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100) (100/145)

분명 산성 가스를 지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배를 덮치는 통증에 정신을 차린 마르바스가 주변을 살폈다.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연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지만 배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뭐지?”

마르바스는 피가 묻은 그의 손과 기름이 줄어든 램프를 번갈아 바라봤다. 도대체 그사이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지, 램프의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가스에 다른 성분도 포함되어 있었던 건가?”

정확히 무슨 성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몸보다 해독력이 좋은 마르바스가 당할 정도면 치사량을 넘는 수준의 환각제 또는 수면제가 사용됐음이 분명했다.

“쯧, 음침하기는.”

하긴, 고작 산성 가스만 있는 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르지.

빠르게 회복 중인 배의 상처와 피 묻은 손을 보니 스스로 자해를 했던 모양이었다. 마르바스는 손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새빨간 피를 대충 털어 냈다.

“일단은 움직이…….”

휘잉-

마르바스는 복도에 확 불어오는 바람에 발을 멈췄다.

시커먼 복도 끝에서,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왜 가스가 사라졌나 했더니.”

처음 바람을 시작으로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촤아악-!

“마법이 없으니, 불편하네.”

마르바스는 그를 덮치는 거센 물살에 몸을 맡겼다.

* * *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종종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긴 했는데, 루미에르가 거는 말에 답을 하고 나면 그 소리는 금방 사라져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거의 다 온 것 같긴 합니다.”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대꾸하는 루미에르에 제냐가 물었다.

“이제 눈 떠도 돼요?”

“음, 아니요.”

제냐가 미간을 좁혔다. 벌써 몇 번째야?

루미에르는 제냐가 눈을 뜨려고 할 때마다 지금과 같은 답을 했다. 말없이 눈을 뜨려고 해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제냐의 눈을 손으로 덮어 버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왜 그러냐니까요?”

조금 뾰로통한 제냐의 말투에 작게 웃음을 흘린 루미에르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설명해 주긴 어려운데, 그냥 예전에 겪어 봤던 것 같아서요.”

“그게 뭔데요?”

“최면?”

제냐가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네?”

저도 모르게 눈을 뜰 뻔했는데, 루미에르가 제냐의 눈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이미 마왕이 지나가면서 파괴돼서 저한테는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아요.”

‘저한테는’이라는 건,

“하지만 제냐는 이런 데에 면역이 없으니까.”

“최면이라고요…….”

“소리랑 그림, 환각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건데. 알아봤자 좋은 건 아니에요.”

“소리요?”

제냐가 눈을 찌푸리며 귀를 쫑긋 세우는데 루미에르가 손가락을 튕기며 그걸 막았다.

“집중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아까 계속 말을 걸었던 이유가 뭔지 이제야 알겠다. 제냐는 부러 루미에르의 목소리에만 집중을 쏟았다.

“으음. 꽤 고전했던 모양이에요. 뭐,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은 없었겠죠.”

하긴 마왕이 언제 이런 일을 겪어 봤겠는가? 자기가 당하기 전에 상대를 때려눕히면 눕혔지, 이런 치사한 수에 놀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일 때 이런 일을 겪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랬다면 방금 루미에르가 고전했다고 말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들리던 소리를 외면하던 제냐는 이어진 루미에르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마법사니까.”

“네?”

갑자기 웬 마법사?

제냐의 의문을 읽은 루미에르가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무래도 마법사는 온실 속의 화초잖아요? 뭐든 튕겨 내고 막아 내면 되니까.”

“으음.”

“특히 마법을 잘 쓰면 잘 쓸수록 정말 어이없는 거에 당하곤 하거든요.”

평소처럼 루미에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 자리한 묘한 어투에 제냐는 순간 과거의 유치한 대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야? 마법사와 검사 중에 더 강한 건 검사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맨날 손가락만 휘두르며 마법을 팽팽 써 대는 마법사랑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검사랑 누가 더 강하겠어?”

“하, 야, 원래 윗사람은 편하게 뒤에 앉아서 손만 휘두르는 거거든? 아랫것들이나 죽으라고 몸을 움직이는 거지.”

“뭐? 너 지금 검사 비하하는 거야?”

“네가 먼저 마법사 비하했잖아! 마법에 재능 없어서 검이나 휘두르는 게.”

“너희야말로 몸 움직이는 데에 재능이 없으니까 뒤에 숨어서 음침하게 손이나 까딱거리고 있는 거잖아! 강한 건 검사야!”

“아니!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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