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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대상이 잘못됐는데요 (61)화 (6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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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해 봤자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최악이었다. 제냐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대놓고 눌렀다.

“그걸 다 알면서도 황궁에 들여보내 주겠다고요.”

“네.”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잔뜩 흥분해 존댓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작은 불쾌해하기는커녕 빙그레 웃음을 흘렸다.

그 반쯤 돈 것 같은 얼굴을 본 제냐는 그제야 깨달았다. 백작은 지금 제냐의 일행이 무슨 짓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제 가족이 죽은 건 모두 그들 탓입니다. 저는 그들이 다 망가지길 바라요.”

백작이 생생한 감정을 드러낸 채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주님은 절 잘 찾아오신 겁니다.”

하, 절로 헛숨이 튀어나왔다. 왜 그녀의 주변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전혀 없는 걸까. 어쩌면 그녀가 이런 사람들만 끌어들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백작을 선택한 건 제냐였으니까.

제냐가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꾹 참아 냈다.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것 같나요?”

“글쎄요, 믿는 건 공주님의 몫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제 도움이 필요하시긴 할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방에 정적이 감도는데, 창밖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폐하!

서서히 선명해지는 그 외침에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때가 됐군.”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들어야 할 이야기도 많았고.

하지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이쪽에서도 무언가를 줘야 했다. 제냐는 모든 의문과 분노를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 * *

백작가의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레라지에조차.

황족의 행렬을 구경하던 시민들 덕에 길이 혼잡했기에 시간이 꽤 걸렸음에도 그랬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품은 마차가 성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지키고 서 있던 기사가 백작가의 문양을 확인하고 공손하게 문을 열었다가 흠칫 놀랐다. 마차 안에 얼굴을 가린 이들이 넷이나 있었던 탓이었다.

“백작님?”

기사가 설명을 요구하듯 그래논 백작을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열어라.”

그 당당함에 밀릴 뻔했던 기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백작님,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백작의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얼굴을 가린 걸 보면 모르나? 폐하께서 따로 명령하신 일이다.”

“하지만…….”

기사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머뭇거리자 그래논 백작이 기사의 어깨에 걸린 가문의 문장을 확인했다.

“본 가문이군. 그럼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폐하께서 요즘 뭘 하시는지.”

차갑게 떨어진 말에 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제냐의 일행은 알아듣지 못한 말을, 기사는 단박에 알아들은 것 같았다.

“조용히 해야 할 일인 것도 알고 있을 테고.”

이제껏 곤란한 얼굴을 하던 기사가 백작의 말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금은 순진하게 물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지금 들어가시면 한참 기다리셔야 할 텐데 왜 지금 오셨습니까?”

끈질긴 기사에 백작이 쯧, 혀를 찼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다들 신전에 관심을 주고 있으니 지금이 적기지.”

그러고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폐하께서 직접, 보고 결정하신다고 하셨네.”

그렇게 끝이 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기사가 로브를 쓰고 있다지만 여자임이 확실한 제냐에게 관심을 줬다.

“그 저분은…….”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말해야 하나? 정말 알고 있는 게 맞아?”

딱딱한 태도이긴 해도 답을 해 주던 백작의 목소리에 노기가 맴돌자 기사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기사가 문을 닫고 물러나자 다각 거리며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제냐는 그간의 침묵을 깨고 곧장 질문을 던졌다.

“황제가 요즘 뭘 하는데요?”

“아, 그거.”

말을 걸 줄 몰랐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던 백작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무것도요.”

“네?”

“황제는 귀족들을 완벽하게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귀족에게는 계획을 이야기하고 어떤 귀족에게는 침묵하죠.”

백작이 창밖을 힐끗 바라봤다.

“그렇게 아는 것이 많을수록 황제에게 신임을 사고 있다는 증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뭔가 있는 것 같으면 그냥 아는 척을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조금 전 그건 거짓말이라는 소리였다. 저 기사는 그거에 홀딱 속은 거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발각되면 고초를 겪으실 텐데요.”

“정보는 귀한 법이니, 아무에게나 지껄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들키더라도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뒷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게 황당했다. 하지만 제냐는 한숨과 함께 그 말들을 삼켰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지금은 남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차는 한참을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인적이 드문 곳에 마차가 멈춰 섰다.

황족들이 자리를 비운 덕인지 확실히 사용인들의 수가 적어 보였다. 제냐가 마지막으로 마차에서 내리자 백작이 물었다.

“기다려 드릴까요?”

“아니.”

답을 한 건 마왕이었다.

‘뭔가 따로 방도를 마련해 놨나?’

어쩌면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냥 마법을 이용해 나갈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구하고 나서야, 소란이 일어나든가 말든가 상관이 없었으니까.

마왕은 백작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먼저 걸음을 뗐다. 제냐는 백작을 한 번 돌아봤다가 인사를 건네고 마왕을 따라갔다.

몇 발자국 걸어가자 뒤에서 마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을 알 수 없는 이를 이대로 보내는 건 위험했다.

“저대로 돌려보내시나요?”

마왕이 제냐를 돌아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레라지에.”

“네.”

미리 말을 맞춘 것처럼 레라지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궁 안에서 마법을 써도 되나요?”

제냐가 아는 바에 따르면 황실 마법사가 아닌 존재가 마법을 쓰면, 곧장 황궁에 경보가 울린다고 했다.

‘이건 헛소문인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진 레라지에에 제냐가 황급히 마왕의 옷깃을 붙잡는데, 마왕이 답했다.

“마법이 아니다.”

설마, 지금 저게 신체 능력이라고? 뒤를 돌아보는데 마왕이 제냐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로브는?”

아. 모자에 손을 올리는데, 마왕이 먼저 손을 뻗어 모자를 벗겨 냈다. 그리고 제냐를 빤히 쳐다봤다.

제냐는 마왕이 뭐라고 말을 하기 전 로브를 완전히 벗었다. 그리고 그 로브를 마왕에게 건넸다.

“보관 좀 해 주세요.”

마왕의 시선이 정수리에서 느껴졌지만 고개를 돌려 그걸 외면했다. 제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 놓고 마왕과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하려던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제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길은 아시나요?”

시선은 끊기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따끔거리는 감각을 무시하는데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루미에르가 마왕의 시선을 끊어 내듯 제냐의 옆에 가까이 붙어서 마왕을 쳐다봤다. 그런 루미에르에게 코웃음을 친 마왕이 시선을 거뒀다.

“이쪽이다.”

제냐는 괜찮다는 듯 부드럽게 웃어 주는 루미에르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마왕을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동하면서 혹시 다른 이들을 마주칠까 긴장했던 것이 우습게 일행은 이제껏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리 황족들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절대 우연은 아니었다. 아마 마왕은 과거 루미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없는 곳을 골라 이동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마왕이라도 모든 사람을 다 피할 수는 없었다.

“마주치겠군.”

짧게 떨어진 말에 제냐가 마왕을 뒤로 보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한때 배웠던 예법을 새삼스레 되뇌며 몇 발자국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날 레라지에에게 확인을 받긴 했으니 크게 이상한 점은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굴자.’

후, 숨을 가다듬자 모퉁이 너머에서 사용인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용인들이 제냐를 발견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딱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사용인들은 알아서 그녀를 황녀로 받아들였다.

하긴 황녀궁 소속이 아닌 이상에야 궁이 이렇게 넓은데, 아무리 사용인이라도 황녀를 가까이에서 볼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제냐는 무성의하게 고개만 까딱였다. 사용인들은 제냐 일행이 그들을 지나칠 때까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 대놓고 수상한 기색을 물씬 풍기는 두 남자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제레미야가 무서운 주인인가?’

아니면 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를 만나서 그럴 수도.

제냐는 어느새 다시 앞으로 나선 마왕을 쳐다보다가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제레미야는 평소 어떻게 굴어요? 존댓말을 써요? 아니면 말을 놓나?”

“…말이 많은 편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보통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편이신 것 같고요. 사용인에게는 말을 낮췄을 겁니다, 아마.”

확신이 없는 추측성인 말에 불안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제레미야를 잘 모르는 것 같은 루미에르가 기꺼웠다.

‘가지가지 하네.’

정말이지, 어린애도 이렇게 굴지 않을 것이다. 제냐는 이제 반쯤 포기한 상태로 스스로의 반응을 받아들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앞서 걷던 마왕이 천천히 발을 멈추더니 스윽, 그녀의 오른쪽으로 다가왔다. 의아하게 마왕을 쳐다보는 것도 잠시, 복도 끝에서 기사들이 나타났다.

“기사는요?”

제냐가 루미에르가 있는 왼쪽을 힐끗거리며 묻자 그가 답했다.

“기사 작위가 있다면 막 대하진 않았겠죠. 여성 귀족들의 모범이라고 불리셨으니까요.”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는 목덜미를 느끼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사들을 응시했다. 기사들이 몇 발자국 앞에서 인사를 건넸다.

“황녀 전하.”

“그래요.”

가볍게 고개를 숙인 제냐가 이번에도 운이 좋길 바라며 그들을 지나치려는데 기사들이 자리에 멈춰 섰다.

“어째서 황궁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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