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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99) (99/145)

제냐는 그녀의 바로 밑에 있는 시커먼 구멍을 보며 어색하게 레라지에를 쳐다봤다.

“여기로요?”

“그래.”

옆에 굴러다니는 돌을 던져 넣어 보자 한참 뒤에야 간신히 소리가 들려오는 듯 마는 듯한데, 여기로?

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구멍을 함께 내려다보면서도, 레라지에는 태연했다.

눈을 깜빡거린 제냐가 나름 적당한 답을 찾아냈다.

“…마법으로 내려가신 건가요?”

“아니, 이 구멍 안에서는 마법이 안 통하더군.”

그럼 어떻게 내려가라고? 간신히 낸 답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제냐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레라지에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스 정도의 신체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밑에 도착할 수 있겠지.”

믿어 주는 건 고맙긴 한데, 정말 가능할까? 제냐가 고개를 돌려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그러자 시선이 마주친 루미에르가 눈을 접어 웃었다.

‘된다는 건가?’

긴가민가한 제냐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데 루미에르가 사전에 말도 없이 제냐를 안아 들었다.

그런데 그 자세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응?”

제냐는 한 손으로 어린아이를 안듯 그녀를 받쳐 안은 루미에르에 몸을 바둥거렸다.

“루미에르?”

루미에르가 바투 제냐의 몸을 추켜올리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손을 하나는 써야 해서.”

‘그렇다고 해도 이 자세는 좀?’

우리끼리 있는 것도 아니고, 레라지에도 옆에 있는데.

하지만 제냐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 루미에르가 레라지에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는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 구멍 아래로 몸을 던졌다.

“무슨……!”

훅 꺼지는 느낌에 제냐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데, 순간 키이잉-! 무언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내려가던 몸이 덜컥 멈춰 섰다.

‘정말 멈췄어?’

슬그머니 눈을 뜬 제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 다 온 거예요?”

“아니요. 이제 내려갈 거예요.”

조금 전 그건 그럼 내려온 게 아니라 떨어진 건가? 그게 그거 아니야?

발끈한 제냐가 되물었다.

“지금도 내려온 거 아니에요?”

“아주 조금요.”

그 아주 조금에 이쪽은 심장이 멎을 뻔했는데. 제냐가 고개를 들어 위를 슬쩍 쳐다봤다.

그들의 머리 한참 위에 어느새 아주 작아진 구멍이 보였다. 제냐가 그 동그란 구멍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요?”

하지만 어이없다는 제냐의 말투에도 루미에르는 태평스러웠다.

“네, 좀 더 내려가야 할 것 같네요.”

“더 내려가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은데요.”

위에서 볼 때도 그랬지만 직접 이 안으로 들어와 보니 정말 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제냐는 지금도 잘 보이는 게 없었고.

루미에르의 체온이 맞닿은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굉장히 무서웠을 것이다.

무작정 내려온 루미에르에게 화를 낼 겨를도 없이, 제냐는 목에 와 닿는 루미에르의 숨결을 따라 숨을 골랐다.

“솔직하게 말해 줄래요? 조금이에요. 아니면 많이예요?”

“으음.”

곤란하다는 듯 구는 루미에르에 제냐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 안 해도 알겠네요.”

“눈, 감고 있어요.”

“네.”

아직 궁금한 건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내려가던 중간에 멈춰 선 건지도 모르겠고, 아까 끼긱거리던 소리는 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른 이 구멍을 다 내려가는 게 더 급했다.

제냐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번 더 훅, 떨어졌다가 끼긱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그 숨이 막힐 것 같은 짓은 제냐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기 전 간신히 끝이 났다.

탁,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한 루미에르가 달래듯 제냐의 허리를 두드렸다.

자연스레 그녀의 등을 두드리는 반대 손에 제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된 거죠?”

“네.”

‘살았다’라는 말을 삼키며 제냐는 너무 힘을 줘서 저릿저릿한 손에 힘을 풀었다.

“도대체 어떻게 신전 아래에 이렇게 깊은 구멍이 있는 거예요?”

제냐가 주변을 돌아보며 묻자 루미에르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답했다.

“마법을 썼겠죠?”

“마법이 안 통한다면서요.”

“마법이 안 통한다는 게 자연적인 현상은 아닐 테니까요. 그전에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건 그랬다.

“뭐, 신전이라면 사람을 썼을 수도 있고요.”

그런 게 가능한가? 제냐는 바닥에 도착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제대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는 주변을 살피다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안 내려 줘요?”

“안 보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넘어지진 않을 거예요.”

참 자신만만했다. 이렇게 시커먼데.

너무 시커메서 제냐는 이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평평한 평지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푹, 한숨을 쉰 제냐가 스스로의 멍청함을 한탄했다.

“불이라도 만들어 올걸.”

그냥 내려온다는 데에만 급급했다. 아니, 솔직히 생각이라는 걸 하기도 전에 루미에르가 몸을 날려 버려서…….

제냐가 재빨리 이어지려던 생각을 끊어 내려는데 루미에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또 무서웠다. 제냐가 이제는 정말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눈 감을까요?”

“원한다면요.”

“그래요. 그럼 안전해지면 말해 줘요.”

“네.”

순순히 다시 손에 힘을 주고 그의 목을 끌어안는데, 맞닿은 피부 너머 그가 목을 울려 웃는 게 느껴졌다. 듣기에도 간지러운 그 소리에 흠칫 몸을 굳힌 제냐가 물었다.

“왜 웃어요?”

그러자 루미에르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말했다.

“그냥, 이렇게 있는 것도 좋아서요.”

제냐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상황에서 이러고 싶을까? 하지만 루미에르는 한술 더 떴다.

“제냐, 귀여워요. 아기 같아.”

으. 제냐는 주먹을 꽉 쥐었다. 부끄러운 건지, 민망한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화가 나는 지도. 뭐가 됐든 지금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건 똑같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얼른 품에서 뛰어내리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제냐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고, 가기나 해요.”

“네에.”

길게 말을 늘인 루미에르가 제냐를 단단하게 끌어안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구멍 안으로 내려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첫 번째 복도를 지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

엘리고스가 챙겨 준 물건 중에는 기름을 이용한 램프도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불을 밝힌 마르바스는 그가 지나온 길을 살폈다.

“똑같은 놈이 설계했나?”

황궁에서 겪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함정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과정은 다르지만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똑같았고.

“딱히 지켜야 할 상대가 없으니 오히려 쉬운 편이지.”

용사에게 안긴 채 이리저리 휘둘리던 제냐를 떠올리며 픽, 웃음을 흘린 마르바스가 꾸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손을 뻗는 것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제냐가 없는 것 말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함정과 함께 나타난 저것들이 있었다.

반쯤 썩어 너덜너덜한 살점을 달고 뿌옇게 변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들.

마르바스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신전에 언데드라니.”

코를 킁킁거리며 간신히 마르바스를 찾아낸 언데드들이 그에게 이를 드러냈다가 손길 한 번에 순식간에 목이 잘려 나갔다.

언데드. 사람의 시체에 마력이 깃들어 발생하는 되살아난 시체들.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만드는 데 꽤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이한 취향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족들은 딱히 선호하지 않는 것들이기도 했다.

“조금 징그럽고, 공격성이 있는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지.”

언데드가 된다고 원래 인간이었던 것들이 획기적으로 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인간들은 물리면 똑같이 마력에 오염되어 언데드가 될 확률이 생기긴 하지만, 마족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것들도 아니고.

“인간들도 성력이 있는 한 위험하진 않은데.”

삿된 것들을 물리치는 성력이지 않은가. 당연히 언데드들은 성력에 취약했다.

그러니까 이것들은 단순히.

“위협용이군.”

그 위협 상대가 마족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고.

“역시 아까 그 보석함에 있던 성력은 보여 주기용이었나?”

이 열쇠가 신전의 물건이라는 걸 강조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괜히 건들지 말고 돌아가라는 뜻.

‘웬만한 도둑들은 그쯤에서 돌아갔을 거야.’

다른 훌륭한 물건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구멍이 생긴 순간 소음이 커졌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것들은 그런 인간들을 위한 거고.

징그럽기 짝이 없으니 면역이 없는 인간들은 질색하며 도망가거나, 그대로 당해 똑같은 언데드가 됐을 테다.

“시체를 처리하기도 편하겠지. 마족들 탓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만약 이런 언데드들까지 다 처리한 도둑이 나타났다면?

“이렇게 꽁꽁 숨기니까 더 훔치고 싶지 않겠어?”

지금의 마르바스처럼.

흉흉한 웃음을 지은 마르바스가 홱 몸을 돌려 새롭게 나타난 복도를 바라봤다. 천계의 보석을 차지하기 위해 몇 개의 복도를 더 지나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체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이런 볼품없는 함정들이 계속된다면야 문제는 없겠지만.

“흐음.”

마르바스는 생각을 끝내기가 무섭게, 복도에 차오르는 하얀 안개를 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건 좀 특별하군.”

치이익.

안개에 닿자 부식하기 시작하는 옷가지들을 보아하니, 평범한 안개는 아니었다.

“성력은 아니군.”

만약 이 안개들이 성력이었다면 옷가지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 역시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마족들에 비해 성력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해서 정말로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마르바스는 부식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차오르는 그의 피부를 내려다보며 길게 이어진 복도 너머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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