
“…….”
사실 보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사람한테는 시각 말고도 후각이 있으니까.
황도 전설의 요리사 헬리가 구운 칠면조 다리.
바삭한 껍질을 베어 물면 속의 풍부한 육즙과 부드러운 고기가 입안에서 어우러져 씹히는 환상의 맛.
아, 침 계속 고인다.
왜 인간은 좌절 속에서도 식욕이 동하는 존재인 건가.
자꾸만 고개가 식탁 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양심이 있으면 참아! 난 밥도 먹어서는 안 될 쓰레기야.’
나는 불굴의 의지로 소파의 등받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리는, 시, 아나. 먹어요.”
“어머, 저한테 존댓말 쓰시면 안 된다니깐요. 그리고 성녀님의 음식을 제가 감히 먹을 수 있겠어요?”
아무도 안 보니까 먹어도 될 텐데.
시아나도 저 요리 좋아하면서.
같이 온 하녀들은 시아나가 모두 물린 상황이라 지금 방에는 나와 시아나밖에 없었다.
“성녀님.”
시아나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