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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황제의 외모가 내 취향이라 곤란하다-2화 (2/150)

2화

폐하는 항상 흠잡을 곳 없는 다정한 모습으로 주변 이들을 대했지만, 나는 그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꿈은 자신의 무의식을 반영한다는데, 결코 내 무의식은 저런 청렴결백한 다정남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분명 숨겨진 이면이 있을 거로 생각한 나는, 폐하를 덕질함과 동시에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덕질 13일 차에 폐하의 구린 부분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준 꽃송이를 태워버리는 폐하의 그 모습!

폐하의 손에서 나온 신성력에 활활 타는 그 꽃처럼, 내 마음도 활활 타버렸다.

‘성격 더러운 이중인격자 미남이라니. 정말 좋아…….’

잠시 사족을 또 붙이자면, 나는 꿈인 줄 알았다.

현실이라 인지했다면 보기만 하고 절대 엮이려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지.

현실에서 만나는 성격 더러운 이중인격자.

완전 위험해.

하여튼 나는 폐하가 정말로 다정한 황제를 연기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의심쩍은 부분을 본 적은 있었지만, 심증일 뿐이지 확신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덕질 17일 차에 물어버렸다.

성격이 원래 안 좋으시냐고.

겁도 없이.

“……어떤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요?”

폐하는 찻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다정한 미소였겠지만, 난 알아차렸다.

4/5지점이 미묘하게 올라간 폐하의 오른쪽 눈썹.

그리고 호선을 그리는 눈매와 달리 전혀 웃지 않고 있는 푸른 눈동자.

이건 분명, 내 말이 엄청나게 거슬린다는 신호였다.

크. 이런 모습마저 개섹시해.

나는 마구 요동치는 내 심장 박동을 느끼며 양손을 마주 잡았다.

“제가 좀 본 게 있거든요. 혼자일 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계신다거나, 판데리온 공작 영애한테서 받은 디저트를 분수대에 실수인 척 빠트리셨던 거나. 아, 맞다. 지난번에 랑데트 후작 욕하시는 것도 들었어요! 재수 없는 새끼! 와. 그거 완전 최고였는데! 저한테 한 번만 욕해주시면 안 돼요?”

세이칸 신님. 저 과거로 한 번만 갔다 오게 해주세요.

쟤 기절 좀 시켜서 한마디도 못 하게 만들게.

폐하는 그 뒤로 쭉 이어진 내 목격담을 말없이 듣다가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새 꼰 긴 다리까지.

황실 예법 따윈 개나 줘버린 자세였다.

그렇다고 그 미모와 황제의 위엄이 어디 도망가는 것은 아니라서, 상당히 보기 좋았다 이 말이지…….

폐하는 내가 선물한 꽃송이를 태웠을 때처럼 차가운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저러다 욕해주시려나? 으. 심장 떨린다. 이런 생생한 꿈이라니. 내 무의식, 아주……. 칭찬해.’

볼을 잔뜩 붉히고 두근거리는 내게, 폐하는 시베리아의 추위쯤은 가뿐히 이길 것 같은 냉소적인 미소를 띠고 말했다.

“그거 재미있네.”

그리고 나는 이때 뭔가가 크게 잘못됨을 느꼈다.

사람이 말이지. 아니, 동물이 말이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하잖아?

폐하가 내뿜는 살기가 커다란 흉기로 변해 내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친 기분이었다.

다시 말해, 한 번도 현실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던 이 세계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 하. 재미있으시죠? 제가 폐하를 위해 농담을 좀 해봤습니다. 그럼 티타임 즐거웠고요. 전 볼일이 생각나서 이만!”

다행히 폐하는 허둥지둥 자리를 뜨는 날 잡지 않았다.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포식자의 얼굴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

프로딘타 궁의 내 침실로 돌아온 나는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꿈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내가 식물인간이 되었거나, 중환자실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트럭에 치인 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좀 전의 살기는 진짜였어.’

아무리 현실 같은 생생한 꿈이라도 그 정도의 살기를 느낄 순 없을 터였다.

‘꿈이…… 아닌가?’

확신이 필요했던 나는 꿈에서 깨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해봤다.

이마를 벽에 쾅쾅 부딪혀도 보고, 2층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보기도 하고.

내가 처음 등장했던 소환진 위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 홀로 귀환 의식을 치러도 보고.

하지만 무엇을 하든 달라진 건 없었다.

매번 생채기보다 심한 상처를 입지 않는 내 몸이 엄청나게 튼튼하다는 것만 알게 됐을 뿐.

결론은, 이건 꿈이 아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까불고 다녔던 것도 현실이란 소리야……?’

싸아악.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게 그런 기분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지난 몇 주간이 어땠던가.

젠달의 미인들한테 둘러싸인 나는-황궁은 꽃밭이었다- 내 욕망을 그들 앞에서 쏟아놓기 바빴다.

면전에 대고 아름답다느니, 내가 천국에 온 것 같다느니 주접이란 주접은 다 떨고.

심지어는 폐하한테-.

“폐하, 손가락 하트 한 번만 날려주시면 안 돼요? 엄지랑 검지를 이렇게 모아서 입술에 부딪혔다 떼 주시면 되는데!”

……어쩐지 그때 폐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더라.

제국의 황제한테 뭔 말을 한 거야.

나가 죽어라. 나.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나.

내 꿈인 줄로만 알고 실존 인물들에게 그런 짓을…….

다른 세계의 성녀로 소환됐다는 이 믿기 힘든 현실보다 이 세계로 와서 했던 내 행적들이 수치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틀 밤낮으로 이불을 뻥뻥 차며 괴로워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사과하자.’

사흘 만에 방을 박차고 나온 나는 새로 태어난다는 심정으로 실수한 황궁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다녔다.

다들 너그럽게도 내 과오를 용서해주었지만, 딱 한 분.

“글쎄요. 성격이 좋지 않은 제가 성녀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현실이라 자각한 뒤에 마주한 폐하는 무지막지하게 무서웠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 뒤에 보일 리 없는 검은 오라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그 분위기를 아는가.

그 와중에 방정맞은 내 심장은 왜 그렇게 뛰는지.

‘이, 얼굴에 미친 것아……!’

“성녀가 계셨던 세계에선 말뿐인 사과면 상대방이 용서해주나 보네요. 하지만 그건 본인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사과가 아닌가?”

크흑. 맞는 소리였다.

“그럼……. 제가 드릴 건 없고, 사죄의 뜻으로 폐하의 부탁을 한 세 가지 정도 들어드리는 건…….”

내 제안에 폐하의 눈썹이 심기 불편한 듯 움직였다.

“세 가지?”

“다섯…….”

“다섯?”

“여ㅅ…….”

“여?”

“……열 가지…….”

“좋네.”

그래, 쫄았다.

폐하의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우리의 일시적 갑을 관계는 성립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폐하의 지니가 되었지.

소원은 대개 폐하의 똥개 훈련이었다.

잃어버리지도 않은 물건을 찾아 달라든가 하는 뭐 그런.

‘성격 진짜 나빠!’

저 성격 감추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긴 해도 용서를 구하는 쪽은 나였기에 찍소리 않고 그 똥개 훈련을 다 받아냈다.

마지막 열 번째 부탁이었던 ‘황실 연회에서 폐하의 에스코트 받기’-이건 드레스에 익숙하지 않은 날 옆에서 직관하며 속으로 비웃으려 했던 게 분명했다.-를 끝으로 그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말이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휘둘리고 있단 말이야…….”

결국, 이번에도 폐하가 원하는 대로 넘어가 버렸다.

이번 저항도 대실패.

침대에 엎드려 있던 나는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늦은 밤, 설렁줄을 당기지 않는 한 내 침실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의 폐하 얼굴도 끝내줬었지.”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낮의 폐하의 모습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른다.

신이 빚은 완벽한 미남, 알렌드 칸 레오디우스.

그 순진한 보석 같은 푸른 눈이 내가 제일 잘났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뀔 때의 온도 차.

비틀린 붉은 입술로 내뱉는 성격 나쁜 저음은 또 어떻고.

지난번 갑작스러운 폭우 덕에 본 성난 근육들의 실루엣은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그 얼굴에 그런 몸매를 숨기고 있었다니. 완전 사기 아니냐고.

그분이 성격은 안 좋은데……. 참 안 좋은데 말입니다…….

“으~ 너무 잘생겼어! 잘생긴 게 최고야!”

나는 차오르는 덕심을 주체하지 못해 베개를 껴안고 침대 위를 굴렀다.

폐하한테 휘둘리고 싶지는 않은데, 그 미모는 평생 보고 살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심리적으로 을이란 말이지.”

한번 형성된 갑을 관계가 그리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휘둘리지 않을 방법 어디 없을까.”

***

“허퍼슨. 문 잠갔나?”

“잠갔습니다.”

“그럼 이제 퇴근하세. 해가 저물면 마차 다니기가 힘드니까.”

“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라울 신관님.”

“자네도. 어서 가세.”

퇴근하는 라울과 허퍼슨의 발소리가 건물 밖에서 들릴 때쯤에야, 나는 그들이 떠난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건물 내부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없네. 경비병들은 바깥만 순찰하나?’

잘 됐다.

나는 웃으며 눈앞의 문을 바라봤다.

표면에 화려한 문양을 조각한 두꺼운 나무문의 걸쇠에는 무식하게 큰 철제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자물쇠의 고리 두께는 성인의 손가락 굵기만 해서, 열쇠 없이는 결코 힘으로 뜯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목표는 여기가 아니지.'

나는 문 옆의 모퉁이를 돌아 복도를 쭉 걸어갔다.

지난번 우연히 엿듣게 된 비밀통로가 이쪽에 있었다.

복도 끝에 전시된 기사 갑옷의 검을 뽑아 벽에 있는 틈 사이에 꽂아 넣으면.

“벽이 뒤로 밀리면서 비밀 문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진짜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황실 소유의 작은 예배당이었다.

정교하게 세공된 대리석 기둥, 황금을 섞은 물감으로 그린 벽화.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예배당의 앞쪽의 단상 위로 올라갔다.

대리석 제단에 놓인 투명한 정사각형의 물체.

한 변의 길이가 한 뼘만 한 큐브 위에, 나는 내 손을 얹었다.

그러자 ‘우웅-.’하는 시동음과 함께 투명했던 큐브가 검게 물들며 표면에 하얀색 문자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신성력의 양을 측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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