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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43)화 (1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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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9화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변덕이 죽을 끓는다고 욕을 좀 먹었다. 하지만 함께 있겠다고 하니 환하게 웃던 얼굴이 민망함과 어색함을 모두 날려 버렸다.

여인의 옆에 있게 된 게 좋았고, 여인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게 참 좋았다. 그리고.

‘능력이 있다는 게 마법적 재능이 있다는 소리였나?’

정말 재능이 있었는지, 제대로 된 선생도 없이 여인이 건네준 책으로만 공부했음에도 마법은 너무나도 손쉽게 발현됐다.

그날 마르바스가 보여 준 행동 어디에서 마법적 재능을 발견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인은 본래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굴곤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몸이 뜨겁다고 여겨지던 그 열기들이 전부 마법적인 증상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여인의 곁에서 마법을 배운 지 한 달째,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마르바스는 이제 수도의 웬만한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가 되어 있었다.

‘거짓말 아니야?’

여인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건 너무 허황된 칭찬이었다.

…뭐, 감탄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여인의 눈길은 싫지 않았지만.

그렇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을 텐데, 최근 며칠 동안 여인은 그를 보며 웃다가도 종종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다시 망가트려 버릴까?”

다 완성된 신전을 보며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하는 여인에 마르바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건 좀 작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여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만큼 싫다는 거지.”

“하지만 곧 오잖아요?”

오늘은 드디어 수도의 본신전에서 보내는 신관들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마르바스의 말에 여인이 쯧, 혀를 찼다.

“너무 친하게 지내지도, 그렇다고 너무 밀어내지도 마.”

“네, 알겠다니까요.”

신관이 온다는 서신을 받은 후부터 하루에 한 번씩 듣는 이야기였다. 마르바스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피식 웃으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 *

마르바스는 멈춰 선 마차를 보며 여인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야지.”

여인의 상태를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었지만 세 개의 마차에서 신관들이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다.

“저기 오네요.”

“…그렇네.”

특히 가운데에 있던 제일 화려해 보이던 마차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내린 신관은 정말 신관 중의 신관처럼 보였다.

우아하고 세련된, 금발을 깔끔하게 하나로 내려 묶은 미남자였다. 꽤 높은 사람인 것 같다 생각하는데 여인의 숨소리가 흐트러졌다.

고개를 내린 마르바스는 놀란 것을 넘어 꼭 겁에 질린 것 같은 여인을 발견했다.

“아가씨.”

하지만 여인이 뭐라 반응하기 전에 금발의 신관이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오랜만이지?”

남자의 인사에 여인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여기까지 어쩐 일로?”

그를 반기지 않는 여인의 태도에도 남자는 태연했다.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

마르바스는 꽉 쥐어진 여인의 주먹을 발견하고는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고민하는데 남자가 마르바스를 쳐다봤다.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보는 눈이 많으니.”

마르바스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훤칠한 사내보다 손마디 두 개 정도 높은 스스로의 키가 기꺼웠다.

그렇게 얼마나 남자를 마주 보고 있었을까? 여인이 마르바스에게 명령했다.

“신관들에게 신전 구조에 대해 알려 주겠니? 마을에 대해 알려 줘도 좋고.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함께 지내실 테니.”

마르바스는 못마땅한 마음을 숨기며 멀어지는 여인과 금발의 신관을 지켜봤다.

* * *

마르바스는 신관들을 신전으로 돌려보내자마자 여인의 저택으로 향했다.

사용인을 통해 레온이라는 금발의 신관이 이미 신전으로 돌아갔단 이야기도 들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고요한 복도를 지나 여인의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평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답이 돌아왔다.

“마르바스?”

조용히 문을 열자 여인은 커다란 창 앞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가까이 다가가며 묻자 그녀가 마르바스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네가 올 것 같았어.”

“그렇습니까?”

가만히 그를 쳐다보던 여인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너는 나한테 특별하니까.”

별 의미 없는 말일 게 분명한데도 볼에 열이 올랐다. 마르바스가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네, 그러시겠죠. 기분은 괜찮으세요?”

부러 무심히 굴자 여인이 얼굴에서 미소를 완전히 지워 냈다.

“뭐가?”

“별로 달갑지 않으셨잖아요.”

무서워한다는 표현을 쓰면 싫어할 것 같아 그리 말하자, 여인이 둥글게 눈을 떴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티가 났지?”

“많이요.”

“…그래.”

씁쓸한 웃음을 짓는 여인에 마르바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또 만나셔야 합니까?”

“싫다고 피할 수 있는 이는 아니거든. 일단 가족이니까.”

그래, 가족…, 가족이라고? 마르바스는 그 매끈한 인상의 신관을 다시 떠올렸다. 생김새도 그렇고 머리색이나 눈 색 중 뭐 하나 닮은 것을 찾기 힘들었다.

“…안 닮았던데요.”

“그렇지, 뭐.”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 신관이 도대체 뭘 말했길래 이렇게 기분이 저조한 걸까? 본래도 신관들의 방문을 신경 쓰는 눈치였지만, 지금 여인은 그걸 넘어서 슬퍼 보였다.

초조하게 답을 기다리는데 냉기가 도는 손이 그의 손에 닿았다.

“아.”

놀란 마르바스가 보이지도 않는지 여인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마르바스의 손바닥을 문질렀다.

“손 좀 잡아 줘 봐.”

놀라움도 잠시, 아직 그런 쪽으로는 미성숙한 마르바스는 그만 멍청하게 반응하고 말했다.

“…절 희롱하시는 건가요?”

“뭐어?”

슬금슬금 마르바스의 손에 깍지를 끼던 여인이 어이없다는 그를 쳐다봤다. 스스로도 말을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마르바스는 그냥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외간 남자 손을 이렇게 덥석덥석 잡으시면 됩니까?”

귀를 의심하듯 그를 쳐다보던 여인이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마르바스는 냉큼 그걸 다시 잡아챘다.

“잡지 말라며?”

“그래도 이왕 잡았으면 좀 더 잡고 있으세요. 제가 그런 걸로 오해할 성격도 아니고.”

오해하고픈 마음은 넘치지만 그래도 마르바스는 현실 파악을 잘했다. 그 뻔뻔하면서도 능글거리는 태도에 여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부턴가 장난기가 늘었단 말이야.”

마르바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가씨께 배운 거죠.”

“왜 많고 많은 것 중에 그런 걸 배워?”

“그게 제일 인상 깊으니까요?”

다행히 헛웃음을 흘리는 여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댈 너무 나쁜 쪽으로 물들였나 봐.”

“그러게요. 책임지세요.”

“보너스를 줄까?”

“네, 이왕이면 많이 주세요.”

여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는 돈이 제일 좋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마르바스는 진심을 숨기며 답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앞으로도 속마음을 말할 일은 없을 테다. 끝내는 이 감정을 없애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마르바스는 지금은 여인이 웃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새 그의 체온이 옮겨가 미적지근해진 여인의 손을 더 단단히 붙잡는데,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고마워.”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목소리.

“지금도, 계속 옆에 있어 주는 것도.”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배시시 웃는 여인을 본 마르바스는 그의 미래를 직감했다.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여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여인이 원치 않는다면 그 곁에서 떠날 수 없음을.

* * *

그날 밤. 마르바스는 여인에게 직접 레온이라는 신관과 그녀의 관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교황이라니.’

처음 둘이 이복 남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이렇게 놀라지 않았는데.

‘권력자 딸일 줄은 알았지만 교황이라니, 스케일이 크네.’

아주 위험한 사람 옆에 있다는 자각이 다시 들었지만, 여인에 대한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마르바스에게는 소용없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마르바스는 이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녀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기껍기만 했다.

그리고 그 밤의 대화 후로 일주일이 지난 오늘.

‘높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왜 안 돌아가는 거지?’

할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일주일이 지나도 레온은 돌아가려는 낌새가 없었다.

‘가족 간에 정을 다질 생각은 아닌 것 같고.’

마르바스는 요 일주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인을 찾아오는 레온을 빤히 쳐다봤다.

역시 아무리 봐도 남매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련되고 잘생긴 외양과 잘 어울리게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흘러넘치는 사람이었다.

딱딱하고 귀족적인 느낌.

여인도 행동이 우아했고 외모에서도 귀티가 흘렀지만, 제 오라비와 달리 그녀는 통통 튀는 목소리와 다정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늘 당당하던 여인은 이상하게 레온과 함께 있으면 주눅이 들어서, 굉장히 연약해 보이고 여려 보였다.

그래서 마르바스는 저도 모르게 계속 여인을 지키듯 앞으로 나서곤 했다. 이러다가 귀족이 아니라 신전에 잘못 찍혀 단명하는 게 아닐까 슬쩍 걱정도 됐지만…….

‘어쩌겠어?’

마르바스가 시선을 가리듯 앞으로 나서면 여인에게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오니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수밖에.

그리고 그건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과 오늘은 조금 달랐다.

“마르바스라고?”

이제껏 마르바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레온이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관계지?”

“시종 겸 호위입니다.”

“…그래?”

마르바스가 딱히 꺼리는 기색 없이 가만히 자리에 서 있는데 레온이 묘한 눈을 하고 말했다.

“조금 특이하군.”

마르바스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데 뒤에서 그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제껏 뒤에 숨어만 있던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마르바스를 뒤로 물렸다.

마르바스는 요 며칠 보던 흔들리는 얼굴이 아닌 단단한 얼굴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만 가는 게 어때?”

여인의 차가운 말에도 레온은 태평했다.

“왜?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사이 아닌가? 나는 답을 들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테니.”

레온이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하는데, 여인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역시 마르바스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레온, 적당히 해.”

혹, 또 떠는 걸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여인은 매섭게 경고했다. 하지만 레온은 그 변화에 겁을 먹기보다는 기뻐했다.

“하하하.”

마을에 도착한 후, 미소 한 번 없던 남자의 얼굴에 쾌활한 웃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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