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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20)화 (1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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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제냐는 시커먼 어둠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눈을 뜨면 뭔가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떴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마왕은 분명 다녀오라고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다녀올 수 있단 말인가?

“방법도 안 알려 주고 무작정 사람을 보내 버리면 어떡해?”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쯧, 혀를 찬 제냐는 고개를 빙빙 돌리며 다시 한번 어둠밖에 없는 공간을 바라봤다.

하얗게 빛나는 그녀의 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커먼 공간이었는데,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마계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위기감이 없는 걸까?

“뭐, 못 빠져나간다고 해도 알아서 구해 주겠지.”

자기가 보냈으니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해결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하자.”

이렇게 멍청하게 한자리에 계속 서 있는 건 싫으니 좀 움직여 보고.

제냐는 딱히 길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고 그냥 일직선으로 걸어 나갔다.

터벅, 터벅, 터벅.

아무도 없는 공간에 그녀의 발소리만 가득 울려 퍼지는 게 나쁘지 않았다.

고요하고 평안한 느낌.

바깥에서 있었던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일들은 전부 잊고 고요함에 젖어 있는 건 제냐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걸어?!”

제냐는 신경질적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공간은 그런 제냐의 목소리마저도 금방 삼켜 버렸다.

“사람이 못 일어나면 알아서 깨워 줘야 할 것 아니야?!”

설마 아직도 성녀랑 지지부진하게 말을 섞고 있는 건가? 응? 넌 알아서 나올 테니까 나도 내 볼일을 보고 있겠다, 이런 거냐고!

마왕에 대한 불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그랬다면, 루미에르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는데.’

한참 씩씩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던 제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도 안다고.”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건 과거 거울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니 제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짜증 나는 걸 어쩌라고? 한 번 더 발을 쾅 구른 제냐가 에라 모르겠다, 바닥에 몸을 발라당 눕혔다.

“으휴.”

오래 걸은 것치고는 발이 아프긴커녕 여전히 몸은 쌩쌩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어쩌지?”

발을 동당거리며 몸을 버둥거리던 제냐가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쭉 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을 바라봤다.

밤하늘 같으면서도 별도 뭣도 없는 공간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거 없나?”

바보같이 그냥 바깥에서 꺼내 주길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오랜 시간 걸어 다녀 봐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가진 거라고 해 봐야, 결국에는 성력인데…….”

마왕에게 쓰고 얼마 남지 않은 성력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남겨 두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면 별수 없었다. 제냐가 손 위로 몽글몽글 빛을 끌어모았다.

“여기서는 별로 피곤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아주 조금만 써 보자고.

제냐는 어두운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성력을 휘익, 손을 휘둘러 둥그렇게 퍼트렸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걸로 뭔가 바뀌는 건 없을 거라고, 특별한 장치를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냥 허공에 성력을 뿌렸을 뿐이니까.

하지만 성력이 그녀의 손을 떠나고 몇 초 뒤.

“이게…….”

제냐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놀라운 광경이었다.

아주 옅게 퍼져 곧 사라져야 했을 성력이 그녀를 중심으로 분열하듯, 반짝반짝한 빛을 내며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다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나아가며 어둠을 몰아냈다.

이제까지 그녀의 주위를 감싸던 어둠이 거짓이었다는 듯 환하게 밝아진 주위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던 제냐는 저 너머,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저건?”

마왕과 함께 발견했었던, 천계의 보석.

성녀가 들고 있던 보석과 짝을 이루는 또 다른 수정구였다.

바라봐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저게 무슨 능력이 있는 건지도 알았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이 감정조차 만들어진 것일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보석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상하게 저 물건이 그녀의 것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 것.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연스레 손이 앞으로 뻗어지고 입이 열렸다.

“내게로 와.”

그 부름에 응하듯 천계의 보석이 빨려 들듯 그녀의 손안에 들어왔다.

손에 감기는 감촉이. 보석이 손에 들어온 순간 둥, 떨린 몸의 울림이 제냐를 사로잡았다.

제냐는 손 위에 놓인 천계의 보석을 빤히 바라봤다.

가까이에서 본 보석은 속이 훤히 보이는 평범한 수정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평범한 수정구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홀린 사람처럼 수정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제냐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도 바로 그쯤이었다.

이게 그녀의 착각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안이 비어 있어?”

그러자 정답이라는 듯, 보석이 따뜻해졌다.

“그냥 내 체온 때문에 올라간 거 아닌가?”

잠깐 의심이 들긴 했는데, 보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진짜 이상하다.”

지금 이 상황도. 이걸 무서워하지 않는 자신도.

이 모든 게 전부 보석에 현혹되어 생겼을지도 모르는 현상인데, 왜 걱정이 안 되는 걸까.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보지.’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 봐야 했다. 제냐가 한숨을 푹 쉬며 들고 있던 보석을 내려다봤다.

“안이 비어 있는데 뭐, 어쩌라고? 잃어버린 안쪽이라도 찾아 달라는 건가?”

보석이 맞는다는 듯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나.”

잃어버린 안쪽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뻔했다.

‘성녀가 가지고 있던 보석. 그게 여기 안에서 나온 거겠지.’

도대체 어떻게 이 안에서 그걸 빼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목적이라면야 어려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 해 주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보석에 뜨끈뜨끈한 열이 돌았다.

조금 전, 긴가민가했던 느낌과는 다르게 확연하게 올라간 온도에 눈썹을 치켜세우던 제냐가 화끈한 감각에 놀라 천계의 보석을 던졌다.

“아!”

던지고 나서도 깜짝 놀라 다시 손을 뻗던 제냐는 허공에 떠 있는 보석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놀라라.”

그런 그녀를 비웃듯, 사방에서 거센 돌풍이 몰아닥쳤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휘날리고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이었다.

이건 또 뭔가 싶어 간신히 눈을 뜬 제냐는 사방으로 퍼졌던 빛들이 보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잠시 뒤, 바람이 멈추고 다시 어둠만 남은 공간에는 색이 있는 건 제냐와 보석뿐이었다.

제냐는 차마 머리나 옷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보석에 손을 댄 순간, 그녀는 눈을 떴다.

* * *

“앞에!”

제냐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던 루미에르는 거슬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그의 앞으로 날아오는 상자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천계의 보석을 넣은 상자였다.

본능적으로 상자를 낚아채려던 루미에르는 그의 손을 피해 쑥, 가라앉는 상자에 다시 한번 손을 쳐들었다가 상자 주위를 감싸는 반짝이는 빛에 천천히 손을 내렸다.

제냐의 손에서 흘러나온 성력이 상자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게 무슨…….”

루미에르는 여전히 편안한 얼굴의 제냐를 확인하고는 마왕을 돌아봤다.

마왕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인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석이 날아온 게 마왕의 의도가 아닌 건 확실했다.

잠시 마왕의 표정을 살피던 루미에르는 다시 제냐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마왕과의 일은 제냐가 깨어나고 난 뒤에 처리하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제냐만을…….

“제냐.”

상자 주위를 감싸는 성력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자 흔들리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냐의 성력은 순수하고 깨끗했으며 맑았다. 그녀를 닮은 따뜻한 기운이 달래듯 부드럽게 그를 스치고 지나가기를 몇 번.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보석을 담고 있던 상자가 저절로 열렸다.

경계하듯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미에르는 주위를 맴도는 따스한 성력에 튀어 나갈 뻔한 손을 내리눌렀다.

금방이라도 보석을 박살 내고 싶은 충동적인 마음을 내리누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참아야 해.’

상자 속에서 튀어나온 천계의 보석이 당연하다는 듯 제냐의 손 위로 올라가는 것도, 그 천계의 보석에 제냐의 성력이 흘러들어 가는 것도 감내했다.

이 기이한 상황에도 그녀의 성력은 여전히 포근했고, 잠들어 있긴 하지만 제냐의 상태는 나빠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만약 이게 잘못된 선택이라면? 그래서 제냐의 몸에 무리가 가고 있는 거라면?

제냐의 성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녀가 이렇게 많은 성력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제냐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나고, 불안함에 손이 떨렸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도 같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거칠어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도 루미에르는 고집스럽게 제냐를 응시했다.

그리고 제발 그녀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간절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제냐.”

최대한 담담하게, 어른스럽게 당신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겁이 났다.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 달라고.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하듯,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이 똑, 제냐의 눈 위로 떨어졌을 때.

몽환적인 빛을 띠는 보랏빛 눈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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