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용사와 공주
예사 것이 아닌 반응을 가까이에서 확인한 마법사가 당당한 얼굴로 웃었다.
“이것 보라지. 아무렴.”
그러나 루미에르는 그런 마법사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루미에르가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본 것이 몇 번인가? 그 단정하고 깔끔한 필체가 하얀 손 아래에서 나타나는 걸 지켜본 순간은?
이건 제냐의 필체였다.
루미에르는 종이 속 글씨가 꼭 제냐인 것처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의기양양해 보이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어디서 났습니까?”
“또? 장난해? 말하지 말라고 계……! 흡!”
마법사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이 반응은.
그제야 루미에르는 마법사의 심장 근처에 휘감겨 있는 익숙한 마력을 눈치챘다.
‘…레라지에.’
심장에 모인 마력,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는 행동.
‘계약을 했군.’
아마 그 계약의 내용은 제냐와 레라지에에 대한 함구.
“이 쪽지도 그걸 했을 때 같이 받은 겁니까?”
루미에르가 그의 심장을 눈짓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마법사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먼저 찾아왔나요?”
“그럼 뭐, 내가 직접 찾아가서 나 잡아 줍쇼 했겠냐?”
하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루미에르가 그렇듯 신전에 감금당했을 텐데, 당연한 일이었다.
루미에르가 다시 쪽지 속 필체를 그립다는 듯 쳐다보는데, 약이 오르는 건지 마법사가 다시 건들거리기 시작했다.
“참 대단한 분을 물었나 보지? 어떻게 신전에 그렇게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루미에르도 궁금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마족이 신전에 몰래 들어올 수 있는 걸까.
‘마왕은 어디까지 손이 닿아 있는 거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궁금증과 별개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과거의 루미에르였다면 이 소식을 듣는 즉시 어머니에게 달려가 신전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지금은 반길 일이지.’
덕분에 제냐의 쪽지를 받아 볼 수 있었으니까. 루미에르는 종이에 적힌 글을 다시 한번 읽었다.
데리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