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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92) (92/145)

어버버거리던 제냐를 도와준 건 놀랍게도 마법사였다.

“와아, 그건 어떻게 해요?”

아이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빛무리에 손을 대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진한 웃음에 마법사가 가슴을 쭉 폈다.

“흥,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잘난 척을 하며 흥흥거리던 마법사가 보란 듯 더 커다란 빛을 만들어 내자 아이들이 짝짝 손뼉을 쳤다.

“대단해요!”

“에헴.”

“나도 배워 보고 싶어.”

“가르쳐 줘요.”

“가르쳐 줘!”

제냐는 아이들이 마법사의 마법에 집중한 사이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루미에르도 저렇게 컸어요?”

아이들을 보자마자 궁금했던 거였다. 루미에르도 이렇게 자랐을까.

“저는 혼자 자랐어요.”

더 별로였다. 친구도 없었다니.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교육을 받긴 했고요?”

“그렇죠.”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실제로 그랬다고 하니까 다 짜증이 났다. 감정을 가라앉히려 아이들을 쳐다본 제냐는 해맑게 웃고 있는 그 모습에 찝찝함이 밀려왔다.

저렇게 순하고 착한데.

제냐는 눈이 마주치자 손을 마구 흔드는 아이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왜 나를 5년 전부터 좋아한다고 했을까요?”

“…누구든 사랑을 줄 사람이 필요했겠죠.”

제냐가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루미에르가 괜찮다는 듯 생긋 웃었다.

“루미에르도 그랬어요?”

“저는 상대가 정해져 있긴 했죠.”

아마, 그 상대는 성녀일 것이다. 제냐가 얼굴을 굳히자 루미에르가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냐가 생각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누굴 생각하는 줄 알고요?”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긴 했죠. 아마 사랑을 받고 싶기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뭐가 아니라는 거야? 제냐가 질문을 던지기 전 루미에르가 아련한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 전에 다른 사람이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요?”

기억을 더듬듯 허공을 쳐다보며 루미에르가 답했다.

“그 전에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씁쓸해 보이는 얼굴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그 사람은…….”

루미에르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한 건 아니에요. 지금도 멀쩡히 잘 살고 있어요.”

“그건 다행이네요.”

정말로. 정말 다행이었다. 제냐가 안도하는데, 루미에르가 픽, 웃음을 흘렸다.

“나보다 제냐가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그걸 말이라고. 째려보듯 그를 쳐다보던 제냐가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요?”

“다정한 사람이에요. 통통 튀는 것도 같고.”

그 따뜻함이 느껴지는 미소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루미에르의 과거가 마냥 슬프기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아서.

“어디에 사는지는 알아요?”

“네.”

“그럼 이번에 여길 벗어나면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어때요?”

“네?”

놀란 루미에르의 얼굴이 웃겼다. 하지만 웃긴 것과 별개로 이건 진심이었다.

예언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루미에르를 구하고 나면 그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시골이나, 가고 싶었던 마을도 괜찮고. 정 갈 곳이 없으면 마계로 돌아가서 마왕에게 빈대 붙어서 살아도 좋다고 말하려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아.’

루미에르의 은인 비슷한 사람인 셈이니, 만나 보고 싶기도 했다.

“싫어요?”

“…음.”

“루미에르?”

눈을 깜빡거리며 묘한 미소를 지은 루미에르가 되물었다.

“저를 반가워해 줄까요?”

“그럼요.”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용사였던 루미에르를 싫어할 리가 없었다.

‘루미에르의 은인이 쓰레기일 리는 없으니까. 문제없지.’

제냐의 장담에도 그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 사람은 절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때는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니진 않았거든요.”

지금은 보육자의 얼굴을 가리더니, 그때는 루미에르의 얼굴을 가리게 했던 모양이었다.

‘놀랍지도 않아.’

속으로는 신전을 욕하면서도 제냐는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럼 이제라도 알아 가면 되죠. 새로운 시작? 뭐 그렇게 생각해 봐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여길 벗어나야겠지만.”

그 말에 루미에르가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그 웃는 얼굴을 따라 미소를 지은 제냐는 가벼운 분위기를 이어 진실을 알게 되자마자 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당신이 없는 사이에 들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어요. 말해 줄까요?”

“뭔데요?”

지금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혀 짐작도 못 하는 게 얼굴에 뻔히 보여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제냐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사뭇 진지한 얼굴을 했다.

“마왕 말이에요.”

“네.”

제냐가 한 템포 숨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용사였대요.”

“……?”

괴상해지는 루미에르의 얼굴을 보고 제냐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런 얼굴이 정상이지.

마왕이 용사라니, 이 사실을 알게 될 신전 측의 반응이 정말이지 너무 궁금했다.

* * *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마르바스는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왔나?”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온 레라지에가 고개를 숙였다.

“문제없이 진입했습니다.”

“그래.”

마르바스는 지금도 그의 선택이 옳은 건지 의심이 됐다. 저렇게 혼자 보낼 게 아니라 같이 움직여야 했었던 건 아닐까?

제냐가 아무리 의심하더라도.

‘함께 가자고요? 오랫동안 찾고 있던 물건이라고 하셨잖아요. 저 때문에 그걸 포기하겠다고요?’

내가 뭔데? 라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마르바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네가 클레어이니, 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제냐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용사를 먼저 구해 내면 보석의 위치가 불분명해질 테고, 천계의 보석을 먼저 찾으면 용사에 대한 신전의 집착이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제냐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선택이 가장 알맞아 보이는 것이다.

‘내가 움직여 생기는 혼란을 틈타 자기가 혼자서 그 애송이를 구해 내는 것.’

딱 그 정도가 마르바스와 제냐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친밀함의 정도였다. 약해 빠진 시녀의 상태를 모르지 않는 마왕이 조력자로 적당한 인간 하나를 계약으로 묶어서 넘겨주는 것 정도가.

“폐하.”

눈만 돌려 레라지에를 쳐다보자 그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무사할 겁니다. 아스만 무사히 만난다면 반드시.”

그래, 그렇겠지. 용사와 만난다면. 그리고 지금의 제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사와 만날 테고.

‘…그런 눈을 하고 있는데.’

용사를 떠올릴 때 보이던 그 표정과 눈빛은 마르바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르바스는 제냐에게 모든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다. 그가 제냐에게 저지른 짓을 알아서, 지금은 이 정도 사이만으로도 감지덕지라는 걸 아니까.

과거에 매여 있는 그와 달리 제냐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이제 과거의 악연을 모두 끊어 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마르바스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모든 것이 새하얀 곳. 이곳은 신전 안이었다.

“가지.”

마르바스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세우고 훌쩍 이동하자, 레라지에가 그를 따라왔다.

두 마족은 아무런 방해 없이 수월하게 신전의 가장 깊은 안쪽, 중심부로 진입했다.

자기들이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인지, 황실과 달리 신전은 마법으로 인한 방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들은 더욱 거침이 없었다.

‘실제로 아예 헛된 자신감은 아니지.’

순수한 성력이 가득한 신전 안쪽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을 억죄는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걱정이나 해.’

헤어지기 전 그들을 걱정하는 제냐에게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성력이 있는 곳은 마족들에게는 역하고 꺼려지는 장소였다.

태생 때문인지 마르바스는 다른 마족들과 달리 영향을 덜 받긴 했지만 레라지에는…….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레라지에의 창백한 안색을 살핀 마르바스는 그럼에도 지체하지 않고 목표하던 곳으로 달려갔다.

미로처럼 복잡한 곳이었고 신전 고위층들만 드나들 수 있는 내부였지만, 클레어와 함께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마르바스는 신관들의 눈을 피해 신전 구석에 위치한 조그만 문 앞에 멈춰 섰다.

“여깁니까?”

레라지에의 물음에 마르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낡아 보이는 문이었다. 실제로 문을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청소 도구들이 가득 차 있었고.

하지만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리 없이 조용히 문을 연 마르바스는 쌓여 있는 비품들을 지나 방 안쪽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찾아냈다.

“딱히 잠겨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레라지에의 말대로였다. 처음의 문이 그랬듯 이 문 역시 제대로 잠겨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예상했던 바였다.

“…위치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아니, 바뀐 건 없어.”

전전대 교황이 그의 보물을 보관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전대 교황 레온과 레온의 딸인 성녀 역시 같은 곳을 이용했고.

걱정스러운 눈치의 레라지에에게 고개를 저은 마르바스는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란 복도가 그들을 반겼다. 별다른 장식 하나 없이 그저 하나로 쭉 뻗은 복도, 그 끝에 서 있는 성기사 두 명.

마르바스는 그들을 발견한 성기사들이 무어라 반응을 하기도 전, 달려들어 목을 비틀었다.

뚜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성기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르바스는 그런 성기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그들의 뒤에 있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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