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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69)화 (6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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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따끔거렸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그럴 만도 했다. 죽은 줄 알았던 용사와 황녀의 키스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와아.”

제냐는 붉어지는 얼굴을 수그리지 않기 위해 가진 애를 썼다. 여기서 부끄러워하는 걸 너무 티 내면 말이 더 많아질 게 뻔했다.

너무 놀라 벌어져 있던 입을 앙다물고 최대한 의연하게 굴었다. 일단 나는 지금 약혼녀니까, 이런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용사가 저럴 줄이야.”

동감이었다. 두 사람이 약혼한 사이라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봐도 이건 신기하고 충격적인 게 맞았다. 루미에르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약혼한 사이이긴 해도 데면데면하게 굴었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만약 저들이 눈앞의 황녀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제냐가 눈에 힘을 주고 루미에르를 쳐다봤다.

사실 미처 그의 눈을 보지 못하고 턱선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 사과를 하면 아무리 보는 눈이 많아도 정강이를 차 주겠다 마음먹는데, 아쉽다는 듯 입술을 만지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뭐라 반응하기 전 루미에르가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우리는 돌아가죠.”

제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루미에르는 어느새 제냐에게서 몸을 돌려 신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네? 아니, 근데…….”

“이대로 가시게요?”

신관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황당함을 담아 루미에르를 쳐다보던 제냐가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루미에르가 신관들을 재촉했다.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텐데요.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신관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도 않은 채 루미에르를 이끌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제냐는 멀어지면서 그녀를 힐끔 쳐다보는 루미에르를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루미에르가 떠나고 있었다.

제냐만을 이 자리에 두고.

‘나만 두고……?’

제냐는 루미에르가 떠나고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집중된 사람들의 시선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사실 이미 반쯤 잃은 것 같기도 했다.

상황의 해명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떠나는 그를 붙잡지도 못했다.

제냐는 그저 멍청하게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키스의 여운에 사로잡혀 촉촉하고 말랑했던 입술의 감촉만을 되새기고 있었다.

코끝에 맴돌던 향기나, 목을 쥔 뜨겁던 손,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 떨어지던 입술 사이에서 나던 습한 소리.

그리고 떠올리기만 해도 목 주변이 간질거리고 얼굴이 붉어질 것 같은 오묘하게 젖은 푸른 눈까지.

“사이가 엄청 좋으신가 봐, 내가 이런 걸 볼 줄이야. 이게 무슨 일이람?”

“원래 사랑은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잖아.”

“드디어 결혼하시는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람들의 말에 열을 내다 보니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이걸 이렇게 날려 버릴 수는 없어.’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순간 몰캉했던 감촉이 떠올라 또다시 속절없이 얼굴이 허물어지려 했다. 제냐는 주먹을 꽉 쥐고는 얼굴을 가다듬었다.

제발, 생각 좀 그만하라고. 이대로 멍청하게 서 있다가 붙잡힐 거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협박하던 제냐는 열이 나도록 머리를 굴리다가 드디어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떠올렸다.

‘저기 왼쪽으로 쭉 가면 될 거예요.’

입을 맞추기 전, 루미에르가 했던 말이었다. 레라지에가 있다는 곳.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낸 제냐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내리거나 반대로 눈을 빛냈다.

그때 모여 있던 기사 중 지휘자로 보이는 기사가 제냐에게로 다가왔다.

“크흠. 황녀 전하.”

헛기침으로 말을 건 기사는 애써 의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냐는 제발 그녀의 얼굴이 눈앞의 기사와 달리 평온하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경.”

“그, 아무래도 여기 계시는 건…….”

제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잠시 혼자 있고 싶은데요.”

“네? 하지만…….”

황궁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로서 침입자가 나타난 상황에, 황녀를 혼자 둔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했다.

제냐가 부러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침입자라고 해 봤자 루미에르의 사람 아니겠어요? 혼자 가겠다는 게 아니라 잠시만 혼자 있고 싶다는 거예요.”

“아.”

제냐가 보란 듯 앞으로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지금 그녀가 굉장히 부끄러운 상태라는 걸 알렸다.

“사람을 좀 물려 줘요.”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이제 막 성년이 된 황녀였다. 연인과의 스킨십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하게 되어 민망하고 부끄러운.

제냐의 몸짓을 읽은 기사가 허둥지둥 주변을 살피더니 서둘러 몰려 있던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다들 물러나! 아직 위험 상황이 해소된 게 아니야!”

제냐는 기사에게 눈인사하며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한쪽으로 좀 물러나 있겠다고 신호했다.

기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열심히 사람들을 쫓아냈다.

“시끄럽게 입 놀리지 말고! 너! 그래, 너 말이야! 뒤로 빠지지 마.”

제냐는 사람들이 흩어지는 혼란을 틈타 루미에르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향했다.

하나, 둘, 셋, 사람들에게서 멀어질수록, 하얀 얼굴이 뜨겁게 타올랐다.

제발 아무도 이 얼굴을 보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신은 제냐의 편이 아니었다.

간신히 아무 이목도 끌지 않고 모퉁이를 돈 제냐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김을 마구 뿜어내는 레라지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으아아.”

누가 봐도 조금 전 상황을 다 본 게 틀림없었다.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그 얼굴을 보자 다시 한번 루미에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말 미안해요.’

미안한 짓은 하지 말라고!

정말 이렇게 부끄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 * *

제냐는 부담스러운 레라지에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그의 마법을 이용해 무사히 궁을 빠져나온 것은 좋았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제국 수도에 구해 둔 저택에 몸을 숨긴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레라지에는 너무 싫었다.

잔뜩 흥분해 어버버거리는 그를 간신히 어르고 달래 궁을 빠져나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머리를 내려칠 수도 없고.’

몇 시간 사이 과격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레라지에에게는 루미에르와의 키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마법에 휩싸여 사라진 마왕의 안위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제냐의 착각이었다.

레라지에는 제냐가 책을 꺼내며 하는 말에도 시큰둥했다.

“폐하께서는 괜찮으실 거야. 그것보다 우리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레라지에의 충성심은 마왕의 미모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의 반쪽짜리 충성심을 모르진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심한 건…….

정말이지 얄팍하기 짝이 없다고, 그럴 주제도 되지 않으면서 제냐는 마왕이 불쌍해지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 키스 말이야.”

기어이 다시 돌아온 화제에 제냐는 이대로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보다 레라지에의 말이 더 빨랐다.

“참 보기 좋았어. 음, 정말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곳에서, 하하, 참.”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 같았다고 후후, 웃던 레라지에가 슬쩍 제냐의 눈치를 봤다.

“그래도 역시 조금 배려가 없었달까?”

보는 눈이 많은데, 그대는 주목받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 않냐고 묻는 레라지에에게 그걸 알면 제발 입을 다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치밀어 올랐던 걸까? 용감하더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제냐가 레라지에의 입을 막으려 손을 뻗는데 그가 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용사는 역시 그래야 하는 건가?”

위로 올라가던 손이 털썩 아래로 떨어졌다. 그제야 현실 파악이 됐다. 지금은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마왕이 알고 있으니 레라지에도 그에게 들어 루미에르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만약 궁에서, 루미에르가 가면을 벗고 신관들과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거라면?

앞으로 마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제냐의 처지가 굉장히 곤란해질 게 뻔했다.

‘어느 쪽이지?’

레라지에에게 꽤 호감을 산 것은 맞았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했다.

‘우리랑 같이 있던 마왕이 사라졌잖아.’

레라지에가 상황을 나쁘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레라지에가 마왕에게 가진 얄팍한 충성심에 혀를 내둘렀는데, 정말 그건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제냐가 굳은 얼굴로 레라지에를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제냐는 그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레라지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웃는 저 얼굴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제냐.”

제냐가 마른침을 삼키며 간신히 답했다.

“네.”

다리를 꼰 레라지에가 눈꼬리를 접어 예쁘게 웃었다.

“이제 우리도 대화를 해야겠지?”

부드러운 물음이었지만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리적인 요인인 건가, 아니면 정말 레라지에가…….

제냐는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훑는 날카로운 눈빛을 느끼며 몸을 긴장시켰다.

‘이런 데에 나만 두고 갔다고?’

그가 도망간 게 아니라 끌려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도망가 버린 루미에르가 원망스러웠다.

허리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의식하며 제냐는 몸을 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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