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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23)화 (12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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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잔뜩 당황한 레라지에는 결국 신관을 부른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그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이미 한 번 처리한 성기사들을 마법으로 이동시킨 적이 있으니 마법을 이용해 다시 데리고 오면 일이 더 쉬웠다는 것도, 한참이나 이동하고 난 뒤에나 생각날 정도로 레라지에는 정신이 없었다.

“폐하가……?”

그는 마왕이 제냐를 갑자기 보석 앞에 들이밀었던 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긴가민가하긴 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제냐를 바라보는 마왕의 시선을,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 따뜻한 눈빛을, 쓰러지던 제냐를 보고 얼핏 보이던 그 표정을 전부 본 순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허.”

레라지에는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막았다. 그러고는 발을 동동 구르다 기어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삼각관계!”

으허! 말을 뱉고 나니, 더 실감이 갔다.

세상에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들의 삼각관계라니?!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명의 아름다운 사내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펼치는 사랑싸움!

제냐는 이미 아스와 마음이 통한 것 같지만…….

“그럼 짝사랑?!”

허억, 더 재밌다. 레라지에가 으흥, 으흥,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따라오길 잘했어!”

처음에는 그저 마왕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 아름다운 외모를 오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충동적으로 지원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재밌는 일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실연의 상처를 입은 폐하의 얼굴이 더 아름답게 피어나시겠군!”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고뇌하고 슬퍼하는 폐하의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됐다.

음울한 빛을 띠며 더 농익어 갈 얼굴을 떠올리며 몸을 떨던 레라지에는 얼굴에서 팔랑거리는 흰 천에 어색하게 자세를 멈췄다.

“이럴 때가 아니지.”

제냐가 처음 마왕의 뺨을 때리는 걸 목격했을 때만 해도, 화가 났었는데 어느새 그 감정은 다 사그라들었는지 지금은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상사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잘생긴 사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데 그건 또 나름대로 나쁘지 않잖아?

거기다가…….

“폐하는 고백할 생각은 없으신 것 같은데.”

음, 그래 보였지.

이 눈치 빠른 레라지에가 이제야 그걸 알아차릴 정도면 평소 얼마나 감정을 갈무리하고 계신단 말인가?

그런데 어째서? 솔직히 폐하 정도면 어디서 빠질 얼굴은 아닌데.

“능력도 좋고.”

다만, 걸리는 거라면 제냐의 왕국 문제가 있다는 거고.

“음.”

그래서 말하지 않는 걸까?

“그래도 그런 마음을 품고 계셨다면 옛사랑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클레어라던 전 연인의 이야기는 도대체 왜 꺼냈단 말인가? 굳이 절절했던 과거의 사랑 이야기를 꺼낼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까 어쩌다 나올 수도 있었……?”

순간 레라지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왕이 처음 제냐를 납치해 왔을 당시, 혼란스러워하던 모습과 이번 일정에서 보였던 마왕의 모습들까지.

그간의 일이 박제된 것처럼 선명하게 레라지에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고,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제냐가, 클레어?”

흡! 자기가 말을 하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입을 콱 막은 레라지에가 눈을 멍하니 떴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마왕은 처음부터 제냐에게 관심이 많았고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챙기곤 했다.

신기한 성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족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힘이었는데.

‘엘리고스도 그랬어.’

상대가 어린애라는 이유로 엘리고스가 그렇게 유하게 굴 리 없는데!

세상에, 그럼 이건!

“…으아.”

이건 너무 자극이 과했다. 레라지에는 몸을 배배 꼬며 머리를 헤집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마왕이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그 사랑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지?”

제냐가 아스에게 마음을 준 것은 너무나도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마왕은 앞으로도 그걸 밝힐 생각이 없는 걸까?

“너무, 이건 너무…….”

“뭐 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에 감탄하고 있던 레라지에는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레모리 공작님?”

레라지에는 고상하고 우아한 귀족의 표본 같은 그레모리를 보면서도 평소처럼 호들갑을 떨 수 없었다.

“레라지에, 그대 꼴이 왜 그러나?”

내 꼴? 평소랑 다르게 좀 엉망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공작님, 아셨습니까?!”

“…뭘?”

“제냐가, 제냐가 그…….”

질문을 하려다 말고 만약 그레모리가 이걸 모른다면, 이걸 자기 입으로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걱정하는데, 그레모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아, 폐하의 첫사랑?”

“…아십니까?!”

태연한 그레모리의 답에 레라지에의 목소리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레모리가 씨익,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그, 그럼 폐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도 아십니까?”

“음, 왜?”

의아하다는 그 얼굴에 레라지에가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러니까 제냐는 지금 아스와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굳이 밝힐 생각은 없으신 것 같은데?”

레라지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째서요?”

“제냐를 배려해 준 거겠지. 아무래도 아직 완전히 마족들에게 마음을 열진 않았잖아?”

“…그건 그렇죠.”

시무룩한 레라지에의 얼굴에 그레모리가 가볍게 덧붙였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걸?”

그럴 수가! 레라지에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면 폐하가 너무…….”

“그래도 완전히 버리진 않았잖아? 가라고 했는데도 다시 돌아가고 말이야.”

그러나 레라지에는 그레모리의 그 태평한 얼굴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폐하와 다른 의미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상황에 잔뜩 몰입해 가슴이 아픈 레라지에와 달리 그레모리는 그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글쎄, 폐하의 의중은 나중에 그분께 여쭤봐. 나는 지금 그보다는 그대가 왜 여기 혼자 있는지 궁금한데?”

“아!”

그제야 왜 그가 밖으로 나왔는지 다시 기억해 낸 레라지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력을 쓸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성력?”

“네,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몰라서요.”

“흐음. 신관이나 성기사들은 대부분 다 정리됐는데. 기절한 걸 깨워야 하나?”

레라지에는 허공으로 떠오르는 그레모리를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엉망이 되어 마수의 등허리에 걸쳐져 있는 베리스와 그런 베리스를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비네를 마주했다.

“비네 자작.”

“…후작님.”

레라지에는 그의 모습을 훑는 비네 자작의 표정에도 딱히 아무렇지 않았다.

‘머리는 다듬으면 그만이고, 몸 상처도 나을 텐데 뭐.’

제냐가 얼굴을 가려 준 천도 여전히 있었으니까.

레라지에는 태연하게 그 표정을 받아넘기며 마수에 걸쳐져 있는 베리스 백작을 가리켰다.

“저건 꼴이 왜 저런 건가?”

“…….”

비네가 말하기도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자, 그레모리가 태연하게 끼어들었다.

“제냐에게 집적거리다가 용사에게 얻어터졌지.”

참 간략한 설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핏 제냐가 마왕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폐하께서도 한바탕하시겠군.’

쯧쯧, 여전히 구제 불능인 베리스를 보며 혀를 찬 레라지에는 의외라는 얼굴로 그레모리 공작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말이 좀 거치시네.’

오랜만에 인간계로 나오셔서 흥분하신 걸까?

전체적으로 조금 분위기가 평소보다 풀려 있어 보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도 같고.

물론 레라지에는 눈치가 좋은 마족이기에 굳이 그걸 티 내서 그레모리의 웃는 얼굴을 없앨 생각은 없었다.

레라지에가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주변을 쭈욱, 훑은 그레모리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아, 저기.”

어디 데려가기 괜찮은 인간을 찾은 걸까? 싶어 레라지에가 그레모리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예상대로 그레모리가 가리킨 곳에는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력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레라지에가 금방 시선을 돌리지 못한 건…….

“황녀군요.”

꽤 다급한 얼굴로 달려 나가고 있는 저건, 제냐와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레라지에의 말에 그레모리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냐의 사촌이라는데, 막 처리하긴 그렇고…….”

그레모리의 시선이 비네에게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레라지에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다녀오죠.”

비네 자작도 평소 제냐를 나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니, 문제는 없겠지만 이번 일은 그가 해결하고 싶었다.

“응? 신관 찾느라 바쁜 것 아니었어?”

“저 주변에서 적당히 찾으면 되겠죠.”

대충 그 언저리에 있는 기절한 신관이라도 데려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신전에 널리고 널린 게 신관이니.

‘저 여자도 이번 일을 해결할 때. 이용할 곳이 많을 것 같으니까.’

더군다나 아예 못 봤으면 모를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냐도 제 사촌이라는 황녀를 꽤 신경 쓰는 눈치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천을 만지작거리면서 레라지에가 마왕이 있던 곳을 돌아봤다.

‘조금 상황이 정리된 것 같기도 하고.’

끝을 모르고 치솟던 마왕의 마력도, 불쾌하던 성력도 잦아 들은 것을 확인한 레라지에는 곧장 황녀 일행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대들, 어디를 가고 있지?”

레라지에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는 황녀 일행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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