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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72)화 (7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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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상한 외모를 지닌 고아는 여러모로 눈에 띄기 마련이었으며 그만큼 위험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일만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은 이왕 천한 평민들을 곁에 둘 거라면 얼굴이라도 아름다운 이를 옆에 두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일을 해도 배는 넘는 돈을 척척 주는 귀족들의 심부름은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마르바스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그것도 작년까지의 말이지.’

열여섯 살이 되면서 급격히 커 버린 몸이 원인이었다. 뭇 사내들보다 머리 하나가 훌쩍 커진 키와 거기에 더해 안 그래도 곱던 외모가 더 빛이 났다.

그러자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성 중 성인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귀여운 애완동물을 바라보던 눈에 음심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기에, 결국 마르바스는 귀족가에서 하던 심부름을 싹 끊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그에게 주어진 훤칠한 키와 단단히 여문 몸, 그리고 열셋이 될 때까지 그를 키워 줬었던 약초꾼 할아범을 따라 산을 오르던 과거의 경험을 더한 직업이었다.

“마르바스, 오늘은 괜찮은 약초가 없니?”

“동물 가죽은? 곧 딸애 생일이라 고기도 좀 사고 싶은데.”

그렇게 열일곱의 마르바스는 마을의 사냥꾼이자 약초꾼으로 새롭게 입지를 다졌다.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과 적당히 친절한 마을 주민들… 마르바스는 이 평화로움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영주의 부름을 받은 열일곱의 어느 날.

“우리 마을에 머무시는 동안 네가 옆에서 그분을 보필하거라.”

‘영주가 말을 높인다고?’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거절을 고민하는데 영주가 한발 빠르게 미끼를 던졌다.

“보수는 이 정도가 어떠냐?”

영주가 제시한 금액은 표정 관리에 능숙한 마르바스가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로 엄청났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할 필요는 없어. 마을을 안내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옆에서 그분을 지켜 드리면 된다.”

거절을 받지 않겠다는 듯한 영주의 태도와 엄청난 금액의 의뢰비.

마르바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을 뒤엎을 한 존재를 만나게 됐다.

* * *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순진한 여자인 줄 알았다. 비를 맞으며 불쌍한 척을 좀 하자, 그에게 하나 있던 우산을 양보하는 이상한 여자.

“우산을 가져오자고 한 건 책이 젖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 그러니 책이나 잘 들고 있어.”

분명 그보다 세 살이나 많으면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특이한 여자였다.

그래서 시선이 갔고, 관심이 갔으며,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마음을 줬다. 마을 그 누구보다 좋은 걸 먹고 자랐을 것이 분명한 여자가 너무 작고 연약해서 지켜 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

활기차고 특이하며 하얗고 여린…….

“아가씨.”

풋풋한 마음이 점점 익어 가고 떨쳐 내려던 마음을 기어이 두 손으로 그러쥐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3년.

함께한 시간이, 서로 주고받은 비밀이,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약한 속내가 차곡차곡 쌓여 단단한 성을 이뤘다.

“네 힘은 마력이야. 사람들이 쓰는 마나가 좀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근본은 마력이지.”

자신이 지닌 특이한 힘의 정체를 알게 된 마르바스는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상처가 치료됐어?”

여인이 가진 힘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았고,

“내 동생, 우리 주제를 알자.”

여인이 가진 배경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교황의 숨겨진 자식.

하지만 마르바스는 신전의 위선이나, 그녀의 신분보다 이복 남매라는 레온을 무서워하는 것 같은 여인의 모습이 더 신경 쓰였다.

“레온, 적당히 해.”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서 레온이라는 자를 상대하는 여인의 모습에 안도했던 것도 같다.

“마르바스, 내가 무슨 짓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여인이 불안해하는 걸 알면서도, 여인이 그걸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니면 그에게 매달리며 애정을 갈구하는 여인이 기꺼웠거나.

하지만 정말 이런 걸 상상한 적은 없었다.

“꺄아악!”

붉게 타오르는 마을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의 주인이 뒤에서 등을 껴안으며 잔인한 소리를 했다.

“살리지 마.”

마르바스가 가슴을 부풀리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등 뒤로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이거야.”

“뭐라고요?”

몸을 돌려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인은 그의 허리를 감싼 손에 더 힘을 줬다.

“아버지께서, 마을을 없애라고 명령하셨어. 오늘 일은 마족이 벌인 일이 될 거야.”

무슨… 저건, 방금 마을 사람을 죽인 건 분명 사람이었다.

“신전의 비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시선을 돌리는 거야. 동시에 신전의 위상도 드높이고.”

고작 비리 하나를 덮자고, 마을을 몰살한다고? 신전의 위상을 드높인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데?

“신전과 신관은 무사할 거거든.”

그제야 마르바스는 다른 곳은 다 불타도 홀로 고고함을 유지하고 있는 신전을 발견했다.

숨이 턱 막혔다.

마을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간신히 떼어 내 몸을 돌렸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빛이 일렁였다. 마을을 불태우는 화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여인.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묻고 싶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화를 내려던 것도 같았다.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인 여인의 너덜너덜하게 씹힌 입술이, 꽉 쥔 주먹이 차례로 보였다. 그 순간 마르바스는 그를 시험하면서 매달리는 여인의 심리를 읽어 냈다.

그 간절함을, 비틀린 마음을. 그리고 그것도 애정이라고 떨리는 심장을.

“하고 싶지 않았죠? 솔직하게 말해요.”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왜 했어요?”

“하지 않으면 잃어버렸을 거야.”

“뭐를요?”

이 짧은 대화 속에서도 계속해서 괴롭힘당하던 입술이 달싹거리고 이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를.”

강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던 심장이 이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울렸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마르바스가 숨을 채 가다듬지 못하고 물었다.

“날 죽이겠다고 했어요?”

말조차 꺼내고 싶지 않다는 듯 여인이 괴로운 얼굴을 했다.

“내가, 내가 기어이 널 포기했어도 그래도 마을 사람들을 다 죽였을 거야.”

그게 제일 쉬운 해결 방법이니까, 덧붙인 여인이 변명처럼 말했다.

“어차피 다 죽을 거라면 너라도 살리는 게 낫잖아.”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양심에 찔린 건지, 아니면 정말 솔직해지고 싶은 건지 여인이 말을 정정했다.

“아니, 아니야. 난 한 번도 널 포기하려고 한 적이 없어. 정말로 마을 사람들과 너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저 뒤에 이어질 말을 알았다. 이것까지 말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 여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선택했을 거야.”

마르바스가 여인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힘없이 딸려 오는 몸을 감싸 안고 남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여인은 그를 피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맞닿은 여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잔뜩 긴장하면서도 기뻐하는 숨결도 느껴졌다. 마음이 통해서, 그녀를 버리지 않을 것을 알아서.

마르바스는 떨리는 입술을 머금고 그녀의 숨을 앗아 갔다. 바깥의 상황을 외면하고 벌어지는 틈 사이를 파고들어 단 숨을 삼켰다.

그렇게 둘은 바깥의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질척이는 소리와 서로의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귓가에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리게 됐을 때, 마르바스는 붉어진 입술을 떼어 냈다.

흐트러진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주자 나붓이 눈을 뜬 그녀가 그 입술만큼이나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미쳤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내 걸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걸 선택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마르바스는 몽롱하게 젖은 보랏빛 눈을 보며 그녀의 말을 잘라 냈다.

“똑같이 미친 것 같으니까 됐어요.”

그녀가 혼자 괴로워하는 게 싫었다. 죄를 짓는 건 똑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평생을 함께한 이들이 죽는데도 결국 당신만을 신경 쓰는 그 역시 죄인이었다.

당신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날 선택한 게 너무 기뻤다.

마르바스가 여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벌도 같이 받으면 되겠지.”

여인이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마르바스도 그녀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위선적인 눈물이었지만 그만큼 솔직한 눈물이었다.

두 사람 모두 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어디든 함께하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마르바스는 여인을 꼭 껴안았다.

* * *

그들의 결말은 빠르게 다가왔다.

끝을 고하듯 피를 뱉어 내는 여인을 끌어안았다.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없는 부상을 입은 마르바스는 마지막 마법을 사용하기 전, 그에게 닿았던 레온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떠올렸다.

‘…됐어. 실제로 그 힘을 가진 이가 존재한다는 건 알게 됐으니까. 다음에는 내 걸로 만들면 돼.’

하지만 그것도 잠깐. 붉은 하늘 아래, 오롯이 둘만 남게 된 것을 확인한 마르바스가 꼭 끌어안고 있던 여인을 내려다봤다.

“아가씨.”

“이제, 이름으로 불러도 되지 않아?”

그래, 당신의 이름.

연인이 되고 나서도 잘 담지 못하던 그 이름.

마르바스는 달다 못해 아픈 그 이름을 뱉었다.

“클레어.”

그 부름에 기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몇 번이나 당신을 불렀다. 당신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여인의 숨이 멎자 억지로 붙들고 있던 몸이 기울어졌다. 흐려지는 시야 속 여인의 옆에 누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데, 돌연 그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긴 은발을 발끝까지 치렁치렁 늘어트린,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는 인간. 아니,

‘인간이 아니야.’

저자가 가진 건 마르바스가 가진 것과 비슷한 힘, 마력이었다.

마르바스는 그를 내려다보는 청백색 눈을 쳐다보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마르바스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다시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그 말만 아니었다면.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 죽음이 끝이 아닌 거지.”

그를 살려 준 은발의 마족, 엘리고스의 말에 마르바스는 잠시 숨을 멈췄다.

“다시, 태어난다고?”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는 당신이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보고 싶었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망설이는 마르바스에게 엘리고스는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줬다.

“마왕이 되어 마신의 축복을 받으면, 영혼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

차가운 청백색 눈이 번쩍였다.

“그러니 마왕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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