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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45)화 (14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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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1화

“…뭐?”

여인이 다시 한번 말해 달라는 듯 마르바스를 쳐다봤다. 마르바스는 여인이 원하는 대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잘못해도, 등을 돌리지 않겠어요.”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보랏빛 눈에 맑은 빛이 어렸다. 숨겨지지 않는 기쁨을 한가득 발견하자 심장이 기분 좋게 울렸다.

“왜? 나 진짜 나쁜 짓을 할 거야.”

시험하듯, 매달리는 말에 마르바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요, 원하던 답이 아니에요?”

조금 전까지 보이던 담담한 기색이 사라진 여인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니까 해 주는 거야?”

사나운 말투와 달리 눈망울은 촉촉했다. 정말 그렇다고 하면 울음이라도 터트릴 기세였다. 마르바스는 애써 웃음을 감추며 답했다.

“그건 아니고요.”

“그럼 진심으로?”

“네.”

고개까지 끄덕이며 긍정해 주자 여인이 안 그래도 가까운 그들 사이를 더 좁히며 다가왔다.

“왜?”

살짝 붉어진 여인의 볼은 그 답을 짐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영악한 여인은 마르바스의 입으로 직접 답을 듣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하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반쯤 고백을 한 거나 다름없지만.

“이야기 안 해 줄 건데.”

쉽게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눈치챈 여인이 조급하게 굴었다.

“친구니까?”

“뭐, 그것도 있고요.”

“다른 것도 이야기해 주면 안 돼? 뭐 때문에 이렇게 해 주는지 알고 싶어.”

조르듯 묻는 여인에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그러면, 그러면 나 그것만은 절대 안 놓을 테니까.”

뭐라는 거야. 이건 좀 어이가 없었다. 마르바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당신이기만 하면 내가 당신을 놓을 일은 없을 거예요.”

“무슨 짓을 해도?”

“그래요.”

그녀에게서 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기색을 전부 몰아내는 밝은 웃음이었다. 여인이 마르바스의 손을 붙잡았다.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그를 꼭 붙잡은 여인이 그에게 간청했다.

“정말 날 떠나면 안 돼.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여인이 지금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그인 것도.

마르바스는 그녀가 그를 붙잡은 것보다도 더 세게 손을 맞잡았다.

“당신이나 떠나지 마요.”

“…그럴 리가.”

여인이 흐, 웃음을 흘리더니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넌 정말 아무것도 몰라.”

글쎄, 당신이 이제 나를 좋아하는 건 잘 알겠다. 마르바스가 여인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가 뿜는 감정을 달게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 * *

“내 예상이 맞는다면, 네 힘은 마력이야. 사람들이 쓰는 마나가 좀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근본은 마력이지.”

여인이 타 준 차를 마신 그날. 여인의 무릎에서 눈을 뜬 마르바스에게 질문을 던지던 목소리.

‘나는 이제 네 답이 궁금해.’

창밖에서 일렁이던 붉은 일렁거림과 귀를 찢을 듯 크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따뜻하던 입술과 긴장한 여인의 숨결. 마음이 통했다는 기쁨과 그들의 사랑을 위해 다른 이를 버렸다는 죄책감.

그러나 그 죄책감보다 더 큰 심장의 두근거림과 행복.

흐트러진 여인의 얼굴과 몽롱하게 풀린 눈빛이, 뜨겁게 그를 쳐다보는 시선이 그를 향한 애정을 고백하던 그 목소리가.

‘…벌도 같이 받으면 되겠지.’

정해진 끝을 고하면서도 함께하자던 그 다짐을 떠올리며 마르바스는 그동안 그의 힘에 대해 조사한 바를 설명해 주는 여인을 쳐다봤다.

“네가 이제껏 배웠던 것도 마력을 이용하는 마법이고. 그리고 내 힘은…….”

수도로 돌아온 여인은 교황의 지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낮 동안의 여인은 그 누구보다 강했고 단단했다. 교황의 비위를 맞추고, 신전의 더러운 부분을 숨기며, 신전의 이득을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마르바스와 단둘이 있는 밤이면, 여인은 그녀가 한 짓 때문에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냈고 신전을 욕했다.

그렇게 감정을 맘껏 비워 내고 나면 그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슬퍼하고만 있기에는 시간은 짧았으니까.

화제는 불확실한 그들의 미래이기도 했고, 그에 대한 사랑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마르바스와 그녀가 가진 힘에 대한 것이었다.

“마르바스, 내 말 듣고 있어?”

한참 흥분해 설명을 이어 가던 여인이 뾰족한 눈으로 마르바스를 노려봤다. 마르바스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듣고 있어요.”

“그런데, 왜 반응이 그래?”

이 정보를 찾아내려고 오래된 신전 문서를 얼마나 뒤졌는지 아냐고 투덜거리는 귀여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마르바스가 작게 속삭였다.

“이게 무슨 힘이든, 이걸로 당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라서.”

화르륵- 마르바스가 더 입술을 탐할 수 없게 손으로 입을 막은 여인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웅얼거렸다.

“어쩜, 점점 더 능청스러워지니?”

뭐, 타박하는 것 같지만 여인은 마르바스가 솔직하게 그녀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슬금슬금 그의 가슴팍에 닿는 손길이 바로 그를 증명했다. 마르바스가 그 속내를 모르는 척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은 걸 어떡해요?”

윽, 소리를 낸 여인이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에게 도로 입을 맞춰 왔다. 마르바스는 그에게 쏟아지는 여인을 품 안 가득 끌어안으며 행복에 찬 웃음을 흘렸다.

기한이 정해진 행복이었기에 더 달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렇기에 마르바스는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랑해요.”

작은 속삭임에 몽롱하게 풀린 보랏빛 눈을 가진 여인이 흐드러지게 웃었다.

“나도.”

* * *

하지만 역시 죄를 지어서 그런 건가? 그들의 결말은 빠르게 다가왔다.

몇 달 새, 여인에 대한 교황의 믿음과 신뢰가 극에 다다랐다. 그에 따라 여인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생기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몇 차례 닥친 암살 위협을 무사히 떨쳐 냈다. 하지만 결국 끝이 도래했다.

마르바스는 그의 품 안에서 피를 왈칵 뱉어 내는 여인을 끌어안았다. 여인이 피에 젖은 입술로 말했다.

“별로 무섭지는 않네.”

그렇게 말하면서 여인이 반쯤 날아간 마르바스의 옆구리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그때랑 똑같네. 좀 더 많이 다치긴 했지만.”

마르바스가 힐끗 자기 상처를 쳐다봤다.

“그러게요. 같이 가겠어요.”

살점이 뜯겨 나가다 못해 그 속에 든 것이 보일 것 같은 엄청난 부상이었다. 새어 나오는 피도 엄청났고.

여인이 불확실한 어조로 물었다.

“낫지 않을까?”

마르바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 도움이 없으니 불가능하겠죠. 나를 살리고 싶으면 당신이 살아야지.”

하지만 여인이 다시 살아나는 건 불가능했다. 하룻밤 내내 엄청난 물량으로 들이닥치는 암살자들을 홀로 처리하느라 몇 차례 부상을 입었던 마르바스를 고치고 또 고치느라 힘을 다 소진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여인이 이렇게 피를 뱉어 낸 건 그녀가 생명력까지 끌어내 마르바스를 고친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마르바스는 또다시 큰 부상을 입었다.

쓰러진 여인이 걱정돼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여인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부득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신이 점점 흐려지는 여인이 그런 마르바스의 심리를 다 읽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인이 나른하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되네.”

“그렇네요.”

여인이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잡아 준 마르바스가 창백한 여인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대단하네.”

주변에 가득 쌓인 시체들을 둘러본 금발의 사내가 마르바스와 여인을 쳐다봤다.

“…레온.”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린 여인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레온이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그러자 여인이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내 힘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 이유가 뭐겠어?”

“…설마.”

레온의 시선이 마르바스에게로 향했다. 여인이 다시 한번 피를 뱉어 냈다.

“이제 눈치채다니, 그렇게 탐내던 힘인데. 너도 바보다.”

최근 보여 준 엄청난 임무 성공률이 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냐며 비아냥거리던 여인이 지친 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든 우리 둘 다 죽을 테니까, 이제 쓸모없지만.”

충격받은 얼굴로 둘을 지켜보던 레온이 마른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됐어. 실제로 그 힘을 가진 이가 존재한다는 건 알게 됐으니까. 다음에는 내 걸로 만들면 돼.”

탐욕스러운 시선이 마르바스의 몸을 훑다가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사견은 없다는 듯 무심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네 목은 전시될 거야. 오늘 이 일도 다 네가 저지른 일이 될 테고, 몇 가지 처리하기 귀찮은 일들도 다 네 짓이 되겠지.”

물론 그 말투와 달리 내용은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마르바스의 분노를 자극했다.

신전의 뒤처리에 그들이 사용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여인의 시체는 온전히 보전돼야 했다. 그게 그의 욕심일 뿐이라도.

‘누가 그렇게 둘 줄 알고.’

마르바스는 그들에게 뻗어지는 손을 보며 마지막 남은 힘을 박박 긁어모았다.

제대로 된 위치를 지정하지 않고 염원만으로 이동 마법을 완성시킨 마르바스는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레온에게 끝을 보이는 마력을 폭발시켰다.

아악- 흐려지는 시야 속 부하들의 희생으로 무사한 레온을 보며 눈썹을 찌푸린 마르바스는 어느새 고요해진 주변을 느꼈다.

붉은 하늘 아래, 오롯이 둘만 남게 된 것을 확인한 마르바스가 꼭 끌어안고 있던 여인을 내려다봤다.

“…마르바스.”

완전히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아가씨.”

입꼬리를 올리는데, 여인이 그 미소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이름으로 불러도 되지 않아?”

그래, 당신의 이름.

연인이 되고 나서도 잘 담지 못하던 그 이름.

마르바스는 달다 못해, 아픈 그 이름을 뱉었다.

“클레어.”

그 부름에 기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몇 번이나 당신을 불렀다. 당신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나의 클레어.

* * *

“하아.”

마르바스는 긴 꿈에서 깨어났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푸스스 웃음이 샜다.

“오랜만에 꿈에 나오네.”

이렇게나마 숨 쉴 구멍을 주다니, 다정하기도 하지.

피식, 웃은 마르바스는 귓가에 감도는 맑은 웃음소리를 느끼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시작됐군.”

째깍째깍. 스스로 정해 놓은 시계가 오늘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외전2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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