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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06) (106/145)

간략하지만 해야 할 건 전부 한 마왕의 이야기를 들은 루미에르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하고 싶은 건 정확히 뭡니까?”

마왕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신전의 몰락.”

루미에르가 비웃듯 더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리고?”

마왕 역시 루미에르를 따라 입꼬리를 비틀었다.

“성녀의 죽음.”

죽음.

제냐는 자연스레 루미에르의 눈치를 살폈다.

신전은 나쁜 짓을 했고, 루미에르도 신전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녀는 루미에르에게 어머니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루미에르는 이번에도 성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당신의 연인을 죽인 자의 자식이기 때문입니까?”

“그 여자가 클레어의 이름을 욕보이니까.”

듣는 것만으로 절절한 분노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제냐가 초조하게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하지만 루미에르는 마왕의 분노를 눈앞에서 봤음에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마왕 역시 금방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루미에르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받아들일 건가?”

루미에르는 마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신전의 몰락에는 동의합니다.”

하아, 순간 제냐의 입가에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마왕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럼 다른 쪽은?”

루미에르가 이번에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제냐가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머니는…….”

모두가 루미에르의 말에 집중하던 그때, 큰 소리를 내며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릉-! 엄청난 굉음과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건물의 파편, 무너지는 바닥.

하지만 건물 안에 있던 이 중 누구도 그 무너짐에 영향을 받진 않았다. 마왕이 쳐 놓은 마법 덕분이었다.

제냐는 투명한 막을 마구 두드리는 건물 파편들과 그녀의 발아래 뻥 뚫린 공간을 바라봤다.

“괜찮습니까?”

제냐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루미에르를 올려다봤다.

“네.”

“아직 좀 흔들리네요.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요.”

보호막이 있어서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음.”

제냐는 무너지는 건물 속, 루미에르의 품에 안겨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말도 꺼내기 싫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마왕과 흐뭇한 눈빛의 레라지에, 그리고 토할 것 같은 얼굴의 마법사까지.

얼굴이 너무 따끔거린 탓에 제냐는 어느새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루미에르를 슬쩍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제냐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척 버티고 서 있었다.

“그렇게 껴안지 않아도 마법 때문에 다칠 일은 없는데…….”

보다 못한 마법사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루미에르는 마법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크흠.”

레라지에가 튀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가리는데, 마왕이 짙은 한숨을 쉬며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궁금했던 건 마찬가지라서 제냐가 고개를 들어 루미에르를 올려다봤다.

아니, 보려고 했다. 마왕이 손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짓누르지만 않았다면.

“뭐 하시는 거예요?”

눈을 홉뜬 제냐에 마왕이 짜증스레 답했다.

“그 이상 꼴사나운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진심이 듬뿍 담긴 그 말에 억울함이 차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꼴사나운 건…….”

말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고 반박하려던 제냐는 냅다 마왕의 손을 쳐 내는 루미에르에 입을 다물었다.

마왕이 보란 듯 제냐의 앞에서 쳐 내진 손을 흔드는데, 루미에르가 자기에게 집중하라는 듯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죽이는 건 반댑니다.”

제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제일 바라지 않던 답이었다.

마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 이대로 마왕이 루미에르를 공격하면 어쩌지? 싶어 머리가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루미에르의 말이 이어졌다.

“죽음은 벌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제냐가 눈을 찌푸리는데 루미에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죽음보다도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요.”

이어진 말은 마왕의 호기심을 자극한 게 분명했다. 마왕이 굳게 다물렸던 입을 열고 물었다.

“그게 뭔데?”

“바닥을 구르는 것. 천것들과 같은 바닥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 다른 이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

덤덤하지만 그만큼 냉담한 말이 루미에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모든 것을 잃고 오랜 시간 사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제일 괴로운 일이자 고통이 될 겁니다.”

확신이 가득한 그 말에 무거운 정적이 그들의 주위를 감쌌다.

그 적막을 깬 건 당연하게도 마왕이었다.

“그래도 내가 그 여자를 죽이고 싶다면? 그럼 나를 막을 텐가?”

도발하듯 건네진 물음에 제냐는 다시 한번 숨을 삼켰다. 여기서 루미에르의 답이 정말 중요한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루미에르는 무서울 것이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 그걸 원합니까?”

“그래.”

“내가 중요한 정보 하나를 넘기는 건 어떻습니까?”

중요한 정보? 제냐가 눈썹을 치켜세우는데, 마왕이 차갑게 답했다.

“그 여자를 죽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

“그래요? 그럼 뭐.”

이 심심한 반응은 뭔가 싶은데, 루미에르가 조금 더 제냐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말했다.

“편한 대로 하시죠.”

“…뭐?”

“편한 대로 하라고요.”

이렇게 쉽게 물러나도 되는 건가?

제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번에야말로 방해 없이 루미에르를 올려다보는데, 시선이 마주친 루미에르가 곱게 눈을 접었다.

“나는 제냐와 함께 있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하는 말에 눈만 깜빡이는데 루미에르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응?’

이게 뭔가 싶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데, 이마에 무언가 닿았다.

쪽.

‘지금, 지금…….’

놀라 입을 벌리자 루미에르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맞추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제냐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데, 순간 커다란 무언가가 그녀의 이마를 감쌌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촉에 눈을 뜬 제냐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루미에르의 얼굴을 발견했다.

“푸하!”

그리고 들려오는 마법사의 웃음소리.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한데, 그녀의 이마를 감싸고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갔다. 그걸 따라 고개를 돌린 제냐는 그녀의 이마를 감싼 게 마왕의 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손이 왜…….”

제냐는 튀어나오려던 질문을 얼른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루미에르와 마찬가지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의 마왕이 옷에 손등을 엄청난 속도로 문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손등에 키스를 했구나.

상황을 파악한 제냐가 루미에르를 돌아봤다. 벅벅 입술을 뜯어낼 듯 닦아 내는 루미에르에 제냐는 허리를 감싸고 있던 그의 손을 풀어냈다.

입술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이번에는 그의 손이 손쉽게 풀어졌다. 손이 떨어지자 루미에르가 입을 닦다 말고 그녀를 쳐다봤다.

“…제냐?”

제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음, 난 잠시 빠져 줄 테니까. 손이나 입은 마음껏 닦아요.”

그녀의 웃음을 읽은 루미에르가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원해서 한 게…….”

“그걸 누가 모르겠어요?”

제냐가 보란 듯 웃음이 터진 레라지에와 마법사를 눈짓하자 그의 얼굴이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마왕을 무섭게 노려보는 것이다.

“다 저자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그런 겁니다.”

억울함이 가득한 루미에르의 말에 마왕이 발끈해 끼어들었다.

“꼴사나운 짓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상관입니까?”

마왕이 대놓고 마법을 이용해 손등을 씻어 내고는 눈매를 좁혔다.

“보는 사람 눈은 신경 안 쓰나?”

“내가 왜 당신을 신경 써야 합니까?”

“성녀 밑에서 자랐다더니, 기본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모양이군!”

마왕의 비꼼에도 루미에르는 지지 않았다.

“그걸 마족인 당신 입에서 듣게 될 줄 몰랐는데.”

“말하지 않았나? 나는 본래 인간이었어.”

“고아였다면서? 나나 당신이나 똑같은 것 아닙니까?”

점점 더 어린애 말싸움처럼 변하는 그 대화에 제냐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졌다.

“클레어는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었어!”

“어머니도 보여 주기식 교양은 있는 사람입니다.”

“그걸 자랑이라고 하나?”

“그럼 뭐, 울기라도 할까요?”

“울어 보지, 구경이나 해 보게!”

눈을 굴리며 유치하다 못해 듣기가 버거워지는 두 사람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제냐가 이 상황을 해결해 줄 만한 사람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좀 해 봐요.’

제냐가 입 모양으로 말을 걸자 레라지에가 눈을 곱게 휘어 웃었다. 하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딱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분명 심각한 분위기였다. 당장 결론지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 마왕과 루미에르는 꼭 지금 이 말싸움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말 다른 의미에서 죽이 척척 맞는다니까?’

저번 황궁에서도, 이번 구멍 밑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제냐가 해탈한 얼굴로 두 명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마법사가 작게 속삭였다.

“…원래 저래? 마왕과 용사는 원래 이런 거야? 응?”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루미에르와 마왕은 종종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도 같으니까.

‘뭐라고 답해야 하지?’

그래도 아직은 시녀인데. 마왕의 위엄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루미에르도 명색이 용사인데, 이런 유치한 말장난을 한다고는…….

결국 제냐는 두 명이 진정하기 전까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말을 더해 봤자 둘의 체면만 깎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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