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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67)화 (6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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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제레미야가 신전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궁에 있단 말인가?

“무슨 소란이지?”

오만하면서도 고압적인 말투에 지체 없이 앞으로 뻗어지던 발이 땅에 붙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엠마는 정신을 차렸다.

목소리가 다르다.

머리색과 눈 색은 같았지만 입고 있는 드레스도 아침의 것과 달랐다.

아무리 이제는 지척에서 제레미야를 모시지 않는다고 해도, 엠마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기 제레미야의 겉모습을 흉내 낸 자는 절대 그녀가 아니었다.

우두커니 자리에 멈춘 엠마의 뒤로 사용인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뭐지?”

“흑.”

그제야 엠마는 그녀가 데리고 있는 사용인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들은 전부 엠마가 지켜야 하는 아이들이었다. 제레미야와 비슷한 또래의, 아직은 순진한 아이들.

엠마가 몸을 바짝 긴장시키며 질문을 던졌다.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그대들이야말로 어찌 이곳에 있지? 이 소란은 뭐고?”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

고개를 끄덕인 엠마가 제레미야의 뒤에 있는, 누가 봐도 수상쩍은 인물을 가리켰다.

“예,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저들을 이대로 보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여인이 엠마에게 한 발 다가왔다.

“엠마.”

“…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걸까? 제레미야인 척을 해서? 하지만 황녀인 척을 한다고 엠마의 이름을 알아야 할 정도로 그녀가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다.

제레미야가 황녀가 된 후, 엠마는 대외적으로 그냥 외궁 시녀일 뿐이었으니까.

“어디로 가고 있었지?”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는데 엠마의 뒤에 있던 사용인 중 하나가 대신 답했다.

“대피 명령이 떨어져서요. 저희 숙소가 있는 외궁으로 갑니다.”

황녀 전하께서도 위험하시다는 말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됐네, 호위가 있으니까.”

뒤에 있는 수상한 이를 눈짓한 황녀가 엠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심히 가게.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군.”

냉랭하고 건조한 말투와 달리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 섞인 약간의 걱정을 읽은 순간 엠마는 한 존재를 떠올렸다.

설마…….

‘아스트리아 님?’

그럴 리가. 그분은 돌아가셨다. 그분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제레미야가 얼마나 괴로워했는데.

그러니까 살아 계실 리가 없었다. 하지만…….

‘네가 유일한 제 편이구나?’

이 얼굴은 처음 만났던 그날과 똑같았다.

“여전히 함께 있었나……. 조심히 가게.”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엠마가 살짝 휘어지는 여인의 눈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엠마는 표정이 망가지기 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침입자의 정체를 알게 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야 님을 위해서라도 그냥 보내 드려야 해.’

그리고 제레미야가 돌아오면 아스트리아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오랜 시간 제레미야를 갉아먹던 죄책감도 옅어질 테다.

엠마는 그녀와 사용인들을 스쳐 지나가는 아스트리아를 살펴보고 싶은 걸 꾹 참아 냈다. 그리고 다시 사용인들을 이끌고 외궁으로 향하며 기도했다.

‘부디 저분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기를.’

* * *

제냐는 루미에르를 재촉했다.

“얼른 가야겠어요.”

“아까 그 여자 때문에요?”

“네, 제레미야의 유모였어요. 아마 이상한 걸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크죠.”

제레미야를 많이 아끼던 여자였고, 아직까지 황궁에서 일한다면 지금도 그 옆에 있을 게 뻔했다. 왜 이렇게 순순히 자신들을 보내 주는진 모르겠지만 사실상 이미 들켰다고 보는 게 맞았다.

루미에르가 길을 안내하며 신기함을 드러냈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요.”

그런 것치고는 직접 보기 전까지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이름을 떠올린 게 신기할 정도였다.

“조금 인상 깊었죠.”

“저도…….”

“네?”

말끝을 흐리는 루미에르를 올려다보는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러고는 다시 방향을 잡았다.

“이쪽으로요.”

제냐가 그들이 모퉁이를 지나자마자 뒤로 우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빠져나갈 방법은 있나요?”

처음에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급급했는데 점점 더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으니 불안해졌다.

‘이렇게 없어질 거면, 그 전에 어떻게 나가려고 했는지 알려 줘야 했었던 것 아니야?’

설마, 계획한 방법 따위는 없고 상황에 맞춰 알아서 빠져나가는 게 정답이었다면, 이번에야말로 하극상이 뭔지 확실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데 루미에르가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지금은 다른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마족.

“레라지에 님이요.”

“네.”

그러고 보니 마법을 쓸 수 있는 레라지에가 있었다. 그만 있다면 마법을 써서라도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 황궁에 들어온 걸 들킨 마당에 마법을 쓰는 게 대수야?’

제냐가 밝아진 얼굴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쪽도 이동 중이에요?”

이렇게 움직이다가 길이 엇갈리기라도 하면 아주 곤란했다. 하지만 루미에르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밀며 다시 이동했다.

“제냐의 몸에 마법적 기운이 느껴집니다. 뭔가 조치를 한 거겠죠.”

레라지에가 전부 준비한 옷가지와 액세서리를 내려다보던 제냐가 떨떠름하게 답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허락받지 않고 그런 짓을 한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덕분에 엇갈릴 일은 없으니 말을 아꼈다.

꺼림칙하게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는데, 루미에르가 방향을 틀어 옷소매를 붙잡으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훅, 끌려간 제냐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루미에르가 제냐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쉿.”

놀라 숨을 멈추기가 무섭게 완전 무장 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우르르 이동했다.

천천히 입을 막은 손이 떨어져 나가자 제냐가 감탄했다.

“정말 본격적으로 찾고 있네요.”

“감탄할 일인가요?”

어이없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제냐는 어깨를 으쓱였다.

“황궁치고 보안이 허술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귀족 한 명의 도움과 약간의 편법만 있으면 수월하게 궁에 들어올 수 있다니.

“사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그냥 시녀인 척 굴어도 좋았을 텐데요.”

제레미야인 척하는 것보다야 훨씬 눈에 덜 띄지 않았을까? 어떻게 생각하냐고 루미에르를 쳐다보자 그가 눈을 깜빡였다.

“제냐 같은 얼굴을 가진 사용인이 흔하진 않을 텐데요.”

“…네?”

농담인 건가 싶었으나 그녀를 내려다보는 루미에르의 눈빛은 진지했다.

“제냐는 예쁘잖아요.”

귀가 빨개질 것만 같았다. 제냐가 루미에르의 어깨를 치며 민망함을 숨겼다.

“루미에르 같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해 봐야 웃기기만 하거든요?”

그러자 루미에르가 정말 재밌다는 듯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냐는 정말 제 얼굴을 좋아하네요.”

딱히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지만, 말이 길어져 봐야 이쪽만 손해였다.

제냐가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에서 고개를 쭉 빼며 물었다.

“안 가요?”

하지만 한 발 떼기가 무섭게 어깨가 붙들린 제냐가 다시 나무와 루미에르의 사이로 딸려 갔다.

“또 올 겁니다. 잠시 더 기다려야 해요.”

또 놀리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었는데 루미에르가 검지를 입가에 올렸다.

“쉬잇.”

그리고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 뒤를 지나쳐 갔다. 더 이상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제냐는 미동도 없이 신중하게 물었다.

“이제 됐어요?”

루미에르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제냐를 데리고는 길을 안내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몇 번이나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숨겼다. 그러나 점점 더 그 주기가 짧아졌다.

“루미에르, 이게 내 착각이라고 말해 줘요.”

바로 앞으로 다가온 결말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미에르는 제냐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처연하게 흔들리는 푸른 눈에 제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루미에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죠.”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고 되레 그를 달래 주려는데 루미에르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

또였다.

제냐는 길을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멈춰 선 루미에르의 손등을 두드렸다.

“더 못 갈 것 같아요?”

“네.”

“그럼 아까처럼 제가 나서면 되죠.”

이만큼이나 사람들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루미에르의 덕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제냐가 그녀의 몫을 할 차례였다.

제냐는 부러 환하게 웃었다.

“걱정 말아요. 어떻게든 하면 되겠죠.”

제냐는 이로 꽉 깨물어 하얘진 루미에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요.”

살짝 벌어진 루미에르의 아랫입술을 톡톡 친 제냐가 축 처지려는 그의 입꼬리를 위로 쭉 밀어 줬다.

“웃어요.”

루미에르가 어색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리고 나서야 제냐는 몸을 돌렸다. 불안함 가득한 시선이 뒤통수에 닿는 것 같았지만 제냐는 곧게 자리에 서서 맞은편에서 나타난 이를 바라봤다.

‘쉽지 않네.’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행운의 여신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게 틀림없었다.

“제레미야 황녀 전하?”

그 부름에 그림 같은 미소를 지은 제냐가 하얀 신관복을 입은 세 명의 사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고 해야 할까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는 제냐와 달리 신관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중 한 사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왜 이곳에 계십니까?”

제냐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답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설마 침입자들이 여기 있는 건가요?”

경계하듯 주변을 둘러보는데, 처음 말을 건 신관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식을 받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관의 말에도 제냐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신관들까지 움직이다니, 혹시…….”

최악의 상황을 들먹이자 신관들이 다급하게 대꾸했다.

“아니, 아닙니다.”

제냐가 새초롬하게 그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네요.”

가볍게 주도권을 가져온 제냐가 이제 저들을 어떻게 돌려보낼지 고민하는데, 제일 뒤에 서 있던 키가 큰 신관이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곳에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흐음?”

추궁하듯 묻는 신관에 제냐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말투가 거슬리네요.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에라도 있나요?”

과시하듯 주변을 손짓한 제냐가 마왕의 표정을 떠올리며 오만하게 말했다.

“여긴 저한테 집인걸요. 손님은 여러분이시고.”

객이 주인에게 왜 집에 돌아왔냐고 묻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신관은 물러섬이 없었다.

“말을 돌리지 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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