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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63)화 (6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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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일정이 일주일 이상 당겨지면서, 행사 당일까지도 신관들은 죽을 맛이었다.

“위엄이 안 살잖아? 너무 화려해도 안 되고 너무 삭막해도 안 돼!”

고위 신관의 지적에 견습 신관 하나가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어제는 이게 좋다고…….”

“토 달지 말고 움직여!”

견습 신관들과 하급 신관들은 황족들이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고위 신관의 히스테릭한 비명에 맞춰 한참 동안 눈치를 봐야 했다.

“아씨.”

간신히 비명 같던 목소리에서 벗어난 하급 신관이 멀어지는 고위 신관을 보며 욕을 짓씹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신관이 검지로 입을 가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참아, 참아.”

그러고는 얼른 하급 신관을 끌고 황족들을 마중 나온 신관들 무리에 섞여 들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것 때문이잖아. 소문.”

씩씩 열을 내던 하급 신관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거 진짜야? 용사가 정말 죽었어?”

그 물음에 동료 신관이 누군가 엿듣는 이는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윗분들 하시는 말씀 들어 보니까 실종된 지는 꽤 됐다고 하던데.”

하급 신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런데 왜 여태까지 우리는 모른 거야?”

그러자 동료 신관이 혀를 찼다.

“당연히 숨긴 거지. 소문 돌자마자 기부금 확 떨어졌다는데.”

기부금이 줄다니, 그 말은 그 밑의 신관들에게 돌아갈 몫도 적어진다는 뜻이었다.

하급 신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죽은 거 같아?”

동료 신관이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원래 아슬아슬했다곤 하더라.”

하지만 이어진 말은 소문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말이어서 하급 신관이 막막한 얼굴을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성녀님이 계시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성녀님!

하급 신관의 얼굴에 희망이 어렸다. 사실 용사보다 더욱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건 성녀님이 아닌가? 하급 신관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다른 걱정거리를 꺼냈다.

“마족들은…….”

제국의 수도에 사는 그의 가족들과는 연관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외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달랐다.

언제나 힘든 이들을 보살피고 베풀라고 말하는 신전의 가르침에 따라 눈치를 보듯 물었지만 그다지 관심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건 동료 신관도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마. 원래도 용사 혼자 하던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겠지?”

“그래, 우리 일도 아니고.”

수도 바깥일은 우리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지 않냐는 말까지 덧붙여지자 하급 신관의 얼굴은 다시 평온해졌다.

마침 앞쪽이 소란스러워지고 고위 신관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슬슬 황족들이 도착할 모양이었다.

신관들이 하나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열을 맞췄다. 옅은 미소를 띠고 손님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조금 전 불평불만을 쏟아 내거나 소문을 주절거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자, 정렬!”

거기에 더해, 막 나타난 고위 신관들이 성력을 옅게 퍼트리자 평민들과 일부 귀족들이 늘 찬양하는 평온하고 고요한, 신전 특유의 고즈넉하고 신성한 느낌이 생성됐다.

타이밍 좋게 황족을 실은 마차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서고 그중 가장 화려한 마차에서 황제가 나타났다.

그러자 윗분들을 욕하던 하급 신관도 능력 없는 아랫것을 욕하던 고위 신관도 하나로 똘똘 뭉쳤다.

절대, 황실에는 질 수 없다.

같은 마음을 가진 신관들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황족들을 반겼다.

* * *

마차를 타고 이동할 때부터 속이 울렁거리면서 불안불안하더니, 기도를 위해 장시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하지만 제레미야는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가며 버텨 냈다.

지금도 수많은 시선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온화한 얼굴 밑으로는 앞으로의 일을 기민하게 재 보고 있을 테고.

‘앞으로 권력의 추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신의 보살핌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진심으로 신에게 기도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르지, 누군가는 기도할지도.’

하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것은 탐욕 섞인 시선뿐이었다.

-황제는 지나치게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아?

-황후는 어떻고? 저 화려하게 꾸민 꼴 좀 보라지.

-황녀는…….

-약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가, 조금 야윈 것 같은데?

-웃기는 소리, 쟤도 똑같아.

-아픈 척이겠지.

-하긴, 그 아비에 그 딸이라잖아?

-권력이 제일인 거야.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신관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들의 입이 벌어지고 그런 말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환청이 귀 옆으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제레미야는 껌뻑거리며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시야에 눈에 힘을 가득 주고 혀를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몸은 점점 더 끝을 향해 가는데 아직 식은 중반을 간신히 지난 상태였다.

그때, 앞에 서 있던 어머니가 그녀를 돌아봤다.

“제레미야, 괜찮니?”

아. 순간 귀를 가득 채우던 환청이 사라졌다. 제레미야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

“…괜찮아요.”

목에 힘을 준 탓에 형편없이 목소리가 갈라지고 덜덜 떨렸다. 제레미야는 콱 막히는 목을 손으로 작게 쓸었다.

그 모든 봤음에도 어머니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걱정이 아니라 거슬리니 아픈 걸 티 내지 말라고 주의를 준 거였다.

대화를 들었을 게 분명한 아버지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가슴 한가운데에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한심하긴, 뭘 기대했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제레미야를 마구 비웃었다.

-멍청하긴. 아직도 순진하네.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아버지가 너를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이유가 그거라고.

-쓸데없이 감성적이지.

-연약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

-계속 그러면 버려질걸?

-깔깔깔, 버려진다니까?!

제레미야는 그녀의 옆을 맴도는 시끄러운 소리를, 자신의 소리를 외면했다.

오로지 ‘황녀’ 제레미야에게만 관심을 쏟는 아버지와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어머니.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 몸이 안 좋은 탓인지 모든 게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이상해.”

얼마 전, 네 꿈을 꿔서 그런 걸까? 환청을 넘어서 환영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새침한 인상의, 고집이 가득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받은 티가 가득한 동갑내기 사촌이 제레미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부모님이잖아,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왜 눈치를 보냐니, 나는 너랑 다르니까. 나는 너처럼 사랑받지 않으니까!

“내가 뭘 잘못했어? 미안해, 앞으로 그 이야기는 안 할게. 우리 정원에 나갈래? 얼마 전에 예쁜 꽃을 들여왔어.”

날 선 제레미야의 반응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사과를 하던 그 애. 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 애가 모든 걸 잃었을 때, 너 역시 이제 나처럼 눈치를 봐야 한다, 이제 너도 그 반짝거림이 사라질 거라고 말해 줬다.

그리고 그 애는 그렇게 사라졌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

왜 요 며칠 기분이 이렇게 나쁜가 했더니.

그건 용사의 끝이 아스트리아와 같을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성장 과정과 사람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결말만은 똑같았다.

아무도 인물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들 그 뒤에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이용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그리고 용사 역시 아스트리아가 그랬듯 나중에는 존재조차 잊힐 것이다.

비릿한 웃음을 흘린 제레미야는 몸을 바로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아스트리아를 바라봤다.

제레미야는 기도하는 척만 하던 태도를 지우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스트리아를 위한 기도를 했다.

그리 좋아하지 않던 사촌이지만, 그렇게 해서 널 떨쳐 낼 수 있다면 충분히 진심을 담아 기도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는 고요했고 아스트리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제레미야는 식이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 * *

넓게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금안을 깜빡이던 여인은 아이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이름은 없어요.’

바짝 마른 아이의 안에 잠재되어 있던 그 힘을 눈치채고 느꼈던 환희. 아이를 손에 넣은 여인은 막힘없이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이 아이가 가진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용사가 될 아이를 어떻게 이용할지, 그리고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까지.

이름을 주고 아이의 앞날을 갈고 닦았다. 그렇게 아이는 용사 ‘루미에르’가 됐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루미에르의 미래는 모두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지.’

루미에르가 사라질 때를 대비하곤 있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건 너무 일렀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그걸 되돌릴 수 없다면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성녀님.”

여인은 그녀의 뒤에서 깊게 고개를 숙인 신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과만.”

불필요한 핑계를 들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능력 없는 것들의 목소리는 듣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새롭게 계획을 짜면서 아랫것들도 갈아엎어야 할까?’

냉랭한 여인의 말투에 흡, 크게 숨을 들이마신 신관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흔적조차 없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소문을 해 봐도 결과는 같았다.

“그것들은 뭐라던?”

덤덤한 표정과 무심한 말투였지만 그 단어에서 그들을 향한 성녀의 감정이 잘 드러났다.

그것들.

용사의 동료들을 칭하는 것치고는 멸시와 조롱이 담긴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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