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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41)화 (14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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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7화

어영부영 여인의 곁에 머물게 된 지 3년. 버릇처럼 영주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마르바스는 이제 익숙하게 그 말을 지워 냈다.

“마르바스!”

마르바스는 손을 번쩍 들어 크게 휘젓는 여인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보입니다.”

타박에도 킥킥 웃은 여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마르바스의 얼굴에도 스멀스멀 미소가 흘러나왔다.

정말 어떻게 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됐을까?

함께한 지 1년이 됐을 때가 문제였을까, 2년이 됐을 때가 문제였을까. 여인을 향한 마음을 지워 내지 못하고 받아들인 건 불과 몇 달 전이니 어쩌면 2년째가 정말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멍청하긴.’

마음을 주면 안 된다고, 그래 봐야 상처받는 건 자신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건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떠날 때인지도 모르지.’

마침 명분도 적당했다. 지난 3년간 길게도 이어져 오던 신전 공사가 드디어 마무리된 참이었다.

사실 공사야 작년에 끝났고 지난 1년간은 신전 안의 인테리어를 채우느라 시간을 끌었던 거지만, 그는 이를 모르는 척했다.

여하튼 간에, 결과적으로 드디어 신전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신전이 열리면 여인은 신전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생활할 신관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 했고.

‘내가 아니어도 괜찮을 사람이니까.’

그러니 주제를 알고 여인의 곁을 떠나는 게 앞으로 마르바스가 할 일이었다.

마르바스가 가까이 다가가자 여인이 활짝 웃었다.

“어때? 이 정도면 어디 내놓기 부끄럽지 않겠지?”

완성된 신전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마르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니까?”

총괄 책임자라는 거창한 호칭치고는 딱히 하는 일도 없었으면서 말은 잘했다. 콩깍지가 씌었는지 저 뻔뻔함마저도 귀여워 보였고.

마르바스는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 버린 스스로에 경악하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할 말이 있습니다.”

여인의 곁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지난달부터다. 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지만 아무튼 이번만큼 확고하게 마음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뭘?”

“곧 제 계약이 끝나는 거 아시죠?”

“아, 그렇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여인이 그게 뭐? 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마르바스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운을 뗐다.

“그거랑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데요.”

어색하지 않게, 그리고 아쉬운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숨을 고르는데, 여인이 생긋 웃었다.

“돈을 더 달라고? 그래, 그럴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에 마르바스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받는데 장난하나?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받은 돈의 두 배가 되는 돈을 새롭게 받아 챙기고 있었다. 거기서 돈을 더 달라고 하다니, 그건 양심이 사라진 거였다.

“그런 게 아니라요.”

“응?”

하아, 한숨을 쉰 마르바스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저 관두려고요.”

“…뭘?”

의아함 가득한 여인의 얼굴을 보며 마르바스가 이제껏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지금 이 일요.”

드디어. 해방감과 묘한 아쉬움이 뒤섞여 마르바스는 여인의 침묵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 갔다.

“저도 성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슬슬 마을 밖의 세상도 궁금하고요.”

주변 사람들이 돈도 풍족하게 받는 것 같은데, 도대체 그 좋은 일을 왜 관두냐고 물을 때 해 주려고 미리 생각해 둔 답이었다.

성인이 된 남자가 마을 밖의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걸 말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마 여인 역시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인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그럼 휴가를 줄까?”

“휴가요……?”

“그러고 보니 휴가가 없었잖아. 좀 길게 다녀와도 돼. 1년쯤이면 되나?”

고집스레 빛나는 보랏빛 눈을 보아하니, 지금 제대로 떨쳐 내지 않으면 자리를 비워 둘 테니 언제든 돌아오라는 말을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간신히 붙잡은 마음이 마구 흔들릴 게 뻔했고.

“아니, 아니요. 여행을 좀 하다가는 다른 곳에 정착해 볼까 싶어서요.”

“…어디?”

당연히 방금 떠올린 변명이니 그것까지 정해 뒀을 리가 없었다. 마르바스는 일단 가장 만만한 곳을 입에 담았다.

“수도요.”

“수도에 정착한다고?”

마르바스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주신 돈이 많아서 수도에 정착할 만큼은 됩니다.”

여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라고 돈 많이 준 거 아닌데.”

“네?”

“아니야.”

푹 처진 어깨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아쉬움이 보였다.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당연한 반응인데도 그게 참 달가웠다.

마음 한쪽이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우물거리는 핑크빛 입술을 바라보며 마르바스는 생각했다.

만약 그를 붙잡는다면, 그냥 다시 옆에 있겠다고 할까? 아니! 절대 안 됐다. 적어도 이 마음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마르바스가 다시 단단하게 마음을 잡았다.

“아무튼, 그렇게 됐다고요. 어차피 곧 신전으로 가신다던데 저는 그런 곳에서 살 만큼 청렴하지는 않습니다.”

여인이 입을 삐죽거렸다.

“나도 별로 안 청렴해.”

툭 튀어나온 입술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건 저도 알아요.”

“아쉬운데, 그래도 여기서 붙잡으면 안 되겠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던 여인이 약간의 침묵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어.”

그게 끝?

뭔가 그래도, 좀 더 붙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붙잡는다고 붙잡혀주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붙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주제에 여인이 금방 포기를 하자 짜증이 났다.

‘역시 안달 난 건 나뿐이지.’

어느새 크기를 크게 부풀린 마음에 예민하게 구는 게 짜증 났다. 마르바스는 또 한 번 얼른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 *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마르바스는 일을 해야 했다. 아직 계약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뒷산에 가시겠다고요?”

찝찝한 얼굴로 여인을 쳐다보는데 그녀는 아주 활기가 넘쳐흘렀다.

“마을 모든 곳을 다 봤는데, 유일하게 보지 못한 곳이 거기야.”

그렇지만 말이 뒷산이지 여인이 움직이기에는 조금 험한 편이었다.

“그대가 떠나고 나면, 뒷산을 구경시켜 줄 사람이 없잖아?”

“…그건 그렇죠.”

결국 마르바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분명한 여인을 데리고 그가 늘 뒷산이라고 부르던 곳으로 향했다.

“너무 좋다!”

산에 들어설 때만 해도 해맑던 목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억, 이거 정말 뒷산이야?”

힘에 겨운 여인의 물음에 마르바스가 어색하게 답했다.

“일단 마을 뒤에 있으니까요.”

“장난하니?”

숨소리만큼이나 여인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 돌아갈까 고민하는데, 여인이 잡아 달라는 듯 손을 쭉 내밀었다.

마르바스는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여인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부축하듯 그녀를 붙잡은 마르바스가 지친 기색 없이 이동하자 여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사냥꾼이었다더니.”

“뭐, 그렇죠.”

“그런데 그때는 성인도 아니었잖아.”

“웬만한 성인들보다 튼튼하고 컸으니까요.”

그랬던 것 같다고 중얼거리던 여인이 가파른 산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친 적은 없어?”

“왜 없어요? 있지.”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종종 실수는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의외였는지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 다치면 어떡해? 약 들고 다니는 거야?”

약은 무슨. 마르바스가 코웃음을 쳤다.

“사냥꾼 겸 약초꾼이었어요. 산에서 약초 찾는 거야 쉽죠.”

마르바스의 답이 못마땅했는지 여인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걸로도 안 되는 상처면?”

“그런 적 없었는데요? 상처가 잘 나아요. 튼튼해서 그런가?”

여인은 그게 말이나 되냐며 웃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약초꾼 할아범도 인정할 만큼 마르바스는 회복력이 아주 빨랐다.

심하게 발이 삐어 퉁퉁 부었던 발도 약초를 반나절 정도 붙여 두면 금방 원상태로 돌아올 정도였고, 뭘 모르고 독초를 먹어도 잠시 배앓이를 하고 나면 금방 낫곤 했다.

“애당초 다칠 일도 거의 없었어요. 곰 만났을 때도 무사했고.”

“곰?”

호기심 가득한 여인의 물음에 장난기가 돋은 마르바스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저만했어요.”

여인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부정했다.

“거짓말하는 거지?”

마르바스가 정색을 했다.

“아닌데요.”

그 표정이 제법 잘 통했는지 여인이 그게 인간이냐며 기겁했다. 그가 킬킬 웃음을 흘리자 여인이 그제야 마르바스의 장난을 눈치채고는 허탈해했다.

“원래 놀리는 건 내 몫이었는데.”

“역시 놀리시는 거였죠?”

그간 독특했던 여인의 행동들을 떠올리는데 그녀가 편안하게 웃으며 답했다.

“반쯤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야. 원래는 그렇게 못 살았으니까.”

원래는 그렇게 못 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튀어나올 것 같은 질문을 삼키는데 여인이 더 못 가겠다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맨날 뒷산이라고 부른다고 진짜 뒷산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됐는데.”

투정이 섞인 그 말에 마르바스가 한숨을 쉬었다. 장난은 여기까지였다.

“그럼 이제 돌아가죠.”

“정말?”

“네, 물론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겠지만.”

덧붙인 말에 여인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그 솔직한 반응에 웃음을 흘리는데, 순간 뒷골이 오싹하게 당겨 왔다.

“이쪽으로!”

마르바스는 생각할 틈도 없이 부축하던 여인을 맞은편 나무 위로 밀어 올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틈은 없었다.

마르바스는 간신히 여인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를 덮치는 검은 그림자에 크게 뒤로 날아갔다. 몸을 강타하는 커다란 고통에도 마르바스는 자세를 고쳐 바닥을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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