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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64)화 (6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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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기에 신관은 동료들의 취급에 놀라지 않았다.

“상처도 크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마법에 휘말렸으니까요.”

본래도 치유가 어려웠다. 빈말로도 그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의 주민들은 용사의 동료들과 함께 이번 일을 벌인 주범으로 여겨지는 이들이었다.

“지하 감옥에 구금하고, 음식을 만든 이, 건넨 이를 심문했습니다. 자기들 역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여인은 루미에르를 온전히 신전의 소속으로 만들기 위해 황제가 종종 용사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걸 말리지 않았다.

존경받는 건 신전 자체가 되어야지 용사 개인이 힘을 가지는 건 계획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용사와 그 일행에게 해코지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설마 루미에르가 마족도 아니고 같은 인간들의 손에 당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그게 주민들의 개인적 원한이 아니었다고?’

여인이 고개를 돌려 신관을 쳐다봤다.

“누가?”

“…그들도 그게 누구인지 모릅니다.”

신체적, 정신적 고문을 모두 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달갑지 않은 답에 여인이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처리해.”

“네.”

이 일과 연관이 있든 없든 마을 사람들은 전부 소리 소문 없이 깔끔하게 처리될 예정이었다.

그게 여인의 계획을 망쳤기 때문인지, 혹은 여인의 아들을 건드렸기 때문인지는 여인만이 아는 일이었지만.

마족들이 나타나고 좋아진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 웬만한 것들은 전부 마족이 했다고 우기면 뭐든 넘어갈 수 있었고, 별다른 핑계나 변명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정원을 바라보던 여인이 다시 입을 연 건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것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다시 화제는 용사의 동료들로 넘어갔다.

“딱 하나 있는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용사의 동료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용사를 도와 마족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임무는 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용사를 살려 내는 거였다.

여인의 눈치를 보던 신관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용사와 관련된 소문이 퍼지고 있는 지금, 그분들까지 문제가 생기면 곤란합니다.”

안 그래도 용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진 지금, 그의 동료들까지 명을 달리하면 사람들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이다.

그리되면 신전의 입지 역시 크게 흔들릴 테고.

여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래, 운도 좋지.”

루미에르가 그들을 살리겠다고, 주민들을 구하겠다고 헛짓거리를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분명 내 명령이 아니면 검을 꺼내 들지 말라고 했다. 명령이 아니라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라 그리 일렀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자신의 목숨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건만 기어이 다른 이들을 살리고 죽어 버리다니.

“어쩌면 도망가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점점 메말라 가던 아이였으니 기회를 살펴 죽음으로나마 여인의 손아귀를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차가운 침묵이 맴도는 정원에 다른 신관이 온 건 그때였다.

“황제가 독대를 청합니다.”

자기 멋대로 용사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니 이제 이쪽의 분위기를 알고 싶은 게 분명했다.

“받아 주실 겁니까? 소문을 낸 장본인 아닙니까?”

“어차피 소문은 곧 퍼졌을 거야.”

황제가 루미에르가 사라진 것이 아무렇지 않냐고 물었을 때부터 여인은 그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다.

여인이 눈짓하자 황제의 말을 전해 왔던 신관이 먼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여인이 먼저 와 있던 신관을 스쳐 지나가며 명령했다.

“준비해 뒀던 아이들 전부 제대로 확인해.”

루미에르가 사라진 순간부터 준비해 뒀던 일을 시작할 때였다.

* * *

향기로운 향이 방 안 가득 퍼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던 두 사람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재밌는 일을 벌이셨더군요.”

“재밌는 일이라면?”

무료한 얼굴로 혀를 찬 성녀가 대꾸했다.

“쓸데없이 떠보는 건 그만하시죠.”

평소보다 반응점이 낮은 성녀에 황제가 허허, 너털웃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인내심이 닳은 것 같은데, 협상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었다.

“그대도 동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소문이 퍼진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항상 그랬듯 성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론을 바꿀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침묵했다는 건 암묵적인 동의가 아닌가?

의미심장한 황제의 말에 성녀가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웃음기가 없는 눈빛이 매서웠다. 어지간히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내가 실수한 건가?”

“무례하신 거죠.”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직구로 돌아온 답을 들으며 황제는 생각했다.

저 분노는 상의도 없이 일을 치른 것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면 자기 아들을 죽은 자 취급한 것에 대한 분노인가.

이미 답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황제는 다시 한번 더 그 속을 떠보기로 했다.

“실수는 아니라는 거군. 무례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하겠어.”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둔 문서를 성녀에게 들이밀었다.

“기부금이 줄었다지? 이 정도면 되겠나?”

성녀가 눈만 내려 기부금을 확인했다. 깜빡, 깜빡.

눈을 몇 번 감았다 뜬 성녀가 다시 황제를 쳐다봤다. 조금 전 매섭던 눈과는 달리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눈이었다.

이 정도면 넘어갈 만하다는 의사 표시였다. 역시 성녀는 상의 없이 일을 치른 것에만 화를 내고 있었던 게 맞았다.

‘어쩌면 화나 보이던 모습도 다 연기일 수도 있고.’

속에 불여우가 백 마리쯤 있는 이였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성녀는 문서를 챙기고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일주일 후에 공식적으로 사망을 공표하도록 하죠.”

오늘 황제가 성녀를 만나려고 한 것은 루미에르의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제도 성녀가 이렇게 빨리 루미에르의 사망을 인정하자고 할지 몰랐다.

“그렇게 빨리?”

용사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신전에는 악영향이 갈 게 분명했다. 황제의 눈이 가늘어지는데 성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관심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니까요. 용사를 향한 애도도 늘어나겠죠.”

하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용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꼭 용사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성녀가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그간 용사의 업적을 전시하면 기부금도 많아질 테고 말이죠.”

그 말대로 죽어 버린 용사를 영웅으로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그런 건 한순간일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처음에는 모두가 용사의 죽음에 슬퍼하며 신전에 안타까움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신전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황제의 지적에 성녀가 우아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전에 새로운 용사를 데려와야겠죠. 용사 개인에 대한 것보다는 신전에 대한 존경이 더 컸으니까 문제는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다시 키우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새로 데려온 이가 루미에르처럼 용사 구실을 하기까지는 몇 년이 소비될 것이다. 물론 신전이 주춤한 사이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황제에게는 반길 일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려올 겁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을 조금씩 공개할 생각이에요. 용사의 죽음에 슬퍼하던 이들이 어린 용사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일 테죠.”

성녀가 가볍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가 전대 용사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테고.”

단박에 계획을 알아차린 황제가 킬킬 웃었다.

“용사의 죽음을 비극적으로 만들어야겠군.”

“그렇죠.”

“용사가 그랬듯 새로운 녀석도 얼굴이 중요할 테고.”

성녀가 눈만 깜빡여 답을 했다. 황제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후보는 어떻게 할 건가?”

성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예전부터 적당한 후보를 몇몇 추려 놓았습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한다는 건 하루아침에 준비한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준비하고 있었군.”

“특이 체질이니까요.”

확실히 언제 잘못될지 모르는 체질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황제가 창밖을 쳐다봤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와 달리 창밖은 평화로워 보였다.

“한동안 바깥이 소란스럽겠군.”

“바깥일은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새로운 약혼자를 찾고 계신다던데.”

“그대나 나나 바쁘긴 매한가지일 거야.”

“그렇겠네요. 좋은 약혼자를 찾으시길 바라요.”

웃고는 있지만 성녀에게서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봐야 이제 승기는 제국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우위에 선 자의 오만한 인사에 성녀는 답 없이 미소로만 화답했다.

황제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평온하던 바깥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황제는 생각했다.

‘아닌 척해도 신전 내에서도 말이 많은 모양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밖에서 들려오는 건 딸의 목소리였다. 소란의 주인공이 제레미야라는 걸 깨달은 황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황제의 얼굴이 차가워지는데 기어이 제레미야가 앞을 막던 이들을 다 떨쳐 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폐하.”

황제는 가빠진 숨을 고르며 인사를 하는 제레미야를 향해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무슨 일이냐?”

눈앞에 성녀가 없었다면 역정을 냈을 텐데 보는 눈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제레미야가 성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귀에다 작게 속삭였다.

“황궁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전언입니다.”

“…침입자?”

성녀를 의식한 황제가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내궁 지하에서 마법 반응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곳에 있는 물건이 뭔지 깨달은 황제가 눈을 크게 뜨는데 제레미야가 연 문틈으로 또 다른 이가 들이닥쳤다.

“성녀님! 황궁에서 긴급 전언이…….”

잔뜩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신관이 제레미야와 황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성녀가 황제와 제레미야를 바라보자 신관이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성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성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환희?’

건조하던 얼굴에 일순 감돈 감정을 읽어 낸 황제가 그 뜻을 짐작해 보려고 하는 순간 성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리는 성녀에 황제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기다리라?”

대책을 세우든가, 아니면 이대로 헤어져 상태를 확인하는 게 제일 좋을 텐데 무작정 기다리라니?

“그게 폐하께도 좋을 겁니다.”

웃음기 섞인 말을 끝으로 성녀가 서둘러 방을 나섰다. 뭔가 이상했다.

‘설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황제가 제리미야를 돌아보자 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더 알아보겠습니다.”

황제는 멀어지는 제레미야의 뒷모습을 보며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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