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90) (90/145)

현 용사가 용사 후보들을 만나겠다고 한다고?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루미에르가 그 애들을 만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지.’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루미에르가 그 애들을 신경 쓰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요.”

“그렇죠?”

제냐는 함께 있던 내내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을 떠올리다 조심스레 말을 더했다.

“참고로, 애들 상태가 그렇게 좋진 않아요.”

“짐작하고 있어요.”

저 짐작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루미에르는 알까?

다 겪어 봤다는 듯한 그의 태도는 신전에 대한 악감정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지금은 신전을 욕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곧 들이닥칠 것 같군요.”

안 그래도 신전은 루미에르에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 띄게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마법사와 독대하다니.

위에서 안달이 날 만도 했다. 제냐가 마법사를 돌아보며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성기사들에게 넘기는 게 편할까요?”

윗선이 마법사에게 집중하느라 바쁜 틈을 이용하는 게 제일 충돌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확실히 그게 편하긴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작전에 마법사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설마, 나를 버려두고 가려고?”

그 말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좀 이상하네요.”

제냐가 그런 루미에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원래도 같은 편은 아니잖아?”

왜 어울리지 않게 불쌍한 척을 한단 말인가? 배신당했다는 듯이 굴던 마법사가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같이한 건 뭔데?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반나절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유치하기 짝이 없던 시간들을 떠올린 제냐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일시적인 협박?”

방긋 웃는 제냐에 마법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제냐가 그걸 보고도 꿈쩍하지 않자 마법사는 곧장 행동 노선을 바꿨다.

“나도 같이 가.”

“네?”

“우리 좋았잖아. 응? 재밌었잖아!”

딱히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제냐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마법사가 급격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고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려고 표정을 구기는 것이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날 뻔한 제냐가 다리를 간신히 붙잡고 물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마법사가 제냐와 루미에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귀가 없는 줄 알아? 너희 여기를 나가려는 거잖아! 나도 데리고 나가.”

같이 나가자고? 예상치 못한 부탁에 제냐가 놀라는 사이 루미에르가 나섰다.

“우리가 왜요?”

“너한테 정보 못 얻으면 성녀한테 처리당하니까.”

그리 말하는 마법사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

‘정말 정확하게 다 파악하고 있었네.’

제냐가 묘한 눈으로 마법사를 쳐다봤다.

“어차피 계약 때문에 너희 방해할 수도 없잖아.”

마법사는 열성적으로 자기 어필을 시작했다.

“너희, 마법사가 일행에 포함되어 있으면 얼마나 일이 편해지는지 알아? 이동도 자유롭지, 저렇게 얼굴도 바꿀 수 있잖아. 변칙적인 상황에 마법사는 필수야!”

사실 저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왕이나, 레라지에가 함께 있을 때가 편하긴 했지.’

루미에르와 헤어진 그날 레라지에가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력 소유자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까지 합하면 나름 균형이 맞는 좋은 조합이기도 하고.

제냐는 간절한 마법사의 얼굴을 외면하며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루미에르?”

“제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반대였다. 함께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물론 레라지에의 마법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잠시간의 고민 끝에 제냐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데려가죠.”

제냐의 말에 신이 난 마법사가 아주 좋은 선택이라며 자기 장점을 나열했다.

“내가 과소평가돼서 그렇지 나름 잘나가던 마법사…….”

제냐가 그 말을 흘려들으며 루미에르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그때 처리하면 되니까요.”

그렇지 않냐고 눈을 맞추자 루미에르가 쑥스러운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붉어진 루미에르의 귓가를 보며 피식 웃은 제냐가 여전히 시끄러운 마법사를 조용히 시켰다.

“…한다면 한다고?”

“자기 자랑은 거기까지 하고.”

기분이 좋은지 마법사는 화를 내는 대신 싱글벙글 웃으며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제냐가 경고하듯 말했다.

“방해되면 두고 갈 거야.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하는 마법사에게 루미에르가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듯 덧붙였다.

“제냐는 함께 챙겨야 해.”

그 말에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마법사가 제냐와 루미에르를 번갈아 바라보며 진절머리를 냈다.

“…진짜 뻔뻔하다.”

제냐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고 이제 슬슬 그녀에게까지 느껴지는 소란을 돌아봤다.

“들어올 것 같은데요.”

제냐가 하얀 천으로 다시 얼굴을 가리려는데, 루미에르가 직접 그녀의 얼굴을 가려 주며 곱게 웃었다.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워요.”

새삼.

고운 눈매를 눈으로 덧그리며 그와 같이 미소를 지은 제냐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실례합니다, 루미에르 님.”

성기사의 등장에 제일 먼저 나선 건 당연하게도 마법사였다.

“뭐야? 허락도 없이.”

조금 전까지 우는소리를 하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태도였다.

그러나 성기사는 마법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들어오면서 했던 짓으로 성기사의 마음속에서 마법사는 없는 사람이 된 게 분명했다.

성기사는 루미에르만을 응시한 채 말을 걸었다.

“마법사 진 님께 손님이 왔습니다. 모셔 가도 괜찮을까요?”

그런 성기사의 태도에 진이 펄쩍 튀었다.

“내 일인데 왜 쟤한테 물…….”

하지만 진이 화를 다 내기도 전 루미에르가 건조하게 답했다.

“안 돼.”

“…네?”

진의 날 선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성기사가 루미에르의 대꾸에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럴 만했다.

그 루미에르가 반말을 쓰고 있었으니까.

‘반말은 마족 한정 아니었어?’

제냐조차도 루미에르가 반말을 쓸지는 몰랐다. 방 안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은 루미에르가 다시 말했다.

“안 된다고.”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동공을 떨던 성기사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용사 후보가 있다지?”

루미에르의 질문에 성기사가 크게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멍청하긴. 이럴 때는 그게 뭐 어떻냐는 태도를 보이는 게 좋았다.

딱히 비밀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굴어야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기사는 루미에르의 반말 때문인지 이미 기세에서 밀리고 있었다.

마법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신전 전체에 다 퍼져 있던데, 그걸 모를 수가 있겠어?”

용사 후보에 대해서 말이 퍼졌다기보다는 지방에서 하급 신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긴 했다.

‘자기들 일 맡기기 편한 인간들이 생겼다고 벌써 소문이 다 퍼졌지.’

용사 후보에 대해는 알지 못해도 얼굴을 가린 신관이 자기들보다 밑 계급이라는 걸 빠르게 눈치챈 신관들은 너도나도 제냐를 불러 세우며 일을 시켰다.

루미에르가 지체 없이 바로 직격타를 날렸다.

“그 후보들을 만나 보고 싶은데.”

“네? 하지만…….”

망설이는 성기사에게 루미에르가 날카롭게 물었다.

“왜, 안 되나?”

“그…….”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하던 성기사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후보들에게 안내할 신관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진 님은 손님을 뵈러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단 루미에르는 보내 주고, 그사이 진을 불러 그를 핍박할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 속셈을 알아차린 진이 간절한 눈으로 루미에르와 제냐를 쳐다봤다.

루미에르는 이번에는 그런 진의 바람을 거절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떼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또 뭔 일이 생길 줄 알고?”

존댓말을 쓰지 않는 루미에르가 어색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지금 보러 가야겠다. 진도 함께 갈 거야.”

루미에르의 강한 의지 피력에 완전히 기가 죽은 성기사가 뒤로 물러났다.

“…그럼 후보들에게 안내할 신관을 데려오겠습니다.”

아니, 물러나는 척을 했다.

‘그사이 위에다 보고할 생각이겠지.’

안내할 신관들을 데려오는 척 시간을 끌어서 다시 루미에르를 붙잡아 앉히려는 것이다.

하지만 성기사에게는 아쉽게도 여기에는 이미 담당자가 있었다.

‘가짜긴 하지만.’

루미에르가 지금까지의 딱딱한 태도를 무르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여기 이 신관이 후보들을 담당하는 이라던데.”

루미에르의 뒤에 숨어 있던 제냐가 슬쩍 고개를 들자 성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듯 구는 성기사를 보며 제냐가 하얀 천 안에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멍청하긴.’

놀랐던 것도 잠시, 성기사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게 제냐라고 생각했는지 성기사가 꾸중하듯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제냐에게는 전혀 효과 없는 행동이었다. 제냐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숙이자 루미에르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웃었다.

“그럼, 가도 되겠지?”

더는 루미에르를 막을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지 성기사가 한숨을 삼키며 옆으로 몸을 물렸다.

“함께하겠습니다.”

이것만큼은 무조건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표정에 마법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든가.”

성기사가 다시 한번 울컥한 얼굴을 했지만 마법사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제냐와 루미에르의 옆에 찰싹 붙어 섰다.

‘저런 게 재밌었다는 건가?’

환하게 웃고 있는 마법사를 흘끗 쳐다보던 제냐는 그녀를 쳐다보는 루미에르에 앞장서서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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